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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17화 (312/1,794)

템빨 24권 - 7화

정확히 23시간만의 일이었다.

그리드의 레벨이 2개나 오른 것은.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각국의 Satisfy 전문가들과 언론인들, 그리고 뒤늦게 소식을 접한 랭커들과 평범한 플레이어들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 모두가 그리드의 레벨링 속도를 납득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300레벨 초반의 랭커가 레벨 하나를 올리는데 소요하는 시간?

평균 열흘이다.

그것도 그나마 최근에 새로 발견된 사냥터들 덕분이었다. 그전에는 레벨 하나 올리는데 20일도 더 걸렸었다.

물론 현실시간 기준으로.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사냥해야 한다는 전제까지 붙는다.

한데 그리드는 불과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2개의 레벨을 올린 것이다.

이건 어떻게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속도였다. 상식에 위반됐다.

“경험치 버프를 적용받는 중이라는 걸 감안해도 아예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그리드가 또 워낙에 세잖습니까. 여러가지 특별한 템빨을 구사할 수도 있는 입장이고. 혹시 또 압니까? 사냥 속도를 대폭 상승시켜주는 아이템을 만들어서 몬스터를 휩쓸고 다니는 중일지.”

“아니, 그런 거 다 감안해 봐도 말이 안 된다고요.”

전문가들은 계산해봤다.

307레벨의 유저가 23시간 동안 2개의 레벨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험치를 ‘최소’ 300만 이상씩 주는 몬스터를 분당 1마리 꼴로 ‘쉬지 않고’ 학살해야 했다.

중국의 사냥전문가 <판다따거>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307~308레벨의 유저가 300만 경험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최소 320레벨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해야합니다. 제가 준비해온 표를 보시죠. 현재까지 밝혀진 320레벨대 몬스터들의 평균 생명력과 방어력 수치입니다. 보시다시피 상당량의 생명력과 높은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지요. 전투력 자체가 강한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이런 괴물들을 1분 단위로 사냥한다?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불가능합니다. 한두 마리쯤이야 궁극기를 사용해서 순식간에 사냥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속적으로 1분 단위로 학살한다는 건 말이 아예 안 됩니다.”

설사 만약 가능할지라도 Satisfy에는 스태미나라는 개념이 있다.

스태미나가 고갈되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게 된다.

근력과 체력 스탯이 높아서 스태미나 회복속도가 빠른 하이랭커들조차도 사냥할 때는 4시간 단위로 휴식을 취하는 게 기본이었다.

한데 그리드는 휴식을 취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320레벨대의 몬스터를 학살하고 있는 중이라고 가정할 경우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어떤가?

그리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가면서 사냥하는 중이었다.

그 또한 플레이어인 이상 스태미나의 압박을 피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벨링 속도가 빠를 수 있는 이유는…

[하급 뱀파이어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4,951,000을 획득하였습니다.]

[중급 뱀파이어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7,254,300을 획득하였습니다.]

[상급 뱀파이어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11,000,050을 획득하였습니다.]

[진혈족 뱀파이어 <포크>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59,970,111을 획득하였습니다.]

7번째 도시를 기준으로, 뱀파이어들의 평균 레벨은 300~360이었다.

또한 뱀파이어는 ‘상위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동급 레벨의 다른 몬스터보다 주는 경험치가 훨씬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진혈족 뱀파이어는 특별했다.

일반적으로 솔로 레이드가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는 이 준보스급 괴물들은 몇 배나 더 높은 경험치를 줬다.

말인 즉, 그리드는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중이라는 뜻이다.

그것도 분 단위로.

때때로는 초 단위로!

“냥핫핫핫!! 지옥제일 마수님의 완전 센 슈퍼 울트라 펀치시다! 냥!!”

톡.

노에의 말캉말캉한 앞발이 뱀파이어 한 명의 이마를 때렸다.

솜방망이처럼 가벼운 펀치였다. 완전 센 슈퍼 울트라 펀치라고 지칭하기에는 무리가 컸다.

하지만 잠시 후.

“끄아악~!”

뱀파이어가 비명을 내지르면서 나뒹굴었다.

노에가 갑자기 발톱을 세워서 얼굴을 할퀸 까닭이었다.

‘멤피스… 과연 대악마의 애완동물답게 사악하군.’

브라함이 혀를 내둘렀다.

상대방에게 ‘펀치를 날리겠다.’고 선언한 후, 사실은 할퀴기를 시전하는 멤피스의 악독함이 그는 마음에 들었다.

‘깜찍발랄한 녀석… 참으로 사랑스럽다. 대악마들이 멤피스를 아끼는 이유를 잘 알겠어.’

나도 한 마리 키우고 싶다.

브라함이 생각하는 그때였다.

“파그마의 검무.”

“파그마의 검무.”

“살(殺).”

“살(殺).”

푸욱!!

그리드의 모습을 복제한 랜디와 그리드가 나란히 똑같은 스킬을 전개하여 뱀파이어 한 마리를 공략했다.

“놈들!!”

잿빛으로 산화하는 동족을 목도하고 광분한 뱀파이어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갓 핸드들의 망치세례 탓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고, 급기야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뭐 이딴…!”

피할 수 없는 망치질이라니!

한 대 얻어맞으면 또 오지게 아프기까지 하다.

신성력이 가득 담겨있는 황금 망치, 소름 돋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애들이 너무 사리네. 지능이 높은 몬스터가 사냥대상으로 기피되는 이유를 알겠군.”

그리드는 사냥속도를 더욱 더 높이고 싶었다.

하지만 묠니르에 위축 된 뱀파이어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고 어물쩍거리는 탓에 속도가 늦춰졌다.

건물 내부의 기둥 뒤, 계단 위, 천장 등으로 흩어진 채 수세를 취하는 수백 마리 뱀파이어들.

놈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격파하기에는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을 거라고 판단한 그리드가 브라함에게 바통을 넘겼다.

“동화.”

크오오오오-

마력이 들끓는다.

그리드의 넓은 어깨와 두꺼운 팔뚝이 차츰 가녀리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턱선이 가늘어졌고, 흑단 같던 머리카락이 눈처럼 흰색으로 물들었다.

[클래스가 <대마법사>가 되었습니다.]

[사용 가능한 스킬 목록이 변경됩니다.]

[3분 동안 육체의 주도권을 잃습니다.]

“존재가치가 없는 가짜들.”

시조 베리아체가 낳은 아홉 직계만이 스스로를 뱀파이어라고 자처할 자격이 있다.

씨익!

흰 이를 드러내면서 웃은 백발 버전의 그리드가 천장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이어서 쏘아지는 것은 마스터 레벨의 <매직 미사일(강화)>였다.

쿠콰콰콰콰콰쾅!!

“캬악!!”

“끄아아아악!!”

천장 위에 박쥐처럼 매달려있던 뱀파이어들이 백색 마력의 폭격을 피하지 못하고 지상으로 추락했다.

후두둑!

폭우처럼 쏟아지는 핏줄기와 살점의 잔해들 속에서, 백발의 그리드가 안광을 붉게 물들였다.

그 냉혹한 눈동자를 목도한 순간 장내의 뱀파이어들이 전부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위대한 피…!”

“귀, 귀족의 냄새다!”

인간이 아니었다고?

뱀파이어들의 혼란이 가속화되는 그때.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각각 지력을 200씩 올려주는 <말락서스의 망토>와 <성스러운 빛의 왕관>, 그리고 지력을 15퍼센트 올려주는 <흑수정 귀걸이>까지 착용한 백발 버전 그리드.

2천이 돌파한 지력을 토대로 마스터 레벨의 <파이어 볼(강화)>를 사방으로 전개한다.

마나 소모량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부조리의 반지>의 힘까지 빌린 그의 마법 폭격은 종전과 비할 바 없이 압도적인 위세를 뽐냈다.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아아아아아악!!”

불타오르며 무너지는 건물 속에 뱀파이어들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7번 도시 전체가 발칵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뭐냐!!”

“적의 침공인가!!”

도시 곳곳에 흩어져있는 13채의 건축물들.

그중 한 채가 폭삭 주저앉자 소란을 듣고 깨어난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족히 수천은 되는 숫자였다.

폐허가 된 건물 속에서 간신히 안전을 확보하고 몸을 일으킨 그리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헐…”

도시 전경을 검게 물들이고 있는 수천 마리의 뱀파이어들!

때마침 동화의 지속 시간이 끝나버린 그리드가 사색이 되었다.

“저걸 어쩌라고…! 이런 미친! 적당히 좀 하지!!”

몰이사냥을 원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무식하게 건물을 때려 부수냐!”

울상을 짓고서 소리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당 불가…인가?’

그리드가 즉각 답했다.

“당연하지! 염병!!”

수천 마리의 뱀파이어를 한꺼번에 상대하라고?

이건 내가 아니라 크라우젤이 와도 안 된다. 아니, 크라우젤은커녕 크라우젤의 할아버지가 와도 감당 못할 상황이었다.

‘그것 참 미안하군.’

“에라이! 일단 협소한 장소로 이동한다!”

갓 핸드를 사방으로 전개, <절대보호>의 영역을 생성한 그리드가 서둘러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캬하하핫!!”

“하찮은 벌레가 도망치는 꼴을 구경하는 건 재미있군!!”

오래간만에 나타난 사냥감을 보고 흥분한 뱀파이어들이 신나서 떠들며 쫓아왔다.

그리고 그리드에게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 때때로는 병장기도 휘둘러보았지만.

채챙!

채채채챙!!

“무슨…!”

과연 전설적 대장장이의 손.

갓 핸드들이 너무나도 능숙하게 망치를 휘두름으로서 뱀파이어들의 공격 대부분을 차단해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마법이었다.

마법만큼은 묠니르로도 어떻게 안 됐다.

콰쾅!

쿠콰콰콰쾅!!

비행하며 쫓아오는 뱀파이어들의 마법세례가 그리드를 노리고 쏟아진다.

“윽.”

이미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를 무장하고 있는 그리드였지만, 수십, 수백 발의 마법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뱀파이어들은 강했다.

만약 그리드가 평범한 300레벨의 랭커였다면 한 번에 5마리 이상은 상대하는 게 불가능했을 수준으로.

한데 수천 마리한테 쫓기게 되었으니 그 위기는 엄청난 것이었다. 생명력이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했다.

‘제길…! 도시 보스한테 쓰려고 아껴놨던 건데!!’

브라함의 트롤링 탓에 어쩔 수 없다.

이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리드가 15번째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한 대가로 새로이 습득했던 스킬을 전개했다.

“아이템 변신!!”

<아이템 변신>

전설의 광물 <파브라늄>을 소유하고 있어야지만 발동시킬 수 있는 기술입니다.

<파브라늄>의 형태와 성능을 특정 아이템으로 변신시킵니다.

*제작법을 습득하고 있는 아이템으로만 변신시킬 수 있습니다.

*변신 지속 시간은 3분입니다. 변신 해제 후 파브라늄은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갑니다.

스킬 마나 소모:없음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6시간

[파브라늄을 어떤 아이템으로 변신시키시겠습니까?]

대답하기 전에.

때마침 등짝을 가격해오는 마법을 얻어맞고 피를 토한 그리드가 갓 핸드들에게 일제히 명령했다.

“묠니르를 투척해라!”

휘리릭!

명령과 동시였다.

묠니르의 손잡이 하단부에 달린 붉은 끈에 손가락을 넣고 몇 바퀴 돌린 갓 핸드들이 일제히 그것을 집어던졌다.

그러자…

퍽!

퍼퍼퍼퍼퍼퍽!!

<투척 시 가속력 상승>옵션 효과를 등에 업고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 묠니르가 뱀파이어들의 몸을 관통하면서 날아갔다.

뱀파이어의 진형으로부터 잿빛의 기둥이 수십 개 동시다발적으로 솟구치더니 그리드의 경험치 게이지가 눈에 띄게 차올랐다.

‘광역 데미지까지 입힐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까 묠니르는 천둥신의 무기라고 했던가?’

컨셉에 맞춰서 우레석으로 뇌(雷)속성을 부여한다면, 광역 데미지와 함께 감전 데미지를 추가로 입힐 수 있을 것이다.

‘경직에 감전까지 추가되면 정말 무적이겠는데?’

생각해 보면서, 그리드는 갓 핸드들이 어떤 무기로 변신하면 좋을지 대답하고 있었다.

“리파엘의 창.”

비록 모작이라고는 하지만 빛의 여신 레베카의 힘이 깃든 무기다.

심지어 파브라늄을 재료로 한 이상 스스로 움직이기까지 한다.

“가라!”

쿠콰콰콰쾅!!

4자루의 성스러운 창으로 변신한 갓 핸드들이 뱀파이어의 진형을 꿰뚫어버렸다.

동시에, 뱀파이어들의 사망을 알리는 알림창이 그리드의 시야에 한꺼번에 갱신됐다.

***

“그래서 주장하고자하는 바가 뭡니까?”

“그리드의 비정상적인 레벨링 속도에 대해서 어떤 의혹을 재기하고 싶으신 거죠?”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처럼 그리드를 버그 플레이어로 추정하시는 겁니까?”

판다따거가 개최한 기자회견 현장.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한층 더 달아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판다따거가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슈퍼컴퓨터 모르페우스가 관리하는 Satisfy에 버그가 존재할 리 없을뿐더러, 설사 버그가 있다고 해도 그리드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걸 티나게 쓰겠습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명예상점>의 존재입니다.”

“명예상점이라면 그…”

“맞습니다. 대륙 전역 명성을 최소 수만 단위로 쌓은 최상위 플레이어들만이 이용할 수 있다는 환상의 상점! 그리드는 그곳에서 경험치 버프 물약을 구매해서 복용한 상태임이 분명합니다! 거기에 국가대항전 보상으로 얻은 경험치 버프까지 중첩시켜서 광속의 레벨링이 가능하게끔 만든 거지요!”

그럴 듯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경험치 버프 물약을 얻으려면 무조건 상점 내 뽑기 시스템을 이용해야하고, 이 확률이 극악인지라 물약 얻기가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아마, 그리드가 보유한 명성을 모조리 투자했다고 해도 대량의 버프 물약을 확보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말인 즉.

“그리드의 광렙 신화도 이제 곧 끝입니다. 보유하고 있는 버프 물약을 전부 소진하는 순간부터 아마 평범한 랭커들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못한 속도로 레벨이 오르겠지요.”

“오오…”

과연 전문가의 분석은 다르다.

판다따거의 추론을 맞다고 본 기자들이 기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드의 레벨링 신화는 하룻밤의 꿈에 불과했다>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각국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도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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