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4권 - 10화
“와… 신성 데미지는 무조건 광역으로 들어가는 거구나.”
<홀리 웨폰>으로 추가 된 500의 신성 공격력이 광역으로 들어갈 때부터 알아봤어야했다.
<홀리 임팩트>의 효과는 압도적이다.
‘신성 공격력’을 ‘100퍼센트 온전히’ 5미터 범위에 입혀버린다.
이로 인한 결과는 상식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했다.
묠니르가 뱀파이어 한 마리를 후려 칠 때마다, 그 주변에 모여 있는 뱀파이어 4~9마리가 동시에 똑같은 신성 데미지를 입었다.
‘한 방에 한 놈’도 아니고, ‘한 방에 열 놈’까지도 해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대상이 악해야하고 신성력을 갖춰야하는 등, 전제조건이 많이 붙는 형태의 힘이긴 했지만.
그 전제조건들을 성립시킬 수만 있다면 실로 완전한 힘이다.
그리고 현재의 그리드는 전제조건들을 성립시키고 있었다.
뱀파이어의 도시라는 공간, 그리고 묠니르.
모든 게 완벽하다.
“캬악!”
“크아아악!!”
쾅!
콰콰쾅!!
묠니르가 휘둘러질 때마다 폭발하는 백색의 광염.
이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뱀파이어들의 절규가 건물 내부를 지옥도로 만든다.
뱀파이어들은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접근할 수가 없다!!”
침입자는 고작 3명인 반면 이쪽의 숫자는 족히 400이다.
한꺼번에 덮치면 침입자들 따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한꺼번에 덮칠 수가 없다.
가장 선두에 있는 동족이 한 대 얻어맞을 때마다, 그 뒤를 따르는 동족 여럿이 동시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대열이 계속해서 무너졌기 때문에 협공이 어렵다.
뒤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진혈족 뱀파이어 <티걸>이 세희를 주목했다.
‘저 인간이 문제네. 뭐, 내가 해치우면 간단하게 해결되지.’
접근하기 어렵다면 마법으로 저격하면 된다.
간단한 해결책을 세운 티컬이 마법을 사용했다.
파치칙!
혈빛의 마력 구체를 소환, 그것을 세희를 노리고 쏘았다.
퍼엉-!
어마어마한 속도다.
적진으로부터 폭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세희의 눈앞에 혈빛의 마력 구체가 덮쳐오고 있었다.
세희는 당황하였지만 두려워하진 않았다.
친구 예림을 믿었기에!
“얍!”
세희의 바로 곁에 선 채,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 사위를 살피고 있던 예림.
그녀가 기합성과 함께 몸을 날려 세희를 지켰다.
날아온 혈빛의 구체를 찬란한 은색의 방패로 막아냈다.
과거, 그리드가 제작해준 방패였다.
<신성의 방패>를 개량하여 만든 까닭에 높은 마법저항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8번 도시 진혈족의 레벨은 무려 350…
180레벨에 불과한 예림이 템빨을 세워봤자 공격을 온전히 흡수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조금 성스러운 방패>의 데미지 흡수력을 초과하는 공격입니다!]
[데미지를 5,800밖에 흡수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성스러운 방패>의 내구력이 190 하락합니다!]
[<숭고한 의지>가 발동합니다. 사망을 면합니다.]
[13,05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 번에 큰 피해를 입어서 상태이상 ‘스턴’에 빠집니다!]
“우웃.”
역시 고레벨 사냥터답게 만만치가 않다.
생명력이 10분의 1도 남지 않게 된 예림이 좌절하면서, 자신의 목숨보다도 세희를 걱정했다.
영우 오빠는 수백의 뱀파이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
우리를 돌아봐줄 여력이 없다.
‘내가… 내가 지켜야하는데…’
“무식한 인간 계집! 내 마법을 대신 맞다니!”
세희의 저격에 실패한 진혈족 뱀파이어 티걸은 광분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번엔 2개의 혈빛 구체를 동시에 생성하여 또 다시 세희에게 날렸다.
‘안 돼…!’
성녀는 만능이 아니다.
버퍼와 힐러로서의 능력은 최강일지언정 방어능력은 취약하다. 그 부족한 부분을 충당해주는 게 성녀의 기사였다.
하지만 지금, 예림은 스턴에 빠져서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희 또한 그리드와 갓 핸드들에게 버프를 걸어주느라 마나가 일시적으로 고갈 된 상태.
파티원의 상태이상을 회복시켜주는 <규율>과 대상의 생명력을 회복시켜주는 <소망>을 사용하기 어렵다.
세희와 예림 두 사람 모두 대위기를 맞이했다는 뜻이며, 두 사람의 전투적 소양이 아직 많이 부족함을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마나를 그렇게 펑펑 써대면 어떡하냐? 비상시에 대처할 여력은 남겨놨어야지.”
또 순식간에 날아오는 혈빛의 구체를 목도하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세희와 예림.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그녀들의 귓가로 그리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동시에 눈을 뜬 세희와 예림은,
퍼퍼퍼펑!!
자신들을 지키고자, 자신들을 대신하여 혈빛의 마력 구체에 얻어맞는 그리드를 보았다.
“안 돼…!”
결국 폐를 끼쳤다.
이 상황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다.
강력한 폭발에 휩싸이며 피를 토하는 그리드를 목도한 그녀들이 본인들의 무력함을 원망하고, 또한 죄의식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그리드의 크고 단단한 손이 그녀들의 작고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걱정 마. 이 정도로는 가렵지도 않으니까.”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를 무장하여 마법 피해를 최소화시킨 그리드.
마법사 계열 진혈족의 마법을 2방이나 정통으로 얻어맞고도 생명력이 1만 5천 가량밖에 소모되지 않았다.
생명력 회복 물약을 복용한 그가, 건물 천장까지 떠올라있는 티걸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검을 휘둘렀다.
<초연(超聯)>의 전개였다.
쿠콰콰콰콰쾅!!
매 타격당 물리공격력의 150퍼센트 피해를 입히는 칠흑의 검기 20줄기가,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똬리를 틀면서 날아오른다.
“제법이다만…!”
긴장하여 식은땀까지 흘리면서도 티걸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비록 직계도, 귀족도 아닐지언정, 자신은 고귀한 진혈족의 혈통을 잇지 않았던가?
고작 인간 따위에게 패배할 리 없다는 믿음이 그녀에겐 있었다.
혈빛의 마력 보호막을 연거푸 소환한 그녀가 초연(超聯)에 정면으로 맞섰다.
콰콰콰콰콰콰쾅!!
강력한 힘의 충돌이 건물을 격동시켰다.
그리드가 자리를 비운 사이 뱀파이어들의 전진을 막고 있던 노에와 랜디, 그리고 갓 핸드들과 뱀파이어들 전원이 일시에 휘청거렸다.
실로 엄청난 충격파였다.
하지만 정작 티걸은 무사했다.
그리드의 초연(超聯)을 완벽히 방어한 것이다!
‘여기가 7번 도시보다 난이도가 높은 건가?’
그리드가 내심 놀랐다.
설마 귀족급도 아닌 진혈족 뱀파이어가 자신의 합성스킬을 완벽히 막아낼 줄이야, 그는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긴장하진 않았다.
그리드는 도리어 들떴다.
‘세니까 경험치도 더 주겠지?’
입가에 미소를 짓는 그리드를 향해서, 허공의 티걸이 이죽거렸다.
“인간 놈! 분수를 알라!”
티걸이 이번엔 동시에 3개의 혈빛 구체를 생성하였다.
하지만 그 혈빛 구체들은 쏘아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폭발, 소멸하고 말았다.
허리 굽은 백발의 노인.
검귀, 이야루그트가 불시에 나타나서 티걸을 베어버린 여파였다.
“커윽…! 어, 어느새…?”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가와서 나를 베다니?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야루그트를 돌아보는 티걸이었다.
하지만 이야루그트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야루그트에게 있어서 그녀를 벤 일은, 길가의 잡초를 밟은 수준의 사소한 일에 불과했던 까닭이다.
“빌어먹을 놈… 고작 이런 피라미를 베는 일에 나를 소환하다니.”
원망해오는 이야루그트를 무시한 그리드가 노에와 랜디, 그리고 갓 핸드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는 이곳에 남아서 이야루그트와 함께 남은 잔당들을 처치해라.”
“냥!”
“응!”
노에와 랜디의 대답을 확인한 그리드가 세희, 예림과 함께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음 건물로 향했다.
노에, 랜디, 이야루그트, 갓 핸드들이 뱀파이어들을 해치울 때마다 그의 경험치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
“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지?”
대한민국 플레이어들의 경험치 버프가 어제날짜로 끝났다.
하지만 그리드의 레벨링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
경험치 버프가 없어진 지금, 그의 레벨 업 속도는 도리어 전보다 더 빨라진 상태였다.
314레벨.
어느덧 랭킹 40위권까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리드의 레벨을 확인한 세상이 경악과 의문에 휩싸였다.
그리드는 대체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사냥을 하는 중이기에 저토록 빠른 레벨링이 가능한 것인가?
그 의문을 풀어보고자 나선 인물들이 있었다.
***
“여기가 바로 그리드 빌딩입니다.”
“100억 주고 지었다더니, 제법 으리으리하군 그래?”
“젊은 나이에 이만한 건물을 갖다니, 거참 부럽죠?”
“부럽다기 보다는 존경하지. 그리드가 공으로 얻은 것도 아니고 노력의 산물이잖나. 나도 젊은 시절에 더 열심히 살 것을 그랬어.”
서울 외곽.
검정색 최고급 세단 한 대가 현대적인 조형미를 뽐내고 있는 7층짜리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구조상으로는 딱히 특별한 부분이 없는 건물이었지만, 청색을 띄는 외벽이 상당히 세련되고 깔끔했다.
“흐음.”
세단에서 내려 건물을 살펴보는 사내들.
이들은 다름 아닌 OGC방송국의 간판PD 박종수와 편성국장 이국래였다.
“그리드가 안에 있는 건 확실하지?”
“네, 확실합니다. 세입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근 며칠 동안 아예 외출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하긴… 레벨 올리기 바빠서 외출할 시간도 없겠지. 좋아, 어서 가서 만나보도록 하지.”
이국래 국장과 박종수 PD가 건물에 입장했다. 그리고 그리드가 거주 중이라는 펜트하우스로 향하고자 승강기에 탑승하였지만, 난감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뭐지? 왜 버튼이 5층이 끝이지? 6층 이상으론 어떻게 가?”
“아무래도 집주인용 승강기가 따로 있나보군요.”
그리드 정도의 유명인이라면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확보해놓는 게 정상이다.
“킁… 경비실에 들를 걸 그랬나.”
“어차피 경비실에 말해봤자 그리드와 연락이 닿기는 어려울 겁니다. 실제로 3일째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안 받고 있지 않습니까?”
“거참… 그래, 일단 5층에서 내린 후에 계단을 이용해서 이동하도록 하지.”
결정한 두 사람이 5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잠시 후 승강기가 5층에서 멈췄다.
띵~
“…음?”
바닥과 내벽이 검정색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있는 5층 복도.
높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발산하는 은은한 불빛이 복도를 기품있게 가꿔주고 있다.
마치 최고급 호텔에 입장한 듯한 착각이 든다.
“내장에도 꽤나 공들였군….”
“건실한 업자가 지은 건물 같네요.”
“음, 그런데 6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당최 어디에 있는 거지?”
복도에 비상구가 안 보인다.
오피스텔로 추정되는 방문만 6개 있을 따름이다.
“건축법이랑 소방법 위반 아니야?”
이국래 국장이 어리둥절해하는 그때였다.
복도 가장 안쪽에 있는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안대를 착용한 잿빛 머리카락의 외국인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렵하고 꽉 찬 근육을 지닌, 마치 격투기 선수처럼 단련 된 사내였다. 한 마리 표범을 보는 듯하다.
인상은 무진장 더러웠다.
“당신들 누구야? 경비실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는데?”
질겅질겅.
껌을 씹으면서 불량스럽게 질문하는 사내.
얼굴이 왠지 낯익다?
박종수PD가 그를 먼저 알아보았다.
“툰…!”
“툰? 아! 템빨단의 야수인간 말인가!”
현실에서는 이탈리아 마피아라고 들었다.
이자가 어째서 여기에?
“당신들 뭐냐니깐?”
건들거리면서 다가온 툰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봐왔다.
“꿀꺽…!”
이국래 국장과 박종수PD가 동시에 마른 침을 삼켰다.
툰의 흉흉한 시선에 가득실린 살기에 압도당한 까닭이었다. 오금이 저려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명함을 꺼낸 이국래 국장이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게임전문 방송국 OGC의 편성국장 이국래라고 합니다. 방송관련으로 신영우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혹시 신영우씨를 만날 수 없겠습니까?”
이국래 국장은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툰 이자가 그리드의 신변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단 사실을 말이다.
아무래도, 5층 전체를 전세내고 살면서 그리드 곁에 머무는 듯했다.
‘세꼼보다 훨씬 더 듬직하고 안전할 것 같다…’
경비 스케일부터가 다르다.
혀를 내두르는 이국래 국장을 잠시 노려보던 툰이 복도에 늘어선 6개의 문 중 하나를 열었다.
그리고 또 새로운 문이 나타나자 자물쇠를 열어주었다.
그제야 위층으로 향하는 비상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올라가보슈. 안 그래도 버니버닌지 바니바닌지도 와있는데.”
“버니버니…!”
어지간한 방송사보다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계 최고의 게임 BJ인 그가 한국에 입국한 상태였다고?
‘그것도 그리드를 만나고 있어?’
선수를 빼앗기게 생겼다.
조급해진 이국래 국장과 박종수PD가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