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5권 - 11화
<큰 독 쥐의 프라이팬>
내구도:5/9 공격력:2
*착용 시, 최하급 조리 스킬 1레벨 생성.
큰 독 쥐들이 애용하는 조리도구입니다.
큰 독 쥐들은 모든 종류의 음식을 이 프라이팬 하나로 조리하고 동시에 식기로 사용합니다.
조악한 기술로 제작한 프라이팬이지만 없는 것보단 낫습니다.
사용 조건:없음
무게:70
“…어떻게 이런 일이.”
당연히 이단의 프라이팬일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햄스터들의 프라이팬이란다.
그리드는 심히 당혹스러웠다.
“아니, 이건 말도 안 되잖아. 프라이팬으로 요리를 해먹는 쥐새끼가 세상에 어디 있어?”
물론, 큰 독 쥐들의 지능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알고 있다.
언어구사능력과 생활수준을 보면 오크나 고블린보다 훨씬 더 나아보였다.
하지만 어떤 도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발상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그리고 큰 독 쥐는 결국 몬스터에 불과했다. 본능과 생존에만 충실할 수밖에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 사냥감을 잡을 도구 즉, 무기를 생산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단 뜻이다. 하지만 추가로 조리까지 하겠다는 발상을 했다는 건 솔직히 놀라웠다.
“그냥 날고기나 먹을 것이지, 몬스터 주제에 미식에 대한 욕구를 갖는 것도 웃기네.”
기왕 사람처럼 굴거라면 청결에 관심을 갖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여튼 입 냄새 한 번 고약하다. 프라이팬 만들 시간에 칫솔이나 만들어서 쓰지 그러나 싶다.
프라이팬을 한쪽에 집어던져놓고 천막을 벗어난 그리드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쥐돌이들이 프라이팬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계기.’
어쩌면, <큰 영웅>이 이곳에 버리고 갔다는 이단의 프라이팬 때문이 아닐까?
‘분명해. 이단의 프라이팬을 발견하고 써본 후에 영향을 받은 걸 거야. 그러면 앞뒤가 맞아.’
탓.
전투의 여파로 넝마가 된 천막.
그 위로 가볍게 몸을 날린 그리드가 큰 독 쥐들의 군락 중앙을 주시했다.
유난히 큰 천막이 보였다.
일반적인 천막보다 규모가 족히 10배는 큰.
‘저기다.’
큰 독 쥐들의 보스가 머무는 곳.
‘저기에 이단의 프라이팬이 있을 가능성도 높아.’
이제 문제는 저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다.
일점 돌파를 하느냐, 외곽의 천막들을 차근차근 박살내면서 조금씩 거리를 좁히느냐.
‘이대로 직진해도 좋을 것 같은데.’
천막들 간의 간격이 워낙 크다. 눈앞에 보이는 천막들을 곧이곧대로 박살내면서 이동해도 다굴 맞을 걱정은 적다.
다만.
‘그렇게 해서 대부분의 천막들을 방치한 상태로 보스 방까지 도달할 경우…’
위험부담이 생긴다.
만약 보스에게 아군을 불러오는 종류의 스킬이 있을 경우 골치 아파진다. 순식간에 수십, 수백 마리에게 둘러싸여서 결국은 레이드에 실패하고 사망할 것이다.
‘외곽부터 차근차근 공략하면서 전진하자. 그게 속 편하겠다.’
어차피 동대륙엔 플레이어도 없다. 레이드를 선점하겠답시고 굳이 과욕을 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맞네. 초조해할 필요가 없어.”
서버 하나를 통째로 내꺼 삼은 기분!
결정한 그리드가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차근차근, 확실하게 단계를 밟아나갔다.
외곽의 천막들부터 착실하게 방문하여 햄스터 부부들을 척살하고 조금씩, 조금씩 군락 중앙에 가까워져갔다.
그 결과.
[큰 독 쥐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36,445,900을 획득하였습니다.]
[큰 독 쥐의 쓸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수컷 큰 독 쥐를…]
[레벨이 올랐습니다!]
[세컨드 클래스 보유자로서 레벨 업 보너스를 받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총 12개 획득합니다.]
[세컨드 클래스 <전설의 대마법사>의 영향으로 포인트 6개가 지력에 강제 투자됩니다.]
[지력 수치가 1,300을 넘었습니다.]
[습득 가능한 마법이 생겼습니다!]
군락에 도착한 이후 벌써 두 번째 레벨 업이다.
그리드는 평화로운 가정을 수백 개나 파괴한 대가로 319레벨을 달성했고, 총 지력이 1,300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그리드는 기쁘기보다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졌다.
“내가… 내가 가정파괴범이라니.”
큰 독 쥐들은 금술이 무척 좋은 것 같았다.
모든 부부가 꼭 손을 붙잡고 한 침대에서 잠들어있었고, 죽기 직전에는 서로를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끌어안았다.
‘이건 신종 고문법인가?’
플레이어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사냥 시스템.
제대로 악취미다. Satisfy 제작진 중에 사이코패스가 있을 거라는 가설에 점점 더 큰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
고뇌하고 있는 그리드를 브라함이 재촉했다.
‘어서 기뻐하라! 이 세상의 모든 저급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내 힘의 일각을 체험하게 되었음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
바로 내 마법이다.
이렇듯 자부하는 브라함이었기 때문에 기뻤다.
그리드에게 자신의 위대함을 상기시켜주기에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한편, 그리드는 극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새로운 마법!!’
세컨드 클래스를 얻은 이후 2번째 겪게 된 일이다.
기본적으로 획득했던 매직 미사일을 제외하고 여태까지 <마력 탐지>하나밖에 배우질 못했었다.
오직 지력이 낮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클래스가 무려 <전설의 대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라고는 고작 매직 미사일, 그리고 마력 탐지밖에 없던 차라 솔직히 굉장히 서글펐었다.
하지만 이제 서글픔도 안녕이다.
지력의 성장과 함께 동반 된 ‘전설의 마법’을 습득할 기회!
어마어마한 일을 눈앞에 둔 그리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흥분과 기대감에 휩싸였다.
“이제 나도 파이어 볼을 쓸 수 있게 되는 건가!!”
고양되어 소리치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습득 가능한 마법의 정보입니다.]
<알람(강화)>Lv.1
전설의 대마법사가 발동 공식을 완전히 뒤엎어 버린 알람 마법입니다.
온갖 종류의 알람 소리를 원하는 타이밍과 장소에 설정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설정할 수 있는 소리와 음역대가 다양해집니다.
자원 소모:마나 500
재사용 대기 시간:1분
-이 마법을 <대마법사>모드에서 3회 사용할 경우 습득하게 됩니다.-
“…?”
알림창을 확인한 그리드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귓가로 브라함의 오만방자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훗… 이 알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닥… 아니, 조용.”
‘…?’
“제발 조용히 해줘.”
그리드는 혼자 있고 싶어졌다.
최하급 마법 중에 알람 마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그 또한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매직 미사일과 마력 탐지 이후로 습득하게 될 마법이 알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어차피 습득할 거라면 매직 미사일처럼 기본으로 습득했어야할 마법 아닌가?’
지력 1,300을 달성한 기념으로 이딴 쓰레기 마법을 익히게 되다니?
기대가 산산 조각나고 아연실색하는 그리드.
좌절하고 있던 그가 두 눈에 서서히 살기를 피어올렸다.
끓어오르는 이 분노를 잠재우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죽인다…”
꾸욱.
검은 귀신을 쥐고 있는 손에 깃드는 강력한 힘.
이를 악 물고 목에 핏대를 세운 그리드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천막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흉포하면서도 은밀한 살육의 시작이었다.
금슬 좋은 햄스터 부부들을 해치워나가는 그리드에게 이제 망설임은 일말도 없었다.
남의 사정 봐주는 것은 본인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인데, 지금의 그리드에게는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
“하아… 하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천막의 배열이 큰 원형을 이루고 있는 큰 독 쥐 군락.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천막이 불타고, 찢겨지고, 무너져있다.
그리드가 반나절 동안 쉬지 않고 학살하면서 이뤄낸 결과였다.
상처투성이가 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눈앞에 멀쩡히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
군락 중심에 위치한 대형 막사였다.
햄스터들의 대장과 이단의 프라이팬이 있는 장소로 추정되는 곳.
320레벨을 달성한 그리드가 마력 탐지를 사용했다.
막사 안 보스의 존재를 엿보고 대략적으로나마 그 수준을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마력 탐지(강화)>를 전개합니다.]
[<마력 탐지(강화)>의 레벨이 2에서 3으로 올랐습니다!]
[<마력 탐지(강화)>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이제 마력 탐지는 대상의 스탯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름:수컷치고 강한 쥐
레벨:???
직업:???
능력치:???
종족:큰 독 쥐
상태:몬스터
이름:여왕 쥐
레벨:???
직업:???
능력치:???
종족:큰 독 쥐
상태:몬스터
“여기도 두 마리냐…”
보스조차도 하렘을 누리지 않고 일편단심 부부놀이 중이라니!
“거참 지조 있는 쥐새끼들 나셨다!”
마력 탐지의 레벨이 올랐다는 문구를 확인하고 기대하며 기분을 풀었던 그리드가 다시금 분노했다.
상태창을 보여준대 놓고 결국 또 물음표만 보여주는 마력 탐지의 기능에 커다란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내 마력 탐지는 필시 훌륭한 마법이다. 부족한 건 네 지력이지.’
“하하! 그것 참! 그래, 다 부족한 내 탓이다! 알람 마법이 생성된 것도 다 내 탓이라고! 시벌!”
전설의 마법사씩이나 되는 양반이 굳이 알람 마법을 사용했어야 하나?
브라함을 원망하다가 흥분 된 탓일까.
그리드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고, 이 음성은 천막 안 햄스터들에게까지 확실하게 전달됐다.
“뮤옹?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냐?”
“행복한 낮잠 시간을 방해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할 거다. 뮤옹.”
조악한 왕관에다가 걸레쪼가리 같은 망토를 뒤집어 쓴 여왕 햄스터의 덩치는 굉장히 컸다.
그리드보다 2배는 큰 수준이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순백의 가슴 털을 자랑스럽게 내놓은 햄스터 여왕이 붉은 망토 속으로부터 짧은 앞발을 꺼냈다.
그 앞발이 가리키는 대상은 당연히 그리드였다.
“뮤옹. 인간은 털이 없어서 징그럽다. 너무 싫다. 뮤옹, 당장 쫓아낼 거다.”
여왕 햄스터 또한 삼지창을 무기로 사용했다.
쐐액!
빠르게 쏘아지는 여왕 햄스터의 삼지창은 그리드를 일격에 꼬챙이로 만들 기세를 내포하고 있었다.
황급히 피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몸을 맡겨라. 알람 마법의 활용법을 보여주마.’
“…”
알람 마법의 활용법?
눈곱만큼도 기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드는 브라함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알람 마법을 전투 중에도 써먹을 수 있다고?’
전설의 대마법사가 사용하던 마법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하찮을 리가 없다.
“좋아.”
스르륵.
그리드의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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