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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83화 (378/1,794)

템빨 26권 - 22화

“커윽!”

“끄억…!!”

땅바닥 깊숙이 얼굴을 처박힌 템빨단원들.

에어본 급습에 이어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그들이 스턴 상태에 빠졌다. 물론, 위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바트는 이들을 완전히 박살낼 계획이었으니까.

퍽!

퍽퍽!!

부바트의 한손 망치가 템빨단원들의 뒤통수를 망설임 없이 후려쳤다.

일말의 자비조차 없는 잔혹한 공격이었다.

“고로쇠님! 한우짱님!!”

잿빛으로 산화하는 동료들을 목도한 레가스의 푸른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전선을 함께 누벼온 동료들을 해치다니!

심지어 부바트 저자는 이번 전쟁과 관련도 없는 제3자가 아닌가!

“악독한…! 용서 못 합니다!!”

파치직!

분노한 레가스가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3차 직업군 중에서 전직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아수라> 고유의 마기와 전격의 기운이 그를 감싸며 강렬한 기파를 발생시켰다.

“으으!”

‘접근할 수가 없다!’

기파에 휩쓸린 일대의 에트날군 병사들은 살갗이 찢어지고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주춤주춤, 레가스와의 거리를 벌리고자 노력했다.

그 유명한 아수라의 궁극기, <지옥 보내기>의 전조였다.

그렇다.

레가스의 사고는 분노 속에서도 냉정했다.

레가스는 현재 가장 큰 위험이 되는 부바트를 우선 처치해야한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적군이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게끔 설계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최초의 일격으로 지옥 보내기를 선택한 것이다.

“하아아아아압!!”

퍼어어어어엉!!

기합을 내지른 레가스가 허공에서부터 휘두른 발차기가 부바트에게 벼락처럼 내리꽂힌 이 순간.

‘뭐?’

레가스는 다소 놀랐다.

자신이 여태껏 만나온 적들, 자신의 궁극기를 되도록 회피하고자 애를 쓰다가 동선을 읽혀서 더 큰 치명타를 허용하지 않았던가?

반면 부바트는 회피동작을 아예 배제했다. 거목 같은 양팔을 교차하여 레가스의 발차기를 정면으로 방어했다.

대가는 컸다.

우드드드득!!

쿠우우우우웅-!

레가스의 발에 찍힌 부바트의 양팔이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려 꺾였고, 부바트가 딛고 선 지면은 마치 굴삭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움푹 파였다.

지옥 보내기의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놀라운 거다.

부바트가 제자리에 버티고 서있는 광경이!

“……!”

드물게 동요하는 레가스와,

“크음!!”

이를 악 물고 고통을 인내하는 부바트의 시선이 허공에 얽힌다.

시야에 떠오르는 골절, 화상, 피격 데미지 등을 알리는 경고창을 스킵해버린 부바트가 씨익 웃었다.

“잊었나? 나를 일격에 죽이는 건 천하의 그리드라도 불가능하다.”

부바트의 히든 클래스 <크래셔>는 ‘일정 수준 이상의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는 내용의 독보적인 패시브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바. 드래곤의 브레스조차도 자신을 한 방에 죽일 수 없다는 확신이 부바트에게는 있었다.

또한 크래셔의 장기는 구속, 차징, 반격, 지형파괴 등의 온갖 근접 CC기다.

부바트가 레가스의 궁극기를 피하지 않고 굳이 정면에서 맞아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덥썩!!

부러진 팔을 대신해서, 몸을 뒤로 눕히며 뻗은 두 다리로 레가스의 목을 감싼 부바트.

“골로 보내주마!”

콰자자자작!!

몸을 180도 회전시킨 그가 그대로 레가스의 머리통을 지면에 처박아버렸다.

“컥…!”

코와 입, 눈으로 밀려들어오는 흙과 돌무더기. 동시에 동반되는 아찔한 통증이 레가스의 눈앞에 별이 보이게끔 만들었다.

상태이상 스턴에 빠진 것이다.

땅에 거꾸로 박힌 채 움찔거리는 그의 허리를 부러진 팔로 감싸 안은 부바트가 대소를 터뜨렸다.

“큭큭! 푸하하핫!! 네놈의 전투방식은 지난 며칠 동안 지겹게 관찰했거든!!”

애초에 크래셔는 무도가 직업군의 극카운터다. 더군다나 레가스는 에트날군 선봉대를 학살하면서 일부 스킬이 재사용 대기 시간에 걸려있었다. 이를 알고 타이밍을 노린 부바트에게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쩌엉! 쩌엉!! 쩌엉!!!

레가스의 허리를 감싸 안은 부바트가 레가스의 머리를 계속, 계속, 계속해서 지면에 내리찍었다.

[3,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4,03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몸이 구속 된 상태입니다.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3,980의 피해를 입었…]

..

적색으로 껌뻑거리는 시야에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경고창.

레가스는 현재 본인이 얼마나 큰 위기에 봉착해있는지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곧 죽는다.’

무도가라는 직업은 방어력보다 회피력을 위시하는 직업이다. 부바트에게 붙잡히고 회피의 발동이 가망 없어진 시점부터 승패는 정해졌다.

“레가스! 조금만 버텨! 우리가 간다!!”

템빨단원들은 레가스를 구출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부바트가 등장하면서 전개시킨 광역 에어본에 떠올랐을 때부터 야크 길드원들에게 허점을 내보인 그들이다.

야크 길드원들에게 포위당한 그들은 레가스를 구출할 여력이 없었다. 본인들의 목숨을 건사하기도 어려웠다.

레가스의 생명력이 3분의 1까지 떨어졌음을 확인한 부바트가 환희에 찼다.

‘드디어 템빨단에게 제대로 된 복수를 해보는구나!’

본래 부바트는 <약속 된 승리의 야크>라는 위명을 지녔을 정도로 전투 승률이 높았다.

하지만 국가대항전에서 매번 그리드에게 참패당한 까닭에 명성이 곤두박질 친 상황이다.

그는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을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대활약하고 싶었다.

이대로 레가스를 압도적으로 박살낸 후, 에트날군이 성벽을 무너뜨리면 파트리안 내부로 진입하여 지슈카와 유페미나의 목까지 따버릴 심산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타날 그리드는 성 안에서 요격해서 죽여 버리겠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리라!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부바트의 미간으로,

피슈욱-!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정확히 말하면 꽂히기 직전에 멈췄다.

부바트의 곁을 지키고 있던 제랄프 형제의 짓이었다.

지슈카가 날린 화살을 일렁거리는 물방울 속에 가둬놓은 제프가 이죽거렸다.

“내 앞에서 투사체는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제프는 라우엘과 같은 기공사다. 하지만 라우엘과는 비교가 안 되는 대인전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기후와 지형 변화 등에 특화 된 <흐름의 주인>으로 전직한 라우엘과 달리, 제프가 선택한 3차 직업은 <역천>.

순리를 거스르는 스킬들을 대거 보유한 그의 전투 보조 능력은 무척이나 탁월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화살 등의 투사체를 무력화시킨다거나.

“그걸 또 되돌려준다거나 말이지.”

파앙-!!

물방울.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의 방울 속에 갇혀있던 지슈카의 화살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다시 쏘아졌다. 그 방향이란 당연히 성벽 위 지슈카가 있는 지점이었다. 날아가는 속도도, 위력도 전과 동일했다.

“같잖은 새끼가.”

감히 내 화살을 고스란히 되돌려줘?

최강의 궁사로써 자존심이 상해 울컥한 지슈카가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 두꺼운 입술과 조화를 이루어 요염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파팡-!

날아오는 화살을 재차 쏜 화살로 격추해버린 그녀가 여전히 부바트에게 붙잡혀있는 레가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안, 못 도와주겠어.’

이쪽의 마법사들은 적군의 투석기 공세를 막아내느라 필사적이고, 병사들 또한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적군을 저지하느라 목숨을 바치고 있다.

당장 레가스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지슈카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태미나가 진즉부터 한계였다. 스킬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했고 단순히 평타밖에 날리지 못했다. 그리고 평범한 활쏘기로 부바트와 제랄프 형제로부터 레가스를 구출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 또한 하이랭커로서 최강의 반열에 올라있는 인물들.

저들을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절대강자는 몇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그리드…’

그리드는 언제, 어느 때고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을 돌이켜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자신이 그리드와 함께하게 될 줄은, 또한 의지하게 될 줄은,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의 지슈카는 상상도 못했었다.

처음에는 단지 가슴만 밝히는 바보인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지슈카에게 너무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파그마의 후예였단 사실을 알았을 때, 그가 처음으로 아이템을 제작해보였을 때, 위기에 빠진 순간 나타나서 구원해줬을 때 등등.

그리드는 늘 특별했고, 강렬했다.

마치 마약처럼 계속 떠올…

“…어머, 지금 내가 뭐하는 거야?”

전쟁 중이다.

동료와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성벽을 넘보는 적의 숫자는 도통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팔자 좋게 그리드 생각이나 하고 있는 스스로가 황당하다.

‘지친 건가.’

어쩌면 깨닫게 된 걸지도 모른다.

이 전쟁에 희망은 없음을.

라우엘의 예상보다 적들은 더 많고 강했다. 우리의 힘은 상대적으로 너무 미약하다.

“뭐, 모든 걸 잃게 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니까.”

좌절하고 위축되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지슈카가 인벤토리로부터 새로운 화살을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난 다 잃을 생각 없는데?”

“…”

병장기가 요란하게 맞부딪치는 소리와 귀를 찢는 마법의 폭음이 난무하는 전장.

바로 곁에 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시끄러운 이곳에서도 저자의 음성은 왜 이토록 또렷하게 들려오는 걸까?

“그리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지슈카.

본인도 모르게 안도하며 허물없이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태양 같았다. 찬란하고, 따스하고, 아름답다.

그녀의 머리 위.

하늘에 둥실 떠올라있는 그리드가 악귀의 것처럼 표독한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고생 많았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전장을 관조하는 그리드의 주변에는 수십 개의 둥근 백광이 떠올라 있었다. 하나 같이 강력한 기운을 내포한 구체였다.

“저게 뭐지?”

전쟁터.

하늘 위에 백색 구체들이 밀집되어 있음을 뒤늦게 발견한 에트날군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작은 달이 여러 개 떴다?

“…어?”

해괴한 현상에 낯설어하던 에트날군 병사들이 하나, 둘씩 사색이 된다.

백광의 구체들 사이에 떠올라있는 흑발 사내.

한때 에트날 구국의 영웅이었으나 이제는 반란군 수괴로 타락한 그리드 공작임을 알아본 것이다.

“피, 피해…!”

“도망쳐라!!”

그리드가 아무런 의미 없이 특수한 광경을 연출할 리 없다.

판단한 에트날 사령부가 다급히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드의 주변에서 움찔거리고 있던 백색 구체들이 사방팔방, 전쟁터 곳곳으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전쟁터 전역으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전세 역전?

“모조리 죽인다.”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수백 개의 잿빛 기둥이 동시다발적으로 승천한다.

그 장관 속에서, 지슈카의 곁으로 내려앉은 그리드가 그녀에게 한 자루 활을 건네주었다.

“진짜 템빨러가 된 것을 축하해, 지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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