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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16화 (411/1,794)

템빨 28권 - 7화

“아니, 무슨 아이템 가격이 6천만 골드가 넘어요? 사심이 너무 크게 작용한 가격 책정 아닙니까?”

지슈카가 그리드에게 받았다는 주작궁의 등급이 설사 전설, 그것도 1티어급 전설이라 할지언정 6천만 골드라는 가격은 비현실적이다. 이건 상식의 문제였다.

쉽게 생각해보자.

6천만 골드는 나라를 세울 수도 있는 거금이다. 아이템의 가격이 6천만 골드를 초과한다는 말은 즉 그 아이템의 가치가 국가의 가치를 넘어선다는 뜻이 된다.

이건 너무 심한 과장이 아닐까?

‘그리드님께서 제작한 아이템들이 대단하긴 하지만, 단 하나의 부위가 국가의 가치와 비견된다는 건 무리가 있지. 도시와 비교하면 또 몰라도.’

그래, 라우엘 또한 누구 못지않게 그리드를 찬양하는 인물이다.

그리드가 제작한 아이템 한 부위, 한 부위의 가치를 최고 도시급으로 보았다. 그리드가 제작한 아이템을 온 몸에 도배한 사람은 막말로 국가급의 가치를 발휘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단 한 부위 아이템의 가치가 국가급이라는 건 제아무리 라우엘이라도 인정해줄 수 없었다.

“지슈카님 당신, 그리드님을 돕기 위해서 아이템 값을 필요 이상으로 지불하려는 것 같은데…”

전쟁 내내 지슈카와 떨어져 있었던 라우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획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주작궁의 정보를 아직 모른다.

“그리드님을 아무리 좋아해도 그렇지 무슨 그렇게까지 과장을 합니까.”

“일단 네 눈으로 직접 보고 말해.”

주작궁이 신화 등급의 아이템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연신 떠드는 라우엘에게 지슈카가 주작궁의 상세 정보를 공유해줬다.

동시에 라우엘이 말문을 닫아버렸다.

“…????”

라우엘의 두 눈이 골뱅이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주작궁의 정보를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는 모습이 마치 태엽 감긴 인형처럼 부자연스럽다.

“…헉.”

아무 말도 못한 채 연신 의문부호만 띄우던 라우엘이 급기야 숨을 들이켰다.

신화급 아이템 주작궁의 비현실적인 능력치를 확인하고 넋을 잃은 그에게 지슈카가 반문했다.

“어때? 이래도 6천만 골드가 아까워?”

“예? 뭐라고요?”

번뜩 정신을 차린 라우엘이 성을 냈다.

“이 어마어마한 괴물 아이템을 고작 6천만 골드 주고 사면 양심도 없는 인간이죠!!”

엄청난 속도의 태세 변환!

다짜고짜 도둑놈으로 몰아가는 라우엘에게 피식, 실소한 지슈카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도둑년 될 생각은 없어. 6천만 골드는 일단 선금이고, 나머지 금액은 평생 동안 갚아나갈 거야.”

지슈카.

타고난 미모와 카리스마, 그리고 뛰어난 게임 실력을 토대로 세계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하이랭커.

남미의 젊은 재벌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녀가 그리드 앞에서 한낱 빚쟁이 신세로 전락해버린다.

이게 바로 템빨의 위력이다.

라우엘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드님 당신의 진정한 가치라는 것은…”

무한의 윤회를 거듭하며 단련된 나의 독보적인 안목으로도 완벽히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던가. 대체 당신에게 몇 번이나 놀라게 되는 것인지, 이제는 셀 수조차 없다.

주르륵.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린 라우엘이 석양을 바라보며 즉흥시를 읊었다.

“아아, 그리드 당신은 인계에 강림한 신이요, 당신 앞에 나는 한낱 미약한 천사일지니…”

쏼라쏼라.

연신 떠들어대기 시작하는 라우엘.

주변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템빨단원들이 그를 보고 수군거렸다.

“나라 세우면 쟤가 재상 되는 거 아니냐?”

“그렇겠지.”

“재상이면 왕 다음으로 가장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이 또라이면 어떡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여태까지 잘 해온 녀석인데 이제 와서 새삼 걱정할 이유가 있냐?”

“그만 떠들고 어서 가서 냥멍이나 데리고 오자.”

중앙 광장에서 피리를 불기 시작한 냥멍이 때문에 라인하르트에 있는 길고양이와 들개들이 죄다 모여들고 있단 소식이다.

백성들이 겁에 질렸다고 하니 어서 가서 말려야한다.

그 외에도 일이 많았다.

“가는 길에 쥬드한테 들려서 옷 입히라던데? 성벽 보수 현장에서 홀딱 벗고 다닌다고 민원 들어왔다더라.”

“반트너가 투항하지 않은 백성들을 대머리로 만들겠다고 협박하고 있다잖아. 걔부터 제지하는 게 우선 아니냐?”

“어, 뭐야? 바빠 죽겠는데 레가스 이 자식은 그새 또 어디로 사라졌어?”

“피아로님한테 대련 신청한다고 갔어.”

“뭐? 이 시국에? 아니, 그걸 말려야지 왜 가만히 보고만 있던 거야?”

“…?”

“됐다, 됐어.”

“예민하기는.”

정말이지 나 빼고는 정상인이 없다, 라고 템빨단원들은 저마다 생각했다.

***

“그래, 초심을 잃지 말자.”

멀어지는 크라우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드는 상기했다.

‘나는 아직 약하다.’

대악마 벨리알을 레이드한 직후인지라 너무 들뜨고 말았다.

마치 벌써 지존이라도 된 것처럼 해이해졌다.

하지만 현실은?

벨리알은 고작 32위 대악마에 불과했다. 그녀보다 훨씬 더 강한 괴물이 아직 최소 31마리나 남아있단 뜻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뱀파이어 공작 마리로즈를 비롯해서 대륙 각지에는 아직도 강적들이 즐비했다. 그리드가 넘어야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장장이로서의 본분을 잊는다?

미쳤다.

그리드는 늘 자각해야만 한다.

자신이 대장장이라는 사실을.

대장일을 해서 스탯을 올리고 좋은 아이템을 만들어서 템빨을 갖추는 것.

이는 늘 기본적으로 행해야하는 일이었다.

‘노가다는 기피해야할 일이 아니라 나를 이루는 근간.’

설령 왕이 될지라도 그 사실은 변치 않는다.

그러니까.

“제작을 시작하자.”

전쟁에서 승리하고 대악마 레이드에 성공하면서 들떴던 마음, 완전히 억누른 그리드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의 것이 된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으로?

아니, 대장간을 찾아서 움직인다.

‘라우엘 말대로 당분간 대장간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말자. 설사 왕이 되더라도 내 역할은 변하지 않아.’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의욕을 불태우는 그리드!

벌써부터 제작용 망치를 꺼내 쥐고 있는 그에게 한 쌍의 남녀가 다가왔다.

“하이요.”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미청년은 레베카교의 교황 데미안이었고,

“안녕하세요.”

애써 새침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 백금발의 미인은 레베카의 딸 이사벨이었다.

템빨단을 돕고자 자처해서 달려와 주었던 그들을 마주하는 그리드의 눈빛에 호감이 가득했다.

“이게 대체 얼마만이야. 너무 반갑…”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던 그리드가 문득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사벨의 안색이 너무나도 초췌하였던 까닭이다.

‘백화의 영향…’

이사벨.

철이 들기도 전부터 교단으로 끌려가 병기로 육성 된 여인.

영문도 모른 채 교단과 세상을 수호해야한다는 책임을 떠안고 리파엘의 창을 사용하는 그녀가 그리드는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남들과 달리 청춘 한 번 만끽하지 못하고 생명력을 소진해가면서 싸우는 그녀의 삶은 참으로 지독한 것이었으니까.

“라인하르트를 쭉 둘러보니까 레베카교 신전이 하나밖에 없더군요. 물론 규모가 크고 위치도 좋아서 충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이곳에 2개의 신전을 더 건설하고 싶습니다. 신전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제와 성기사들을 더 많이 배치할 수 있게 되거든요. 어때요?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그리드의 눈치를 살핀 데미안이 최대한 밝은 억양으로 긍정적인 제안을 해왔다.

그리드가 거절할 리 없었다.

“그것 참 고마운 일이군. 하지만 괜찮겠어? 라인하르트가 아무리 대도시라지만 도시 하나에 신전을 3개나 두는 것을 교황청에서 허가할 것 같지는 않은데? 엄밀히 따지면 레베카교 입장에선 인력 낭비 아니야?”

“후훗,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이번에 대악마를 레이드하고 업적이 쌓인 덕분에 교내에서 제 입지가 확고해졌거든요. 애초에 대악마를 레이드하신 그리드님과 템빨단을 바라보는 교황청의 시각도 호의적이고요. 이제 템빨단의 것이 된 라인하르트에 신전을 늘린다고 해서 큰 반발이 발생하진 않을 겁니다.”

“기쁜 소식이군.”

힐러가 귀한 Satisfy에서 레베카교의 사제가 지니는 가치는 엄청난 것이다.

무려 3개의 신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제를 육성한다는 건 파격적인 특권이었다.

그리드는 상상해보았다.

힐 자판기들… 아니, 힐러 군단을 대동한 템빨 군단의 모습을!

‘지려.’

뱀파이어 도시 원정팀이 꾸준히 확보하고 있는 흡혈 반지까지 병사들에게 보급할 수만 있다면, 템빨 군단+힐러 군단의 조합은 불사에 가까운 군단이 될 수도 있었다.

‘병사들의 갑옷을 최대한 튼튼하게 만들어줘야겠군!’

다짐한 그리드가 데미안에게 질문했다.

“신전 건설비는 당연히 레베카교에서 지불하는 거겠지?”

“네?”

데미안이 무척 당황했다.

설마 이런 질문을 받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니까!

“레베카교의 신전을 세우고 싶어 하는 국왕이나 영주는 대륙 전체에 널려있습니다. 그들 전부가 신전 건설비를 스스로 마련할 뿐만 아니라 교단측에 감사의 성금을 전달하기까지 하고요.”

말인 즉, 만약 그리드가 신전 건설비를 레베카교에 요구할 경우 레베카교의 반응이 썩 달갑지 않을 거란 뜻이다.

하나의 도시에 무려 3개나 되는 신전을 세워주겠다고 기껏 인심 썼건만, 신전 건축 비용까지 우리가 알아서 하라니?

이 무슨 도둑놈 같은 심보냐고 고위 성직자들이 반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리드의 논리에도 틀린 점은 없었다.

“도시에 세워지는 신전의 소유권은 어차피 레베카교에 있잖아? 내가 인심 써서 신전 짓는 땅은 공짜로 제공해줄 테니까 교황청은 양심껏 건축 비용을 제공해야지 이치에 맞는 거 아니야?”

“….그렇게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벨리알을 레이드하고 어렵게 올린 입지가 다시 또 추락할 수도 있겠구나.

데미안이 안타까워하는 사이, 이사벨에게 다가간 그리드는 그녀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사벨의 새하얀 얼굴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뭐,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나요?”

백화를 사용한 직후다.

현재 자신의 몰골이 온전치 않다는 사실을 이사벨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드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자꾸만 시선을 회피하는 그녀의 손목을 그리드가 붙잡았다.

“아…”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이사벨이 가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알 수 없는 쾌감이 전신에 퍼져오자 어찌할 줄 모르는 그녀에게 그리드가 제안했다.

“리파엘의 창을 내게 맡겨보지 않을래?”

신화급 아이템을 제작하면서 그리드의 대장장이 기술은 크게 향상됐다.

또한, 그리드는 리파엘의 창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과거 교황 선거 에피소드 당시 리파엘의 창 이해도를 100퍼센트까지 올려놨다.

“리파엘의 창이 사용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내가 손을 봐볼게.”

그리드는 자신이 있었다.

신화급 아이템을 제작하고 대장장이 기술이 업그레이드 된 지금이라면, <아이템 개조>스킬을 토대로 리파엘의 창을 보다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그리드에게는 있었다.

“나는 너와 데미안 두 사람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각별한 친구들이다.

나를 벌써 몇 번이고 도와준 그들에게 나 또한 도움이 되고 싶다. 오래오래 서로가 행복을 만끽하길 바란다.

이 같은 그리드의 마음, 데미안과 이사벨에게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이사벨은 그리드의 마음만으로도 감사하여 눈물을 글썽였고, 감수성 풍부한 데미안은 이미 펑펑 울고 있었다.

“그리드사마 싸이코!!!”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인하르트를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템빨단원들과 병사들.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백성들을 살피는 그들의 모습에 활력이 넘친다. 단지 바라만 봐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었다.

광경을 잠자코 지켜보던 크리스가 7대장들에게 반문했다.

“그대들은 어쩌고 싶지?”

“…”

“솔직히 말해도 좋다.”

크리스가 재차 묻자 7대장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지르칸이 나섰다. 무려 일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때 검사 랭킹 1위를 찍었던 크리스의 검술 스승이다.

자이언트 길드 내에서 가장 신임이 높고 크리스에 대한 충성심도 강한 그가 조심히 운을 뗐다.

“템빨단 산하로 들어가시죠.”

“이유는?”

“주군 본인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드는 경쟁하기보다 함께해야할 위인입니다. 그와 함께한다면 주군께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크리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의 그릇은 내 그릇을 품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크니까.”

이제는 의미 없어진 에트날의 귀족 작위를 버린 크리스가 결정한다.

아스란 국왕의 죽음과 동시에 떠올랐던 히든 퀘스트 <반 그리드 귀족연합>의 집결 장소를 확인한 그가 길드창에 명령했다.

“개떼 사냥에 나선다.”

에트날 귀족들의 목, 그리드에게 템빨단 가입 선물로 바치리라 다짐하는 크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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