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430화 (425/1,794)

템빨 28권 - 21화

쏴아아아아-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본래 왜소한 체격을 지녔던 신영우는 지난 몇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을 해왔고, 그 결과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갖게 되었다.

샤워기에서 뿜어지는 냉수가 그의 매끄러운 근육을 타고 미끄러지는 모습은 누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노력과 근성으로 쟁취한 몸매의 변화. 이 또한 신영우가 품게 된 자신감의 근원 중 하나였다.

‘마법 무구 제작법은 장단점이 너무 명확해.’

과열된 머리를 찬물에 식히면서 신영우는 생각했다.

‘금속을 망치뿐만 아니라 마법으로도 단련해야하기 때문에 작업 시간이 족히 네 배는 더 걸리고 금속의 내구력이 현저히 감소한다.’

리파엘의 창.

본래 신화급 무기였던 그것의 기본 내구력은 1,500이었다. 하지만 매직 미사일로 단련하는 과정에 내구력이 990까지 떨어졌다. 무려 3분의 1가량 떨어진 것이다.

‘단검처럼 기본 내구력이 낮은 무기를 마법으로 단련할 경우엔 사용하기 부담 될 정도로 내구력이 떨어질 수도…’

장비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튼튼해야한다.

사용과 수리를 반복하다보면 최대 내구력이 필연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최대 내구력이 낮은 아이템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꺼려했고 감가상각도 심했다.

‘만약 단순 판매용으로 아이템을 제작할 계획이라면 마법 무구 제작법은 사용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겠지.’

물론 마법 무구 제작법으로 제작한 아이템의 성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리파엘의 창은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전보다 배는 더 강력해졌다. 하지만 그건 리파엘의 창이 신화급 무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템 등급이 높을수록 상승폭을 크게 적용받게 되니까.’

신영우가 평소 제작하는 아이템의 평균 등급이 에픽인 점을 고려해 봤을 때, 굳이 네 배 더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마법 무구 제작법을 사용할 가치는 없었다.

‘다만, 길드원들이 주력으로 사용하게 될 아이템은 마법 무구 제작법으로 제작한다.’

소중한 동료들이 사용할 아이템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시간을 아깝게 여길 수는 없다. 또한 내구력이 낮다는 단점은 신영우의 수리 기술로 극복할 수 있었다. 신영우가 직접 아이템을 수리할 경우 최대 내구력이 감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세우는 최초의 국가, 템빨국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비단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템빨국 건국식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연일 뉴스를 내보내는 중인데요. 국가를 세울 최소 자격을 이미 진즉부터 갖추었을 템빨단이 어째서 건국 시기를 미루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겠죠. 전 세계 모든 국가,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행사이니만큼 템빨단 입장에서는 유례없이 화려하고 성대한 건국식을 연출하고 싶을 테니까요.』

『벨리알 레이드 당시 폐허가 된 궁전의 복구도 꽤 시일이 걸릴 테고 말이죠.』

신영우가 샤워를 하는 동안, 욕실 벽면에 설치 된 TV에서 템빨단과 템빨국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뉴스를 접하고 상념에서 깨어난 신영우가 샤워기를 껐다.

‘바빠.’

뉴스 패널들의 예상대로 템빨단은 성대하고 화려한 건국식을 계획하는 중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 된 이때 최고 길드로써의 위엄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

라우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일이다. 템빨단원 모두가 적합한 역할을 맡았고 영우에게도 책임이 따랐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건국식까지 영우가 해야 할 일은 직접 제작한 아이템을 개국공신들에게 포상하는 것.

라우엘의 계획이었다.

템빨단의 근간이 되는 전설의 대장장이가 직접 제작한 아이템들이 수십 억 시청자가 지켜보는 건국식 현장에서 공개 되었을 때의 파장은 실로 엄청날 터였다.

상상해보라.

새로운 아이템을 받고 비약적으로 강해지는 템빨단원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리드를 선망하며 템빨단에 가입하고 싶다는 열망을 더욱 강하게 품을 수밖에 없게 된다.

“템빨왕… 크으.”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잘 지은 이름이다.

스스로의 작명 센스에 감탄한 신영우가 욕실에서 나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는 그때였다.

띠리링.

거실 중앙에 설치 된 전화기가 울렸다. 발신자는 지슈카였다.

영우가 깜짝 놀랐다.

‘설마 6,000만 골드를 벌써 마련한 거야?’

6,000만 골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단지 게임 내 아이템을 처분하는 것만으로는 확보할 수 없다. 필시 거래 사이트를 이용해서 골드를 현금으로 구매하였을 텐데, 그 과정에서 거래 사이트에 지불했을 수수료가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안 된다.

지슈카의 노고를 생각하며 혀를 내두른 영우가 입을 열었다.

“수신.”

동시에.

지이잉-

전화벨 소리가 멈추고 전화로부터 영상이 송출됐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등지고 선 지슈카의 모습이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 태양처럼 찬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다.

“하이~! 그리…!”

바람에 나부끼는 적발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면서 손을 흔들던 지슈카가 문득 입을 다물고 얼굴을 붉혔다.

‘왜 저러지?’

영우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의 신체 부위 한 곳에 시선을 집중시킨 지슈카는 얼굴을 더욱더 붉혔다.

“나한테 어필하는 거야?”

“……”

아, 옷을 안 입었구나.

뒤늦게 떠올리고 수치심을 느낀 영우가 황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가 옷가지를 챙겼다.

영상 속 지슈카는 부끄러우면서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나한테 딱 좋을 것 같아.”

***

라인하르트 궁전 복구 현장.

“에트날 왕실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도록 하세요.”

에트날 왕조는 무려 400년 역사 동안 이어져왔다. 라인하르트 궁전이 벨리알 레이드의 여파로 인해서 폐허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곳곳에는 에트날 왕조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사소한 소품부터 시작해서 건축 양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말이다.

라우엘의 심기를 거슬리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뭐요? 역사적 가치? 패자의 역사 따위에 가치는 없습니다. 에트날 역대 국왕들의 동상을 모조리 철거하고 그 자리에 그리드님의 동상을 세우도록 하세요. 에트날을 상징했던 실버 드래곤 문양이 각인 된 모든 물품을 불태우고 새롭게 들여오는 물품에 모루와 망치를 각인하세요. 좌측통행에 적합하도록 설계 된 시설들은 모조리 우측통행 구조로 바꾸도록 하고, 다음은…”

인부들에게 지시해나가는 라우엘. 그의 손은 계속 자신의 정수리 부근에 얹어져있었다.

현실에서 발병한 탈모가 혹시 게임에까지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걱정하며 생긴 습관이었다.

그에게 행정관 라빗이 다가와 보고했다.

“15개 국가의 왕실 전부가 건국식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서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템빨국을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라우엘은 당황하지 않았다.

“예상대로군요.”

엄밀히 말해서 그리드는 자신의 조국을 멸망시킨 반역자다. 그리드가 세운 나라를 인정해준다는 것은 즉, 반역자를 두둔하는 셈이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타국 왕실이 템빨국을 인정해줄 리 만무했다.

“외교적으로 고립되면 국가 발전에 큰 장애가 될 텐데요. 해결책이 없을까요?”

근심하는 라빗에게 라우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교는 퀘스트로 해결 될 겁니다.”

“…?”

템빨국은 플레이어가 세운 국가다.

플레이어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고, 이는 템빨국의 백성 대부분이 NPC가 아닌 플레이어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부분이었다.

라우엘이 주목하는 점은 NPC들과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 동력. 즉, 퀘스트였다.

‘템빨국 소속 플레이어들이 타국으로 나가서 사냥과 퀘스트를 반복하다보면 템빨국의 문물과 영향력이 자연히 타국까지 전파 될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다른 국가들도 템빨국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해결될 문제.

다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하란 제국의 통제와 아레스, 아그너스, 블러드 카니발 등 타 세력의 방해다.

만약 그 막강한 세력들이 템빨국 소속 플레이어들을 박해하고 나선다면, 아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섣불리 템빨국으로 귀화하지 못할 터였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가 무력을 갖춰야겠지.’

또한 우리에게 저력이 있음을 미리 그들에게 증명해야한다.

크라우젤과 데미안, 크리스처럼 함께 역경을 극복한 우군들뿐만이 아니고 한때 적대하였거나 딱히 친분이 없는 하이랭커들에게까지 건국식에 참석해달라고 초청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반드시 증명해야 돼.’

초청장을 받은 랭커들이 부디 건국식에 참석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정수리를 감싸 쥐는 라우엘에게 반트너가 다가와서 속삭였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발음이 특이하지? 한국산 탈모약이다. 그거 제법 효과가 좋아.”

“반트너 당신…”

나의 고충을 한 눈에 알아보고 탈모약까지 추천해주다니?

라우엘은 감격하면서도 다짐했다.

반트너가 추천해준 탈모약은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대머리가 추천해주는 탈모약에 신뢰가 생길 리 만무했으니까.

***

“라인하르트 신전 건설 현장에 많은 신도들이 자원하여 참석했다고 합니다.”

“허허, 대악마 벨리알을 무찌르고 세계에 평화를 안겨주신 그리드 형제님에 대한 존경이 반영 된 결과일 테지요.”

레베카 교황청.

타락한 교황 드레비고와 교황후보 파스칼을 겪은 이후.

고지식하기는 하지만 그릇되지 않은 고위 사제들이 장로직에 앉아있었다.

그리드의 활약을 왜곡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인 그들이 그리드에게 보내는 호감과 존경은 진정어린 것이었고 데미안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분위기에 편승한 데미안이 내친김에 말했다.

“그리드님으로부터 템빨국 건국식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이 도착했습니다. 저는 참석할 예정인데 혹시 장로님들 중에 함께 가실 분들이 계십니까?”

“……”

분위기가 한순간 적막해졌다.

허허 웃던 장로들이 삽시간에 표정을 굳히더니 입을 다물었다.

데미안은 아차 싶었다.

‘그리드님을 존경한다고는 하지만 템빨국을 너무 노골적으로 지지했다가는 제국의 핍박을 받을 수도 있는 거고… 아무래도 꺼림칙한 거겠지. 내 생각이 짧았다.’

어쩌면 나 또한 건국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압박 받게 되는 건 아닐까?

데미안이 염려하며 눈치를 살피는 그때였다.

쿵!

입을 다물고 있던 15명의 장로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데미안에게 원망 어린 시선을 보냈다.

“왜, 왜들 그러시는지…?”

기세에 눌린 데미안이 주춤거리자 그에게 장로들이 소리쳤다.

“서운합니다! 그리드 형제께서 세우시는 신성한 국가의 앞길을 축복할 기회를 교황성하 혼자서 독식하실 생각이셨던 겁니까!”

“…?”

“우리도 함께 갈 것입니다! 교황청의 모든 신도들을 이끌고 가서 그리드 형제와 템빨국의 앞길을 축복할 것입니다!”

“우리도 데려가 달라 이 말입니다!”

“…네, 넵.”

예상치 못한 격한 반응에 놀란 데미안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곁에 선 이사벨이 그를 보고 미소 지었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마음의 그늘까지 벗어던진 그녀는 이제 과거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

“크라우젤님, 어떡하실 겁니까?”

“안 갈 거지?”

검성 크라우젤.

300레벨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던전을 홀로 휩쓸고 있는 그에게 하오와 알렉산더가 찾아와 물었다.

랭킹 1위의 탈환을 꿈꾸고 있는 크라우젤이 과연 템빨단 건국식에 참가할까?

알렉산더는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강함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도 강한 크라우젤이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을 방해받는 것을 달가워할 리 없다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크라우젤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참석하는 편이 좋겠지. 친구의 기를 펴줘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

“…엥?”

황당해하는 알렉산더와 달리 하오는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크라우젤이 제안했다.

“괜찮다면 당신들도 함께 가는 게 어떻겠나?”

“알겠습니다. 우리 길드원들도 데려가도록 하죠.”

“….알았다. 나도 러시아 랭커들과 함께 참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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