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434화 (429/1,794)

템빨 29권 - 3화

플레이어가 세우는 최초의 나라, 템빨국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전 세계 모든 국가, 대부분의 방송사에서 라인하르트에 인력을 파견했을 정도이다.

“5번이랑 7번 카메라 위치 옮겨!! 그리드를 모든 각도에서 담을 수 있도록 신경 쓰라고!!”

“우리 일본 국민들은 카츠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할 게 분명해. 취임식 도중에 카츠의 얼굴을 수시로 비춰줄 수 있게끔 카메라를 배치해라.”

“템빨단에는 미남 미녀가 참 많단 말이지. 저들의 미모가 더 부각되도록 조명을 세게 밝… 야! 반트너는 왜 찍냐! 시청률 떨어지게!”

각 방송사들은 자사 시청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방송을 설계했다. 많은 여성 시청자를 보유한 여성향 방송사들은 템빨단의 미남들을 볼거리로 제공할 수 있게끔 신경 썼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초점을 맞추는 방송사들은 그리드와 라인하르트의 상황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였으며, 자국민을 유달리 의식한 방송사들은 자국인 템빨단원에게 집중했다. 정치, 외교쪽 전문가들을 패널로 기용한 방송사들은 향후 템빨국의 행보를 심도 깊게 조명하기도 했다.

“큼, 은근히 긴장되는군.”

어디를 둘러봐도 마법으로 위장 된 카메라와 조명 천지다.

전 세계인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몇 명의 템빨단원들이 긴장했다. 이들은 대부분 은기사 길드 출신의 템빨단원들이었다. 하이랭커가 아닌 이들은 방송출현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메라 울렁증이 생겼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템빨국의 일원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야하지 않겠냐? 다들 긴장하지 말고 어깨를 당당히 펴라.”

“옙!”

극검의 격려가 효과를 발휘했다. 은기사 출신 템빨단원들은 더 이상 위축되지 않았다. 카메라에 비추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당당하게 섰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템빨단에는 동양인이 참 많군요.』

『저들 대부분이 한국인입니다. 은기사 길드를 흡수한 영향이 크죠.』

『하지만 국가 색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네요. 보통 대부분의 길드는 현실 국가에 얽매여서 성향이 기울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그리드의 대단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겁니다. 템빨단은 다국적 길드로 시작한 바, 특정 국가에 편중되면 템빨단원 중 누군가는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테고 그리드는 이를 염려하여 국가 색을 고의적으로 배제한 것이겠죠.』

『당장 카츠의 존재만 봐도 그리드가 길드원들의 관계를 얼마나 잘 조율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국수주의 일본인으로 유명했던 카츠가 한국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템빨단에 저토록 잘 적응하리라고 그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과연 그리드… 플레이어와 NPC를 아우르는 인망을 쌓아올린 인물답게 사람을 잘 다룰 줄 아는군요.』

『저건 타고난 그릇이 큰 거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드는 범인의 기준을 아득히 넘어선 호걸 중의 호걸입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그리드가 유비의 환생이라는 주장도 종종 나오지 않습니까.』

『유비요? 중국 삼국시대의 그 유비 말입니까? 허, 참. 좋은 건 다 자기네 거라고 우기는 중국의 습관은 여전하군요. 한국인인 그리드가 왜 중국인의 환생이라는 겁니까?』

『험험, 방송 중에 개인적인 의견은 삼가주십시오.』

그리드를 무시하고 우습게 보는 사람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웠다.

실력을 몇 번이나 입증하고 유례없는 업적을 쌓아온 그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완전하게 파악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여전히 세상은 그리드의 진가를 몰랐다.

‘그러니까 유비의 환생이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겠지. 인망은 개뿔!’

현장의 앵커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우연히 엿들은 그리드가 치를 떨었다.

판덕공.

‘몬스터 사냥 시 일정 확률로 살려준다’ 는 효과를 발휘하는 칭호.

이 하등 쓸모없는 칭호를 덕이 넘친다는 오해를 받고 강제로 획득한 것이 새삼 상기되자 그리드는 기분이 몹시 불쾌해졌다.

“어휴, 염병. 칭호 삭제 기능은 왜 없는 거야?”

즉위식과 건국식을 앞두고 대기 중인 그리드.

인파로 가득 찬 정원을 내려 보며 투덜거리는 그에게 라우엘이 다가왔다.

“일반적으로 칭호란 Satisfy의 설정, 혹은 스토리에 직접적인 연관을 할 경우에 획득하는 것이니까요. 만약 칭호 삭제 기능이 존재했다면 Satisfy의 설정과 스토리가 붕괴했겠죠.”

“…그 꼴은 뭐야?”

라우엘을 돌아 본 그리드가 기겁했다.

라우엘이 왼쪽 눈에는 검은 안대를, 입가에는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아무런 기능도 없는 치장용 아이템이었다. 중학생 플레이어들이 애용하는.

씨익.

당황하는 그리드를 보고 눈을 반달로 그린 라우엘이 안대 위로 두 손가락을 올렸다.

“큭큭큭… 그리드 님 당신께서 잠시 후 제게 하사해주실 보구와 어울리는 코디를 갖춰보았습니다. <묵룡 나이트>라는 이명을 지녔던 시절의 제 모습을 재현한 것이기도 하죠. 어떻습니까? 아주 멋지죠?”

‘진심 얼굴이 아깝다.’

새하얀 피부와 은발에 청안.

라우엘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주는 미청년이었다. 순정 만화에서 툭하고 튀어나온 느낌의. 마치 이성을 매혹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 같았다.

한데 중2병이다. 연애에는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전생에만 몰두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그를 안타까워하며 슬퍼할지 상상조차 안 됐다.

“쯧쯧…”

너도 평생 연애 한 번 못해볼 팔자로구나.

안타까워 혀를 차던 그리드가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갑자기 사람들이 술렁였기 때문이다.

‘뭐지?’

분위기가 심상찮다.

***

『속보! 속보입니다! 플레이어들의 제보에 따르면 에트날 귀족 잔당들이 라인하르트 인근에 집결했다고 합니다!』

『귀족 잔당들이 이끌어온 병력의 숫자는 무려 10만! 반면 이곳 라인하르트에는 병력이 채 5천도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템빨단은 대부분의 병력을 레이단에 집중시켜놓은 상태니까요.』

『레이단이요? 아니, 왜죠? 큰 행사를 앞두고 어찌 병력을 다른 곳에…』

『사하란 제국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요. 병력을 이곳 라인하르트에 배치했다면?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이단은 빈집이 되었을 테고 제국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겠죠.』

『허… 말인 즉, 템빨단은 제국을 신경 쓰느라 에트날 귀족 잔당들의 세력은 경계하지 못했다는 뜻이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는 한 수 앞밖에 내다보지 못한 템빨단의 명백한 실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드와 라우엘 콤비가 여태껏 뛰어난 책략과 무력으로 위기를 넘겨왔다고는 하나 역시 우리 전문가들과 비교하면 생각이 얕을 수밖에 없겠죠.』

이제 몇 분 후면 거행 될 예정이었던 건국식이 삽시간에 엉망이 되었다.

현장에 모인 각국 방송사의 앵커와 패널들이 소란을 피우자 다른 플레이어들까지 동요하기 시작했다.

“도망쳐야 되는 거 아니야? 여기 있다가는 우리도 전쟁에 휩쓸릴 것 같은데.”

“행사 한 번 구경하려다가 죽게 생겼네. 튀자.”

“잠깐. 뭘 그렇게 호들갑들이야? 그리드는 10만대적자라고. 심지어 이곳에는 그리드뿐만이 아니라 템빨단의 하이랭커들까지 모조리 모여 있어. 10만의 적 따위 템빨단이 순식간에 해치울 거라고.”

“바보냐? 새로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몬스터와 NPC의 레벨은 이전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몬스터, NPC의 레벨과 비교하면 월등히 앞서있는 거 몰라?”

“전쟁 에피소드 당시에는 200레벨을 넘기지 못했던 적병들이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2차 전직을 완료했을 수도 있어. 제아무리 그리드와 템빨단이라도 2차 전직 병사 10만 명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령 그리드와 템빨단이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그 사이에 우리는? 적들이 우리를 가만히 놔두겠냐?”

웅성웅성.

겁먹은 플레이어들이 한껏 소란을 피웠다. 누군가는 이미 궁전을 벗어나고자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궁전 입구 곳곳을 템빨단의 병사들이 막아서고 있었다.

“비켜! 나갈 거라고!!”

“…..”

플레이어들이 소리쳤지만 병사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묵묵히 자리를 버티고 섰다.

각국 방송사 전문가들이 사태를 파악했다.

『이런…! 그리드가 입구를 봉쇄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뭡니까?』

『그리드는 이곳 궁전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화살받이로 삼으려는 겁니다!!』

『허…!!』

현재 궁전에 모인 사람들.

적의 입장에서는 모조리 그리드와 한 패로 보일 것이었다.

이제 곧 밀물처럼 밀려올 적병들은 플레이어들을 보는 족족 공격할 테였고, 그리드와 템빨단은 그 틈에 적병들을 해치울 심산일 게 분명했다.

“악마다…!”

“그리드는 악마야!”

모두가 그리드의 옛 별명을 떠올렸다.

대로 위의 도살자, 혹은 사이코패스.

최근의 그리드는 덕이 넘치는 인물이라고 알려졌지만 본성은?

“히, 히익….!”

쿵!

쿵쿵쿵쿵!!

대지가 격동한다.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너머로부터 수만 대군이 엄습해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혼란과 공포에 빠진 플레이어들이 사색이 되었고, 각국 방송사들은 이를 실시간으로 생중계했다.

-와, 템빨단 보소… 지금 자기들 살겠답시고 죄 없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거야?

-진짜 악랄하네.

-착해서 멍청하게 당하는 것보단 저게 낫지.

-괜히 플레이어 최초로 국가를 세울 자격을 얻었겠어?

세계인들이 템빨단에게 각종 반응을 쏟아냈다.

누군가는 템빨단을 비난했고, 누군가는 템빨단의 선택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비호했고, 또 누군가는 템빨단을 본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소란이 가속화되는 그때였다.

저벅.

궁전 안에 있던 그리드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을 원망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는 수천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 내며 한 걸음, 두 걸음 궁전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쿠웅!!

성벽 너머로 들려오던 대군의 행군소리가 입구 건너편에서 멈췄다.

에트날 귀족 잔당들이 이끌어온 10만 대군이 궁전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뜻.

“비, 빌어먹을…!”

“로그아웃 해!!”

얼굴이 하얗게 질린 플레이어들이 더욱 큰 소란을 피웠다.

반면 그리드의 표정은 여전히 침착했다.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로 좌중을 살펴 본 그가,

“성문을 열어라.”

궁전 입구를 봉쇄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

플레이어와 각국 방송사 스탭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기겁했다.

적군이 바깥에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성문을 개방하다니?

모두가 그리드가 미쳤다고 생각하며 비난을 일삼았다.

하지만 그리드는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고 병사들은 굳게 닫아두었던 성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이이익-

서서히 개방되는 성문.

시가지를 배경삼은 수천, 수만의 군대가 플레이어들의 시야에 들어온다.

플레이어들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리드 저 미친놈 때문에 우리가 모두 죽겠구나 싶었다.

한데.

척!

처처처처처처처척!!

성문 너머에 집결해있던 수만 대군.

그대로 궁전 안으로 밀려들어와 살육을 벌일 줄 알았던 그들이 그리드를 목격하자 일제히 차렷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닌가?

『저, 저게 무슨…?』

플레이어들은 물론이고 현장의 상황을 전달하던 각국 방송사 앵커들의 어안이 벙벙해지는 순간.

“그리드 국왕전하를 뵈옵니다!!”

“충!!!!”

수만 대군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모두 똑같은 자세로 동시에 소리치며 그리드에게 경례했다.

대군의 선두에는 스테임 후작이 있었다.

실로 장관.

현장에 모인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방송을 시청 중인 각국의 수천만 국민 모두가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세계가 충격과 의문에 휩싸이는 이때, 경례하고 있는 병사들을 등지고 선 그리드가 선언했다.

“템빨왕 그리드의 이름으로 건국식을 시작하겠다.”

[서대륙에 새로운 나라가 탄생합니다! 국호는 템빨! 왕의 이름은 그리드입니다!]

[플레이어 최초의 왕이 출현하였습니다! 위대한 업적이 Satisfy 역사에 길이 남습니다!]

찰칵!

찰칵찰칵!!

각국 방송사가 준비해놓았던 마법 조명이 모조리 그리드에게 집중된다. 수천 대의 카메라가 오로지 그리드의 모습만을 담는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음악이 절정에 이를수록 건국식 시청률이 폭등했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오른다.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