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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50화 (445/1,794)

템빨 29권 - 16화

[<개 조심>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엥? 광산 이름이 왜 이래?”

개 조심이라고?

이전에 살던 동네 집들 담벼락에서 자주 보던 글귀다.

과연 Satisfy.

한국인이 만든 게임답다.

광산 이름에서부터 이렇듯 한국의 정취가 느껴지다니, 왠지 모를 정감에 휩싸인 그리드가 광산 내부를 관찰하던 도중에 눈살을 찌푸렸다.

“엉망이군.”

광산은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마치 전쟁 직후의 폐허처럼 곳곳이 엉망진창으로 파괴당한 상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경계하며 주변을 살피는 그리드에게 마이너가 설명했다.

“제가 전에 광물을 캐느라고 여기 벽 좀 부숴놨어요.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벽이며 천장에다가 죄다 벽돌을 붙여놨더라고요”

“광룡 네바르탄의 짓이겠지. 원래 광산이었던 이곳을 자기 둥지로 삼으려고 나름 꾸며 놓았던 걸 테야.”

그래서 지명 또한 광산이 아니라 던전으로 표기되는 것일 터.

그리드는 경계심을 지웠고 마이너는 곡괭이를 꺼내들었다.

“어찌됐든 저쯤 되는 천재도 이곳에서는 채광하기가 좀 어려워요. 벽돌부터 부순 다음에 광물을 캐야하니까요. 전하께서도 오래간만에 땀 흘릴 각오를 하셔야할 겁니다.”

“네가 짐을 잘 모르는군.”

피식.

실소한 그리드가 노에와 랜디를 소환했다.

“냥! 주인!”

“그리드!”

오래간만에 바깥공기를 쐰 노에와 랜디가 뛸 듯이 기뻐했다. 소환되자마자 깔깔 웃으면서 그리드의 주변을 맴돌았다.

누가 보면 한 가족 같다.

어린 소녀와 젊은 아빠, 그리고 애완용 고양이.

“전하…?”

성스러운 채광 작업을 앞두고 갑자기 펫을 소환하는 이유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마이너.

뒤늦게 그를 발견한 노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저 인간은 뭐냐옹? 지옥 제일 마수인 이 몸께 바치는 제물인 것이냥?”

할짝!

나름 폼 잡는답시고 핑크색 발바닥을 핥는 노에였다.

하지만 위압감이라고는 일절 없었고 귀여움만 가득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바둑알 같은 눈동자로 바라봐오는 검은 고양이.

녀석과 시선을 마주친 마이너가 저도 모르게 뺨을 붉혔다.

“이 아이, 제가 키워도 됩니까?”

“안 돼.”

단호하게 거부한 그리드가 두 자루 곡괭이를 꺼내서 노에와 랜디에게 건넸다.

“오래간만에 일거리다.”

“냥?”

곡괭이를 건네받은 노에와 랜디가 어리둥절해졌다.

상황 파악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들에게 그리드가 눈짓했다.

“오늘 너희들의 임무는 여기에 있는 광물을 모조리 캐는 거야.”

“캬앙!!”

설명을 듣는 순간, 도끼눈을 부릅뜬 노에가 작은 앞발에 쥐었던 곡괭이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말도 안 된다냥! 지옥 제일 마수인 이 몸께 고작 곡괭이질이나 시키다니! 냥! 말이냐 방귀냐옹!!”

그리드가 왕이 된 이후, 노에는 하루하루가 심심하고 외로웠다.

언제쯤 다시 그리드와 함께 인간이나 몬스터를 사냥하고 영혼을 포식하게 될까, 매일 그것만을 생각하고 바랐다.

그리고 오늘.

정말로 오래간만에 궁전이 아닌 바깥에서 소환을 당한 것이다.

그래, 노에는 전투를 기대하고 있었다.

한데 채광이나 하라고?

지옥을 지배하는 대악마들에게도 예쁨 받는 고귀한 종족인 이 내게 고작 곡괭이질이나 시키다니?

노에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 내가 어쩌다가 인간을 섬기게 되어서 이런 수모를 당해야하는 것인가, 회의감마저 느꼈다.

동그란 코 좌우로 곧게 뻗은 콧수염을 추켜세우는 노에.

불편한 심기를 여실히 드러내는 녀석과 달리 아직 어린 랜디는 모든 게 새롭고 즐거운 눈치였다.

“곡괭이질은 어떻게 하는 거야? 가르쳐줘, 그리드.”

“그건 말이지.”

“…..”

노에는 더 이상 화내기도 민망했다.

자신을 제외한 그리드와 랜디 두 사람(?)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화기애애했던 까닭이다.

이대로는 그리드가 랜디만 예뻐할 거라고 걱정한 노에가 어쩔 수 없이 곡괭이를 다시 주웠다.

“그냥 나도 도와주겠다옹…”

“잘 생각했어.”

노에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그리드가 이어서 갓 핸드를 소환했다.

네 개의 갓 핸드 모두 당연히 곡괭이를 무장하고 있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마이너가 당황했다.

“저, 전하,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펫과 아티팩트에게 채광을 시키다니요?”

이곳에 자생하는 광물은 무척 진귀한 것이다. 작은 생채기조차 입히지 않게끔 하나하나 장인의 정신으로 캐내야하는, 황금보다 귀한 보물이었다.

실력 좋은 광부들을 인부로 부려도 모자랄 판국에, 평생 곡괭이 한 번 못 쥐어봤을 몬스터와 아티팩트에게 채광을 시키려는 그리드가 제정신 같진 않았다.

“설마 채광을 우습게보시는 겁니까?”

마이너는 광부의 아들이며 본인 또한 광부를 꿈꿨었다. 상대가 아무리 그리드라도 채광을 쉽게 여기는 것은 썩 달갑지 못했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은 잠시였다.

퍽! 퍽! 퍽퍽!!

“…허, 헐.”

씩씩거리던 마이너가 입을 다물고 감탄했다.

저 홀로 움직이는 황금 손들의 채광 기술이 무척이나 뛰어났던 까닭이다. 거의 프로 광부들의 기술을 보는 기분이랄까?

“채광 전용 아티팩트였던 건가…!”

그리드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 없는 마이너는 이렇듯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유니크 등급의 갓 핸드는 그리드의 손재주 스탯 30퍼센트를 적용받는 바.

현재 갓 핸드의 손재주는 중급 대장장이 이상이었고 당연히 손으로 하는 일 대부분을 잘했다. 채광 기술도 썩 뛰어난 것이다.

노에와 랜디?

“꺄하핫, 재밌어.”

“지옥 제일 마수인 이 몸께서 고작 곡괭이질이나 하고 있다냥… 이건 치욕이다옹…”

노에와 랜디도 ‘당연히’ 채광을 잘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언어를 습득했을 정도로 영리한 노에는 드래곤 다음가는 몬스터답게 학습 능력이 출중하다. 곡괭이질을 배우는 거야 우스웠다. 단, 손재주 스탯이 없는 탓에 다소 투박하고 작업 속도가 느리기는 했지만 그리드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끔 눈치껏 광물을 온전하게 채취하는 수준은 됐다.

또한 랜디는 마스터 레벨의 복제 스킬을 사용, 그리드의 모습으로 변함으로써 그리드의 능력치 30퍼센트를 적용 받았다. 이를 토대로 대단한 손재주를 발휘했기 때문에 곡괭이를 금세 수족처럼 부렸고 광물을 빠르게 캐냈다.

‘채광용 펫까지!!’

마이너는 그리드의 대단함에 감복하고 있었다.

진귀한 아티팩트와 펫을 ‘채광 전용’으로 따로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저변이 넓은 그리드가 존경스러웠다.

‘용도에 따라서 다양한 아티팩트와 펫을 사용하시는가보구나. 역시 평민 출신으로 왕이 되신 분답게 대단하다.’

넋을 잃고 있는 마이너를 그리드가 재촉했다.

“뭐해? 너도 어서 일해야지.”

“아, 아! 넵!”

따앙! 따앙! 따앙!!

개 조심 던전 1구역.

다크가 몇 달 동안 고생해서 설계하고 건설한 그곳이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당하기 시작한다.

갓 핸드와 노에, 랜디가 곡괭이질에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더 빠르게!

***

“생각보다 더 짭짤하군. 좋아, 아주 좋아.”

반 블러드 카니발 연합군이 궤멸하면서 떨군 아이템을 모조리 챙긴 다크는 굉장히 벅차있었다.

연합군 덕분에 대량의 경험치와 재화를 챙겼으니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또한 굉장한 자부심도 느꼈다.

혼자서 300명의 고레벨 파티를 몰살시킬 수 있는 플레이어가 세상에 자신 말고 또 있을까?

그것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이다.

‘나중에 그것이 깨어나서 세컨드 클래스까지 획득하게 되면…’

지존.

오로지 단 한 명에게만 허용되는 그 최강의 칭호를 내가 거머쥐게 되리라.

“…어?”

20억 유저의 정점에 등극하는 미래를 상상해보면서 전율하던 다크가 멈칫했다.

[<개 조심> 던전에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또?”

반 블러드 카니발 연합을 쫓아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운 침입자란 말인가?

‘이미 한 번 발각 된 장소이니만큼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곧바로 적의 침입을 허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블러드 카니발을 노리는 무리가 많다보니 앞으로도 쭉 피곤해질 것 같은데.’

블러드 카니발의 아지트를 옮기고 던전을 보다 철저하게 은폐시키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다크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침입자가 왜 아직도 1구역에 머물고 있는 거지?’

반 블러드 카니발 연합에 의해서 개 조심 던전은 1~3구역이 완전히 공략 당한 상태였다.

공들여 배치해뒀던 함정과 몬스터가 남아나질 않았으므로, 새로운 침입자는 4구역까지 거침없이 진격할 수 있었고 지금쯤 이미 4구역에 도달했어야 정상이었다.

한데 침입자는 여전히 1구역에 있는 것이다.

의아해하던 다크가 이내 피식, 조소를 흘렸다.

‘지레 겁먹고 1구역에 멈춰있는 건가.’

신중함을 넘어서 터무니없는 겁쟁이다. 저레벨 플레이어일 가능성이 높다.

‘4구역의 몬스터들과 조우하면 알아서 죽게 될 놈이군.’

판단하고 콧방귀 뀐 다크가 개 조심 던전의 종착지, 8구역의 제작에 다시금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개 조심>던전의 1구역이 완전히 파괴당했습니다!!]

“뭐라고!!”

플레이어가 던전을 공략하는 이유는 특정 보상을 원해서다.

던전에 서식하는 몬스터를 퇴치함으로써 레벨과 아이템을 챙긴다거나, 던전 끝에 있는 보스 몬스터에게 도전한다거나 보통 이런 식이다.

던전 그 자체를 파괴하기 위해서 던전에 입장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았다.

한데 이번 침입자는 던전을 부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이건 마치 한 달 전 그 미친놈 같은…

“서, 설마!!”

다크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새로운 침입자, 한 달 전에 1구역을 완전히 박살내고 도망갔던 그놈과 동일 인물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개자식!!”

어떤 미친놈인지 직접 확인해주리라!

도끼눈을 뜬 다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개 조심>던전의 침입자가 2구역에 입장했습니다.]

[<개 조심>던전의 2구역이 완전히 파괴당했습니다!!]

“염병!!”

파괴 속도가 빨라졌다?

이대로는 3구역도 파괴당하게 생겼다.

던전이 완전히 파괴당할 경우 건설부터 다시 시작해야하기 때문에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다급해진 다크가 헐레벌떡 3구역으로 달려갔다.

***

“역시 죽은 건가…?”

그리드가 던전에 들어가고 벌써 1시간이 지났다.

1~3구역은 우리 연합이 이미 점령해놓았으니, 그리드는 던전 입장 후 곧장 4구역까지 이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4구역에서 놈들과 조우했을 터다.

나를 비롯한 연합의 에이스들을 몰살시킨 <마안족>.

뱀파이어와 마찬가지로 인계에 서식하는 마족 중 하나인 놈들은 플레이어의 카운터격인 존재다.

특히 ‘예지안’을 지닌 놈이 그렇다. 마안족의 귀족쯤 되는 녀석은 플레이어의 행동을 완벽하게 예측했다.

플레이어가 놈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그리드라면 아직 살아있을 거야. 그는 천외천조차도 이겼던 지존이니까.’

어쩌면 지금쯤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주 절실하게.

‘내가… 내가 도와야해.’

악독한 블러드 카니발 놈들에게 더 이상 희생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굳게 믿은 꼼냥이 던전에 입장했다. 현재 무장하고 있는 아이템들의 내구력이 언제 파손될지 모를 정도로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성격상 불의를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어?’

아이템 희생까지 불사하고 던전에 입장한 꼼냥이 두 눈을 의심했다.

던전 풍경이 아까 전 입장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내벽이 모조리 파괴당한 채 지면이며 벽면이며 가릴 것 없이 모조리 흉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이건 마치…’

폐광을 보는 듯한.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꼼냥은 궁금했지만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여유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드가 고통 받고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

꼼냥은 걸음을 재촉했고 금세 4구역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보았다.

연합 소속 하이 랭커들을 가볍게 압도했던 20마리의 마안족이 곤죽이 된 채 쓰러져있는 광경을.

압권인 것은, 예지안을 지닌 귀족조차도 피투성이가 되어있다는 점이다.

“어… 어떻게?”

저 강력한 마안족을 설마 그리드 혼자서 해치웠다고?

두 눈을 의심한 꼼냥이 그리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안족들의 시체 위에 선 그는 어째서인지 한 손에 곡괭이를 들고 있었다.

“그러게 왜 잡몹들이 설쳐.”

“……”

공포의 마안족에게 잡몹이라니?

꼼냥이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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