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0권 - 11화
‘농담이 아니었다고?’
영우의 안내를 따라서 식당 앞에 도착한 하오가 식은땀을 흘렸다.
황금색 용 2마리가 양각되어 있는 붉은색 간판.
중국인이 선호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 <용성각>은 대놓고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라는 문구를 달고 있었다.
하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껏 한국까지 찾아온 중국인에게 진짜로 중국 음식을 대접하다니…?’
만약 신영우가 누구인지 몰랐다면, 하오는 그를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라고 평가하면서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신영우가 누군가?
템빨왕 그리드다.
20억 유저 최초로 왕위에 오른 신화적 인물.
‘이만한 인물이 굳이 나를 여기로 안내한 데에는 깊은 속뜻이 있을 테지.’
제멋대로 오해하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하오에게 영우가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내 추천 메뉴는 뚝배기 짬뽕이랑 쟁반 짜장이야. 아, 뚝배기 짬뽕은 너무 매워서 외국인은 못 먹으려나? 쟁반 짜장 먹어.”
평소 영우는 이곳 용성각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다.
하지만 뚝배기 짬뽕은 워낙 뜨거운 까닭에 면이 빨리 불었고 그 탓에 배달이 안 돼서 늘 아쉬웠다.
하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핑계로 용성각을 직접 방문, 뚝배기 짬뽕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쁠 따름이다.
그렇다.
영우가 하오를 굳이 중국집으로 안내한 이유는 순전히 자신의 입맛 때문이었다. 하오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깊은 속내는 없었다.
“나는 사천 출신이다. 이 짬뽕이라는 음식의 사진을 보아하니 고추기름과 고춧가루를 첨가한 해물탕면 같은데, 이 내가 맵다고 못 먹을 리 없어.”
사천 출신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잘 먹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인보다 더 자부심이 강했다.
영우가 매운 것을 못 먹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자 울컥한 하오가 뚝배기 짬뽕을 메뉴로 선택해 버렸다.
영우가 입맛을 다셨다.
“짜장면 좀 뺏어 먹으려고 했더니…”
“…..?”
“툰, 네가 쟁반 짜장 먹으면 안 돼?”
“…그래.”
결국 메뉴는 뚝배기 짬뽕 2인분과 쟁반 짜장 1인분으로 결정됐다. 여기에 탕수육은 기본이다.
음식은 탕수육이 가장 먼저 나왔다.
달콤하고 새콤한 소스에 볶아져 나온 탕수육을 한 입 맛본 하오가 콧방귀 뀌었다.
‘꿔바로우인 줄 알았더니 형편없는 짝퉁이군. 소스에 산미가 너무 부족하다. 튀김옷도 쫄깃한 느낌이 없고 단단한 것이 식감이 나쁘고.’
하오는 스스로를 미식가라고 자부한다.
매주 약 50종류의 요리를 먹을 정도로 식사에 신경 썼다.
한국의 탕수육은 그의 미식을 충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한 요리였다.
“서비스입니다.”
마침 종업원이 뜨끈뜨끈한 군만두 한 접시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하오는 젓가락을 놓은 상태였다. 탕수육 맛을 보니 만두 맛도 형편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우가 추천한 짬뽕이나 어서 나오길 바랐다.
영우는 그런 하오를 신경도 안 썼다. 탕수육을 먹느라 바빴다.
툰은 만두를 중점적으로 먹었다.
바삭.
구웠다기보다는 튀긴 것에 가까운 만두를 툰이 한 입 베어 무는 순간이었다.
‘뭐지?’
하오의 후각이 자극 받았다. 만두가 쪼개지는 순간 테이블 전체로 퍼지는 후추 향이 그의 입맛을 돋우었다.
‘이건 꽤 괜찮을 것 같은데?’
뒤늦게 만두에 관심을 갖게 된 하오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군만두를 한 입 먹어 보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저 적은 양의 채소와 고기가 들어있을 뿐인 만두가 이렇게 맛있다니…? 어마어마한 감칠맛이 입안에 맴돌아 혀를 즐겁게 만들고 강한 후추 향이 끊임없이 식욕을 자극한다. 이런 만두라면 몇 개라도 더 먹을 수 있어.’
허겁지겁!
하오가 만두를 먹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툰이 만두를 하나 먹을 때 하오는 두 개를 먹었다.
그를 영우가 불쌍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오 얘는 미각이 형편없네… 평소에 얼마나 맛없는 음식만 먹었으면 군만두를 저렇게 좋아하지?’
용성각의 군만두는 대부분의 중국집과 마찬가지로 공장표 냉동 만두를 재료로 사용한다.
공장에서 싼 값에 받아 온 냉동 만두를 기름에 한 번 튀겨서 내주는 인스턴트 음식이었다.
그걸 맛있다고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우는 하오가 영우는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잠시 후, 드디어 뚝배기 짬뽕이 등장했다.
뚝배기 속에 든 시뻘건 국물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미리 경고하는데 이거 진짜 매워. 보통 중국집에서 파는 사천 짬뽕보다 훨씬 더.”
기본적으로 매운 짬뽕이 뚝배기에 담겨서 뜨겁기까지 하다. 매운맛이 엄청 부각되는 음식이었다.
경고하는 영우에게 하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천 출신인 내가 한국 음식을 맵다고 느낄 것 같지는 않군.”
사천인의 강한 혀와 위장을 보여주마!
의욕을 불태운 하오가 뚝배기 짬뽕을 한 젓가락 크게 떴다. 그리고 딸려 올라오는 탱탱한 면발을 각종 해물, 채소와 함께 흡입했다.
동시에.
‘매워!!’
하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오는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뚝배기 짬뽕에 다량으로 함유되어있는 시뻘건 가루는 사실 고춧가루가 아니라 캡사이신이었다.
사천 사람들이 즐겨 먹는 사천 고추보다 매운맛이 더 심하고 자극이 훨씬 강했다. 혀를 아리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하오는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짬뽕을 한 입 먹을 때마다 입속에서 폭발하는 매운맛과 감칠맛이 그를 신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먹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직접 맛본 결과, 이 짬뽕이라는 음식은 중국 음식과 거리가 멀었다.
하오가 여태까지 살면서 먹은 수천 가지 종류의 중국 음식 중에 짬뽕 같은 맛을 내는 음식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식 중식이겠지. 만두도 그렇고 이 짬뽕도 그렇고, 한국식 중식들은 대체적으로 감칠맛이 강하군. 주방장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야.’
단순한 닭 육수와 해물 육수로는 이 정도 감칠맛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필시 한국의 중식 주방장들은 감칠맛을 극대화시키는 어떤 비기를 감춰 두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하오는 생각했다.
고급 중식만 먹고 살아온 하오가 한국의 흔하디 흔한 동네 중국집에서 MSG에 중독된 날이었다.
***
Satisfy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세계 최초로 완벽한 가상현실을 구현한 S.A그룹이 Satisfy를 표현하는 문구다.
Satisfy를 게임이라는 작은 틀에 가둬 놓지 않겠다는 천명과도 같은 문구였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Satisfy를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그너스 또한 그랬다.
아그너스는 현실과 Satisfy를 굳이 구분 짓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Satisfy를 현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Satisfy의 기술력과 바알의 계약자의 능력이라면 필시 그녀를 재현할 수 있을 테니까.
“킥… 킥킥, 아직은 어렵다는 거냐?”
번헨 열도, 62번째 섬.
61번째 섬의 수문장 <란스티어>를 초월하는 괴물이 아그너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제1위 대악마 바알과 계약하고 얻은 모든 힘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62번째 섬을 돌파할 수 없었다.
딱… 딱딱.
반파 된 무무드의 리치가 하늘을 올려보며 턱을 부딪친다.
퀭한 눈구멍이 마치 자유를 갈망하는 듯하다.
멍하니 쓰러져 있는 무무드의 리치를 발로 차 일으킨 아그너스가 요정 빈에게 선언했다.
“다음에 올 때는 다를 것이다. 나는 반드시 번헨 열도를 마지막까지 정복하고 파그마가 남겨 놓은 유산을 모조리 독식하겠다.”
“히, 히익.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제발 살려 주세요.”
아그너스의 번들거리는 금색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살의와 분노뿐.
눈만 마주쳐도 살해당할 것 같은 공포심을 조성하는 탓에 겁먹은 요정 빈이 싹싹 빌었다.
울상을 짓는 녀석에게 킥킥 웃어준 아그너스가 번헨 열도로부터 탈출했다.
그는 자신보다 더 빨리 번헨 열도를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중급 속옷 제작법>Lv.1
각종 천과 가죽을 재료로 속옷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확률로 레어 등급의 속옷이 제작됩니다.
레어 등급의 속옷은 매우 낮은 확률로 옵션을 보유합니다.
*레어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2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 상승합니다.
<중급 재단 기술>Lv.8
각종 천과 가죽을 재료로 장비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희박한 확률로 레어~에픽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매우 희박한 확률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레어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2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 상승합니다.
*에픽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4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80 상승합니다.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12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0 상승합니다.
“헉.”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하고 수년이 지난 지금.
대장장이 기술이 너무 높은 경지로 성장한 까닭에 현재 그리드는 큰 페널티를 안고 있었다. 등급이 높은 아이템을 제작하더라도 스탯 상승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단 기술은 달랐다.
그리드가 이번에 새롭게 익힌 재단 기술은 아직 중급에 불과했고, 덕분에 아무런 페널티가 발생하지 않았다. 재단 기술로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할 경우 남들과 똑같은 스탯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심지어.
“제작 버튼이 있어!!”
인터페이스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됐다.
속옷 제작 버튼과 천, 가죽류 장비 아이템 제작 버튼이 생성된 것이다.
제작 버튼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120분.
앞으로 그리드는 단지 제작 버튼을 한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 속옷과 천, 가죽류 장비 아이템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2시간에 한 번씩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편의 기능이 생기다니…!!”
물론 대장장이 작업에는 적용되지 않는 기능이었지만 그리드는 충분히 기뻤다. 속옷 제작법과 재단 기술의 레벨을 올리는 일,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와, 아무리 봐도 대박이네. 어떻게 제작 버튼이 생길 수가 있지?”
단지 버튼 하나 클릭해서 아이템을 뚝딱하고 만든다고? 이런 편의 기능은 상상도 못해봤다.
‘S.A그룹이 유저에게 이렇게 친절할 리가 없는… 헉, 서, 설마 버근가?’
다른 생산직 플레이어들은 당연하게 누려 온 편의 기능을 게임 시작하고 3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 알게 된 그리드. 자신의 신세가 얼마나 가여운지도 모르고 불안해 하는 꼴이 불쌍하다.
***
[<천 갑옷>의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에티의 속옷>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노말 등급밖에 안 뜨네.”
프론티어에서 라인하르트로 귀환하는 길.
그리드는 2시간에 한 번씩 제작 버튼을 클릭함으로써 아이템을 생산하고 있었다.
모든 과정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하는 대장일과 달리, 속옷 제작과 재단 작업은 제작 버튼만 클릭해 놓으면 알아서 아이템이 제작되었으니 엄청나게 편했다.
문제는 등급이 노말밖에 안 뜬다는 점이었지만.
‘염병… 역시 Satisfy가 호락호락할 리가 없지.’
아무런 고생도 안 하고 2시간에 한 번씩 아이템을 생산하는 주제에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 뜨기를 바라는 건 역시 염치없는 일이었다.
이 제작 시스템으로는 절대로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그리드가 좌절했다.
‘역시 재단도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하는 건가…?’
기껏 버그(?)로 생긴 제작 버튼이 쓸모없는 것이었다니, 진짜로 환장할 노릇이다.
저기압 상태로 라인하르트에 도착한 그리드에게 라우엘이 최악의 소식을 전해왔다.
“사하란 제국에서 사신을 보냈습니다.”
“뭐? 제국에서? 우리한테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더니, 왜?”
“공물은 거두어야겠나봅니다.”
“미친 거 아니야? 우리가 제국에 공물을 왜 바쳐?”
템빨국 운영은 이제야 막 궤도에 올랐다. 건국 후 3달이 지나서야 드디어 세수가 적자를 면하고 있었다.
한데 이 시점에 공물을 바치라고? 이건 완전 망하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잖은가?
“진짜 아니꼬운 놈들이네.”
이를 간 그리드가 알현실로 향했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청발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머리 위에 떠올라있는 이름은 메르세데스.
찬란한 금빛으로 반짝이는 이름이었다.
‘네임드 NPC가 사신?’
이건 일종의 과시인가?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그리드에게 메르세데스가 살짝 목례하였다.
“템빨왕 그리드 전하께 위대하신 황제폐하의 뜻을 전하고자 찾아왔습니다.”
[메르세데스의 깊은 시선이 당신을 관조합니다.]
[메르세데스에게 당신의 능력치와 스킬 목록 일부가 강제적으로 공개됩니다.]
[저항할 수 없습니다.]
[메르세데스의 날카로운 검기가 당신을 위협합니다. 강한 압박감이 당신의 몸과 마음을 위축시킵니다. 모든 속도가 30퍼센트, 스킬 시전 속도가 20퍼센트 저하됩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상태이상 반사에 실패합니다.]
넓디넓은 세상에 산재해 있는 절대자 중 하나가 드디어 그리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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