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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77화 (472/1,794)

템빨 30권 - 20화

“한속…! 뭐?”

한속봉을 끌고 가는 간수들을 제지하려던 그리드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푸화하하하학!

땅으로부터 솟구치면서 등장한 보스 몬스터에게 앞길을 가로막힌 까닭이다.

[용암 감옥의 간수장이 출현하였습니다!]

‘뭐지?’

날렵한 몸매의 창백한 강시 보스와 대면한 그리드가 무척 당황했다.

Satisfy에서 보스라 함은 등장만으로도 강력한 위압감을 발산하기 마련.

설령 저레벨 보스라고 해도 등장과 동시에 상태이상을 유발시킨다.

한데, 용암 감옥의 간수장은 아무런 상태이상도 유발하지 않았다. 마치 일반 몬스터처럼 말이다.

바로 그 점이 그리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드는 간수장으로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느꼈다.

‘상태이상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말은 즉…’

간수장의 기본 스펙이 뛰어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게 아닐까?

기존에 상대했던 강시들의 육체 능력이 특출했던 점을 감안해 보면, 이 간수장 강시는 육체 능력의 정점에 오른 녀석일 가능성이 높다.

‘골치 아프게 됐군.’

일반 간수들만 해도 엄청난 육체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던가.

3마리 간수의 공격을 동시에 막아낼 경우 손에서 검을 놓칠 정도였다.

만약, 간수장의 능력치가 일반 간수의 3배만 되도 그리드 입장에선 상대하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공격을 검으로 방어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투가 까다로워진다.

‘아니, 너무 비약하는 거겠지?’

최악의 가정을 떨쳐내고자, 고개를 저으며 어색하게 웃는 그리드.

그의 귓가로 수애의 경악성이 들려왔다.

“흐, 흑마 강시…!”

“…?”

어째 놀라는 폼이 심상치 않다?

그리드가 더 큰 불안감에 휩싸이는 순간, 간수장이 수애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무도가 랭킹 1위 레가스의 발차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니, 레가스의 발차기보다 몇 배나 빠르고 예리한 발차기였다.

쿠와아앙-!

소름 돋는 파공성이다.

수애는 자신의 안면을 노리고 꽂혀오는 간수장의 발차기를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하여 간신히 회피했다.

그리드로부터 빌린 이상적인 단검을 벌써부터 완벽하게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발차기라니?”

수애가 무사한 모습을 확인하고 안도하던 그리드가 의문을 느꼈다.

종전에 등장했던 강시들은 두 팔만 휘둘렀을 뿐이다. 다리는 공격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드는 ‘강시는 하체가 부자유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막 나타난 간수장이 그 인식을 깨뜨려버린 것이다.

당황하는 그리드에게 수애가 설명해주었다.

“강시는 총 다섯 종류가 있어요.”

첫째, 철 강시.

가장 일반적인 강시다. 갑옷을 두른 것처럼 단단한 몸을 기반으로 강력한 체술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 무릎을 굽히지 못하기 때문에 다소 둔한 면이 있다.

둘째, 독 강시.

육체적인 능력은 철 강시와 비슷하나 상처로부터 독기를 내뿜기 때문에 위험도가 철 강시보다 훨씬 더 높다. 대량 살상에 용이한 강시다.

셋째, 혈 강시.

철 강시, 독 강시와 달리 산 자를 재료로 만든 강시다. 처녀의 피와 온갖 극독초를 혼합하여 제작하는 이놈들은 철 강시보다 3배 이상 단단하고 빠르다. 약간의 지능을 지녔기 때문에 다른 강시와 달리 명령 수행 능력도 뛰어나다.

만약 혈 강시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의 군대는 무적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 다만 혈 강시도 철 강시처럼 둔한 면이 있다.

다음으로는 흑마 강시와 천마 강시.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흑마 강시는 생전에 ‘고수’로 분류되던 무인의 시신으로 제작하는 강시로서, 육체 능력이 혈 강시보다 10배 이상 뛰어났고 신체의 부자유도 없다. 거기에 생전의 스킬까지 구사할 수 있다.

그 다음 등급인 천마 강시는 ‘살아 있는 고수’를 진귀한 영약과 처녀의 피로 절여 만드는 존재다. 흑마 강시조차도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한 놈들은 단신으로 일개 군단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소문이다. 단, 거의 전설처럼 취급되는 강시이며 실존하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말인 즉.

“저 흑마 강시 간수장은 사실상 강시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헐.”

수애의 설명을 들은 그리드는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혈 강시보다 10배 이상 뛰어난 육체 능력을 지닌 강시라니? 3배만 되도 정면전은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더니만 10배라고?

‘정면전은 아예 승산이 없겠구만.’

“그리드 님! 저는 개의치 마시고 제 딸 수애를 부탁드립니다! 어서 도망치십시오!!”

저 멀리, 간수들에게 포박당한 채 처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한속봉이 소리쳐온다.

철갑귀를 토벌한 그리드의 무력이 얼마나 굉장한지 잘 알고 있는 그조차도 그리드가 흑마 강시는 감당하지 못하리라 보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은 완전히 포기하고 수애와 그리드가 무사하기만 바랄 뿐이다.

수애도 체념한 기색이었다.

“제가 잠시라도 시간을 벌어보일게요. 그리드 님은 그 틈에 도망치세요.”

송장 그 자체.

호흡 한 번 없는 흑마 강시 앞에 선 수애가 붉고 도톰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버님 죄송해요. 소녀의 미력한 힘으로는 아버님을 구할 수 없어요. 곧 소녀도 뒤따라갈 터이니 외로워하지 마세요.’

그래, 수애는 죽음을 각오했다.

아버지 한속봉의 구출도 포기했다.

흑마 강시가 출현한 지금, 그녀의 유일한 바람은 그리드라도 무사할 것.

자신과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달려와 준 그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보은하고자 한다.

“어서 도망치세요!”

수애는 최후를 각오한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드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신의 몸을 지켜줄 유일한 무기인 이상적인 단검을 그리드에게 되돌려주고 맨 손으로 흑마 강시와 마주했다.

키야아아아아-!!

가소롭다는 듯이 기성을 토한 흑마 강시가 수애를 덮쳤다. 수애의 실력으로는 피할 수 없는 살수를 거침없이 날렸다.

수애가 시간을 버는 동안 그리드는 도망치는가?

‘그럴 리가!’

그리드가 동대륙에 재방문한 이유는 아군의 확보다.

마침 초국에게 버림받은 한속봉 부녀를 그는 어떻게든지 아군으로 만들고 싶었다.

‘반드시 당신들을 지키고 판게아를 템빨국의 영토로 귀속시키겠어.’

다짐한 그리드가 갓 핸드를 전개, 리파엘의 창으로 변신시키려다가 행동을 멈췄다.

‘아이템 변신으로 만드는 리파엘의 창은 원본과 비교하면 위력이 무척 약해.’

리파엘의 창의 주재료인 <여신의 털>만큼은 재현할 수 없기 때문.

과연 흑마 강시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괜히 아이템 변신 스킬만 날릴 공산이 컸다.

‘갓 핸드 너희들은 이번 전투에서 방어에만 힘써라!’

파파파팟!

그리드의 의지를 받든 갓 핸드들이 수애에게 날아가 그녀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흑마 강시의 발차기와 주먹질을 자신들이 대신 맞았다.

쩌정!

쩌저저저정!!

파브라늄 최대의 강점은 내구도가 무한하다는 점이다.

대기와 대지를 격동시키는 흑마 강시의 강력한 공격을 맞고도 갓 핸드들은 파괴되지 않았다.

단, 1회의 공격을 허용할 때마다 수초씩 경직되었기 때문에 방어 기능을 오랫동안 지속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잠시나마 시간을 벌어준 것으로 충분하다.

“노에!”

[지옥 제일 마수 멤피스를 소환합니다!]

그리드가 한시가 급한 타임 어택 퀘스트 중에도 끝까지 노에를 소환하지 않았던 이유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였다. 지금처럼 강적이 출현할 경우, 그때 의지하기 위해서 노에의 체력을 안배한 것이다.

“냥! 잘 먹겠다옹!”

짠! 양팔을 벌리면서 등장한 노에가 흑마 강시를 한입에 집어삼킬 의도로 주둥이를 크게 벌렸다.

하지만 흑마 강시는 날렵함이 엄청났다. 다가오는 노에의 주둥이를 회피해버렸다.

“엥?”

“뇽?”

노에가 먹지 못한다고?

당황한 그리드와 노에의 어안이 벙벙해지는 순간.

퍼억-!

“키양!!

흑마 강시의 표적이 된 노에가 공격을 얻어맞고 두 눈을 X자로 만들었다. 혀를 배꼼 내밀고 픽, 쓰러지는 노에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서, 성수님께서…!”

철갑귀 공략 당시, 노에를 사방신과 비슷한 개념의 신수로 오해하였던 수애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려다가 역으로 당해버리는 노에를 보고 초조해졌다.

“그리드 님 어서 도망치시라니까요!”

지금 당신도 봤다시피 흑마 강시는 신수조차도 감당 못하는 괴물이다. 제아무리 그리드 당신이 강하더라도 저 괴물을 상대할 순 없다. 부디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해라.

수애는 간절히 바랐지만 그리드는 그녀의 바람에 호응해주지 않았다. 도리어 수애의 앞으로 나서서 간수장과 대면했다.

“수애 님, 당신이 뭔가 착각하는 듯한데. 나는 이곳에 우연히 온 게 아니야. 오로지 당신 부녀를 구하기 위해서 일부러 달려온 거라고. 설령 내가 죽더라도 당신들은 지켜.”

“…왜.”

당신은 왜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애초에 당신은 우리에게 커다란 은혜를 안겨준 은인이 아닌가. 우리가 당신을 위해서 희생한다면 또 모를까, 당신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할 의리는 어디에도 없다.

“아…”

떨리는 눈빛으로 그리드의 등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하던 수애가 문득 탄성을 뱉었다.

그리드가 새롭게 꺼내 쥔 혈빛의 장검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 것이다.

이야루그트였다.

<멋짐>옵션이 귀속 된 이후 더욱 더 아름다워진 반투명한 적색의 마검.

어두운 던전 속에서 영롱한 붉은 광채를 발휘하며 그리드의 손에 쥐어진 그것이 마기를 일렁이기 시작한다.

전조다.

지옥 최강의 검사가 등장하는 전조.

“소환, 이야루그트.”

[검귀 이야루그트를 소환합니다!!]

쿠르르르릉!!

그리드가 소환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이야루그트가 천둥처럼 포효했다.

혈빛의 마기를 사방으로 분출하며 길길이 날뛰는 녀석, 그리드의 손으로부터 벗어나고 만다.

“아…!”

수애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야루그트의 혈빛 마기. 정확히 말하면 이야루그트의 영혼이 내뿜는 그 빛은 세상 어떠한 보석보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바, 수애의 심미안을 자극하며 그녀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고오오오오오오-

“…감미롭다.”

사방으로 미쳐 날뛰던 영혼이 하나가 되어서 노인의 형상을 갖춘다.

허리 굽은 노인.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이는 혈빛의 마기를 전신에 두른 그가 바로 이야루그트의 실체.

마력을 타고나지 못한 하급 마족임에도 불구하고 대악마와 호각을 겨루었던 ‘지고의 검’이다.

스파아앗-!!

폐부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만끽한 후 검을 휘두르는 이야루그트.

흑마 강시는 그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자신의 반응 속도보다 이야루그트의 검술이 빨라서?

전혀 아니다.

흑마 강시의 육체 능력이 이야루그트의 육체 능력을 압도할 정도로 뛰어나다.

흑마 강시가 이야루그트의 검을 피하지 못한 이유는 이야루그트의 검술에 담긴 묘리가 너무 높은 경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고 쫓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차리고 보니 몸이 베어 있달까.

츠카카카칵!!

혈빛의 검광이 흑마 강시를 계속해서 옥죄며 시간을 벌어주는 그때.

“암흑의 룬 개방.”

그리드는 힘의 봉인을 풀었다.

“벨리알의 힘.”

바로 대악마의 힘을!

***

“방금 그자는 누구지?”

간수장이 침입자의 발을 묶어놓는 동안 감옥을 탈출한 삼다수.

그가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한속봉에게 재차 물었다.

“세상에 흑마 강시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는 어리석은 놈이 있다니, 그 미친놈의 정체가 대체 뭔가?”

간수들에게 포박당해 있는 한속봉이 삼다수를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욕설을 삼가라. 그분은 너처럼 더러운 자가 함부로 말해도 좋을 분이 아니다.”

“큭큭! 곧 죽을 사람이 남 욕 좀 했다고 화를 내다니, 이것 참 웃기는군.”

흑마 강시는 초국 비장의 병기다. 초국 전체에 단 다섯 구밖에 없는 것이 바로 흑마 강시다.

한속봉을 구하겠답시고 나타난 정체불명의 침입자?

단언컨대 한속봉이 형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곤죽이 되어서 죽을 것이다.

‘그와 함께 있던 수애도 죽겠지.’

그건 아쉽다.

쩝, 입맛을 다신 삼다수가 간수들에게 눈짓하자 간수들이 걸음을 재촉했다.

수애와 그리드를 걱정하며 자꾸만 감옥을 뒤돌아보는 한속봉을 개처럼 끌고 형장으로의 이동을 서둘렀다.

그때였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마치 천둥과도 같은 폭음이 용암 감옥 상층부로부터 들려왔다.

“뭐?”

깜짝 놀란 삼다수가 고개를 돌려 보았다가 경악했다.

용암 감옥의 일부가 마법 폭격을 얻어맞은 것처럼 반파되고 있었던 까닭이다.

“저게 무슨?”

흑마 강시가 감옥을 부셔가면서 싸워야할 정도로 침입자가 강했다고?

삼다수가 혼란스러워하는 그때.

툭!

반파 된 감옥 상층부로부터 공 같은 것이 날아와 지면에 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서 삼다수의 발치까지 다가오는 그것의 정체, 다름 아닌 흑마 강시의 머리였다.

“히, 히익…!”

삼다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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