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1권 - 11화
“4마리의 주작이라니... 이번에도 신장이 발동한 건가?”
아레스 군단의 정보력은 굉장히 우수하다.
일신의 능력에 비해서 정보 수집력이 부족한 그리드와 달리, 아레스의 정보 수집력은 지존급 플레이어다운 수준이었고 덕분에 아레스 군단은 <7악성 에피소드>를 꿰고 있었다.
3개의 최상급 공격 패시브 스킬과 방어 패시브 스킬, 그리고 타락 패시브를 획득할 수 있다는 7악성 에피소드.
아레스 군단은 그 7개 스킬의 획득 방법까지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스킬들의 기능이 어떨지는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드가 신장을 획득하고 있음을 알았다.
벨리알 레이드에서 궁극기를 2번 연속으로 사용한 모습, 에트날과의 전쟁에서 주작을 연달아 4번 소환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신장은 조건부 발동이거나 확률적 발동일 텐데?’
한데 그리드는 툭하면 신장을 발동시키는 듯하다. 거의 의지대로 조절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준이었다.
‘행운 스탯을 높여주는 아이템을 만들어서 착용 중이기라도 한가?’
‘아니면 타고난 운이 너무 좋다거나.’
스캇과 럭이 의문을 느끼는 그때, 그리드의 전투 현장을 모니터링 중인 길드원으로부터 또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드가 주작 2마리를 새롭게 소환했다...! 총 6마리의 주작이야!!
“?!?!”
“4마리를 소환했을 때 이미 신장이 발동한 게 아니었다고?!”
스캇과 럭의 뇌리로 에트날 전장 영상이 리플레이 된다.
그리드의 전투력을 복기해보는 것이다.
‘4개의 황금 손 중 2개가 2자루의 활로 변했었고.’
‘그중 1자루는 그리드가 직접, 나머지 1자루는 2개의 황금 손이 사용했었다.’
‘가만...’
‘...4개 손 모두 활로 변신시키는 게 가능했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친...!”
스캇과 럭의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았다.
특히 럭이 받은 충격이 더 컸다.
왜?
럭은 그리드가 본인과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일 거라고 측정해왔던 까닭이다.
“근데 아니었어.”
그리드가 나보다 한 수 위다.
깨달은 럭은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크라우젤, 한 물 가도 단단히 갔구나?’
***
블루타일드 평야.
장애물이라고는 작은 돌멩이 몇 개가 전부인 초원이다.
‘평지에서 이동속도와 민첩성 상승’, ‘100미터 이상 주파 시 돌진 공격력 추가’옵션을 달고 있는 철갑귀마대의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철갑귀마대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이 드넓은 평야에서라면, 제국의 청은도끼병들과 싸워도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품을 정도였다.
“이곳을 진군하는 동안에는 반란군이 감히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지 못할 거다.”
철갑귀마대 3대대장 파스타노.
헝클어진 남색 머리카락 사이로 엿보이는 그의 눈동자에 충만한 것은 오직 자신감이다.
반역자 아레스 공작의 성까지 자신의 3대대가 가장 먼저 도착, 가장 큰 공을 세워서 금의환향하게 될 거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레스 공작... 한때는 스승이라 생각하였으나 이제는 아니다.”
나는 이미 진즉부터 당신을 초월하였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존경해야하는 대상이었기에 도전해볼 기회조차 없었고 그것이 늘 아쉬웠다.
‘허나 그것도 며칠 전까지의 일.’
아레스 공작이 왕실 전복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파스타노는 본인의 유능함을 왕국 전역에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아레스...! 한 줌 재가 되어 내 명성의 초석이 되어라! 끼럇!!”
어딘가에 숨은 채 벌벌 떨고 있을 아레스에게 부디 자신의 외침이 닿기를 바라면서, 힘껏 소리친 파스타노가 귀마를 달렸다.
서슬퍼런 안광을 번뜩이며 내달리는 귀마의 속도는 일반적인 말보다 족히 배 이상 빨랐다.
명마에 귀신의 혼을 삽입하여 제작한 귀마들은 결코 지치지 않았고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다.
“크하하하! 진격! 진격하라!!”
2,500의 철갑귀마대를 선두에서 지휘하며 평야를 가로지르는 파스타노.
이틀 내로 도착하게 될 아레스 공작령의 수도를 불태우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한껏 들떠있던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저 멀리, 귀마대가 진격하고 있는 경로에 한 사람이 서있었다.
아니, 사람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생김새를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대상은 먼 거리에 있었다.
‘몬스턴가?’
멀쩡한 인간이 수천의 군대가 진격하는 경로에 버티고 서있을 리 만무하다.
파스타노는 저 멀리 보이는 인영의 주인이 겁대가리 상실한 몬스터일 거라고 판단했다.
“밟고 지나가라!!”
“예!!”
명령하는 파스타노와 대답하는 철갑귀마병들.
그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귀마들의 강인한 다리가 대지를 격동시키는 그때.
“날아오르라!!”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몬스터인 줄 알았던 인영이 태양을 머금고 번쩍이는 황금 활을 당기면서 소리쳤다.
“?”
갑자기 혼자서 뭐라고 떠드는 거지?
철갑귀마대는 움찔하면서도 귀마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멈출 수밖에 없었다.
푸른 하늘 위로 한 마리 새가 날아오르는 광경을 목격한 까닭이다.
불타오르는 새.
전설의 신수 피닉스와 꼭 닮은 모습이었다.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하늘의 일부를 가릴 정도였다.
“허억?”
“저, 저게 무슨?”
화들짝 놀란 파스타노와 철갑귀마대가 반사적으로 진격의 속도를 늦췄고, 이는 크나큰 실수로 작용하고 만다.
“날아오르라!!”
저 멀리 선 인영이 다시 한 번 활을 당기면서 외치자.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뭐라고!!”
또 한 마리의 피닉스가 나타나서 하늘 위로 떠올랐다.
“저게 뭐야...!”
“저, 저자가 피닉스를 소환한 건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철갑귀마대가 제아무리 최강의 부대라 할지언정 결국 그들도 인간이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을 겪게 되면 냉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혼란에 빠진 군대를 파스타노가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고 대열을 갖춰라! 우리는 위대한 철갑귀마대! 저딴 환술에 속아 넘어갈 군번이 아니다!!”
정황 상, 피닉스를 소환한 인물은 아레스의 부하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전설의 신수 피닉스를 인간이 소환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
파스타노는 하늘에 떠오른 2마리 피닉스가 당연히 환술이라고 판단했다. 자신들의 발을 잠시라도 묶기 위한 아레스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보았다.
“전군 돌격해라!! 감히 우리를 기만하는 저 미친놈을 짓밟고 나아가 아레스의 땅을 모조리 불태워라!!!”
“우와아아아아아아!!”
파스타노의 명령을 듣고 평정심을 되찾은 철갑귀마대가 다시금 귀마를 내달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멀리 선 사내, 또 새로운 황금 활을 2자루 소환하여 시위를 당기고 있었으니까.
“날아오르라!!”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
화르르르르륵!!
“....!!”
태양마저 삼켜진다.
하늘 위에 떠오른 피닉스는 이제 4마리였고, 놈들의 타오르는 몸은 너무나도 비대하여 하늘 전체를 가려버렸다. 이제 초원을 물들이는 것은 햇빛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네 마리의...!!”
“피닉스...!!”
경악하는 파스타노와 철갑귀마대.
이제는 솔직히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두려웠다. 환술도 환술 나름이지, 뜨거운 불꽃의 열기가 피부 위로 고스란히 느껴지고 말았으니 마치 현실 같았다.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귀마를 멈추지 않고 거리를 좁혀오는 그들에게, 4마리의 피닉스 아래 선 흑발의 사내가 더 큰 절망을 안겨주었다.
“두 마리 추가다!! 날아오르라!!!”
신장의 효과.
4개의 갓 핸드를 모조리 주작궁으로 변신시키고 그것으로 <날아오르라!>를 4번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리드의 신장 패시브 스킬은 2번 발동했다.
딱 절반의 확률이었다.
덕분에 하늘에 6마리의 주작이 떠올랐고, 그 위력의 총합은 신화급 주작궁의 <날아오르라!>를 가뿐히 넘어섰다.
콰르르르르르르릉!!
무한히 떨어지는 불의 비.
푸르디푸르던 초원이 순식간에 검게 타오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히이익!!”
꺼지지 않는 불꽃.
세상 두려울 것 없던 철갑귀마대를 송두리째 불태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라?”
채 3천 명도 안 되는 부대를 전멸시켰답시고 레벨이 5개나 오르다니?
생전 없던 경험.
어리둥절하던 그리드가 드디어 눈치 챘다.
“얘들 사실은 엄청난 고렙 부대였던 거야?”
“......”
그리드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레스 군단원들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철갑귀마대를 가볍게 몰살시키고 중얼거리는 그리드의 모습을 보자니 세상만사가 허무해진 것이다.
‘뭐 저런 무지막지한 인간이....’
‘대군을 통솔할 때의 아레스 님만큼 강한 것 같은데?’
나중에 적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무서울 지경!
“어?”
넋을 잃고 있던 아레스 군단원들이 정신을 번뜩 차렸다.
전멸한 줄 알았던 3대대에서 생존자가 등장한 까닭이다.
3대대장 파스타노였다.
그 끊임없는 불의 비 사이에서 살아남다니, 과연 대대장급은 차원이 달랐다.
“놈...! 네놈은 뭐냐!!”
군대를 잃은 지휘관은 비난을 받는 법이다.
그래, 파스타노는 모든 걸 잃었다.
명예도, 권력도, 지위도.
야망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된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분노뿐이었다.
“죽여 버린다...! 죽여 버리겠다아!!”
크아아아아!!
포효한 파스타노가 그리드를 향해서 돌격했다.
100미터를 순식간에 주파하고 돌진 공격력까지 얻은 그의 창끝에 서린 오러는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기병의 돌진 공격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하다는 말이 있듯이, 파스타노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뚜렷한 강점에는 늘 약점이 동반되는 법이다.
기병의 돌진 공격은 직선으로 발현되었고, 이는 반격기에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파그마의 검무, 회(回).”
콰자자자자자자작!!
“...!!”
파스타노의 가슴이 갑옷 째로 뻥- 꿰뚫렸다.
원형을 그린 <+7검은 귀신>이 파스타노의 공격을 역으로 선회시킨 결과였다.
“쿨럭....!”
아찔해지는 정신 속에서, 파스타노는 커다란 혼란을 느꼈다.
‘소환사가 아니었다고?’
눈앞의 흑발 놈은 전설의 신수를 무려 여섯 마리나 소환해보였다.
어떻게 신수를 소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놈의 정체가 소환사라는 건 확실했다.
일단 거리만 좁힐 수 있으면 무조건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한데 이 무슨?
“검술... 어떻게 소환사가 검술을...? 쿨럭, 쿨럭!!”
허를 찔린 탓에 더욱 큰 치명상을 입게 된 파스타노.
낙마하여 울컥, 피를 쏟아내는 그에게 그리드가 자비를 내리고자 시도했다.
고통으로부터 해방 될, 죽음이라는 이름의 자비였다.
“이제는 하다하다 소환사 취급이냐? 사람을 얼마나 잡캐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채앵!!
“...!!”
파스타노의 목을 내리치던 그리드가 깜짝 놀랐다.
파스타노의 창에 자신의 공격이 가로막힌 까닭이다.
‘둔해지지 않았어?’
파스타노는 날아오르라를 무려 6번 맞은 상태로 자신의 필살기를 반격 당했다.
실제로 생명력 게이지가 실금밖에 남지 않았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일반적인 인간형 NPC였다면 몸을 가누지 못할만한 상태인 것이다.
한데 파스타노는 신속하게 움직였고 그리드의 공격을 정확하게 방어했다.
‘이 정도였나!’
레벨을 무려 5개나 올려준 철갑귀마대와 이를 이끄는 대장의 실력, 소국에 있을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만큼 강할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아레스 덕분이었다.
그리드는 아레스가 새삼 두려워졌다.
아레스 개인의 힘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으나, 아레스가 만든 군대의 힘은 너무 굉장했다. 아레스 군단과 ‘전쟁’을 벌이는 일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오오!!”
채앵! 채챙!!
파스타노가 그리드에게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은 생명력이 너무 적었다.
그리드의 공격을 2차례 허용하는 순간 잿빛으로 산화했다.
여기서 그리드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철갑귀마대 3대대장 파스타노를 해치웠습니다!]
[철갑귀마대가 당신에게 복수심을 불태웁니다! 앞으로 철갑귀마대는 당신에게 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헐.”
레이드 대가로 보상을 얻기는커녕 복수 페널티가 발생하다니?
당황하는 그리드에게 숨죽이고 있던 아레스 군단원들이 다가왔다.
“그게 바로 아레스 님에게 장군직을 부여받은 자들의 특성입니다.”
“아레스 님의 장수를 해치울 정도로 강한 자들은...”
“아레스 군단의 잠재력을 폭발시켜버리죠.”
“크라우젤이 그 대표적인 피해자고.”
아레스 군단원들이 그리드에게 친절히 설명해주는 의도는 단순했다.
우리를 두려워하라는 뜻이다.
이에 대한 그리드의 반응은 아레스 군단원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대대장을 죽인 대가로 얻은 페널티,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철갑귀마대와 만날 일이 없거든.”
“...?”
“내 동료들이 남은 철갑귀마대를 몰살시킬 테니까.”
그리드가 말하는 의도 또한 단순했다.
아레스의 장수들을 죽이면 얻게 된다는 페널티?
강한 동료들과 함께인 나는 두렵지 않다, 라는 뜻이다.
두 세력의 신경전은 이미 진즉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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