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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20화 (515/1,794)

템빨 32권 - 18화

쏴아아아아아----

하늘과 육지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었던가.

정화 된 62번째 섬의 중앙에 놓인 폭포는 높이가 무려 수천 미터에 달했다. 단순히 고개만 들어서는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었고, 폭포수의 위력은 당연히 대단했다. 사방팔방으로 비산하는 물줄기가 비처럼 대지를 적셨다.

몸이 약한 스틱세이는 그 거세고 차가운 물줄기를 불편해하는 기색이었으나, 그리드는 이제 창칼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로 성장했다. 폭포가 토해내는 굉음에도 눈 한 번 깜짝 안 했다.

“다음 섬의 수호자가 누군지 미리 알 수 없을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불사에 의존하지 않고 승리를 거두겠노라, 어려운 목표를 세운 그리드는 보다 많은 정보를 원했다. 다음 섬의 보스가 누구인지 사전에 알아두고 확실하게 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스틱세이에게 있어서도 이 다음 섬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애초에 그 또한 그리드의 활약 덕분에 60번대 섬까지 도달할 수 있던 것이다.

“섣불리 추측할 수 없군요... 도움을 드리지 못하여 면목이 없습니다.”

“고개 숙일 것까지야.”

예전 같았으면 투덜거리고도 남았을 그리드이다. 대현자라는 인간. 아니, 엘프가 무슨 도움 하나 안 되냐며 아니꼽게 여겼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리드에게는 이해심이 있었다. 일이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성을 내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스틱세이의 입장을 헤아렸다.

그러한 행동이 스틱세이를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게 만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스틱세이가 입을 열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검성 뮐러는 배제하셔도 좋습니다. 번헨 열도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 파그마 또한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물론 브라함도 아닐 겁니다.”

당연하다.

브라함의 영혼은 현재 그리드와 함께 있다.

그래도 혹시나 했던 그리드가 안도했다.

‘혹시 브라함이 리치로 등장하면 답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이군.’

전대 전설들의 데스나이트들은 ‘기본 스킬’만을 사용하는 중이고 그게 약점이었다.

하지만 브라함은 논외다.

브라함의 강화 마법은 최하위 마법조차도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바, 리치 브라함은 기본 마법만 사용하더라도 공략 난이도가 무척 높을 것이 분명했다.

‘브라함, 정말이지 너는 알면 알수록 대단하구나?’

-흥, 전설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전설이 아니다. 나쯤 되면 전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편이지.

조금 띄워주자 기고만장해지는 브라함이었다.

프로 트롤러 주제에 괘씸한 면이 있다.

그리드가 염치없는 그를 보고 혀를 내두르는 동안에도 스틱세이의 분석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 셋과 란스티어, 알렉스를 제외하면 이제 남은 전설은 네 명이지요. 전설의 궁사 포비아, 전설의 재단사 크루제, 전설의 광부 기스. 그리고....”

전대 전설은 총 9명이라고 전해진다.

남은 1명은 누구인가?

그리드는 이제 확신할 수 있다.

“마드라?”

“알고 계셨군요.”

역시나 예상대로다.

아홉 번째 전설의 정체는 제국을 압도하였다는 무패왕 마드라였다.

전대 전설 중에서 유일하게 왕이었던 존재.

“남은 4개의 섬에는 그들 4명이 순차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누가 몇 번째 섬에서 등장할지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일단 두 명은 쉽게 이기겠네.”

전설의 광부 기스와 재단사 크루제를 말함이다.

생산직계열 직업군 전설인 그들을 그리드는 쉽게 보았다.

물론 실수였다.

“....당신은 대장장이이십니다만.”

“.....”

파그마 또한 대장장이이면서 검호였다.

기스와 크루제도 당연히 강력한 무력을 겸비했을 터였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거겠군...”

그리드가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자신과 파그마를 돌이켜보니 기스와 크루제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어떤 수단으로 싸우는 것인지 아예 정보가 없다는 점이었다.

대현자 스틱세이의 지식이 그에게 도움을 줬다.

“마드라는 모든 무술에 통달한 전략가이며, 기스는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바위처럼 단단한 방어능력을 발휘하는 탱커입니다. 그리고 크루제는 살침(殺鍼)으로 유명했죠.”

“흐음....”

그리드가 두뇌를 굴리기 위해서 애썼다.

그는 우선 포비아와 기스를 쉬운 상대로 분류했다.

‘궁사 포비아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아. 200미터까지 거리를 좁히는 순간 종횡무진을 사용해서 접근하고 반격하면 체력이 약한 궁사쯤 우습게 제압할 수 있다.’

탱커 또한 상대하기 편하다.

‘탱커는 공격력이 약하지... 반면 나는 방어력과 공격력 모두 높고. 기스의 공격을 버티면서 반격만 해도 내가 이길 거다.’

반면 마드라에게는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들었다.

‘마드라가 정말로 모든 무술에 통달했다면 검술의 제압법을 다양하게 습득하고 있겠지. 전성기 시절 액티브 스킬을 대부분 봉인 당했더라도 기본적으로 보유한 스킬 개수가 워낙 많아서 위협적일 거야. 거기에 더불어서 그는 왕이었던 존재다. 최초의 왕 칭호만 봐도 그에게 특별한 생존 패시브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가장 경계해야할 대상은 역시 마드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크루제는?

정확히 모르겠다.

살침이 뭔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드에게는 스틱세이가 있다.

그리드가 스틱세이에게 다시 한 번 의지했다.

“살침이 뭐지?”질문하는 그리드에게 스틱세이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투 특화 침술입니다. 크루제는 전설의 재단사답게 바느질의 달인. 바늘을 무척 잘 썼죠. 바늘을 침처럼 찔러서 상대를 제압하는 그의 기술은 무척 신묘한 것입니다.”

“흐으으음....”

무협지가 떠오른다.

무협지에서 표현하는 침술은 대체적으로 만능적인 기술이었다. 얇은 침 하나로 대상을 죽이거나 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딱히 위협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말만 들어도 약할 것 같은데?’

일단 침이라는 무기에 한계가 명확하다. 너무 짧다. 그리드가 검으로 쉽게 쳐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너무 얇아서 위력도 적겠지.’

그리드의 튼튼한 삼겹갑은 창칼마저 우습게 막아내는 방어력을 자랑한다. 얇고 짧은 침 따위로 삼겹갑을 꿰뚫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리드가 씨익 웃었다.

“결국 마드라만 제외하면 모두 쉬운 상대군.”

기왕이면 마드라를 가장 늦게 만나고 싶은 그리드였다.

쉬운 상대들을 먼저 만나 그들을 해치우고 보상을 얻은 뒤, 더욱 더 강해진 상태로 마드라를 만나는 편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불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알림창이 떠올랐다.

다음 섬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앞으로 향한 그리드가 스틱세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 섬에서 보자고.”

“응원하겠습니다.”

그리드가 묘하게 자신만만한 모습이 다소 마음에 걸리는 스틱세이었다. 하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그리드의 실력을 신뢰하는 그였다.

한편, 징검다리를 건넌 그리드는 게이트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스파아아앗-

그리드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63번째 섬에 입장한 것이다.

***

[예순세 번째 섬에 입장하였습니다.]

‘누구냐?’

포비아, 마드라, 기스, 크루제.

남은 4명의 전설 중 과연 누가 63번째 섬을 지키고 있을까?

그리드는 우선 저격을 경계했다. 갓 핸드를 사방으로 펼치고 자신은 저격 포인트를 찾았다.

포비아를 상정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수십 초가 지나도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63번째 섬의 수호자가 포비아일 가능성은 현격히 낮아졌다.

‘란스티어, 알렉스와 달리 즉시 등장하지 않는 걸 보면...’

63번째 섬의 수호자는 기스나 크루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그리드는 추측했다.

그들이 비교적 약하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였다.

““전설적 재단사의 눈.””

“.....?!”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등지고 있는 바위 위로부터 데스나이트 특유의 음성이 들려온 까닭이었다. 마치 커다란 동굴 안에서 말하는 듯한 음성 말이다.

“갓 핸드!”

다가올 기습에 대비하여 갓 핸드를 가까이 소집하는 그리드.

반격을 계획하며 열망의 무아지경의 검을 거머쥐는 그를, 바위 위 데스나이트는 빤히 내려 볼 뿐이다.

데스나이트의 이름은 크루제였다.

투명 망토를 창조한 전설의 재단사 말이다.

그리드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녀석이 재차 뭐라고 떠들었다.

““전설적 재단사의 눈.””

“...!”

크루제가 대사를 이제 명확히 듣게 된 그리드가 경계했다.

<전설적 재단사의 눈>이라는 스킬이 만약 <전설적 대장장이의 눈>과 같은 맥락의 스킬이라면, 지금 크루제는 자신의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는 중이라는 뜻이다. 약첨을 노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드는 크루제가 자신을 관찰할 틈을 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쉬운 상대로 해석하기도 했다.

“파그마의 검무, 초연!!”

쿠콰콰콰콰콰콰쾅!!

바위 위 크루제를 정확히 조준하고 쏘아지는 검기의 폭풍!!

그리드는 자신의 아이템을 관찰하느라 정신 팔린 크루제가 이를 막아내지 못하리라 보았다.

크루제가 큰 피해를 입고 허우적거리는 동안, 자신은 그대로 바위를 박차고 올라가 다음 공격을 연계시킬 계획이었다.

한데.

쐐애애애액!!

바위를 타고 도약하고 있는 그리드의 미간을 노리고 날카로운 바늘 하나가 꽂혀왔다.

초연이 발생시킨 폭발 속으로부터 날아온 바늘이었다.

크루제가 피해를 입었다는 메시지 창 또한 출력되지 않았다.

‘초연을 모조리 피하거나 막았다고?’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드였으나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마음을 침착하게 다스렸다.

길이가 고작 5센티미터도 안 되는 바늘 공격 따위 우습게 회피한 그가 드디어 바위 위까지 오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없어?’

사라졌다!

바위 위에 있던 크루제가 온데간데없었다. 평평한 바위 위에 존재하는 사람은 오직 그리드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당황하며 주변을 살피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력 탐지를 전개해라.

란스티어가 은신을 썼을 때와 마찬가지의 조언.

그리드가 깨달았다.

‘투명망토!’

그래, 크루제는 전설의 재단사였다.

전설의 대장장이인 그리드가 템빨러이듯 그 또한 템빨러인 것이다.

푸욱-!

급히 마력 탐지를 전개하려는 그리드의 옆구리로 따끔한 충격이 전해졌다.

은신상태의 크루제가 찔러온 바늘이 그리드를 찌른 것이다.

하지만.

[43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역시 바늘은 바늘이다.

삼겹갑을 꿰뚫지 못했다.

충격도 아주 살짝 따끔한 수준에 그치더니 실질적인 피해량도 지극히 낮았다.

“장난 하냐!”

콧방귀 뀐 그리드가 파(波)의 검무를 펼치기 시작했다.

영역 전체에 검기를 날림으로써 보이지 않는 크루제를 공격하고, 이후 시간을 벌어서 마력 탐지를 전개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크루제의 봉침술이 당신의 마나 흐름을 역류시킵니다.]

[저항할 수 없습니다.]

[파그마의 검무, 파(派)의 발동에 실패합니다.]

[파(派)에 소모하는 마나 수치의 3배에 해당하는 생명력 피해를 입습니다.]

[2,4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

최강의 디버퍼.

바로 그것이 크루제의 실체였다.

피부 위로 닭살이 돋는 것을 느낀 그리드가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한편 크루제는 투명 망토를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손가락 뼈마디 마다 3개씩의 바늘을 쥐고 있는 데스나이트.

마치 리치처럼 로브를 두르고 있다.

““전설적 재단사의 눈.””

파앗-!

재차 같은 스킬을 사용하는 크루제.

녀석의 보랏빛 안광이 번쩍였고, 그리드는 관조 당한다.

벌거벗겨진 심정으로 자신의 아이템 정보를 크루제에게 낱낱이 고했다.

“이 자식!”

불쾌한 기분을 느끼며 이를 간 그리드가 크루제에게 돌격했다.

마나 역류를 유발하는 크루제의 봉침술은 1회성 효력을 발휘하는 바, 이제 그리드는 스킬 사용 페널티로부터 자유로웠다. 망설임 없이 연(聯)을 전개하였다.

순간.

스파아아아아앗-!

크루제의 반경 10미터 범위로 반투명한 결계가 생성되었고 그 위로 그리드의 연(聯)이 직격했다.

떠덩!

떠더더더더더덩!!

“....?!”

꼼짝도 안 한다?

연(聯)의 수십 회 공격에 얻어맞고도 크루제가 펼친 결계는 견고하게 유지됐다. 도중에 몇 번이나 검은 불꽃이 폭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드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뭐지, 이 말도 안 되는 방어 스킬은?’

오해다.

이건 크루제가 사용한 스킬이 아니라 시스템의 비호였다.

그리드는 그 사실을 금방 알게 되었다.

[앞으로 10분 동안 전설의 재단사 크루제가 아이템을 제작합니다!]

“...엥?”

결계 속.

쭈그려 앉은 데스나이트 크루제가 주섬주섬 천을 꺼내더니 그것을 바늘로 꿰기 시작했다.

우습기까지 한 모습이다.

“??????”

그리드의 머리 위로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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