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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51화 (546/1,794)

템빨 34권 - 6화

Satisfy에서 천재를 논할 때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 단연코 크라우젤이다.

세상 사람들은 크라우젤을 재능의 집결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가 20억 유저의 정점에 오른 이유를 순전히 천재 중의 천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

만약, 크라우젤이 타고난 재능만을 맹신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면 그는 결코 최고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력하는 자세에 있었다.

크라우젤은 최고가 되기 위해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늘 노력해 왔고, 그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정점에 오를 수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리드의 상위호환 격인 인물인 것이다.

반면 여기.

‘킥킥, 그래, 바보 녀석이 드디어 눈치채 줬군. 살려준 보람이 없으면 어쩌나 싶었다.’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최고가 된 인물이 있다.

아그너스.

최초의 에픽 클래스 전직자 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통합 랭킹 7위에만 머물렀던 사내.

세상은 그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에픽 클래스를 선점해 놓고도 1위 한 번 못 찍어 본 그였으니 재능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아그너스의 성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를 저평가하지 못한다.

아그너스는 다른 랭커들과 달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로지 향락만을 쫓는 인물인 바.

이익보다는 한 순간의 재미를 추구하며 게임을 플레이하는 그는 남들이 두려워하는 페널티를 셀 수 없이 많이 받아 왔다.

평범한 사람이 그처럼 게임을 플레이했다면 절대로 하이 랭커가 될 수 없었다.

한데 아그너스는 통합 랭킹 7위를 고수했을 뿐만 아니라 최강이라는 타이틀까지 쟁취한 것이다.

그야말로 재능의 집결체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그너스가 그리드의 목숨을 살리고 무무드를 소환한 이유 또한 본능적인 계산에 의거한 행동이었다.

제국의 다섯 기둥, 카일.

다섯 기둥 중 최약체라고는 하나, 레벨은 최소 450에 도달하고 있을 터.

아그너스는 그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특수한 방법을 본능적으로 간파했다.

바로 퀘스트 보정을 받은 무무드와 브라함의 힘이다.

“리치 소환! 무무드!!”

[리치 무무드를 소환하였습니다!]

[무무드가 브라함의 영혼을 감지합니다!]

[퀘스트 <브라함VS무무드>가 발동합니다!]

[리치 무무드의 레벨이 400으로 상향 조정됩니다. 봉인된 마법 중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단, 제어가 불가능합니다.]

생전의 무무드는 전설을 초월하는 재능을 지녔던 마법사.

그가 생전의 힘 중 일부를 끌어내고.

“야, 이 미친놈아!! 파이어 볼!!”

전설 중 최상위 실력자로 추측되는 브라함 또한 본인이 자랑하는 강화 마법을 사용할 경우.

이 두 개의 강력한 힘이 서로 충돌할 경우 발생하는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아그너스가 가늠하기로 카일에게 치명상을 입혀도 부족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앙-!!

리치 무무드가 쏘아낸 무지갯빛 마력과 그리드의 육체를 빌려서 강림한 브라함이 쏘아낸 거대한 불꽃.

두 개의 마법이, 아그너스의 의도대로 카일을 중심에 둔 채 폭발하였고.

“피해!! 모두 피해라!!”

기겁한 아레스와 아레스 군단원들은 황급히 군대를 뒤로 물렸다.

반면 총사령관을 잃고 혼란에 빠져 있던 제국군은 우왕좌왕하면서 자리를 이탈하지 못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콰르르르릉!!

콰쾅! 쿠콰콰콰콰쾅!!

계속되는 폭발의 여파로 초토화되는 리벨론 숲과, 이에 휩쓸려서 풍비박산나는 제국군.

사방에 난무하는 피와 시체를 보면서, 아그너스는 광소를 터뜨렸다.

“킥...! 키햐하하핫!! 재밌어!! 재미있다고!! 날뛰어! 더! 더! 더 날뛰어라!! 무무드으으!!”

“...아그너스 님, 제발 본래의 목적을 잊지 말아 주시길.”

자꾸 핀트가 나가 버리는 아그너스를 진정시키느라 베라딘만 고생이었다.

***

[브라함의 영혼이 리치 무무드를 발견하였습니다!]

[퀘스트 <브라함VS무무드>가 발동합니다!]

[레벨이 400으로 상향 조정됩니다. 지력 수치가 상승하여 봉인되어 있던 마법 중 일부가 개방됩니다. 육체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육체 주도권을 가져간 브라함이 <벨리알의 지팡이>를 착용합니다.]

“파이어 볼!!”

아그너스가 소환한 리치 무무드를 목격하는 순간, 그리드의 육체를 멋대로 지배한 브라함이 마법을 발현했다.

그는 오로지 무무드만을 타깃으로 삼았고, 무무드 또한 특유의 무지갯빛 마력을 방출하여 반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리드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브라함과 무무드의 마법이 충돌하는 지점에 흰 피부의 사내, 카일이 있었다.

그는 양쪽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피하지 못했고, 두 개의 마법에 동시에 강타당하는 대참사를 맞이하고 말았다.

[대상에게 3,250,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전설의 대마법사가 신화급 지팡이를 무장한 채 날린 파이어 볼 한 방의 위력!

천지가 개벽할 지경이었고 카일은 이에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

‘설마...!’

만신창이가 된 카일을 목격한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주 어쩌면, 아그너스가 작금의 사태를 고의적으로 유도한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과 아그너스, 그리고 카일의 위치가 무척 절묘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접었다.

“키햐하하핫!! 재밌어!! 재미있다고!! 날뛰어! 더! 더! 더 날뛰어라!! 무무드으으!!”

‘.....아니, 저 미친놈이 그렇게 계산적으로 행동할 리가 없지.’

역시 이 상황은 위험하다.

브라함과 무무드는 오직 서로만을 노리고 있었다. 이 틈에 카일이 상처를 수습하고 행동을 개시하면 그를 막을 재간이 없다.

‘우리끼리 싸우는 동안 카일에게 뒤통수를 맞으면 끝장이야. 브라함, 제발 진정하라고!’

그리드가 외쳐보지만.

“무무드...! 안식을 선사해 주마!”

브라함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의 의식은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한 채 농락당하는 옛 제자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망할 각인데.’

그리드가 울부짖었다.

***

“크윽...!”

타오르는 대지 위.

흰 피부의 사내가 넝마가 된 옷을 신경질적으로 찢어 버린다.

카일이었다.

“저 괴물들은 뭐지...?”

브라함을 확인하고, 이어서 리치 무무드를 확인하는 카일의 동공이 흔들린다.

두 존재로부터 감지되는 마력이 자신과 비견되는 까닭이었다.

카일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은 대마법사마저도 초월한 마력을 거머쥔 바, 머잖아 전설의 대마법사조차 넘어서리라 자부해 오지 않았던가.

한데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만큼 뛰어난 마법사가 둘이나 존재했다고?

특히 한 놈은 무패왕의 후예였다.

‘어떻게 무패왕의 후예가 마법을...?’

전설 속의 무패왕은 너무나도 대단해서 믿기지 않을 만큼 허황된 존재이다.

뛰어난 지략으로 수백 책사를 농락하고, 검 한 자루로 십만, 백만 대군을 학살하였다는 그에 대한 기록들은 하나같이 터무니없어 거짓 같았다.

하지만 그 무패왕조차도 마법을 썼단 기록은 없다.

한데 지금.

한데 지금 무패왕의 후예가 마법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대마법사의 마법을 아득히 초월하는 위력의 마법을!!

“파이어 볼.”

“키야아아아아!!”

쿠콰콰콰콰쾅!!

재차 마법을 쏘는 무패왕의 후예와 그에 대적하는 리치.

“큭....!”

두 괴물들의 마법 폭격에 또 한 번 휩쓸리게 생긴 카일이 기겁하며 몸을 날렸다. 그는 우선 이곳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무패왕의 후예와 리치가 그를 사이에 놓고 싸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쾅!

쿠콰콰콰콰콰콰쾅!!

“쿨럭....!”

강력한 마법과 마법의 충돌이니만큼 폭발의 반경 또한 크다.

폭발에 휩쓸린 카일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게 파이어 볼이라고? 메테오가 아니라?’

파이어 볼은 최하급 마법 중 하나이다.

시전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고, 위력, 속도, 정확성 모두 최하위 판정밖에 줄 수 없는 약체 마법인 것이다.

그렇다.

본래 파이어 볼 따위는 카일을 위협할 수 없었다.

한데 무패왕의 후예가 쏘는 파이어 볼은 일반적인 파이어 볼과 궤를 달리했다.

시전 속도만큼은 최하급 마법처럼 빨랐으나, 빠르기와 정확도, 위력 모든 것이 최상급 마법처럼 뛰어났다.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의 <강화 마법>을 연상시키는.... 그런 위력이었다.

‘아니, 무패왕의 후예를 보고 브라함을 떠올리는 건 말이 안 된다.’

절레절레!

맹렬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부정하는 카일이었다.

무패왕의 후예가 브라함의 마법을 습득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가 저능아 같을 지경이다!

‘뭔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일단 탈출하자.

제발, 빨리.

어서 제국으로 돌아가서 오늘의 대사건을 분석해 봐야 한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른 카일이 청룡의 힘을 개방했다.

“카일, 너는 타고난 마력이 훌륭하지만 마법의 수식을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네가 마도를 걷는 것은 부질없을 것 같구나. 나는 네게 건 기대를 버리겠다. 떠나거라. 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다.”

꽈드득!

신수의 힘이 몸에 깃드는 이 순간마다 스승이며, 아버지였던 인물에게 버림받았던 순간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를 악 문 카일이 뇌광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키야아아아아아!!”

“....!”

콰쾅! 콰쾅!!

쿠콰콰콰콰콰쾅!!

무패왕의 후예와 정체불명의 리치가 마법 캐스팅을 가속화시켰다.

계속, 계속 서로에게 마법을 쏘면서 그 중간에 있는 카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결과는 끔찍했다.

“크아아아아악!!”

뇌광에 휩싸인 카일.

신속을 발휘하여 아슬아슬하게나마 폭발의 반경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성공했지만, 충격에 휩쓸려서 한쪽 팔을 잃고 말았다.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야 할 그가, 평생 수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익....! 이이익....!”

오로지 희던 카일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꽈득, 꽈드득! 이를 가는 그의 시선이 무패왕의 후예에게 꽂힌다.

“언젠가....! 언젠가 이 수모를 갚아...!”

“뭐냐, 피라미.”

“허억!!”

지금은 도망가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면 다를 것이다!

이 각오를 전달하려던 카일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오로지 리치만을 주시하고 있던 무패왕의 후예가 갑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온 까닭이었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카일은 자신이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별 같잖은 놈이 살기를 드러내는구나. 죽고 싶은 게냐?”

무패왕의 후예.

즉, 그리드의 몸을 빌린 브라함이 특유의 오만방자한 말투로 카일을 위협한다.

이에, 제국의 다섯 기둥 카일은.

“죄, 죄송합니다!”

넙죽 고개를 조아린 뒤 그대로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쳤다.

카일은 이날, 밀짚모자 아래로 언뜻 엿본 무패왕의 후예의 얼굴을 평생 잊지 못하게 된다.

그래, 그리드의 얼굴을 말이다.

훗날 이는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

[카일이 퇴각하였습니다!]

[퀘스트 <은밀한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이곳까지 찾아온 목적을 달성한 아그너스.

“나를 죽여.”

자신의 최측근 베라딘에게 그렇게 명령한다.

제어 불가능한 상태로 날뛰는 리치 무무드를 회수하는 수단으로써, 소환자의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잠시나마 동료(?)로 싸웠던 그리드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럴 리가.

어차피 이대로 날뛰었다가는 그리드와 아레스 군단에게 집중 공격을 받고 사망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그너스의 입장에서 죽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브라함VS무무드>퀘스트가 실패로 간주되면 막대한 손해였다.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고 퀘스트를 중단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었다.

베라딘 또한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잠시나마 제정신으로 돌아오셔서 다행이군요.”

“킥킥킥.”

푸욱-!

<리치화>를 봉인한 아그너스가 잿빛으로 산화하고, 무무드의 리치 또한 그 뒤를 따라 소멸한다.

“그럼 이만.”

흑발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그리드에게 꾸벅, 인사한 베라딘이 즉시 전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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