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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71화 (566/1,794)

템빨 35권 - 3화

절구질.

전설의 농부 피아로가 창안한 무상농법의 절기이다.

상공에 집채만큼 거대한 강기의 집약체가 생성, 이후 2초 내에 낙하하여 반경 180미터를 초토화시키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의 가장 놀라운 점은, 압도적인 범위를 자랑하는 대단위 스킬임에도 불구하고 피아 구분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찌릿...! 찌릿!!

‘뭐?’

오로지 그리드를 노리고 날아올랐던 놀이 경기를 일으켰다.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일대의 기류가 무겁게 짓눌리는가 싶더니.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천둥. 아니, 천둥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보다 인위적이고, 보다 강렬하며, 보다 위협적인 굉음이 뇌리를 뒤흔드는 것이 아닌가?

이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놀이 <블러드 실드>를 생성함과 동시에.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상상해 본 바 없는 무게가 블러드 실드를 강타하였고,

쩌적-!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블러드 실드가 그 즉시 산산조각 났다.

직계를 보호하는 용도로 창조 된 마법답게 견고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블러드 실드가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힘이지?’

본래 놀은 이와 같은 의문을 느낄 차례였다.

하지만 놀은 블러드 실드를 일격에 소멸시킨 힘에 대해서 그 어떤 의문도 품지 못했다.

밀려오는 끔찍한 고통 때문이었다.

“....!!”

콰작-!

쿠르르르르륵!!

콰자자자자자작!!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이 놀의 피부를, 살을, 뼈를, 정신을 일거에 짓뭉개 버린다.

놀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입을 벌리는 순간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압력이 그를 석상처럼 굳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 봤자 부질없었다.

콰자작-!!

놀은 계속, 계속 짓눌렸다.

허공에 띄웠던 몸은 어느새 지면에 바짝 밀착되어 있었고, 놀을 품은 지면은 운석의 습격을 받은 것처럼 계속해서 지하로 가라앉았다.

퍼엉-!

퍼퍼퍼퍼퍼퍼퍼퍼펑!!

놀의 주변을 든든히 지키고 있던 수백 마리의 뱀파이어들과 사역마들은 이미 진즉부터 잿빛으로 산화하고 있었다.

대규모 압사(壓死)의 현장이다.

“크....! 크아아아아아아아!!”

버티고, 또 버텨 보고자 노력하던 놀이 이내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토했다.

초월적인 힘에 항거하고자 마력을 방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절구질의 지속 시간은 끝났다.

“허억.... 헉.... 허억....”

거대한 압력의 고통. 마치 억겁 같던 시간으로부터 간신히 해방된 놀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주변을 살피는 그의 붉은 눈동자가 파르르 파르르 연신 경련을 일으켰다.

도시가, 사역마들이, 뱀파이어 대군이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위풍당당하게 놀의 곁을 지키던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충격 받고 잠시 넋을 잃었던 놀이 이내 꽈드득, 이를 갈았다.

“뱀파이어에게 치명적인 힘.... 저 인간 놈이 레베카의 개들이라도 데려온 건가?”

“.....”

조금 전 자신을 압사시킬 뻔 했던 힘, 필시 신성력이 깃들었기 때문에 그토록 강력했던 것이리라.

-라고 믿는 놀이었다.

어찌 보면 그의 입장에선 합당한 생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법이다.

“이 도시의 토양.... 한평생 태양을 보지 못한 채 대량의 피를 빨아들인 까닭인지 무척 특이하군.”

“....?”

보통 인간은 직계 뱀파이어와 마주하기만 해도 심장마비에 걸리고 사망할 확률이 높다. 직계 뱀파이어와 인간의 태생적인 차이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놀은 직계다. 그중에서도 백작이었다.

그리드라는 인간처럼 특별한 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놀 앞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해야 정상이었다.

심지어 현재 놀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실제로 도시에 입장한 수천 명의 병사 대다수가 제자리에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모두 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감히 놀 쪽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한데 이때.

“흠.... 여기에 농사를 지으면 무척 재미있는 곡물이 자랄 수도 있겠어.”

“.....”

웬 인간 하나가 자꾸만 놀의 심기를 건드렸다.

한눈에 봐도 허름한 천 옷차림의 인간이었다. 입고 있는 옷이 온통 흙투성이였을 뿐더러, 손에는 놀의 입장에서 생소한 도구를 쥐고 있었다.

낫하고 비슷해 보이면서도 낫처럼 날카롭지는 못한, 그런 소도구였다. 어떻게 봐도 무기는 아니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정녕 흥미로운 토양이야.”

“.....”

평생 도시에 머물러 왔던 놀은 인간 사회를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상식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는 낡고 더러운 옷차림에 이상한 도구를 무장하고 있는 인간 놈이 인간 중에서도 하층민으로 분류되는 노예 같은 것임을 본능적으로 간파했다.

한데 그 노예 놈이 분위기 파악도 못한 채 연신 정신 사납게 만드는 것이다. 눈앞에서 자꾸만 왔다 갔다 하면서 땅을 만져보고 중얼거리는 꼴이 영 거슬렸다.

“....너희들 인간들은 죄다 미친 게냐.”

레베카교의 신도들이 방금 전에 사용했던 기술은 무척 강력했고, 강력한 만큼 재사용까지 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판단한 놀은 레베카교의 신도들이 다시금 설쳐 대기 전에 그리드를 포식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기에 앞서서.

“이 날파리의 피를 에피타이저로 마셔 주지.”

놀은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고 있는 노예 인간부터 노렸다. 쭈그려 앉은 채 땅에 코를 박고 킁킁, 흙냄새를 맡고 있는 노예를 가볍게 손 한 번 휘둘러서 소멸시킨 후, 그대로 도약하여 그리드에게 몸을 날릴 작정이었다.

한데.

“뭣이!!”

그저 단순한 노예.

심지어 무기조차 지니지 않은 흙투성이의 인간 놈이 놀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버렸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도구로 반격해 온다.

폭.

“억!!”

정체불명의 도구에 미간을 찍힌 놀이 끔찍한 고통에 휩싸였다. 체통도 잊고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더니 노예 인간 놈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렸다.

벌겋게 부풀어 오른 이마를 부여잡은 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성력...? 신성력이 깃든 공격이라서 이렇게 아픈 건가??’

말인 즉, 저 노예 같아 보이는 놈이 사실은 레베카의 개 중 하나라는 뜻?

“뭐지...! 레베카의 개들은 늘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

이쯤 되면 불쌍하다.

절구질에 한 번 얻어맞은 뒤부터 자꾸 혼자 헛소리를 지껄이는 놀을 그리드와 템빨단원들이 측은하게 보았다.

그 눈빛이 놀은 도리어 더 기분이 나빴다.

“뭐냐...! 네놈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냐!!”

혼란이 극치에 달한 놀!!

만약 그의 마법 저항력이 낮았더라면, 그는 본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술에 걸린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놀은 마법 저항력이 높았다. 환술에 걸렸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놀은 더욱더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그리드라는 저 인간 놈은 당최 무슨 요술을 부렸기에 저토록 많은 원군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이며, 자신을 따르던 뱀파이어들과 사역마들을 허무하게 압사시켜 버렸던 그 강력한 힘의 정체는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놈... 네놈은 뭐냐!!”

요상한 도구를 들고 있는 노예 인간 놈의 정체가 가장 궁금한 놀이었다. 소리쳐 묻는 그에게 노예로 착각당하는 중인 인간 <피아로>가 대답해주었다.

“농부다.”

“농부?”

“그래.”

“농부라고....!!”

앞서 말했듯이 놀에게도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식량이 있고, 그 식량을 재배하는 직업군이 있다는 사실 또한 놀은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래, 농부가 뭔지 알고 있단 뜻이다.

“이 미친놈이!!”

놀이 대노하였다.

한낱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혼란을 주는 것으로 모자라서 자신을 농락하였으니 무척이나 괘씸했다. 놀은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얄미운 놈을 본 경험이 정녕 처음이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먹는다...! 포식해 주마아!!”

쿠와아아아아앙-!!

포효하는 놀의 의지를 따라서 핏빛의 마법이 방출된다.

직계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위 혈 마법의 발현이었다.

콰르르르르르륵-!

황소의 입김처럼 거칠게 뿜어지는 핏빛 마력이 피아로를 집어삼켰고, 이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놀은 통쾌함을 느꼈다. 별 괘씸한 미친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자 10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딱 1초 동안만.

“피를 물처럼 뿜어내는 능력이라...! 이곳에서 농사지을 때 꼭 필요할 것 같군!!”

“....!!”

놀의 혈 마법에 집어삼켜졌던 피아로는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

당연하다.

대악마 벨리알의 공격조차도 몇 회나 버텼던 그가 아닌가. 또한 지금의 그는 루비가 철저히 서포팅하고 있었다.

피아로가 죽는 일은 결코 발생해서 안 된다는, 그리드의 강렬한 바람으로부터 비롯된 서포팅이었다.

번쩍! 번쩍!

성녀 루비의 힐과 가호가 연신 피아로의 육체에 중첩된다. 개중에는 홀리 웨폰도 포함되어 있었다. 피아로의 손에 쥐어진 호미가 광휘에 휩싸였다.

“일단 맞자!”

“닥쳐...! 제발 닥쳐라!!”

이 미친 인간 새끼, 저 그리드라는 인간 놈보다 훨씬 더 강한 주제에 농부라고 거짓말을 치는 것으로 모자라서, 직계인 이 몸에게 감히 농사를 운운하고 있다.

놀은 피아로가 입을 열 때마다 극심한 혼란과 분노를 느꼈고, 이로 인해서 평정심이 심하게 무너졌다.

전설의 농부 피아로가 의도치 않게 습득한 패시브 스킬 <농사꾼의 도발> 때문이었다.

피아로가 레이단에 머물던 시절, 크라우젤과 데미안을 비롯한 수많은 강자들을 농부화시키는 과정에 터득한 강력한 스킬이었다.

“죽인다...! 죽인다아!!”

인간을 으레 식량으로 인식하며 ‘포식의 대상’으로 보았던 놀이 평소와 다른 대사를 외쳤다. 먹겠다가 아니라 죽인단다. 그만큼 피아로를 특별하게 인식한다는 뜻이었다. 지금의 놀은 피아로 외에 다른 인간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오직 자신과 농부... 아니, 피아로만이 존재한다고 인식한 채, 오로지 피아로에게만 집중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바다의 분노!!”

“잿빛 일격.”

수인족 왕 맥스옹이 강력한 마력을 기반으로 해일을 소환하였고, 영원한 2인자 아스모펠은 작열하는 검을 휘둘러서 놀을 덮쳤다.

두 사람의 공격 모두 강력하여 놀을 위협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특히 지금의 놀은 평정심을 잃고 있었으므로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콰르르르르르르릉!!

푸우우욱-!

“컥...!”

해일에 휩쓸려 균형을 잃음과 동시에 검에 심장을 찔린 놀이 피를 토한다.

이 틈을 놓칠 피아로가 아니었다.

“필멸.”

폭-

놀의 미간에 호미가 깊숙이 꽂힌다. 놀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었다.

그의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한 그리드가 혀를 내둘렀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지.”

“거기, 이봐. 차례를 기다리라고?”

“뭐라는 겁니까? 우리 질풍대가 당신들보다 1초 더 빨리 도착한 것을 모릅니까? 다음은 응당 우리가 입장할 차례입니다.”

“하...? 1초? 증거 있어? 이 감자에 걸고 맹세할 수 있느냐 이거다.”

“.....”

한편, 그리드가 등지고 선 출입구 쪽에서는 여전히 도시에 입장하지 못한 원군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리드를 비롯한 템빨단원들은 아직 재앙의 ‘일부’만을 맛봤을 뿐인 놀이 너무 불쌍했다.

“이거 완전 치트키 아니냐?”

반트너가 중얼거린다.

그리드가 사용한 ‘왕명’에 대한 소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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