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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72화 (567/1,794)

템빨 35권 - 4화

“놈들....! 이놈들!!”

수인족 왕 맥스옹 때문일까?

아니, 피아로와 아스모펠 때문일 것이다.

놀이 더 이상 인간 ‘따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은.

그래, 이제 놀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라는 종족을 하찮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단순한 가축, 식량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저력이 너무나도 굉장했으니까.

‘믿을 수 없다!’

호미로부터 전달되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놀의 혼란이 가속화 된다.

자신은 직계.

위대한 어머니 베리아체께서 친히 잉태해 낳은 자식이 아닌가.

대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이 중간계에서 만큼은 절대자로 군림함이 옳았다.

‘한데 이 지독한 현실은 뭐란 말인가? 사실 난 하찮은 존재였단 말인가?’

현재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인간들이 대악마조차도 멸한 최강의 파티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놀은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채챙-!

채채채챙!!

맥스옹의 삼지창과 마법을 실드로 막아 내고, 아스모펠의 쾌검은 혈 마법으로 차단하는 놀.

폭.

둘을 상대하면서 자꾸만 드러나는 빈틈 탓에 또 한 번 호미에 찔리는 그의 평정심이 무너져 내린다.

‘대체 왜 이렇게 아픈 거냐?’

스스로를 농부라고 자처하는 인간 놈이 휘두르는 도구는 어느 모로 보나 무기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통상적인 무기들과 비교했을 때 효율이 무척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한데 찍힐 때마다 너무 아프다. 그 사실이 놀을 분노케 했다. 고작 이런 도구에 맞으면서 아파하는 자신이 초라하고 창피한 까닭이었다.

“진지하게 상대해 주마!!”

피아로, 아스모펠, 맥스옹의 궁극기를 연달아 얻어맞은 놀의 생명력 게이지가 40퍼센트까지 떨어졌을 때였다.

대부분의 네임드급 보스가 그렇듯, 놀 또한 새로운 페이즈에 진입했다.

쿠쿠쿵-!

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쿵!!

<직계의 위압> Lv.2.

이전 전투에서 그리드를 포식했기 때문에 진화할 수 있었던 놀이 사용하는 직계의 위압은 종전의 백작들이 사용했던 직계의 위압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놀이 ‘인식’하는 모든 대상을 압도시킴으로써 능력치를 대폭 하락시킴과 동시에 상태 이상 공포와 침묵을 유발시켰다. 지속 시간도 배는 늘었다.

“큭...!”

“음!!”

정신과 육체가 위축되는 것을 느낀 아스모펠과 맥스옹이 침음을 뱉었다. 그들로써는 극복하기 어려운 태생적인 격차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수인족 왕 맥스옹은 아스모펠보다 훨씬 더 빨리 공포를 극복할 터였지만, 고수 간의 싸움에서 찰나의 틈은 무척 큰 법이다.

놀의 입가에 음침한 미소가 걸렸다.

“킥...! 킥킥킥! 그래, 드디어 어긋났던 이치가 맞춰지는구나. 바로 그 겁에 질린 모습이야말로 너희들이 내 앞에서 보여야 할 진정한 모습... 억!”

이로써 전세는 바뀔 것이다. 생쥐처럼 위축된 인간들의 피를 수혈하여 상처를 회복하고 반격하면 내가 승기를 잡을 것이다.

이렇듯 믿으면서 떠들던 놀이 또 체통을 잊고 비명을 토했다. 뒤통수에 호미가 날아와 찍힌 까닭이었다.

놀이 도끼눈을 떴다.

“네놈은 왜 멀쩡한 것이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치는 놀에게.

“전설은 굴복하지 않는 법.”

피아로가 자신의 실체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보통 농부가 아니다.”

‘역시!’

꿀꺽!

놀이 마른침을 삼켰다.

피아로가 직계의 위압에 저항한 순간, 피아로 또한 그리드와 마찬가지로 전설이라는 사실을 놀은 이미 눈치챈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는 전설 중에서도 어떤 전설이냐는 것이었다.

만약 피아로가 전설 중 최강이라는 검성. 즉, 당대의 새로운 검성이라면 제아무리 놀이라도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너는 무슨 전설이지?’

떨리는 시선으로 피아로를 주시하며, 피아로의 자기소개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놀에게 드디어 피아로가 자신의 실체를 공개한다.

“사실 나는...”

“나는...?”

“전설의....”

“....꿀꺽!”

“농부다!!”

“X%#@$~!!!”

뱀파이어가 아직 지옥에서 쫓겨나기 전.

그러니까 수백 년도 더 전에는 뱀파이어들 또한 악마어를 사용했었다.

비록 놀은 중간계에서 태어났지만, 직계로써 타고난 지식 탓에 악마어를 알긴 알았다.

언어의 대부분이 끔찍한 욕설로 구성되어 있다는 악마어...

그 최악의 언어가 놀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피아로의 얼굴이 굳었다.

피아로는 물론 악마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하지만 악마어의 어감이라는 것이 평소 그리드와 후로이가 자주 사용하는 욕설과 비슷하게 들렸으므로 피아로는 이게 욕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던 것이다.

“설마.... 지금 내게 욕을 한 건가?”

“그렇다면 어쩔 거지?”

“내 돌아가신 부모님을 찾은 건가!!”

“뭐?”

그건 너무 확대해석이다.

아무리 악마들이라도 남의 부모님을 함부로 찾진 않는다.

‘내가 저 악귀 같은 놈도 아니고!’

놀의 시선이 저 멀리, 그리드의 곁에 멀뚱멀뚱 서 있는 후로이에게 꽂힌다.

돌아가신 어머님 베리아체를 벌써 몇 번이나 찾아 댔던 악마 중의 악마 놈 말이다.

놀은 자신이 저런 쓰레기와 동급의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 싫었다. 하여 적극적으로 부정해 보고자 했으나.

“용서하기 어렵군...! 앞으로 함께 밭일을 하려면 버릇을 아주 단단히 고쳐 놔야겠구나!”

피아로는 이미 살기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강자답게 늘 여유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이토록 사나운 얼굴을 한 모습, 대악마 벨리알 레이드 이후 처음이었다. 기세만 봐서는 놀을 금방 때려잡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놀은 백작급 직계로써 타고난 능력치가 워낙 높았고, 반면 피아로는 절구질과 필멸 등의 궁극기를 이미 소모한 상태였다.

또한 피아로가 활약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서포트해 주던 맥스옹과 아스모펠은 구속당한 상황이었다.

‘이놈이 대단하다, 대단하다 해 주니까 필요 이상으로 기고만장해졌군. 순수한 1 대 1 상황에서 나를 이길 거라고 믿는 건가?’

놀의 붉은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확실한 승기를 엿보고 있었다.

그래, 피아로에게 너무 집중한 나머지 현실을 망각한 것이다. 자신은 혼자인 반면 피아로에게는 수두룩한 아군이 있다는 현실을 말이다!

“정화!!”

“엥?”

성녀 루비의 대활약!

<직계의 위압>에 걸려 있는 아군을 모조리 회복시켜 버리는 그녀 탓에 놀의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아스모펠과 맥스옹이 놀을 덮쳤고, 이때 피아로가 무상농법을 전개하여 놀에게 또 한 번의 치명타를 먹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쏴라!!”

푹-!

푸푸푸푸푸푸푸푸푹!!

펑!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어두운 장소에서도 활약할 수 있도록 훈련 받은 라인하르트의 최정예 병사들이 쏘는 활과 마법이 놀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루비의 정화 덕분에 병사들 또한 놀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한 것이다.

“우리도 간다!”

뒤늦게 도시에 입장한 라덴과 블란드까지 전선에 합류했다. 놀이 입는 피해량이 조금 전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많아졌다.

“이 잔챙이들이!!”

콰르르르르르르릉!!

놀은 더 이상 피아로 한 명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광역 마법을 마구잡이로 시전하여 도시에 발을 들인 템빨국 병사 모두를 위협했다. 새로운 페이즈, 폭주 모드였다.

“모, 모두 피해라!”

“산개를...!!”

기사들이 병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시도해 보지만, 좁은 도시에 너무 많은 병력이 모인 것이 문제였다.

제자리에서 한 걸음 움직이기도 힘든 병사들이 산개가 가능할 리 만무했다. 만약 템빨국 병사들이 오합지졸이었다면, 날아오는 마법을 피한답시고 무리해서 움직이다가 서로에게 치여 더 큰 피해를 맞이했을 터였다.

하지만 템빨국 병사들은 모두 각지에서 최고의 사령관에게 훈련 받은 정예 병사들이다.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도리어 역효과라는 것을 상기하며, 그들 모두 코앞에 날아오는 마법을 피하지 않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제자리에 버티고 섰다.

이 순간 죽음을 각오한 병사의 숫자가 수백. 아니, 수천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적었다.

병사들의 곁에는 템빨단원들이 있었으니까.

“병사들을 지켜라!!”

백성이, 군대가 곧 국력!

템빨단원들은 그리드와 라우엘이 굳이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각자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병사들을 보호했다.

카츠는 특수 자원을 소모하여 놀의 혈 마법을 원천 차단했고, 반트너와 토반을 비롯한 탱커계열 템빨단원들은 온갖 방어 스킬을 전개하여 병사들을 지켜 내었으며, 크리스와 폰 등의 딜러 계열 템빨단원들은 공격 스킬로 마법의 위력을 약화시키고자 시도했다. 정 안 되면 자신의 몸을 내던져서라도 병사들을 지켰다.

“큭!”

“쿨럭! 쿨럭!”

병사들을 대신해서 마법에 맞은 템빨단원들의 비명과 신음이 도시 곳곳에 울려 퍼졌다.

역시 놀은 강했다. 괜히 직계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다만, 전설의 농부 피아로 앞에서만 다소 초라해 보였을 뿐.

“날아오르라!!”

지슈카가 연신 주작궁을 쏘았다.

놀을 공격함과 동시에 아군에게는 힐을 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녀 덕분에 아군의 피해 규모가 생각보다 작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폭주 모드의 놀 또한 멈추지 않았다.

“죽어라! 모조리 죽어라!!”

쿠와앙-!

쿠콰콰콰콰쾅!!

놀이 재차 광역 마법을 전개한다. 병사들이 도리어 템빨단의 발목을 붙잡기 시작한 시점이다.

병사들을 소모품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템빨단의 특성상, 템빨단원들에게는 놀의 광역기로부터 병사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가 부여되었고, 이 탓에 템빨단원들이 입는 피해가 속출했다.

“저자를 막아라!!”

수인족 부대 또한 노력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수 마법을 전개함으로써 놀의 혈 마법 위력을 조금이라도 약화시켰다.

피아로, 아스모펠, 맥스옹 트리오 또한 계속해서 놀을 공격하며 그의 폭주를 저지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무한 광역기 전개를 시작한 놀의 생명력 회복 능력은 경이적인 수준이었다. 대상에게 입힌 피해량 중 일부를 자신의 생명력으로 전환시키는 뱀파이어 고유의 수혈 능력.

다수의 적군을 홀로 상대하고 있는 놀에게 그 수혈 능력이 날개가 되어 주었다. 템빨단원들과 병사 중 수백 명만 놀의 마법에 적중당해도 놀의 생명력 게이지가 쭉쭉 차오르는 것이었다.

“저 괴물 새끼는 마법 재사용 대기 시간도 없나...!”

소리치는 반트너의 방패 내구력이 위험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고작 서브 방패로 병사들을 지키겠답시고 대단위 마법을 계속 막아 낸 여파였다. 내구력 떨어지는 속도가 감당이 안 됐다.

급기야.

쩌적-!

쩌저저저적!!

반트너의 방패에 균열이 발생했다.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반트너의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그는 이내 방패가 깨지면 자신과 자신이 지키고 있는 구역 내의 병사들이 모조리 전멸할 거라고 걱정했다.

겁먹고 두 눈을 질끈 감는 그의 귓가로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떠엉-! 떠엉-!

[<루드의 방패> 내구력이 회복됩니다.]

[<루드의 방패> 내구력이 회복됩....]

“그리드....!”

다시 눈을 뜨고 상황을 파악한 반트너의 얼굴이 화색이 돌았다. 장비 중인 아이템의 내구력을 이토록 빠른 속도로 회복시킬 수 있는 사람, 이 세상에 전설의 대장장이 말고 또 있겠는가?

반색하는 그의 어깨 위로 그리드가 손을 얹어 주었다.

“금방 끝낼 테니까 조금만 더 버텨 줘.”

그리드 또한 실시간으로 병사들을 지키는 중이었다. 거의 폭주 상태인 놀이 연발하는 광역 마법을 회(回)로 반격하고, 방패로 막고, 공격 스킬로 상쇄시키는 과정에서 투기가 80까지 차올랐다.

자색의 기운에 휩싸인 그가 흑화와 대장장이의 분노, 그리고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했다.

이어서.

터엉-!

몸을 날린다.

목표는 당연히 놀의 곁이었다.

“놈...! 드디어 왔느냐!!”

피아로와 아스모펠, 그리고 맥스옹이 휘두르는 무기들의 틈새로 그리드를 발견한 놀이 살기를 번뜩였다.

작금의 사태를 만든 장본인에게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음에 그는 의욕이 충만해졌다. 피아로의 공격조차 무시하고 오로지 그리드를 노리며 손을 뻗었다.

“죽어라!!”

“파그마의 검무!!”

그리드는 아이템 합체까지 미리 사용한 상태였다. 하나로 합쳐진 열망의 무아검과 실패작이 놀의 심장을 겨냥하고 날아갔다.

이때 물론 피아로와 아스모펠, 그리고 맥스옹의 공격 또한 놀을 덮치고 있었다.

여기서 그리드는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절대적인 신뢰 관계에 놓인 인물들과 힘을 하나로 합칩니다!]

[플레이어 공통 히든 피스 <협동 스킬>을 플레이어 최초로 개방하였습니다!]

[최초 개방 보상으로 <협동 스킬> 사용 시 추가되는 데미지가 20퍼센트 영구 상향됩니다!]

“파천(破天)!”

크라우젤이 계승하였던 피아로의 또 다른 절기가 놀이 등진 하늘을 부순다.

푸화하하하하학-!!

놀의 가슴으로부터 폭포수 같은 피가 분출되었고.

“회검(灰劍)!”

불꽃을 머금은 채 선회하는 아스모펠의 검이 놀의 옆구리를 자르고, 태우기를 반복했다. 놀의 상처 부위가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서 직계 고유의 회복 능력이 차단됐다.

여기에.

“바다 찌르기!!”

푸른 마력을 머금은 수인족 왕 맥스옹의 삼지창이 해일 같은 기세로 놀의 심장을 찔렀고.

“연살파극(聯殺派極)!!”

그리드의 검이 그 뒤를 따랐다.

플레이어가 호감도 최대치를 달성한 NPC와 ‘완벽히 동시에’, ‘같은 대상에게’ 스킬을 전개할 시 발동하는 <협동 스킬>.

그 강력한 시스템이 하필이면 최강의 존재들에 의해서 세상에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놀에게는 명복을 빌어 주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인물인 그리드가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의도치 않게 차단했다.

[칭호 <판덕공>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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