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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50화 (645/1,794)

템빨 38권 - 14화

쩌엉-!

벼락처럼 떨어지는 검이 방어를 강요하고.

콰자자작!!

벌처럼 쏘아지는 검이 허를 찌른다.

갑옷 째 허리를 꿰뚫린 규라탄이 피를 토했다.

메르세데스는 그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두 자루 검으로 맹공을 펼치는 그녀 앞에 규라탄은 손발이 꽁꽁 묶인 듯한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한낱 인간 따위에게....!’

“비연참.”

펑-!

퍼퍼퍼펑!!

검이 늘어난다.

검기를 극적으로 활용하는 메르세데스 고유의 기술이 규라탄을 농락했다.

뒤로 물러나 3미터 간격을 둔 채, 마치 주먹을 짧게 끊어 치듯 두 자루 검을 연속적으로 휘두르는 메르세데스의 공격은 경쾌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빠르고 깔끔했다.

“큭....!”

날이 구불 진 검으로 방어를 시도하는 규라탄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공격 거리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메르세데스의 변칙적인 공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여기까지가.

‘역시!’

모두가 예상한대로의 흐름이었다.

적기사단을 수호하는 네 번째 기사의 강함이 특별하다고는 하나, 첫 번째 기사는 적기사단의 정점이다. 네 번째 기사가 첫 번째 기사보다 강할 수는 없다.

메르세데스의 승리는 정해진 수순인 것이다.

“아아....!”

“메르세데스 님....!”

지난 날 자신을 억압해왔던 황제를 지키고자, 모두가 타락했다며 손가락질한 옛 영웅의 명예를 되찾고자 자신의 몸을 바쳐 싸우는 고귀한 기사.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규라탄을 징벌하는 메르세데스의 모습, 모든 기사들의 귀감이 되고도 남았다.

감격한 기사들이 눈물을 흘렸다.

존경하고 본받을 수 있는 대상이 바로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행복했다.

그렇기에.

푹-!!

“....!!”

메르세데스의 추락이 더욱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푹푹!!

콰아아아아앙!!

“메, 메르세데스 님!!”

검술을 버린 규라탄.

이제는 네 번째 기사가 아닌 온전한 악마가 된 그가 메르세데스에게 역습을 가하기 시작하자 절규에 가까운 기사들의 외침이 대전에 울려 퍼진다.

하지만 메르세데스의 귓가에는 아무런 소리도 전달되지 않았다.

규라탄의 반격을 허용하고 마법의 폭발에 휩쓸린 그녀의 세계는 고요했다.

‘아....’

메르세데스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규라탄의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마기가 천둥처럼 변모하는 과정도, 그 천둥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대전의 광경도, 여태껏 보인 적 없는 표정으로 소리치는 황제의 근심도.

모든 게 느리게 다가온다. 1초가 1분, 10분, 1시간 같다.

메르세데스의 뇌리에는 옛 영웅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붉은 갑주를 무장한 기사들.

오로지 제국을 위하여 전장의 선두에 섰던 그들의 커다란 등이, 듬직한 미소가, 따스한 가르침이 방금 전의 일처럼 떠오른다.

콰자자자작!!

천둥 같은 마기를 두른 규라탄의 주먹이 코를 짓뭉개는 이 순간에도, 메르세데스는 과거를 그렸다.

“너의 눈이 기분 나쁘지 않느냐고? 그럴 리가 있겠느냐. 꿰뚫어 볼 테면 어디 마음껏 꿰뚫어 보거라. 내 마음에는 한 치의 어둠도, 거짓도 없으니 당당하다.”

타고난 혜안.

때때로 낳아주신 부모님조차 두려워했던 저주 받은 힘을, 피아로는 온전히 받아들여주었다.

아직 어렸던 메르세데스의. 그렇기에 더욱 더 올곧았던 메르세데스의 눈동자를 피아로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마주보았고 덕분에 메르세데스는 올곧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송....합니다.’

메르세데스는 피아로를 신뢰하지 못했다.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고 쫓겨난 그를 그녀는 언젠가부터 포기했다. 모든 사람들이 피아로를 배신자라고 외쳤으니 그녀 또한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저야말로 배신자였네요.’

콰아아앙-!!

쓰게 웃는 메르세데스의 가녀린 몸이 지면에 처박힌다.

동시에 쏟아지는 천둥의 마기들이 그녀의 몸을 꿰뚫고, 지지고, 폭발시켰다.

“메르세데스 님!!”

“이 악마 놈! 당장 멈추지 못할까!!”

기사들은 이미 진즉부터 메르세데스를 원호하고 있었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온갖 검술을 퍼부었다.

하지만 진정한 힘을 드러낸 규라탄은 기사들의 기억 속 규라탄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하등한 인간들 따위가 내 앞에서 잠시나마 숨 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욕이다.”

이럴 때마다 검성 뮐러 그 빌어먹을 놈의 면상이 떠오른다.

꽈드득, 이를 간 규라탄이 천둥 마기를 일점에 집중시켰다.

그러자.

끼긱-!

끼기기기긱!!

“이, 이게 무슨....!”

기사들의 검이, 갑옷이, 그러므로 몸이 통째로 천둥 마기에 이끌렸다. 저항은 무의미했다. 서로 다른 전극의 자석이 이끌리는 것이 당연하듯이, 규라탄의 천둥 마기는 주변의 금속들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선사했다.

메르세데스와의 전투에서 그가 갑자기 승기를 잡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상성이 나쁘군.’

나의 의무는 그저 황제를 지키는 것일 뿐.

궁전 한복판에 대악마가 출현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감상은 배제한 채, 그저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을 뿐이던 베인이 처음으로 사고한다.

‘저쯤 되면 나도 감당하기 어렵다.’

대악마 아스타로트.

15년 전 우레석이 등장한 시점부터, 이미 제국의 최상부는 놈의 출현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관했다.

대악마가 생존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레석이 더욱 더 거대해지고 강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순전히 욕심 때문에 작금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아스타로트가 설마 황실에 잠입해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것도 컸다.

잠자코 생각해보던 베인이 황제에게 종용했다.

“기사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자리를 피하심이 좋겠습니다.”

각자의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칠공작의 경우 황도에 체류하는 기간이 극히 짧다.

얼마 전 템빨왕의 방문 때 모였던 그들 모두가 각자의 영지로 되돌아간지 오래다.

현재 황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다섯 기둥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베인의 판단이었다.

자신이야 상성 상의 문제로 아스타로트를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골드히트만 출동해도 육신을 잃고 약화 된 대악마 아스타로트 따위 쉽게 제압할 거라고 보았다.

물론 황제의 생각 또한 같았다.

대악마?

템빨국조차도 온전한 대악마를 사냥했을 정도다. 템빨국과는 비할 바 없이 강력한 제국이라면 약화 된 대악마를 손쉽게 사냥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문제였다.

본래라면 아무런 근심도 없이 자리를 떠났을 황제가 망설였다.

넝마가 된 채 쓰러진 메르세데스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과연 골드히트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12년 전의 진실이 알고 싶었던 황제가 명령을 내린다.

“베인.”

“예.”

“메르세데스를 구출하라.”

베인의 눈에 이채가 실렸다. 기사라는 존재 자체를 혐오해온 황제가 설마 메르세데스의 구원을 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감상이나 의견을 읊는 것은 그의 역할이 아니다. 그저 명을 받들 뿐이다.

“알겠습니다.”

스파앗-!

대답과 동시에, 황제의 바로 곁을 지키던 베인이 환영처럼 사라진다.

이어서 그가 나타난 지점은 규라탄의 후방 즉, 메르세데스의 곁이었다.

“베인....!”

전격의 마기로 끌어 모은 기사들을 단체로 지져버리고 있던 규라탄.

대악마인 그가 흠칫 놀라며 경계해야할 정도로 베인의 존재감은 컸다.

넝마가 된 메르세데스를 품에 안은 베인이 고개를 저었다.

“네게 관심 없다.”

짧게 읊고 떠나려하는 그를.

“나는 관심 많다!!”

규라탄이 저지했다.

전격의 마기에 이끌려 공처럼 돌돌 말린 기사들을 베인에게 집어던졌다.

규라탄은 메르세데스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15년 동안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간 지금, 그에게는 화풀이할만한 대상이 필요했고 그 대상으로는 메르세데스가 가장 적합했다.

“안.... 돼요...”

“칫.”

얽히고설킨 채, 거대한 공이 되어 날아오는 기사들을 통째로 베어버리려던 베인이 메르세데스에게 저지당하고 혀를 찬다.

자신의 손목을 맥없이 부여잡는 메르세데스의 시커멓게 그을려진 손을 보면서, 그는 회피의 동작을 취했다.

마치 고위급 뱀파이어처럼 연기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사라진 그가 황제의 곁으로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쩌어어어엉!!

뒤쫓아 온 규라탄의 검이 날아들었다.

베인의 품에 안겨있는 메르세데스를 노리는 검이었다.

이를 어깨에 장착한 견갑으로 막아낸 베인이 검을 뒤로 찔렀다.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규라탄의 복부를 노린 반격이었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파직!

규라탄이 몸에 두른 전격의 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 모든 금속을 끌어오던 전격의 마기가 이제는 도리어 금속을 밀쳐내고 있었다.

그 탓에 베인의 검은 기세를 잃고 허공에 멈췄고, 다시 한 번 혀를 차는 베인에게 규라탄은 재차 검을 휘둘렀다.

쩌엉! 쩌정!! 쩌저정!!

치열한 공방이 전개된다.

연속적으로 휘둘러지는 규라탄의 검은 점차 가속이 붙었고, 어깨의 견갑과 손목에 부착 된 소형 방패를 이용해서 이를 막아내는 베인의 움직임은 곡예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현란했다.

황제도, 베인도 놀라고 있었다.

약화 된 대악마라고 하기에는 아스타로트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고위급 대악마였던 건가?’

떠올린다.

그리드와 그의 가신들이 사냥한 벨리알은 가장 낮은 서열의 대악마였다는 사실을.

만약, 아스타로트의 정체가 고위급 대악마라면 육신을 잃어 약화됐을지언정 벨리알보다 강할 여지가 크다.

‘더군다나.’

황제는 대악마가 강림해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우레석의 마력이 강해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어쩌면 혹시, 우레석의 성장은 대악마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골드히트는 아직인가!!”

황제는 초조해졌다.

그리고.

‘늦었나?’

베인은 메르세데스의 몸이 점차 차갑게 식고 있음을 느꼈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대전의 천장을 꿰뚫는 운석이 떨어졌다.

인류 최강의 마법사 골드히트가 자랑하는 대마법 <메테오 스트라이크>였다.

거대한 운석을 ‘여러 개’ 소환하는 메테오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의 마법이다. 메테오 스트라이크는 작은 운석 하나를 소환하는 수준의 마법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완전한 메테오를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인류 역사상 단 1명, 브라함밖에 없었다. 메테오는 대악마 등의 상위종을 상징하는 힘과 같았다.

인간이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었고, 실제로 그 위력은 난공불락의 성벽을 부셔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늦어서 미안하오이다. 요호호....”

무너진 천장너머, 폭풍우 치는 하늘을 등진 적발의 소녀가 강림한다.

양 갈래로 딴 머리카락이 너울거리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쯧쯧, 어리석은 악마일지고. 여태까지처럼 숨죽인 채 살았으면 되었을 것을.”

우레석에 대한 아쉬움이다.

한탄하며 혀를 찬 골드히트가 운석에 얻어맞고 움찔거리는 규라탄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 집결되는 마력의 양은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으로 발현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콰르르르르르릉!!

하늘에서 내리친 검은 낙뢰가 골드히트를 강타했고, 골트히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등장과 동시에 퇴장한 것이다.

콰릉!

콰르르릉!!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거세진다.

아스타로트는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쏟아지는 폭우에 잠기는 대전에 절망이 피어올랐다.

같은 시각, 영원의 탑.

“이게 무슨.....”

번헨 열도의 시련과 비교하면 우스운 탑의 시련을 빠르게 돌파, 드디어 79층에 오른 그리드는 거대한 사육장과 마주했다.

아직 어린 소년소녀들이 마치 가축처럼 벌거벗겨진 채 밥만 기다리고 있는 사육정이었다. 볏짚이 깔린 바닥에는 오물이 나뒹굴었다.

“미친 새끼....!”

그리드는 골드히트와의 대화에서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래, 골드히트는 젊어진 게 아니다. 뺏은 거다.

“우웩!!”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와 같은 금기가 벌어졌던 것일까?

끔찍한 현장에서, 역겨움을 감당하지 못한 그리드가 속을 게워냈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자신을 구경하는 소년소녀들을 한없이 동정하였고, 골드히트를 증오하게 되었다.

이제 망설일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다.

이를 간 그리드가 바로 다음 층에 올랐다.

80층.

유리 천장 위에 자리 잡은 우레석이 그리드의 시선을 끄는 그곳이 바로 영원의 탑 꼭대기다.

“발견.”

“침입자.”

“발견.”

“격퇴. 격퇴. 격퇴.”

안광을 번뜩인 다섯 기의 뇌신이 가동을 개시했다.

골드히트의 믿음에 따르면, 이 다섯 기의 뇌신은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우레석을 수호할 수 있는 최강의 병기들이었다.

하지만.

“신격.”

[신으로 칭송 받아 마땅한 대장장이의 위용을 과시합니다. 모든 대장장이 관련 스킬의 캐스팅 시간과 재사용 대기 시간이 삭제됩니다. 총 2회까지 적용됩니다.]

“아이템 합체.”

3개의 신화급 아이템을 제작하고 얻은 힘을 개방하는 그리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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