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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56화 (651/1,794)

템빨 38권 - 19화

“뭐?”

제국의 영웅이 되었을 메르세데스가 어째서 이곳에?

눈을 의심하던 그리드가 이번에는 귀를 의심했다.

“방랑 기사? 네가 제국을 떠났다고?”

그럴 리가 없다.

설사 메르세데스 본인이 원했을지라도 제국이 그녀를 순순히 놓아줄 리 없기 때문이다.

황제가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에야 전설이 된 그녀를 두 눈 뜨고 놓치겠는가?

그리드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애초에 메르세데스는 농담을 모르는 진중한 성격의 인물이 아니던가.

“…설마 진짜야?”

“네.”

“정말?”

“네, 정말로 떠났어요. 정확히 말하면 쫓겨났죠. 전하께서 이런 저를 거두어 주실 수 없을까요?”

“하……!”

그리드의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그는 메르세데스가 ‘쫓겨났다’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 의구심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하여, 경솔하게 행동하고 말았다.

“기뻐! 정말로 기쁘다, 메르세데스!! 겁나게 환영할게!!”

와락!!

그리드가 메르세데스의 가녀린 몸을 힘껏 끌어안았다. 메르세데스가 당황했지만 그리드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가슴에 품은 그녀를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마치 바스러뜨릴 기세로 강하게, 더욱 강하게 끌어안을 뿐이었다.

“하하! 진짜 너무 기뻐!! 나는 단 하루도 네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카드의 능력치를 F급부터 SSS급으로 분류하는 게임이 존재한다면, 메르세데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SSS급 카드였다.

전설이 되기 전부터 말이다.

현재 그녀의 가치를 그리드는 감히 추정할 수조차 없었다. 한데 그녀가 자신을 섬기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하늘 위의 칸 또한 함께 웃어 주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

메르세데스의 조막만 한 얼굴은 홍당무보다 더 붉어지고 있었다.

태양처럼 밝은 그리드의 미소가, 단단하고 뜨거운 그리드의 가슴이, 귓전에 울리는 그리드의 거친 숨소리가, 자신을 위기로부터 구원했던 그리드의 은혜가, 옛 영웅들의 상처를 치유해 준 그리드의 아량이……. 그래, 그리드라는 인물 그 자체가 메르세데스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메르세데스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신이 그리드를 동경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가…….”

저항을 포기한 메르세데스.

그리드의 가슴에 순순히 얼굴을 묻은 그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제가 전하의 곁에 있어도 되는 건가요?”

이에 대한 그리드의 대답은.

“늘,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줘.”

이와 같았다.

귀까지 붉어진 메르세데스의 고백이 이어졌다.

“저는 27년 평생을 검사로, 그리고 기사로 살아왔어요.”

“그럴 테지.”

“그래서 여성의 역할을 잘 몰라요.”

“응? 그래? 그렇구나.”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응. 고마워.”

“전하의 기사로서도, 측…….”

“측?”

“측……!”

측실!

연애는커녕 그 흔한 첫사랑조차 못해 본 메르세데스가 입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낯 뜨겁고 생소한 단어였다.

전하의 기사이자 측실로서 부족함 없는 여인이 되겠다는 그 말, 끝내 잇지 못하는 그녀의 눈이 빙글빙글 돈다.

그리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측측측?”

참참참 같은 건가?

“뭐, 됐어. 어찌 됐든 다시 한 번 환영한다.”

메르세데스를 얻었다는 기쁨에 도취된 그리드는 사소한(?) 호기심 따위 그냥 덮어 버렸다.

만약 누군가가 지금 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면 답답해 복장이 무너지고도 남았으리라.

***

[템빨골(1)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템빨골(2)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도보를 선택한 그리드는 예상치 못한 수확을 올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템빨골의 성장이다.

황도 타이탄부터 국경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리드는 온갖 종류의 몬스터를 상대하게 되었고, 이 중에는 템빨골이 사냥하기에 적절한 저레벨 몬스터가 굉장히 많았다.

“정말로 귀여워요.”

언제나 도도한 표정을 그리던 메르세데스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다. 순진무구한 소녀 같은 모습이다.

그녀는 템빨골들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렇다.

그녀가 귀엽다고 말하는 대상은 노에도 아니었고, 탑에서 구출한 어린아이들도 아니었다.

그녀는 누리끼리한 해골바가지들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취향 참…….’

그리드는 혀를 찼지만, 템빨골은 일반적인 스켈레톤과 다른 외형을 지녔다. 얼굴이 보다 컸고, 재미있는 눈초리를 지녔으니 얼핏 귀여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메르세데스의 취향이 썩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딱! 딱딱!!

메르세데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템빨골들의 기다란 눈이 초승달처럼 휜다. 녀석들 또한 메르세데스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메르세데스가 연신 감탄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언데드가 있다는 사실을 저는 처음 알았어요.”

“제국처럼 스케일 큰 나라에도 이런 애들은 없어?”

“대륙 어디를 뒤져 봐도 없을걸요? 이 아이들의 공감 능력은 거의 살아 있는 생물 수준이에요. 엄청 특별한 아이들임이 분명해요.”

“흠.”

특별한 애들이야 맞다.

레벨을 올릴 수 있고, 장비도 착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기술을 습득할 수도 있다.

단순한 소환수라고 보기는 어렵고 펫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약해.’

그리드가 어느덧 70레벨을 달성한 템빨골들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템빨골(1)>

Lv.70

생명력:1,045/1,045 마나:3/3

근력:127

체력:100

민첩:127

지력:1

잔여 스탯 포인트:0

착용 중인 아이템

무기:<튼튼한 장검>

보조 무기:<은사>

갑옷:<의지할 수 있는 갑옷>

보유 스킬:<은사 쏘기>, <은사 피하기>, <초급 채광 기술Lv.6>, <초급 소드마스터리Lv.2>, <최하급 석화 내성>, <최하급 물리 내성>, <최하급 마법 내성>, <최하급 순간 가속>, <후려치기>, <깨물기>, <두개골 박치기>

<템빨골(2)>

Lv.70

생명력:1,045/1,045

마나:525/525

근력:25

체력:100

민첩:55

지력:175

잔여 스탯 포인트:0

착용 중인 아이템

무기:<날카로운 단검>

보조 무기:<괜찮은 방패>

갑옷:<의지할 수 있는 갑옷>

보유 스킬:<은사 피하기>, <초급 채광 기술Lv.6>, <초급 정신 집중Lv.1>, <최하급 석화 내성>, <최하급 물리 내성>, <최하급 마법 내성>, <최하급 순간 가속>, <깨물기>, <비웃기>, <두개골 박치기>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다섯 개의 스탯 포인트를 획득하는 템빨골들!

일반적인 언데드와 달리 성장하며, 장비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고, 높은 수준의 학습 능력까지 겸비한 이 녀석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했다.

스켈레톤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다.

불어오는 바람에, 혹은 그리드가 백린목을 찧는 도끼 소리에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을 정도로 허약한 뼈대로 이루어진 템빨골들.

체력에 스탯을 투자하여 최소한의 생존력을 확보한 지금도 마찬가지로 녀석들은 내구력이 약했다. 특히 폭발, 타격 형태의 공격에 취약한 면모를 보이며 본연의 방어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드가 직접 제작해 준 방어구들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반면 찌르기나 베기에는 높은 내성을 보이지만…….’

정확히는 회피율이 높다.

찌르기나 베기 형태의 공격이 템빨골의 뼈를 직접 타격하지 못하고 갈비뼈 틈새 등을 비집고 들어갈 경우, 그 공격은 헛방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운 좋을 때만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템빨골들의 나약함을 아쉬워하는 그리드에게 메르세데스가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이들이 싸우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예요.”

메르세데스는 우선 템빨골 1을 지목했다.

“이 아이는 근력과 민첩성의 비율이 무척 좋아서 움직임이 기민하고 공격이 예리한 반면 지능이 너무 낮아요. 자신의 신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아예 모르죠.”

“소드마스터리를 익혔는데도?”

“지능이 낮으면 기술 응용 자체를 못하죠.”

“아…….”

아무래도 지력 1이라는 수치가 문제 같다.

‘지력에도 스탯을 투자해야 했던 거구나.’

깨달은 그리드가 자연스럽게 쥬드를 떠올렸다.

‘그 녀석, 잘 지내고 있겠지?’

템빨국은 많은 인재를 확보한 상태다. 이제는 굳이 쥬드가 윈스톤을 지킬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을 보내면 된다.

조만간 쥬드를 곁으로 불러들여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리드의 귓가로 메르세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 아이는 영리한 반면 신체 능력이 무척 떨어져요. 보유하고 있는 기술들을 적절히 활용하고는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죠.”

이번에는 템빨골 2에 대한 평가였다.

그리드가 사실대로 말했다.

“애초에 걔는 마법사 후보야.”

하지만 마법을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함정이다. 또한 그리드는 마법 무구의 제작에는 능통하지 못했다. 현재 시점에서 템빨골 2는 큰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리드가 난감해하는 그때였다.

아오오오올!!

하늘에서 늑대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하늘로 옮기자 커다란 박쥐 날개를 펄럭이는 다이어 울프들이 보였다.

레벨 200대의 몬스터.

템빨골들이 상대할 수 없는 영역의 난적이다.

스릉-!

말없이 앞으로 나서는 메르세데스의 양손에 검이 쥐어졌다.

그녀는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위시하며 하강하는 다이어 울프들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어 버렸다.

그리드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빠르고 깔끔한 검술이었다.

이는 템빨골들 또한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퍽!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메르세데스를 쳐다보던 템빨골 1이 갑자기 템빨골 2를 후려쳤다.

템빨골 2가 발라당 뒤집어졌고, 템빨골 1은 녀석으로부터 단검을 빼앗아 손에 쥐었다. 메르세데스처럼 자신 또한 쌍검술을 사용하고 싶다는 어필이었다.

“가상하군요.”

메르세데스의 맑은 눈동자가 호수처럼 반짝인다.

쌍검을 거머쥐고 자신을 바라보는 템빨골 1을 흡족한 표정으로 마주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간단한 검술을 가르쳐 주도록 하죠.”

템빨골에게 위대한 스승이 탄생한 순간이다.

메르세데스는 템빨골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검술의 기본 동작들을 전수해 주기 시작했고, 템빨골들은 저레벨 몬스터를 만날 때마다 그녀에게 배운 검술을 사용하며 연마했다.

[템빨골(1)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템빨골(2)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템빨골(1)과 템빨골(2)가 <베인츠식 검술>을 습득하였습니다.]

“헐…….”

전투에 차차 익숙해지기 시작한 템빨골들의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특히 템빨골 1의 발전이 눈부셨다. 녀석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지력에 스탯을 찍어 주자 공격 명중률과 회피율이 크게 상승했다. 타고난 내구력이 약하다는 단점은 극복하지 못했지만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횟수 자체가 줄었다.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아이들이네요.”

템빨골들의 동그란 두개골을 쓰다듬는 메르세데스의 태도가 한없이 상냥하다.

그리드는 왠지 자신 또한 그녀에게 머리가 쓰다듬어지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브라함도 템빨골들에게 호의적이었지?’

본인 스스로를 제외한 모든 존재를 깔보던 브라함조차도 템빨골들을 잘 교육시키라고 조언해 주었었다.

그렇다.

템빨골들은 당대 전설 메르세데스뿐만 아니라 전대 전설 브라함에게도 인정을 받은 존재들인 것이다.

어쩌면 녀석들은 자신의 예상보다 더 거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드의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

“두 집 살림 하고 계셨습니까?”

드디어 라인하르트에 도착한 그리드를 마중 나온 라우엘이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주변의 다른 템빨단원들도 수군거렸다.

예정보다 훨씬 더 늦게 도착한 그리드가 웬 여성과 어린아이들을 데려왔으니 오해할 법도 했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정력왕…….”

여태까지 비밀리에 두 집 살림 하면서 저토록 많은 아이들을 낳아 왔다니!

연애 경험 전무한 반트너가 피눈물을 흘리는 그때.

“처음 뵙는 분이 많네요.”

입을 연 메르세데스가 가죽 투구를 벗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과 이름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게 된 템빨단원들이 일제히 경악했다.

“첫 번째 기사……!!”

누군가는 사색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메르세데스의 존재감이 컸다.

그리드가 그녀를 정식으로 소개했다.

“모두 인사해. 앞으로 우리와 함께하게 될 전설의 기사다.”

“뭐……!”

라우엘을 비롯한 템빨단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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