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9권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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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39권 - 1화
작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직업을 <상인>으로 선택한 플레이어의 숫자는 무려 41,715,997명이었다.
검사와 마법사 등의 가장 대중적인 전투 직업군들과 비견되는 선호도인 것이다.
왜?
평범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직업이었으니까.
게임 내 재화가 현금으로 거래되는 일이 당연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돈 버는 일 자체가 목적인 상인의 인기가 높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은 탓에 대부분의 상인들이 돈벌이를 못하고 있었으나, 극히 일부의 상인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모자라서 명성까지 거머쥐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상인 랭킹 1위 키르다.
플레이어 최초로 상단을 만든 이후 꾸준히 부를 축적해 온 그가 최근에 구입한 상품은 무려 도시.
독자적으로 수만 명의 백성을 거느리게 된 그를 누군가는 상왕이라 칭했다.
“드디어 찾았군.”
세계수의 숲.
엘프의 숲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에 키르가 발을 들임과 동시였다.
[플레이어 최초로 엘프족의 영토를 발견하였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입니다! 최초 발견 보상으로 각종 혜택이 부여됩니다!]
[엘프족과의 호감도를 쉽게 올릴 수 있으며, 엘프족 마을에서 구입하는 상품의 가격을 20퍼센트 할인받습니다. 물품 판매 시에는 20퍼센트의 이윤을 더 얻습니다.]
[엘프족 영토 내에 존재하는 사냥터에서 사냥 시 경험치 획득률이 20퍼센트 상승하고, 아이템 획득률이 10퍼센트 상승합니다.]
[마나 회복 속도가 영구적으로 8퍼센트 상승합니다.]
“호오! 이건 기대 이상이군.”
백금색의 머리카락과 에메랄드빛의 눈동자, 그리고 새하얀 피부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표현되는 전형적인 귀족을 보는 듯한 이 멀끔한 인상의 미남자가 바로 키르였다.
최초 발견 보상을 꼼꼼히 확인한 그가 등 뒤로 눈짓했다.
“이제 들어와도 좋다.”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기부터가 다른데?”
“숨을 쉴 때마다 달콤해. 햇살도 유난히 기분 좋고. 여기에 집 짓고 살면 좋겠네.”
일단의 무리가 숲에 진입했다.
하나같이 고레벨을 요구하는 장비를 무장한 플레이어들이었다.
그중 ‘뷰티앙’이라는 아이디의 사내가 마법을 전개했다.
“마력 탐지.”
스파앗-!
수십 미터 거리까지 뻗어 나가는 마나가 주변의 생명체를 샅샅이 탐색한다.
뷰티앙이 보고했다.
“소동물의 기척만 잔뜩 있어. 숲의 가장 초입이라서 그런지 엘프들이 딱히 방비하지 않나 봐.”
“평화에 찌들었군.”
엘프족은 벌써 수백 년째 숲에 틀어박혀 지내는 중이다.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온 그들의 경계심이 칼날처럼 벼려져 있을 거라고 기대하긴 어려웠다.
물론 키르의 입장에선 좋은 일이었다.
“보너스 게임을 즐기지 못하게 된 점은 아쉽다만…….”
씨익.
말하다가 멈추는 키르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번진다. 조금 전까지의 멀끔한 인상 위로 비열함이 덧씌워졌다. 아니, 덧씌워졌다기보다는 본성이 표출되었다고 표현함이 옳다.
키르가 누군가?
타인을 기만하고 짓밟으며 약탈을 일삼은 끝에 부를 축적하고 상인 랭킹 1위를 차지한 인물이다. 그를 표현하기에 가장 알맞은 수식어는 ‘사악’이었다. 평소의 온화하고 멀끔한 인상? 상대방을 방심시키기 위한 가면에 불과하다.
“작업을 시작하자.”
입맛을 다신 키르가 말함과 동시에.
푸욱-!
푹푹푹!!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있던 키르의 동료들이 그의 몸을 칼로 찌르고 베는 등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쿨럭! 크아아아악!!”
상인은 육체 능력을 올리는 스탯에 포인트를 투자할 여력이 없다.
아무리 비싼 갑옷을 입어 봤자 체력 스탯이 낮은 키르의 방어력은 형편없었다.
순식간에 생명력이 바닥을 기게 된 그가 안색이 파랗게 질리더니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의 동료들, 아니 동료였던 자들이 숲속 깊숙이 도망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낄낄 웃었다.
“그렇게 느린 발걸음으로 도망쳐 봤자 소용없어. 우리한테 금방 붙잡힐 거라고?”
“기왕 도망칠 거면 더 빨리 도망쳐 보지 그래?”
“비, 빌어먹을! 사, 살려 주세요!! 누구 없습니까!!”
사색이 된 키르가 사방팔방에 소리쳤지만, 그 어떤 반응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의 외침은 숲 곳곳에 무의미하게 메아리칠 뿐이었다.
배신자들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우리를 제외하면 그 누구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도움을 요청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어디서 곰이라도 나타나서 지켜 주길 바라는 거냐? 멍청하기는! 캬캬캬!”
키르의 입장에서만 치열한 추격전이 계속됐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뱉을 틈도 없이 키르는 정말 사력을 다해서 내달리는 반면, 그보다 발이 빠른 추격자들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그의 뒤를 쫓았다.
츠카카칵!!
“제길……!”
서러운 것일까.
수풀과 나뭇가지에 끊임없이 자상을 입으며, 오직 앞만 보고 내달리는 키르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추격자들은 어느새 그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슬슬 지겨워. 이제 이 재미없는 술래잡기를 끝내도록 하자. 응?”
자신의 몸이 더러워지는 것은 싫다는 듯, 경로에 있는 수풀을 모조리 시미터로 쳐 내며 뒤쫓아 온 여성이 말한다.
그녀의 눈빛에 담긴 살기를 엿본 키르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왜!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우리는 동료였잖아!! 왜 갑자기 나를 해치려 드는 거냐고!!”
쩌렁쩌렁!!
깊은 숲속.
달콤한 과일 향이 맴도는 세계수의 숲 한복판에 키르의 억울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여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동료는 무슨. 처음부터 우리는 너의 돈을 노렸을 뿐이야. 자,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을 알겠니?”
여성의 시미터가 겁먹고 바들바들 떠는 키르의 목덜미에 드리운다.
“살고 싶으면 돈을 내놔. 우리를 만족시킬 만큼의 액수를 쥐여 주면 살려 줄게. 응? 부. 자. 님.”
“익……!”
키르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표정을 잠식하고 있던 공포와 좌절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니 분노라는 감정이 그 자리를 채웠다.
“돈 때문에 사람을 이용하고 농락하다니……! 이 금수보다 못한 놈들!!”
“어머, 이거 왜 이래? 금수라니? 사람이니까 이러는 거야. 너 같은 별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우리처럼 욕심쟁이거든. 우리가 평범한 거란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여성의 시미터가 키르의 목에 더욱 가깝게 드리웠다.
주르륵.
키르의 목덜미가 피로 흥건히 젖는다.
“어서 돈 내놔.”
생사의 기로에 선 키르.
꿀꺽, 죽음의 공포 앞에 마른침을 삼키던 그가 소리친다.
“싫어……!”
“뭐?”
“내 마음속 정의가 외치고 있어! 너희처럼 비열한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느니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하라고 말이야!!”
“미쳤어?”
“아니! 멀쩡해! 재정신이다! 나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아! 내가 굴복하면 너희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짓을 반복할 테고, 새로운 피해자가 나타날 테니까!!”
“하, 정말로 별종이란 말이지. 그럼 그냥 죽어.”
쯧, 혀를 찬 여성이 시미터를 높이 치켜드는 순간이었다.
푹-!
“……?!”
소리도 없이 날아온 화살 하나가 여성의 어깨를 꿰뚫었다.
여성은 물론이고 그녀의 동료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누구냐!!”
“이 숲에 사람이 있었다고?”
쏴아아아아--
혼란 속에 미풍이 불어온다.
흔들리는 수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 마치 조물주가 직접 빚은 것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성들이었다.
9등신의 완벽한 비율과 뾰족한 귀가 그녀들의 정체를 알려 주고 있었다.
“에, 엘프?”
“서, 설마 여기가 엘프족의 숲이었어?”
엘프족의 개체 수는 인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다.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엘프의 숫자를 추산해 봤자 10만 단위에 불과하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프들이 저 탐욕스러운 인간들로부터 자신들의 영토를 지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강하기 때문이다.
엘프의 타고난 궁술과 정령술은 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키르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인간 무리들이 곧바로 전의를 상실했다.
무기를 거두고 두 손을 올리는 그들에게 엘프들은 활시위를 겨눈 채로 말했다.
“성스러운 숲에서 당장 떠나라. 이곳은 너희들 인간 따위가 더럽혀도 좋은 장소가 아니다.”
“히, 히익!!”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사람들은 더 이상 키르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도망쳤다.
“인간의 출입을 허용하다니……. 결계가 낡은 건가?”
도도한 인상의 백발 엘프.
베니야루라는 이름을 지닌 그녀가 ‘결계를 다시 쳐야겠다.’고 중얼거린다.
그녀의 시선은 키르를 낱낱이 살피고 있었다.
키르가 고개를 조아렸다.
“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아! 죄, 죄송합니다. 저도 당장 떠나겠……. 윽!”
인간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금역.
이곳이 어딘지 떠올린 키르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털썩 제자리에 다시 주저앉았다. 상처를 잔뜩 입은 탓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눈치였다.
“죄, 죄송합니다. 조금만 쉬었다가 바로 떠나겠습니다.”
한없이 선한 얼굴과 순량한 태도.
키르의 모습은 엘프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평범한 성인 남성과 다른 면이 있었다. 그 어떤 저급한 욕망도 엿볼 수 없었다.
베니야루가 말했다.
“너와 저들의 대화를 들었다. 비열한 요구를 들어주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하더군?”
“…어리석다고 욕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싫습니다. 그들의 장단에 맞춰 주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습니다.”
내내 도도한 표정을 짓고 있던 베니야루의 입가로 옅은 미소가 번진다.
“따라와라. 마을로 안내하마.”
“예? 인간인 제가 당신들의 마을을 방문해도 되는 겁니까……?”
“너라면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수백 년 만의 손님인데 이것도 인연일 테지. 숲 밖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저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떠날 때까지 마을에 머물면서 상처를 치료하도록 해라.”
“가, 감사합니다!”
키르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의 순진무구한 미소가 엘프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왔다.
상인의 높은 매력 스탯과 친화 스킬, 그리고 엘프 숲 최초 발견자의 보상이 중첩되면서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하루만 더 대기했다가 떠나도록 해.
엘프들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키르가 귓속말을 보내는 대상.
-응, 알았어.
다름 아닌 조금 전의 배신자들이었다.
자신의 목덜미에 시미터를 드리웠던 여성에게 그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모든 게 연극이었던 것이다.
엘프들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한!
***
*기사단 단장으로 임명할 수 있는 가신 목록*
<메르세데스>
메르세데스는 총 50명의 기사를 통솔할 수 있습니다.
메르세데스의 기사 단원들은 물리 공격력이 12퍼센트, 방어력이 12퍼센트, 공격 속도가 5퍼센트, 이동속도가 7퍼센트 상승합니다.
이 효과는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영구적으로 적용됩니다.
기사단 패시브 스킬:<체력 재생 속도 상승(대)>, <마나 재생 속도 상승(중)>, <스태미나 소모 감소(대)>
“…….”
여태까지 템빨국에서 기사단장으로 임명할 수 있었던 인물은 피아로와 아스모펠 단둘뿐이었다.
에트날 최고의 기사 중 하나였던 척슬리조차도 단장으로는 임명할 수 없는 것을 보아, 기사단장이 가능한 NPC는 생각보다 더 한정적인 것으로 추측됐다.
말인즉, 기사단장으로 임명할 수 있는 NPC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한데 메르세데스는 훌륭함의 정도를 지나쳤다.
‘이건 완전히 사기 수준…….’
피아로는 단원들의 공격력을 10퍼센트, 공격 속도를 3퍼센트, 이동속도를 5퍼센트 상승시키고, 아스모펠의 경우에는 단원들의 공격력과 마력을 5퍼센트씩 상승시키는 한편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을 8퍼센트 감소시켜 준다.
그 둘의 존재감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었다.
한데 메르세데스는 그들보다 배 이상 뛰어난 것이다.
공격력과 방어력 추가 12퍼센트…….
아이템의 강화 수치를 몇 개나 올리는 것과 비견되는 가치다.
이 효과를 크리스나 폰 등의 고레벨 플레이어가 적용받는다고 생각해 보면 실로 어마어마했다.
꿀꺽!
전율하며 마른침을 삼키는 그리드.
깊은 생각에 잠겼던 그가 잠시 후,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메르세데스.”
“네, 전하.”
“내가 네 기사단에 가입 가능할까?”
“……?”
“안… 되겠지? 하하.”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그리드가 아쉬움에 치를 떨게 된 이날.
[<전설의 템빨 기사단>이 창설되었습니다.]
템빨 기사단과 템빨 마법사단에 이은 3번째 기사단이 탄생했다.
템빨국 내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들만 가입 가능한 기사단이었다.
실력순에 따라서 입단하게 된 라우엘이 멍해졌다.
“내가… 내가 전설의 템빨 기사라니……!”
크게 오른 능력치를 보면 기뻐해야 정상이건만,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왜일까?
라우엘은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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