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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66화 (661/1,794)

템빨 39권 - 3화

“생각보다 더 빡세네.”

지난 나흘 동안의 여정 동안 지도를 대체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른다. 세기 어려울 정도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드는 여전히 목적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길치라서가 아니다.

도리어 그리드는 방향감각이 뛰어난 편이다.

그가 북쪽 끝의 동굴을 찾아낸 끝에 파그마의 기서를 획득했던 일은 결코 요행이 아니었다.

“음....”

다시 또 지도를 펼쳐 든 그리드의 시선이 지도의 공백에 꽂힌다.

벨드온 화산지대와 릴튼 사막이 겹치는 지점.

크라우젤은 바로 이곳에 결계의 숲이 있다고 말했었다.

그렇다.

결계의 숲은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장소다. 찾아내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벨드온 화산지대에서부터 동쪽, 릴튼 사막에서부터 서쪽 지점이 교차하는 장소에 있다고 했으니까 이 근처가 맞는데....”

그리드의 미간이 점차 좁혀진다.

일정이 생각과 다르게 지체되자 초조한 기색이었다.

잠자코 그의 곁을 지키던 메르세데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크라우젤은 신용할 수 있는 인물인가요?”

“응? 그건 갑자기 왜?”

“이곳에 숲이 있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요.”

용암이 들끓는 화산지대. 그리고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사막.

그 중심에 숲이 있다고?

허리춤의 칼이 뜨겁게 달아오를 정도로 기온이 높은 이곳에?

합당한 의심을 하는 메르세데스에게 그리드가 답했다.

“믿어도 돼.”

물론, 상대가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믿어도 좋을 만큼 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그리드는 크라우젤을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프라이드가 높은 친구거든. 실없는 거짓말이나 지껄일 성격이 아니야.”

“검성....이지요?”

“알고 있었어?”

“네. 이미 수개월 전부터 제국에서도 유명해진 인물이니까요.”

파그마의 후예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제국조차도 검성의 출현에는 커다란 반응을 보였었다.

어떤 이는 반드시 검성을 회유해야한다고 주장했고, 또 어떤 이는 검성을 없애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황제의 선택은....

“회유였죠.”

“그랬군. 뭐, 크라우젤이라면 제아무리 황제라도 탐낼만하지.”

나는 거들떠도 안 봤다는 소문이던데, 크라우젤은 특별 취급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고도 그리드는 자존심 상하지 않았다.

검성이 파그마의 후예보다 더 뛰어난 직업임을 인정하기 때문에?

아니다.

그리드 또한 이미 높은 긍지를 지닌 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휩쓸리지 않을 뿐이다.

남이 나를 낮게 평가하면 뭐 어떤가? 진실은 다른데.

“크라우젤은 황제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겠지?”

“네. 맞습니다.”

“너, 꽤나 화났었겠네?”

“.....”

그리드는 메르세데스와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그녀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다.

과도한 충성심을 지닌 나머지, 주인의 뜻에 반하는 존재에게는 무조건 적개심을 품을 정도다.

적의 입장에서는 참 두렵고 피곤한 성격이었지만, 아군이 된 지금은 한없이 든든하다.

“감정도 풀 겸, 나중에 만나면 한 번 싸워봐. 1, 2년 후쯤에는 너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있을 애니까.”

괜한 싸움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강자와 강자 간의 대결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 그리드는 이미 몇 번이나 목도했고 경험한 바 있다.

그리드는 메르세데스가 검성 크라우젤과 대결함으로서 검술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새로운 기사도를 세울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크라우젤 네게도 큰 도움이 되겠지.’

두근! 두근!

한층 더 발전한 크라우젤과의 대결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는 그리드였다.

그의 크라우젤에 대한 집착은 제3회 국가대항전에서 느꼈던 아쉬움의 반동이었다.

승자인 그가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

전력을 드러내기도 전에 이겨버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리드는 크라우젤과의 결승전이 허무했다. 제2회 국가대항전 당시 느꼈던 그 짜릿함이 그리워질 정도로.

‘어디서도 말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이지.’

내가 힘을 비축하고도 천외천 크라우젤을 이겼다.

이 진실, 누구한테 말하겠는가?

말해봤자 아무도 믿지 못할 텐데.

‘애초에 말 할 이유도 없고.’

괜한 잘난 척은 빈 수레 시절에 이미 질릴 만큼 했다.

생각하며, 피식 웃는 그리드의 발걸음이 제자리에 멈췄다.

뜨거운 용암이 흘러 내려와 굳고 있는 용암지대의 끝자락.

사막의 끝자락이기도 한 그곳의 중심에서.

[<세계수의 목걸이>가 반응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이 발생한 까닭이다.

깜짝 놀란 그리드가 인벤토리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세계수의 목걸이>

등급:레전드리

내구도:20/22

*엘프족 영토에서 근력과 민첩성이 20퍼센트 상승.

*엘프족 영토에서 마나 회복 속도 150퍼센트 상승.

*엘프족 영토에서 이동 속도 1.2배 상승.

아직 전설이 되기 전 포비아는 인간에게도, 엘프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외톨이였습니다.

이 목걸이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던 세계수가 그녀에게 준 선물입니다.

무게:50

나무껍질을 엮어 만든 목걸이.

번헨 열도에서 포비아의 데스나이트를 해치우고 얻었던 보상 중 하나다.

이것이 반응했다는 말은 즉....

꿀꺽!

한 가지 가설을 세운 그리드가 목걸이를 착용했다.

그러자.

[근력과 민첩성이 20퍼센트 상승합니다.]

[마나 회복 속도 150퍼센트 상승합니다.]

[이동 속도가 1.2배 상승합니다.]

“역시....!”

그리드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첫째, 이곳은 이미 결계의 숲이다. 다만, 어떤 특정한 결계 때문에 인지가 불가능할 뿐이다.

둘째, 결계의 숲이 즉 세계수의 숲이었다. 엘프들의 영토 말이다!

“이제 결계만 풀면....!”

하지만 어떻게?

크라우젤은 결계의 숲의 위치만을 알려줬을 뿐, 결계의 숲에 진입하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었다.

‘왜지?’

약 올리려고? 아니면 일종의 테스트?

그럴 리가 없다.

크라우젤이 결계의 숲을 알려준 행동은 순수한 호의였다. 기껏 베푼 호의 속에 짓궂은 의도를 숨겨놓았을 리 만무하다.

“어쩌면....”

숲을 감싸고 있는 결계 자체가 크라우젤이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보다 더 강해진 건 아닐까?

엘프들이 인간을 싫어한다는 소문을 상기해 보았을 때, 충분히 신빙성 있는 가설이었다.

“확실해. 크라우젤이 자꾸만 이곳을 드나드는 게 거슬렸던 엘프들이 결계를 강화시킨 거야.”

확신한 그리드.

강화 된 결계를 풀어야한다는 난제와 마주한 그의 골치가 아파진다.

“결계를 해제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결계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거나 마법적인 힘으로 해제하는 것.

이 두 가지 방법이 널리 쓰인다.

그리드는 결계 해제와 관련 된 마법을 익히지 못했으므로 전자의 방법으로 결계를 풀어야했다.

머리를 써야한다는 뜻이다.

끔찍하다.

“쓰.... 음.”

습관적으로 쌍욕을 지껄이려던 그리드가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체통이 있지,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거둔 지 얼마 안 되는 신하 앞에서 쌍욕을 지껄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끄응.”

욕을 못 하니까 더 답답하다.

팔짱을 낀 채 앓는 소리하는 그리드에게 메르세데스가 질문했다.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이곳에 있는 결계를 해제하고 싶은데, 너라고 그 방법을 알지는 못할 테니...”

메르세데스의 얇은 눈썹이 움찔한다.

주인에게 기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결계야 부수면 되죠.”

“응?”

서늘한 음성.

결계를 부순다?

이해하지 못한 그리드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그때.

“결계를 친 인물의 마력보다 제 물리력이 3배 이상 강하다면, 단순히 힘만으로 결계를 파괴할 수 있어요. 어디 시험해 볼까요? 누가 더 위인지.”

쿠오오오오오!!

메르세데스가 어느새 뽑아 쥔 검이 은빛의 검기를 굽이굽이 내뿜는다 싶더니.

스파앗-!!

허공에 한 번 크게 휘둘러졌고, 동시에 개벽을 일으켰다.

쩌적!

쩌저저저적!!

마치 크라우젤의 우주 검을 보는 듯한 효과다.

하늘이, 사막이, 화산과 대지가 반으로 갈라진다.

이어서.

쏴아아아아아아아-

용암이 들끓던 화산지대와 사막이 통째로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대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존의 화산지대와 사막 전부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거대한 숲이었다. 규모가 워낙 커서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숲.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다.

“....대박.”

그리드가 감탄하는 부분은 숲의 규모도, 메르세데스의 검술도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의 그 완벽한 결계를 만들어낸 엘프족의 마법이었다.

화산과 사막을 가득 뒤덮고 있던 열기조차 거짓이었음을 깨달은 그리드가 질문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정령술이야?”

“그런 것 같아요. 불의 정령들의 힘을 빌려서 화산지대를 만들고 땅의 정령들의 힘을 빌려서 사막을 만든 거 같습니다. 단순한 환술이랑은 달리 실체했던 것들이니까요.”

“정령이라.... 만나본 적 있어?”

“없습니다.”

“아.”

그리드가 뒤늦게 눈치 챘다.

초록 잎사귀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햇볕 아래 선 메르세데스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음을 말이다.

그래, 메르세데스 또한 흥분 상태였다.

‘하기야.’

수백 년 동안 인류와 단절 된 삶을 살아온 엘프족의 영토를 발견한 것이다. 이 놀라운 발견 앞에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눈이 살짝 동그래진 상태로 숲을 둘러보는 메르세데스의 귀여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그리드가 이내 입맛을 다셨다.

‘최초 발견 보상은 들어오지 않는 걸 보니 이미 다른 사람이 먼저 이곳을 찾아 왔었나보군.’

크라우젤은 아니다. 크라우젤은 이곳이 엘프족의 영토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크라우젤은 숲 깊숙이 못 들어왔던 건가? 아니면 단순히 남보다 뒤쳐진 건가? 후자라면 세상 참 넓구만.”

나는 몰라도 크라우젤보다 앞선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과연 누굴까?

다소 감탄한 그리드가 휴대용 용광로를 꺼내더니 장작을 지피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모루와 망치, 그리고 담금질에 사용할 거대한 물통까지 준비했다.

“.....”

숲 한복판을 대장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리드의 모습에 메르세데스는 황당함을 느꼈다.

“전하. 엘프와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선은 엘프부터 찾아보시는 게 옳은 수순 아닐까요?”

어떤 사람들은 엘프가 환상 속의 종족이라고 오해하는 실정이다.

그만큼 엘프는 생소한 존재였다. 커다란 흥미를 품어도 좋은 대상인 것이다.

당장 메르세데스만 해도 엘프를 어서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엘프라면 매일 만나고 있잖아.”

“네?”

엘프를 매일 만난다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메르세데스에게 그리드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이엘프 있잖아. 대현자 스틱세이 말이야. 그 양반이 템빨국에 체류 중이라는 사실 몰랐어? 제국은 뭐든지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었나?”

“....아.”

몰랐을 리가 없다.

다만, 며칠 전 사건 때문에 망각했다.

5일 전.

메르세데스가 그리드를 쫓아 라인하르트에 도착했던 그날.

“그리드 님!!”

헐레벌떡 달려온 스틱세이가 그리드에게 한탄했다.

“아카데미에 선생 숫자 좀 늘려주십시오! 저 혼자 들어가는 수업만 하루에 12번입니다, 12번! 도무지 쉴 틈이 없다고요!!”

“알았어. 라빗 행정관한테 말해둘게.”

“아니, 그 양반이 문제란 말입니다!! 재정이 부족하답시고 선생의 숫자를 늘릴 수 없다지 뭡니까!! 그 파렴치한 인간, 돈 아끼려고 저를 혹사시키려는 수작인 게 분명합니다!!”

정말이지 억울하게도 울부짖는 스틱세이였다.

그 모습,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메르세데스는 망각한 것이다.

스틱세이의 실체가 그 유명한 하이엘프이자 대현자라는 사실을 정말로 완전히 까맣게 잊었다.

“....알겠습니다.”

뭔가, 본능적으로 봉인해두었던 기억을 뒤늦게 상기한 메르세데스.

그녀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엘프를 찾아 볼 이유가 없네요.”

“그치? 어차피 또 남자들만 득실거릴 게 뻔하고 말이야.”

“남자요?”

“아, 그런 게 있어. 어찌됐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팔을 걷어붙인 그리드가 비싼 돈 주고 구입한 메디아산 토종꿀을 메르세데스에게 건넸다. 그리고 자신은 망치를 거머쥐었다.

“나는 망치질을 할 테니까 너는 꿀을 먹어.”

“네....”

그리드 전하를 섬기게 된 이후 처음으로 맡게 된 중대한 임무이다. 하지만 다소 기운이 빠지는 건 왜일까?

힘없는 목소리로 답하던 메르세데스가 칼을 뽑아 휘둘렀다.

동시에.

서걱!

허공에서 화살이 쪼개졌다.

“이 무슨 무례한 짓인가요?”

전방의 수풀로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 보내는 메르세데스.

그녀의 시야에 하나 같이 분노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엘프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베니야루라는 이름의 백발 엘프가 소리쳤다.

“우리는 너희를 증오한다...! 너희 인간 놈들은 멸종해야 마땅하다!”

“헐.”

다짜고짜 멸종을 논하다니?

숲 한가운데서 불 좀 붙인 게 그리 큰 죄인가?

‘....죄구나.’

뒤늦게 깨달은 그리드가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아직 모른다.

엘프들이 이토록 인간을 증오하게 된 이유, 그리드와 메르세데스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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