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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82화 (677/1,794)

템빨 39권 - 13화

삐이이이이이이---!!

사이렌이 요란하다.

제작팀 사무실 곳곳에 설치 된 붉은 등이 쉬지 않고 점멸했다.

기계음이 반복되고 있었다.

[x:;72ZX987B19가 소멸하였습니다.]

[3개의 대규모 에피소드가 영구히 삭제됩니다.]

[관련 퀘스트 390,112개 중 188,490개 퀘스트의 발생 가능성이 제로가 되었습니다.]

[x:;72ZX987B19의 복원을 추천합니다.]

[정정합니다.]

[x:;72ZX987B19가 드롭한 아이템을 특정 플레이어가 획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서버의 롤백을 추천합니다.]

“뭐라고!!”

대분류 x:;에 속하는 모든 존재는 Satisfy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대악마 중에서도 x:; 코드를 부여받은 대악마는 단 8마리밖에 없었고, NPC는 5명에 불과했다.

플레이어와 접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 ‘시크릿 몬스터’로 분류되는 고대종 <자이언트 곱등이> 또한 x:;에 속하는 만큼 중요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엘프족의 개체수를 지금보다 10분의 1로 줄이고 12테를 흑화시킴으로서 ‘다크엘프’ 에피소드를 발생시킬 예정이었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겨 다크엘프가 된 12테들은 ‘이종족’ 에피소드의 서막을 올릴 예정이었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종족을 선택할 수 있게 된 플레이어들은 ‘대전쟁’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세력 구도를 만들게 될 예정이었다.

한데 모조리 날아갔다.

이게 갑자기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모니터에 떠오르는 각종 경고 메시지를 넋 나간 채 지켜보던 제3제작팀장 라훌이 소리쳤다.

“당장 비상회의를 소집해!! Satisfy 역사상 최초의 버그다!! 빠르게 대응해야해!!”

쩌렁쩌렁!

인도인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끔 완벽하게 구사하는 한국어가 제작팀원들의 귀에 꽂힌다.

허둥지둥,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감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던 제작팀원들이 번뜩 정신을 차리는 그때였다.

“버그 따위가 아니에요.”

운영팀장 윤나희가 등장했다.

그녀가 라훌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태입니다. 현재 상황에 문제점은 없어요.”

“내가 한국어를 잘못 배웠나?”

라훌은 아이큐 180이 넘는 천재다. 세계 시장을 모조리 장악해버린 Satisfy가 출시 된 이후 영향력이 높아진 한국어를 배우는 일도 그에겐 쉬웠다. 듣기와 말하기 모두 완벽하다고 그 스스로 단언했다.

한데 지금 윤나희의 발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외계의 언어 같았다.

“x:; 코드 몬스터가 플레이어와 조우한 것으로 모자라서 레이드 당했다고? 그런 헛소리를 나보고 믿으라고?”

“사실인걸요. 템빨왕과 상왕이 개입 되었다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되시려나요?”

“템빨왕과 상왕이라고...!”

“네. 일이 최악으로 꼬였어요. 상왕 키르가 세계수의 숲을 발견하는데 성공했고, 그와 동시에 엘프들을 재물화 시키려고 시도했죠.”

세계수를 잠시나마 병들게 만들고 엘프들을 현혹시켰다. 그리고 하필이면 ‘밤’에 다시 찾아와 엘프들을 모조리 마을로 불러들였다. 그 탓에 일부 엘프들이 곱등이에게 포식당하는 과정이 생략됐다.

“....갈 곳 잃고 배회하게 된 곱등이는 하필이면 그리드와 마주쳤고?”

“네.”

“.....”

라훌은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템빨왕 그리드의 저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제4회 국가대항전 <영웅 깨기>의 주인공이 된 그리드의 캐릭터 상세정보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뒤로 나자빠졌을 정도다. 그때 찧은 엉치뼈가 아직도 시큰 거린다.

라훌이 생각하기로, 제4회 국가대항전의 <영웅 깨기>를 클리어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크라우젤을 비롯한 기적의 5인방들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절레절레.

상념을 털어낸 라훌이 추측해보았다.

“메르세데스와 함께였나?”

메르세데스가 전설의 기사가 된 사건은 S.A그룹 내에서도 엄청 큰 화젯거리였다. 잠재력 능력치가 SSS급으로 분류되는 NPC가 어디 한둘이던가? 수천 단위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때를 기다리는 실정이었다. 어떤 NPC는 슬프게도 비명횡사하기도 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젊은 측에 속하는 메르세데스에 대한 S.A그룹의 기대감은 높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본래 예정대로라면 그녀는 광룡에게 살해당했어야한다. 제국이 멸망당하는 그날 말이다.

하지만 그리드와 크라우젤 때문에 광룡 에피소드가 삭제됐고, 이후 그리드에게 구원 받아 종국에는 그리드의 기사가 되었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인연 아니, 운명이었다.

“4팀장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어. 메르세데스는 단명할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욱 더 큰 애정을 품고 디자인했다고.”

혜안.

시간이 지날수록, 단련 될수록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하게 되는 패시브 스킬이다.

제4제작팀장 첸의 말을 빌리자면, 만약 메르세데스가 궁극적으로 성장할 수만 있다면 ‘예지’가 가능하다고 단언했을 정도다. 어차피 단명할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후 세계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낮았고, 그래서 사기 스킬을 몰아주었다고 했다.

“그런 괴물을 괴물이 거느리게 되었으니 누가 막겠.... 아닌데?”

납득하려던 라훌이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이언트 곱등이의 전투력이 28위 대악마와 동급이라는 점을 상기한 것이다.

“어떻게 곱등이를.... 아!”

기사 소환!!

그리드가 ‘오래 전’에 얻었던지라 기억에서 희미해졌던 인물들을 떠올린 라훌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알았다.... 이제 다 이해했어.”

독보적인 정보력을 재력으로 사버린 상왕 키르는 자신만의 수완으로 엘프라는 종족 자체를 손아귀에 쥐었고, 독보적인 무력과 인력을 갖춘 그리드는 총력을 동원해서 곱등이를 처리했다, 이거다.

그들의 능력을 떠올려보자 모든 상황이 납득이 됐다.

“그래.... 결국 롤백은 물 건너갔다는 거군. 플레이어가 직접 써내린 역사를 되돌릴 순 없는 법이니까.”

“그렇죠. 설령 버그였을지언정 회장님께서 롤백을 허락하셨을 지는 의문이지만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물이 엎질러진 원인에 잘못은 없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라훌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사달이 나지 않아 다행이군....”

우리의 회장님은 또 즐거워하고 계실 테지.

기적의 5인방에 대한 임철호 회장의 관심과 애정을 떠올린 라훌이 생각하는 순간.

“당장 회의를 소집하지 않고 뭐하는 건가!!”

사무실 저편의 입구쪽에서부터 누군가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누군가란 다름 아닌 임철호 회장이었다.

지난 수년 동안 기적의 5인방이 만들어내는 변수를 즐겁게 감상해왔던 그가 이토록 정색할 줄이야?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당황하는 윤나희 팀장과 라훌 팀장에게 저벅저벅 다가온 임철호가 사태의 심각성을 주지시켰다.

“플레이어와 NPC를 통틀어서 신화급 아이템을 보유한 사람의 숫자가 몇이지?”

“그게....”

제작팀장 라훌은 대답하지 못한다.

반면 운영팀장 윤나희는 즉각 대답했다.

“17명입니다.”

“그중 신화급 아이템 강화에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혼자서 여러 개의 신화급 아이템을 강화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밸런스가 무너질 테죠.”

강화는 아이템의 능력치를 상승시켜준다. 아이템의 기본 능력치가 높을수록 당연히 상승 폭도 컸다. 신화급 아이템의 강화 확률이 극도로 낮은 이유다.

“이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던 라훌이 탄식했다.

곱등이의 드롭 아이템을 떠올린 것이다.

고대의 무기 강화 주문서와 방어구 강화 주문서!!

최소 20퍼센트의 플레이어가 전설 아이템을 무장하는 시점에야 등장할 예정이었던 주문서다.

지금, 안 그래도 신화 아이템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플레이어는 범접조차 할 수 없는 강함을 뽐내는 중인 그리드가 아이템 강화에까지 성공한다면?

“기적의 5인방들은 물론이고 현존하는 대부분의 네임드 NPC들도 대적할 수 없게 돼.”

임철호 회장은 똑똑히 기억한다.

고대의 주문서.

대상 아이템의 강화 수치를 ‘확정적’으로 1에서 3 상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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