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1권 - 12화
“쇠락하는 영혼.”
“더러운 속삭임.”
“멜-피아의 땅.”
“솟구치는 욕망.”
드디어 전선에 나선 교황 데미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흑마법사들의 혹독한 환영회였다.
온갖 형태의 흑마법이 데미안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구속하고 무력화시키고자 시도했다.
부질없는 시도였다.
[교황은 어둠에 물들지 않습니다. 상태이상 ‘쇠락’에 저항합니다.]
[상태이상 ‘혼란’에 저항...]
[상태이상 ‘기아’에 저항...]
[상태이상 ‘폭주’에 저항...]
흑마법을 원천 차단해버리는 교황의 권능!
암흑속성 저항력 80퍼센트, 흑마법 계열 CC 저항력 100퍼센트를 자랑하는 데미안의 위용이 수천 흑마법사를 경악시킨다.
우리들의 마법이 아예 통하지 않다니?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흑마법사들이 허무감에 휩싸였고, 이는 전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레베카교 교황의 등장이 야탄교 교인들의 사기를 대폭 하락시킵니다. 야탄교 교인들의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60퍼센트 하락합니다.]
[야탄의 종에게는 교인을 이끌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야탄의 종의 사기는 꺾이지 않습니다.]
“무슨....!”
단지 존재감만으로 수천 흑마법사들을 약화시킨다고?
방어력이 극도로 하락하자 각국 기사들의 맹공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흑마법사 군단을 목격한 로제가 당황한다.
그녀는 알아야했다.
교황의 저력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을!
‘이토록 힘든 상황에서 싸워주었던 거구나.’
쉬지 않고 난무하는 흑마법 사이에서, 데미안은 자신이 결계에 갇혀있는 동안 교인들과 각국의 기사들이 얼마나 고된 싸움을 견뎌온 것인지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억누르는 저주를 감내하며 눈앞의 적과 사투를 벌이다니....
자리의 모든 이에게 경외심을 품은 데미안이 축복을 내렸다.
교황직을 2회째 역임할 당시 새롭게 획득한 스킬 <빛의 비>였다.
<빛의 비>Lv.1
레베카 여신에게 비를 내려달라 간청합니다.
시전자의 반경 300미터 구역에 성스러운 황금빛 이슬비가 내립니다.
비에 맞은 대상이 악하지 않은 경우, 현재 걸려있는 상태이상을 50퍼센트 확률로 극복하며, 최대 생명력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비에 맞은 대상이 악한 경우, 현재 걸려있는 상태이상의 지속 시간이 50퍼센트 확률로 2배 증가하며, 최대 생명력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생명력을 손실합니다.
스킬 마나 소모:5,0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50분
확정 정화가 아닌데다가 계수가 낮은 스킬이다.
하지만 성녀 루비조차 감탄할 대단위 치유, 공격 마법임엔 틀림이 없다.
반경 300미터 범위의 모든 존재를 대상으로 지목하는 스킬이었으니까!
쏴아아아아아아-
밤의 어둠을 물리치는 황금의 비가 쏟아지자.
“크아아아아아악!!”
흑마법사들은 고통에 몸서리치는 반면.
“아아....!”
“이제 좀 살 맛 나는군!”
“교황 성하 만세!!”
레베카 교인들과 각국의 왕족, 기사들은 평온함을 맛보았다. 잃었던 체력을 되찾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그들의 사기가 충천했다.
전세가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저릿한 고통과 전율 속에서, 로제는 큰 의문에 휩싸였다.
‘애초에 무슨 수로 결계를 탈출한 거지?’
야탄교 세계관에서 <야탄의 정수>는 만능 아이템이었다.
단순한 저주부터 시작해서 대악마 소환에 이르기까지....
야탄의 정수와 흑마법이 결합하면 막말로 못하는 일이 없었다.
한때 제국의 자랑이었던 최강의 기사를 와해시킨 것도, 타락한 교황 드레비고의 욕망을 부추겼던 것도, ‘태초’라는 이명을 지닌 세계수를 오염시킨 것도 모두 야탄의 정수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으니 말 다했다.
야탄의 정수가 지닌 힘은 절대적이었고, 야탄의 정수와 흑마법의 결합으로 탄생시킨 최강의 결계는 교황 데미안을 끝까지 속박시켜야함이 정상이었다.
한데 데미안은 대체 무슨 수로 결계를 탈출했단 말인가?
의문에 휩싸여있는 로제에게, 이미 지나간 일에 집착해봤자 부질없다고 말하듯이 알리번은 소리치고 있었다.
“레베카의 개여! 당장 이 더러운 비를 멈춰라!!”
야탄의 세 번째 종 알리번은 교황 데미안을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바위에 박힌 성검 위에 야탄의 정수를 뿌리려는 몸짓을 취하면서 연신 외쳤다.
“당장 저항을 멈추지 않으면 너희들의 상징이 사라질 것이다!!”
“....!!”
교황 데미안이 등장하자 안도하고 있던 레베카교 교인들이 다시금 동요했다.
교단의 상징이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상기한 것이다.
“이걸 어찌해야....”
유서 깊은 집단일수록 상징에 얽매이는 법이다. 사람들은 역사를 간직한 상징물의 존재를 통해서 자신이 속한 조직에 자부심을 느꼈다. 세계 각국의 나라들이 괜히 국보를 지정하고 아끼는 게 아니다.
교인들을 다스려야할 장로들조차도 안절부절 못하는 그때, 데미안은 알리번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반응했다.
“그깟 성검 없애버려.”
“....?”
비단 야탄의 종과 장로들뿐만 아니라, 모든 야탄교 교인들과 레베카교 교인들이 귀를 의심했다.
전쟁의 포화가 잠시 멈춰버릴 정도였다.
교황 데미안이 교단의 상징을 이리 쉽게 포기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그들 모두 당황한 것이다.
데미안은 웃고 있었다.
“그거 말인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골동품이야. 뭐? 상징? 그게 없다고 해서 레베카교가 레베카교가 아니게 될까? 교황이 교황이 아니게 될까? 역사? 레베카교의 역사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서적에 낱낱이 서술되어 있어. 한낱 골동품에 집착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황당한 논리로다!! 네놈의 주장은 대륙 곳곳에 존재하는 모든 유물의 가치를 부정하는 셈이나 다름이 없어!!”
“너는 그 유물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
“어차피 대악마에게 인계를 바치고 인류를 가축으로 전락시키는 게 목적인 네가 유물의 가치를 논하는 건 또 무슨 궤변이지?”
“.....”
“애초에, 아무리 훌륭한 가치를 담고 있다고 해봤자 결국 과거의 잔재일 뿐이야. 그까짓 물건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숨과 삶이 더 중요한 법이라고! 알았냐?! 이 악당아!!”
데미안이 수십 년 동안 접해왔던 애니메이션과 만화 속 주인공들이 외쳐왔던 대사다.
소년 만화에 큰 영향을 받은 데미안의 사상은 올곧았고, 그만큼 단순하여 알리번 입장에서는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애초에 논쟁의 주제부터가 그에게 너무 불리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알리번의 모습은 야탄교 교인들의 사기를 한풀 더 꺾어버리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베카교 교인들의 사기가 오른 것도 아니었다.
교황의 무책임한 모습에 실망한 레베카교 교인들 또한 사기가 저하되기 직전이었으니 상황은 난장판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데미안은 <성검 탈환> 퀘스트를 진행 중이다.
성검을 탈환하지 못하고 퀘스트를 실패할 경우 그가 떠안게 되는 페널티는 무척 컸다. 반드시 성검을 되찾아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검을 하찮은 골동품 취급한 데에는 나름의 속내가 있었다.
생각해보라.
만약, 데미안이 성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상황이 어찌 됐겠는가?
알리번은 성검이라는 약점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것이고, 데미안과 교인들의 사정은 더욱 난처해졌을 것이다.
결국.
“크으....!”
알리번이 성검을 품에 넣었다. 교황이 성검을 하찮은 것 취급하고 있었으니 그 또한 언제까지고 성검을 갖고 협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한 데미안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귀찮다만 내가 직접 처리해주마! 나와라!! 지옥의 파수견이여!!”
알리번은 대량의 켈베로스를 소환했다.
머리 3개 달린 지옥의 마수들이 입에서 불을 토하며 데미안에게 덤벼들었다.
신성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데미안을 뒷걸음치게 만든다.
야탄의 일곱 번째 종 구릉이 나서고 있었다.
타앗-!
찐빵 3개 붙여놓은 것처럼 둥글고 뚱뚱한 신체를 이토록 날렵하게 움직이다니?
불길을 피하느라 대처가 느릴 수밖에 없었던 데미안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진다.
그의 시야에 수십 개의 주먹이 쏟아지고 있었다.
“내 돌주먹은 초당 12방 날아간다! 이랴아아아압!!”
펑-!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야탄교 제일의 몽크!
초당 12발 쏟아지는 구릉의 동그란 주먹은 어떤 파란색 고양이의 손을 연상시켰지만, 그 귀여운 겉모습과 달리 속은 정말 돌처럼 단단했다.
초당 12회씩 강타당하는 데미안의 갑옷 곳곳이 조금씩 찌그러질 정도였다.
“크하하하!! 어떠냐!! 빠르고 강한 구릉님의 초당 12회 주먹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콰작!!
쿠좌자작!!
수천 명의 흑마법사들을 압도시켰던 교황을,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복날 개처럼 패기 시작한 구릉의 기세가 등등해진다.
우월감에 휩싸인 그는 데미안을 이대로 죽음까지 몰아붙일 각오였다.
하지만 데미안은 초당 30회 가까이 칼을 휘두르는 괴물과도 싸워본 사내였다.
파그마의 검무, 연(聯)과 비교하면 느리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구름의 주먹 쇄도에 데미안은 차츰 적응해나갔다.
시야의 사각은 실드 마법으로 지키고, 눈으로 쫓을 수 있는 공격은 사각의 방패로 막으며, 구릉이 12회의 공격을 끝낸 후 잠시 숨을 고르는 0.5초의 틈을 노리고 칼을 찔러 반격했다.
“컥...!”
비명을 토하는 구릉의 눈에 당황하는 빛이 떠오른다.
데미안이 콧방귀 뀌었다.
“나는 0.1초를 논하는 괴물들하고 싸워봤다고.”
쏴아아아아아아--
성스러운 빛에 휘감기기 시작하는 데미안의 모든 능력치가 극도로 상승했다.
한편....
[악마 <듀레블>이 큰 피해를 입고 도주합니다.]
[악마 <카오>가 큰 피해를 입고 도주합니다.]
[리치 <무무드>의 생명력이 20퍼센트 미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저 개자식이.’
안 그래도 중상을 입고 있던 아그너스에게 데미안이 내린 <빛의 비>는 치명적이었다.
솔직히 아그너스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데미안 저 빌어먹을 놈, 처음 등장할 때는 자신을 도와주기에 우군이라고 인식했더니 곧바로 나와 내 악마들을 공격한 것이다.
꽈드득, 이를 간 아그너스가 눈앞의 실베나스를 노려보았다.
아그너스와 마찬가지로 비를 맞은 실베나스 또한 여전히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일단 네놈부터 죽이고....!”
“빌어먹을 배신자 놈....! 내 네놈을 찢어 죽인 후....!”
“교황 놈의 목을 날려주마!!”
“저주받을 레베카의 개를 처단....! 응?”
그러니까 적이야, 아군이야?
우리가 왜 싸우기 시작했던 거지?
종잡을 수 없는 미친놈과 상종하게 된 실베나스는 여러모로 답답하고 억울했다.
같은 시각.
“이게 문제였군요.”
교황청 아래의 작은 마을.
교황청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세워진 결계를 파악한 스틱세이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결계 때문에 교황청까지 이동할 수 없었던 겁니다. 결계를 분석하고 해제하려면 또 많은 시간이....”
“.....”
악한 존재의 출입만을 허용하는 결계.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성기사 무리들을 등지고 선 채 결계를 노려보던 그리드가 곧바로 해결책을 떠올렸다.
“흑화.”
“전하....!”
사지에 홀로 뛰어드는 꼴이나 다름이 없다.
홀로 결계를 뚫고 지나가는 그리드를 스틱세이가 말리려고 했지만.
“전하께서는 왕비님과 왕자님을 구출하셔야합니다.”
역으로 메르세데스가 스틱세이를 말렸다.
오로지 그리드의 안전에 신경 써야할 기사가 이딴 태도를?
스틱세이는 황당해 했지만, 도리어 그리드는 만족의 미소를 피어 올린다.
“바로 그거야. 결계를 해제하는 즉시 뒤쫓아 오도록 해. 그때까지 나는 아이린과 로드를.....”
콰아아아아앙!!
그리드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수십 개의 흑마법이 동시에 쇄도하며 그를 덮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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