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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814화 (809/1,794)

템빨 45권 - 4화

우와아아아!!

함성이 끊이질 않는다.

버프를 삭제하는 옥빛의 참격과 총탄 세례를 막아 내는 기술의 향연에 관중들이 열광했다.

데미안의 강점을 무력화시키는 유라의 이질적인 힘이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고, 빠르게 쏘아지는 총탄에 대응하는 데미안의 컨트롤 솜씨에 또 많은 사람들이 넋을 잃었다.

『유라 선수는 작년의 <성검 뽑기>에서 크라우젤 선수와 대등하게 싸운 전력이 있죠. 그때부터 느낀 거지만 일대일 실력이 굉장히 출중하네요. 저만한 실력자가 한동안 PvP에 출전하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요?』

『한국은 선수층이 얇지 않습니까? 1~2년 전에는 특히 더 심했고요. 아무래도 메달 하나하나가 아쉬운 입장이니만큼 그리드와 종목이 중복되는 일을 피해 온 거겠죠.』

『그리드의 불참이 유라를 재조명시킨 셈이군요.』

『유라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평가가 전반적으로 수정되는 중입니다. 그리드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재 메달 순위는 6위. 은메달과 동메달의 숫자는 턱없이 적지만 금메달을 무려 6개나 확보했습니다.』

『대단하네요. 이제 그 누구도 한국을 약소국이라고 평가할 수 없겠어요. 유라가 PvP에서 금메달을 따고, 다른 선수들이 마왕 토벌전에서 활약해 줄 경우 3위권도 충분히 노려 볼 수 있겠는데요?』

“쿨럭……!”

급기야 모든 버프를 잃은 데미안의 옆구리에 섬전이 꽂히고 있었다.

피를 토하며 주저앉은 데미안이 곧바로 쏘아지는 탄환을 방패로 막아 낸 후 방패 뒤에 숨겨 두었던 검을 내질렀다.

채챙-! 챙!!

빠르게 이어지는 공방.

어느새 맞물린 검과 검을 사이에 둔 데미안이 유라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음을 엿봤다. 복부를 겨누는 총구를 방패로 밀어낸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괴로워 보이시는군요.”

데미안과 템빨단원 수준의 강자들이 경쟁률 낮은 종목에 출전할 경우 금메달을 얻을 확률은 상당히 높다.

하지만 그들이 굳이 PvP에 참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즐거웠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페널티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전력으로 승부에 임할 수 있는 결투의 장.

즐겁지 않을 리가 없다.

한데 유라는 괴로워 보였다.

열정과 환희가 아니라 불안과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상태로 필사적인 모습… 보기 힘들다. 마치 벼랑 끝에 선 사람 같았다.

“혹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세요.”

“……?”

“그리드 님의 친구는 저의 친구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다 하시면 언제라도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데미안은 국대전을 앞두고 새롭게 얻은 스킬 <성검 전개>를 사용하는 일을 망설이고 있었다.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유라를 상대로 전력을 꺼낸다는 게 영 꺼림칙했다.

물론 봐준다는 게 아니다.

성검을 전개한다고 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유라는 강했으니까.

다만, 만에 하나의 일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내내 굳어 있던 유라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치명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풍경을 흑백으로 만들어 버리는.

“고마워요. 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빛의 검술.

일반적인 웨폰 마스터리 스킬보다 높은 공격력과 명중률, 치명타율을 보장하며, <악마의 죄업>을 소모할 경우 대상의 버프를 삭제하거나 디버프를 안기기도 하는 최강의 마스터리 스킬이다.

데빌 슬레이어의 고유 마력을 상징하는 옥빛의 기운을 머금은 유라의 세검이 데미안의 검을 떨쳐 내고 찌르기를 적중시키면서 미약한 효과의 디버프를 걸었다.

“전력으로 싸워 주세요.”

유라는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그녀는 오직 결과만이 필요했다.

하지만 거짓된 승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연 그걸 명예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유라는 데미안이 망설임을 거둬 주길 바랐고, 그녀의 마음은 데미안에게 제대로 전달됐다.

“알겠습니다.”

스와아아아아-!

방패를 거둔 데미안의 왼손에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이는 백광이었다.

그것은.

“성검 전개.”

성스러운 검으로 쏘아져 유라를 덮쳤고, 데미안에게는 넘치는 힘을 부여했다.

***

“허…….”

그리드는 유라와 데미안의 대결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데미안은 몇 달 못 본 사이에 급격히 성장해 있었고, 유라는 걱정한 것이 무안할 정도로 강했으니까.

두 사람의 대결은 크라우젤과 영웅의 대결만큼이나 화려하고 치열했다.

올해 PvP의 1순위 우승 후보로 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심지어 그리드조차도 피가 끓어올랐다. 저들과 제대로 싸워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유라가 마왕 토벌전에 불참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음.”

총 15분에 가까운 교전 끝에 승부가 갈렸다.

성검의 지속 시간이 끝난 후 데미안은 크게 약화된 반면 유라의 집중력은 더욱 상승했다. 지옥 도약 스킬을 절묘하게 활용해서 데미안의 방패를 무의미하게 만들더니 급소를 꿰뚫는 데 성공했다.

이제 유라 홀로 무대에 남았다.

치열한 접전 끝에 이룬 승리이건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괴롭고 쓸쓸해 보였다.

물론 그리드이기 때문에 눈치챌 수 있는 표정이었다.

유라는 웃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기뻐하고 있다고 해석했으니까.

하지만 유라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그리드는 그녀의 미소 속에 감춰진 그늘을 엿볼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조금 있다가 전화라도 걸어 볼까?

아니, 아니다.

아무리 동료 사이라고 해도 남녀가 유별한데 단지 걱정된다는 이유로 전화하는 건 좀…….

‘우리가 뭐 특별한 사이도 아니고. 너 따위가 표정만 보고 뭘 아냐고 기분 나빠 할 수도 있어.’

아영이처럼 비웃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꾸 걱정이…….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망설일 때였다.

“영우 씨, 어서요!”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윤나희 팀장이 재촉했다.

<마왕 등장> 출연 때문이었다.

마왕 등장은 일종의 쇼케이스였다.

쇼케이스 참가는 그리드가 사인한 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이기도 했고.

“갑시다.”

유라와 데미안의 대결만큼은 꼭 봐야겠다며 늦장을 부렸던 그리드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

S.A그룹은 마왕 토벌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플레이어가 만들어 가는 세계.

임철호 회장이 추구하는 바가 마왕 토벌전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왕 토벌전의 특성상 흥행성도 뛰어나 상업적으로도 기대가 컸다.

마왕 토벌전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지?”

PvP 8강전 경기가 모두 끝난 후.

경기의 여운에 잠겨 흥분해 있던 10만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십억 시청자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PvP의 무대가 갑자기 어둠에 삼켜진다 싶더니 새로운 무대가 나타난 까닭이다.

저 멀리 높게 솟은 성이 보이는 평야였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래?”

“4강전부터는 무대가 바뀌는 건가?”

사람들이 큰 흥미를 보였다. 관중들은 화장실도 못 간 채 자리를 지켰고,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리질 못했다.

이제 중요한 경기들만 남긴 시점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과 집중력이 최대치에 이른 것이었다.

S.A그룹이 굳이 이때 마왕을 출연시키는 이유다.

“……?”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웅장하고 오만하며 도발적인 선율이 사람들을 압도하고 위축시키더니 이내 흥분시켰다.

선율을 만드는 악기의 정체를 눈치채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

국가대항전 오프닝 영상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인영이 사람들의 뇌리에 스친다.

수만 개의 파이프가 연결된 초대형 오르간 옆에 기대어 선 채 거만하게 손가락을 까딱이던 인영.

“헉……!”

오르간, 수수께끼의 인물, 이제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종목, 그리고 마왕.

온갖 퍼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끼워 맞춰진 결과.

“마왕……?”

“마왕이다!!”

곳곳에서 정답이 튀어나왔다.

쿠르릉-!

먹구름 낀 하늘에 벼락 한 줄기가 내리쳤고.

“큭큭큭.”

평야 위로 누군가가 등장했다.

회색 가면으로 눈가를 가린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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