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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835화 (830/1,794)

템빨 46권 - 4화

인외의 영역이라고 칭송받는 업적과 명성이 무색하게도, 크라우젤은 등까지 보이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드와의 거리를 최대한 벌렸다. 이기어검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진 시점부터 스스로 움직이는 4개의 황금 손은 난적이었다.

쩌엉-!

지형과 지물에 구애받지 않고 날아온 갓 핸드가 휘두르는 망치.

검막을 펼쳐 이를 막아내는 크라우젤의 시야에 가까워진 그리드의 모습이 포착됐다.100퍼센트 축적 된 투기의 힘을 빌린 그리드는 근력과 민첩성 양면에서 크라우젤을 압도하고 있었다.

스파앗-!

크라우젤의 인벤토리로부터 한 자루의 검이 솟구쳐 나왔다. 이기어검술의 전개였다.

빗살처럼 쏘아진 그것이 그리드를 덮쳤으나.

쩌어어엉-!!

청룡의 소드 브레이커에 맞물리고, 비틀리더니 산산조각났다.

벌써 몇 개의 칼이 그렇게 사라졌다.

전투는 비상식적일만큼 파괴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은, 그리드가 일방적으로 파괴하는 중이다. 갓 핸드의 힘으로 크라우젤을 손쉽게 압박하는 한편 크라우젤이 날리는 검은 죄다 소드 브레이커로 부숴버렸으니 파괴신이 따로 없었다.

-...템빨 지리고 오진다.

-그리드가 직접 만든 신작이겠지? 양산형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나한테 팔아줬으면 좋겠다.

-난 그럼 집이라도 팔아서 살거임.

-200억짜리 집에 사시나 봐요?

-200억 줘도 안 팔걸? 그리드가 직접 만드는 아이템은 죄다 템빨단 내에서만 유통된다고 함.

-템빨단에 가입하는 게 진리인 건가...

-응 아무나 안 받아줘 ㅅㄱ

대중의 시선이 그리드의 왼손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푸른 뇌류가 흐르는 소드 브레이커.

현재 그것은 지상 최고의 명검이었고 세계 제일의 보물이었다.

그리드라는 개인이 만든 물건이, 세상사람 모두가 탐내도 이상하지 않을 희대의 역작 취급을 받는 것이다.

대기실의 극검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드가 만든 작품들을 대한민국의 국보로 삼아야한다고. 그것이 대한애국협회장인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쩌엉-!

또 하나의 검이 소드 브레이커에 부숴지고 있을 때.

턱!

크라우젤이 불현듯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 발끝에 힘을 모으더니 몸을 용수철처럼 뒤로 튕겼다.

“...!”

빠르다.

이기어검을 부수다가 뒤늦게 이변을 눈치 챈 그리드가 화들짝 놀랐다. 백광보를 전개한 크라우젤의 신형이 어느새 그의 머리 위에 있었다. 떨어지는 기세가 무서워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아날 지경이었다.

“유성 검.”

쿠와아아앙-!

강맹한 기파가 크라우젤의 검 끝으로부터 분출되었다.

그리드가 밟고 선 대지가 족히 한 뼘 이상 주저앉았다.

“살(殺)!”

어깨가 짓눌리는 압력 속에서, 그리드 또한 스킬을 사용했다. 당연히 열망의 무아검으로 전개했다. 기본 공격력도 낮고 이도류 페널티까지 받고 있는 소드 브레이커로 스킬을 전개해봤자 위력이 제대로 발휘될 리 없었으니까.

콰아아아아앙-!!

살과 유성 검의 충돌이 전장을 격동시켰다.

수십 미터 바깥까지 뻗어나간 충격파가 넓게 분포되어 있는 대리석 기둥들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곳에는 천장이 없다.

쓰러진 기둥들은 어디까지나 허공을 받치고 있던 장식품에 불과했다.

“단죄 검.”

“...!?”

본래 크라우젤은 스킬을 남용하지 않는다. 스킬과 스킬 사이에 꼭 일반 공격을 섞어가며 싸웠고, 이는 스킬이 발생시킨 효과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한편 재사용 대기 시간을 안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데 곧바로 스킬을 연계하다니?

평소와 다른 모습에 살짝 당황한 그리드가 락(落)으로 응수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곧바로 연살파극(聯殺波極)의 보법을 밟았다.

직감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보내온 까닭이다.

실제로 단죄 검에 깃든 힘은 유성 검과 차원이 달랐다. 우주 검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다.

쾅! 콰쾅!! 쿠콰콰콰쾅!!

얽히고설키는 두 자루의 검이 포효했다.

불꽃과 가시가 난무했고 돌기둥이 솟구쳤다.

콰자작!!

그리드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돌기둥을 2개의 갓 핸드가 막아냈고.

쩌어엉-!!

크라우젤의 얼굴을 후려치려던 나머지 2개의 갓 핸드는 이기어검에 가로막혔다.

연살파극과 단죄 검의 여파가 끝나자, 그리드는 곧바로 소드 브레이커를 휘둘러서 백호 검의 내구력 저하를 유도했지만.

휘리릭!

백호 검을 역수로 쥔 크라우젤이 소드 브레이커의 영향 범위로부터 벗어났다.

크라우젤은 자력의 범위와 발생 확률을 이미 간파하고 있던 것이다. 이기어검을 괜히 몇 번이나 소모한 게 아니었다.

푸욱-!

백호검이 그리드의 쇄골을 쑤셨다.

발할라와 삼겹갑의 결합부가 위치한 곳으로, 미늘의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백호검의 내구력이 손상되지 않았다.

퍼억-!

무릎을 올려 차 그리드를 밀쳐내고 백호검을 회수한 크라우젤이 <우주 검>을 전개했다.

그때야 비로소.

‘아!’

그리드는 크라우젤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크라우젤이 스킬을 남발하기 시작한 이유, 청룡의 소드 브레이커의 효율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나쁘지 않은 발상이다.

소드 브레이커의 공격력과 내구력으로는 스킬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자원에는 한도가 있는 법이다.

스킬로만 싸운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종횡무진.”

그리드가 칭호 은밀한 영웅에 귀속 된 스킬을 사용했다.

작년, 그리드는 크라우젤의 우주 검을 이 스킬로 회피하고 반격한 바 있다.

이번에도 우주 검을 피해서 접근한 후, 신장의 효과 덕분에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 된 연살파극으로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주 검을 피하지 못했다.

서걱-!

“....!?”

크라우젤의 우주 검은 이제 타깃형 스킬로 강화되어 있었다.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가 아이템 제작, 분해, 개조, 합체, 변신 등의 방법으로 아이템을 강화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검성 크라우젤은 본인의 검술을 재구성하여 성능을 변화시키거나 강화할 수 있었다.

작년, 세상조차 가르는 최강의 궁극기 <우주 검>이 종횡무진에 허무하게 빗나간 것을 경험한 그는 우주 검을 타깃형 스킬로 강화시켜버린 것이다.

[32,09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왼쪽 팔이 절단 당했습니다!]

[한쪽 팔을 잃은 대가로 민첩성과 근력이 큰 폭으로 하락합니다!]

“크아아아악!!”

반으로 쪼개진 대지와 하늘 사이.

분수 같은 피를 뿜어낸 그리드가 어깨를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전투 내내 크라우젤을 압박했던 청룡의 소드 브레이커가 잘려나간 팔과 함께 떨어져 지면을 나뒹굴고 있었다.

크라우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드에게 쇄도하여 인정사정없이 검을 휘둘렀다.

고작 한 걸음 좁혀올 때마다 3회의 찌르기가, 또는 3회의 베기가 그리드를 난도질했다.

[대상에게 4,12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백호검의 내구력이 21 하락하였습니다.]

[대상에게 4,390의 피해를...]

[백호검의 내구력이....]

쩌정! 쩡!!

백호검의 파편과 그리드가 쏟아내는 붉은 피가 함께 비산한다.

그리드의 생명력은 한계까지 떨어지고 있었고, 백호검 또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채챙! 채채챙!!

갓 핸드들은 크라우젤이 재차 전개한 이기어검에 다시 붙잡혔다.

전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이, 이럴 수가...!』

『치명상을 입은 그리드 선수가 저항조차 못하고 당하고 있습니다...!!』

해설진의 경악성이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환호하는 관중이 있는 반면 아연실색하는 관중이 있었다.

혼돈 속에서, 그리드는 유라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면 안 돼.’

유라와 함께 동창회에 가던 길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내심 불안하던 상태에서 엄청난 의지가 됐었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영이를 그렇게 쉽게 떨쳐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금 문제로 원형탈모를 겪었을 때도 기억난다. 유라가 건네주었던 탈모약은 반트너가 추천해준 탈모약 못지않게 효과가 좋았다. 눈앞이 깜깜하던 와중에 너무 감사했다. 젊음을 구원 받은 기분이라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방송사의 능구렁이들에게 당할 때마다 달려와서 도와주기도 했었지.’

함께 찾아갔던 기사식당에서 즐거워하던 모습은 여전히 가끔 꿈에도 나온다. 유라를 마냥 아름답다고 생각했었지, 그런 귀여운 표정도 지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보다 연하라는 사실을 자각했었다.

...그녀를 잃고 싶지 않다.

계속 내 곁에 둬야한다.

츠카칵!!

[3,250의 생명력을 잃었습니다.]

삼겹갑 때문에 지속적인 내구력 손상을 겪은 백호검이 무뎌져 약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적이지는 않다.

최초의 왕 칭호의 보호막 효과, 티라멧의 힘의 치유 효과, 크레이의 힘의 흡혈 효과.

이미 수십 분 째 이어지는 전투 동안 그리드는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모든 패를 소모한 상태였다.

물론 크라우젤도 마찬가지였다.

크라우젤에게도 남은 패가 몇 개 없었다.

대진 그룹 회장과 사장이 아싸 가오리를 외쳤을 때도, 유라의 눈이 흐려졌을 때도, 크리스가 페라리와 부가티를 논했을 때도.

그리드와 크라우젤 두 사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정말로 치열하게 싸웠고, 그 과정에서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적어도 생존과 관련한 패는 두 사람 다 불사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 생존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말이다.

“전격 마기의 폭풍.”

전투 초반, 크라우젤이 산산이 찢어놓았던 하늘의 구름들은 바람에 흘러간 지 오래다. 새벽녘의 하늘에는 이제 새로운 구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농도가 꽤 짙었다.

비와 벼락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 사실을, 그리드는 이제야 봤다.

팔을 잃고 쓰러진 덕분에.

그제야 하늘을 올려볼 수 있었다.

“....!”

그리드의 생명력이 채 5천도 안 남은 시점.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던 크라우젤이 깜짝 놀라서 자리를 이탈했다. 그가 섰던 자리에 벼락이 꽂히고 있었다.

한 발로 끝이 아니다.

펑! 펑! 퍼펑! 퍼퍼펑!!

폭풍우에 갇혀 둔화된 크라우젤의 정수리를 노리는 벼락은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초감각에 의지한 크라우젤은 충분히 회피했고, 그리드는 그 틈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비에 젖은 바닥을 나뒹구는 청룡의 소드 브레이커를 회수하는 그.

열망의 무아검을 입에 물고, 소드 브레이커를 외팔에 쥔다.

<신격>은 대장장이 관련 스킬의 캐스팅과 재사용 대기 시간을 삭제해주는 스킬.

1일 1회밖에 사용할 수 없으나, 1회 사용 시 2번까지 사용할 수 있다. 결국 2번 사용한다는 뜻이다.

‘아이템 합체.’

파직-! 파지직!

열망의 무아검과 청룡의 소드 브레이커가 하나가 되었고.

‘아이템 강화.’

그리드는 인벤토리에 남아있는 강화 주문서를 모조리 사용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처음에도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없어서 실패했다.

크라우젤이 이미 다시 쇄도해오고 있었으니까.

주문서를 무기에 바르는 동작을 취하면서 크라우젤을 상대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파쇄 검!”

“십만대군 학살검.”

쩌정-! 쩌저저저저정!!

열망의 검과 하나가 된 소드 브레이커.

이제 그것은 훌륭한 스킬의 매개가 되었다.

완전히 박살난 백호검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대로 검기에 휩쓸린 크라우젤은 넝마가 돼서 불사 상태에 돌입했다.

외팔이가 된 그리드의 스탯이 저하되었다고 해도 대상을 30회 공격하는 십만대군 학살검과 아이템 합체의 위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물론 그리드도 무사하지 못했다.

파쇄 검은 적의 손목을 꺾어 비틈으로서 골절과 아이템 파괴를 유발하는 스킬.

안 그래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리드의 손목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생명력도 사라져 불사 상태에 돌입했다.

“크라우젤!!”

“그리드...!”

쩌어엉-!

백호검 대신 새로운 검을 꺼낸 크라우젤의 검이 산산조각난다.

순식간에 또 무기를 잃고 무방비 상태가 된 그를 그리드가 공격하려 했지만 상태 이상 골절 탓에 공격 속도가 느려진 게 문제였다.

반격에 실패했고, 그 틈에 크라우젤은 또 새로운 검을 꺼냈다.

쩌저정-!

또 다시 깨지는 검.

스파앗-!

또 다시 나타나는 새로운 검.

그리고 또 다시 깨지는 검.

몇 번이나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는 과정 속에서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불사 지속 시간이 끝났다.

동시에.

스파아앗-!

크라우젤의 인벤토리에 남아있는 모든 검이 동시다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작 다섯 자루의 검이었지만, 그리드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쐐액-!

쏟아지는 칼의 비가 그리드를 덮쳤다. 그 뒤를 크라우젤이 바짝 뒤쫓고 있었다.

<검을 찬미하는 시>를 외우며, 검과 하나가 된 그는 그대로 그리드를 관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가로막히고 말았다.

“연살파극.”

“...!?”

행운이 낮은 상태에서는 쓰레기라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의 스킬.

신장이 변수를 만들어냈다.

쩌저저저정-!

다섯 자루의 검이 연살에 박살나고.

콰르르릉!

검과 하나가 돼서 강철처럼 단단해진 크라우젤의 몸 위로 파와 극이 떨어졌으니.

잿빛으로 변색 된 크라우젤의 시야에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마왕 토벌에 실패하였습니다.]

이겼다.

감격에 미소 지은 그리드가 혼잣말하듯이 읊었다.

“대진 자동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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