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852화 (847/1,794)

템빨 46권 - 21화

[네펠리나가 당신의 상태를 점검합니다.]

[네펠리나는 당신의 능력치가 매우 부족하다고 판단합니다.]

‘헉. 설마?’

드래곤의 축복은 과연 무엇일까?

안 그래도 기대하고 있던 그리드의 기대감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자신을 관조한 드래곤이 부족한 부분을 한 번에 집어내었으니, 당연히 그 부족한 부분을 충족시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민첩성이나 지력을 올려주려는 건가?’

사실 그리드의 능력치가 부족하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

동급 플레이어 중에서. 아니, 20억 플레이어 중에서 그리드보다 능력치가 높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리드의 평균 능력치는 굉장히 높았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다.

그리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스탯을 탐내고 있었고, 네펠리나가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위대하신 드래곤 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한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네펠리나는 그리드의 능력치를 올려주지 않았다.

[네펠리나가 당신이 부족한 부분을 극복할 수 있게끔 축복을 내려줍니다!]

[앞으로 몬스터 사냥 시 획득하는 경험치가 10퍼센트 추가됩니다!]

[앞으로 보스 몬스터를 사냥 시 획득하는 경험치가 20퍼센트 추가됩니다!]

“....”

그렇다.

네펠리나가 내려준 축복은 당장의 결과가 아니라 더 나은 결과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한껏 부풀어있던 그리드의 기대감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아니, 이게 축복입니까?”

부정하고 싶지만, 맞을 것이다.

이미 그리드의 상태창에는 <드래곤의 축복>이라는 효과가 떡하니 명시돼 있었고 경험치 상승 버프라는 내용까지 친절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네펠리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럼 그게 저주겠느냐?”

“그건 아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스킬을 강화시켜줬던 여신의 축복처럼 뭔가 극적인 효과를 바랐던 그리드는 예상치 못한 경험치 버프 효과에 큰 실망감을 느껴야했다.

‘하, 명색이 드래곤이라는 녀석이 고작 경험치 버프를 축복이라고 주다니. 버프 기간은 언제까지... 어?’

축복 효과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그리드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드래곤의 축복>

★성장의 가호★

몬스터 사냥 시 획득하는 경험치가 10퍼센트 추가.

보스 몬스터 사냥 시 획득하는 경험치가 20퍼센트 추가.

“....?”

없다.

어디에도 ‘유지 기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거, 설마?

‘무한으로 지속되는 버프라고?’

일반인 기준으로 경험치 버프는 굉장히 희귀하고 효율이 높다.

일반인은 국가대항전 보상으로 주는 경험치 버프 외에는 경험치 버프 자체를 체험할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막대한 명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명성 상점에서 뽑기를 통해서 경험치 버프 물약을 확보할 수 있었고, 경험치 버프 물약의 경험치 상승량은 무려 20퍼센트였다.

그래서 드래곤의 축복을 보고 가치가 적다고 판단했었지만, 이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경험치 버프 물약은 3일이라는 지속 시간을 지닌 반면 드래곤의 축복은 영구히 지속되는 버프였다.

그리드는 늘 남들보다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보스 몬스터 상대로는 20퍼센야!’

이 상태로 경험치 버프 물약까지 복용한 다음에 사냥에 임하면?

국가대항전 종합순위 1위 버프에 준하는 버프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꿀꺽!”

축복의 가치를 뒤늦게 깨달은 그리드가 마른 침을 삼킨다.

네펠리나가 꼬랑지를 살랑거렸다.

“이제야 눈치 챈 모양이구나. 나는 네게 무척 큰 축복을 내려준 것이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드는 네임드 NPC들의 레벨이 오르는 구조를 떠올렸다.

플레이어의 평균 레벨[email protected] 보정 효과를 받고, 추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꾸준히 레벨이 오르는 그들의 레벨을 플레이어가 따라잡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리드에게는 가능성이 열렸다.

네임드 NPC의 레벨 업 속도를 따라붙을 수 있는 가능성이!

“감사합니다!”

제국의 공작들, 그리고 다섯 기둥과 그랜드마스터.

마지막으로 양반 가람....

평생토록 나보다 앞서 갈 것처럼 보였던 그들의 등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기쁨에 전율한 그리드가 네펠리나를 와락 껴안았다.

네펠리나가 현재 귀여운 새끼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감을 표현하기에 거부감이 없었다.

“히끅...!”

갑자기 인간에게 껴안기고 만 네펠리나의 작은 날개가 위로 솟구쳤다.

“네, 네놈, 이 무엄한...! 무슨 짓이냐!!”

“아, 죄, 죄송. 너무 귀엽고 좋아서 그만 실수를...”

“귀, 귀엽고 좋다고!? 네, 네놈은 영원토록 우러러봐야할 존재를 뭐, 뭐로 보고...!”

파닥파닥!

연신 날개를 퍼덕이는 네펠리나의 몸체가 급기야 둥실 떠올랐다. 천하의 그리드도 감당하기 힘든 마력의 기류가 휘몰아치면서 공간 개조 마법이 불안정해졌다. 주변의 풍경이 노이즈처럼 일그러졌다.

“히이이익!”

안 그래도 죽을상을 짓고 있던 요리사 이안이 겁에 질려 자지러졌다.

어느새 무릎을 꿇은 마안족 왕은 고개를 조아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미래의 파멸자시여! 부디 고정하소서!!”

하지만 네펠리나의 귀에는 마안족 왕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오직 그리드를 노려본 채 으르렁거렸다.

“예전에 네가 나를 맘대로 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알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럼 안 돼! 나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니까 앞으로는 주의토록 하거라!!”

“네, 넵...”

알 속에 있었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니?

네펠리나가 내게 잘해주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그리드는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녀에게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그렇게 돼서, 앞으로 당분간은 사냥에 전념할 계획인데요.”

드래곤의 축복을 얻은 후.

그리드는 라우엘이 아닌 판미르를 방문했다.

그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탈리마 인근의 화산지대 중에서 그나마 가장 안전한 구역이 어딥니까?”

탈리마.

드워프의 도시이다.

염룡 트라우카의 둥지가 있는 화산지대에 둘러싸여있는 까닭에 플레이어들은 물론이고 제국조차 접근하지 못하는 장소였다.

판미르의 얼굴이 굳었다.

“자네 설마 그곳에서 사냥을 하려고?”

“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탈리마의 화산지대에는 염룡 트라우카의 둥지가 있다.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의 무용담 중 하나가 ‘염룡 트라우카에게 살아남은 것’일 정도였으니, 염룡 트라우카가 얼마나 강력하고 흉포한 존재인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러다가 트라우카의 권속들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죽어야죠. 그래도 최대한 그런 일이 없게끔 안전한 구역을 여쭤보는 겁니다.”

대장장이 랭킹 1위 판미르.

그는 어떤 면에서는 그리드보다 뛰어났다. 바로 드워프의 대장기술을 익혔기 때문이다.

그리드는 판미르가 발할라에 방문한 경험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판미르라면 화산지대에서도 안전한 곳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반응이 영 꺼림칙했다.

“음...”

미간을 좁힌 채 한참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드가 아차 싶었다.

“아, 제가 실례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Saitsfy에서 정보의 가치란 천금보다 귀한 법이다.

아무리 동료라고 해도 자신이 고생해서 수집한 정보를 흔쾌히 넘겨줄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길드 소속도 아닌 크라우젤이 그리드에게 번헨 열도나 에테르 다이아몬드 등의 정보를 제공해줬던 일은 정말 큰 호의라고 볼 수 있었다.

판미르가 손사래 쳤다.

“아니, 아닐세.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잠시 고민한 이유는 불쾌해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일세.”

“모른다고요?”

“그래. 내가 드워프를 만나게 되고 이후에 탈리마까지 방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다른 세력의 도움 덕분이었거든.”

“다른 세력이라면...?”

“로스차일드.”

“길드 이름입니까?”

“길드 이름이며 실존하는 가문의 이름이기도 하지.”

“그 로스차일드가 그 로스차일드였어요?”

“맞네. 현실에서 그렇듯이, 그자들은 Satisfy 내에서도 큰 부를 축적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아마 Satisfy가 처음 출시됐을 때부터 Satisfy의 가치를 알아보고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한 것일 테지. 어찌됐든, 현재 탈리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세력은 로스차일드밖에 없을 걸세. 화산지대에서 어느 구역이 비교적 안전한지도 나는 전혀 모르겠어.”

그리드의 관심사는 이미 화산지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요? 저는 몇 년 동안 그들의 이름을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요.”

“직접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하부 세력을 만들거나 타 세력을 지원해 운영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듯해. 내게 직접 접촉해왔을 때도 처음에는 대리인을 내세웠었으니까.”

“왜 굳이 비밀리에 움직이는 거죠?”

“그 가문이 원체 그러지 않나. 뭐, 어중이떠중이들을 죄다 상대하기가 귀찮은 거겠지.”

“그들이 당신에게 드워프를 소개해줬던 겁니까?”

“맞네. 당시 로스차일드 가문은 드워프와 직접 거래하면서 가문의 무력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때때로 의견이 갈리는 게 문제였던 것 같아. 다루기 쉬운 플레이어에게 드워프의 기술을 전수하고 이용해먹는 편이 더 좋을 거라고 계산했던 거지.”

“결과는요?”

“보다시피 나는 자유가 됐고 템빨국으로 이주했네. 로스차일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거든.”

“당신 정도의 대장장이가 버림받았다는 겁니까?”

“하하....”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판미르.

그는 명색이 대장장이 랭킹 1위다.

비공식 랭커 중에 엄청난 고수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현존하는 플레이어 대장장이 중에서 그리드 다음으로 우수한 인물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를 쉽게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드워프 장인들의 솜씨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흠... 혹시 그들이 우리에게 위협이 될까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리드가 질문하자, 판미르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일은 없을 걸세. 그들은 그저 조용히 부를 쌓는 게 목적일 게야. 템빨국과 공생관계를 꿈꿀 수는 있어도 굳이 적대할 이유가 없네.”

“하긴... 그들이 위험한 존재였다면 라우엘이 이미 진즉에 경고해주었겠죠.”

납득한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인 뒤 명성 상점을 소환했다. 그리고 계속 뽑기를 돌려 총 5개의 경험치 물약을 확보했다.

앞으로 최소 한 달 동안은 사냥에 열중할 계획이었다.

‘아쉽지만 갈구노스의 사원으로 가자.’

화산지대가 가장 이상적인 사냥터였지만 트라우카의 권속과 마주칠 확률을 최대한 줄이지 못하면 제 발로 무덤 찾아가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한두 번 죽는 거야 감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3번 이상 죽으면 경험치 버프 효과도 무색해지는 피해였다. 최악의 경우 아이템을 떨굴 수도 있었고.

***

<(속보)그리드 레벨 오르는 속도가 미침>

그리드가 사냥터로 떠나고 20일이 지났다.

템빨단원 대부분이 사냥터에 처박힌 상태였기 때문에 왕궁은 무척 조용했다. 하지만 이걸 평화로운 한때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제국과의 휴전 협정 기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이족과 화합한 템빨국의 행보는 제국의 사상과 전혀 상반되는 것이었고.

폭풍전야.

불편한 고요다.

“뭐라고요?”

병사들의 기합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지는 연병장.

피아로, 메르세데스, 싱클레드가 병사들을 육성하는 광경을 감상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고 애쓰던 라우엘이 깜짝 놀랐다.

페이커의 보고 때문이었다.

“아그너스가 이곳을 방문했단 말입니까?”

“그래. 엘리자베스를 만나러 온 것 같다.”

아그너스는 현재 7개국에서 수배범이 된 상태였다.

벌써 몇 명의 세공사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누명이라는 사실을 라우엘은 알고 있었다.

“위험한 녀석이다. 쫓아낼까?”

“으음.... 아니요. 조금 지켜보도록 하죠.”

한때 아그너스는 순수한 악(惡)이자 미치광이라고 알려졌었다.

하지만 그의 행보들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그를 무조건적인 악이라고 매도하기는 힘들었다. 실제로 아이린과 로드를 지켜주기도 했었고 말이다.

‘대규모 전쟁에서만큼은 그리드님 이상으로 강력한 인물이다. 이참에 인연을 쌓아두는 편이 좋겠어.’

턱을 괸 채 생각해보던 라우엘이 로드 왕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로드는 스틱세이에게 학문을 익히는 중이었다.

“라우엘 님께서 여기엔 어쩐 일이십니까?”

라우엘을 발견한 코크가 달려와 물었다.

라우엘이 빙그레 웃었다.

“왕자님을 모시고 산책 좀 다녀옵시다.”

“...? 알겠습니다.”

평범한 산책은 아닐 것이다.

라우엘과 페이커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에 코크는 사뭇 긴장감을 품었다.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