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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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49권 - 1화
시조 베리아체의 자식들은 그녀에게 하나씩의 욕망을 물려받았다.
그중에서도 지식욕을 물려받은 브라함은 나태의 저주조차 견뎌내고 세계의 진실에 도달했다.
그의 어머니 베리아체와 마찬가지로 신의 실체를 엿보았다.
그래서 과거.
그는 ‘무신을 만났다.’는 파그마의 고백에 불안을 느꼈다.
무신 제라툴.
교만과 오만으로 똘똘 뭉친 그가 한낱 인간에게 표한 관심이 호의에서 비롯됐을 리 없다는 게 브라함의 확신이었다.
역시나.
파그마는 무신에게 부정당했노라고 밝혔다.
무신의 일침 덕분에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세계를 지키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서 더 큰 각오를 다지리라 다짐해보였다.
그리고 그 다짐은, 훗날의 브라함에게 지독한 배신으로 되돌아왔다.
파그마는 마의 일족을 처단한다는 미명 하에 브라함을 죽이고 수명을 빼앗았다.
-내 심장을 꿰뚫던 파그마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죽어가는 나를 내려 보는 녀석의 눈빛에는 일말의 애정도, 후회도, 고통도 없었다. 오직 힘을 향한 열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추종자들은 고상한 구도자 따위가 아니다. 자신의 재능으로는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도달하지 못할, 무신이 보여준 무의 길에 저주 받은 노예들에 불과하다.
-무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라. 놈의 개소리는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든다. 악마를 멸하고자 싸웠던 파그마가. 오직 그 한 가지 핑계로 친구마저 배신하고 죽인 파그마가 역설적이게도 대악마 바알과 계약했던 것처럼 무신은 너를 타락시킬 것이다.
브라함의 음성이 계속해서 그리드의 뇌리에 울린다.
귓전에는 추종자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네 몸속에 마의 일족이 똬리를 틀고 있구나.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도 약하디 약한 대장장이여. 사악한 존재에게 현혹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
“너는 약하다. 검을 쥘 자격이 없다. 하니 안주하지 말고 더 큰 힘을 받아들여라.”
“그래, 네 몸속에 똬리를 튼 그 마족의 영혼을 흡수하는 건 어떻겠느냐? 내가 방법을 가르쳐주겠다. 네가 다시 한 번 더 한계를 뛰어넘고 절대지경의 고수가 될 수 있는 길을 내가 제시해주겠다.”
추종자의 이름이 또 다시 <제라툴>로 바뀌었다.
제라툴의 의식이 추종자의 몸을 빌려서 일시적으로 강림하는 듯했다.
접신(接神)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위축되지 않았다.
더 이상 혼란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의 곁에는 브라함이 있었으니까.
[당신과 브라함의 호감도는 최대치를 초과하고 있습니다.]
[무신 제라툴이 당신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브라함이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여 히든 피스가 발생합니다.]
히든 피스의 이름은 <되풀이되지 않는 실수>였다.
그간 그리드가 얻어왔던 <파그마의 후예>의 히든 피스, <봉인 된 능력>과는 완전히 다른 이름이다.
순전히 그리드 개인이 쌓아올린 인연이 발생시킨 히든 피스라는 뜻이다.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 유일한 친구를 두 번 다시는 잃지 않을 것이다.
쏴아아아아.....
브라함의 선언과 함께 그리드의 검은 머리카락이 탈색되기 시작했다. 구릿빛의 피부가 우유처럼 희게 변해갔고 눈동자는 붉게 물들었다.
색(色)의 변화가 끝났을 때는, 이미 골격 또한 얇고 미려하게 변해 있었다.
브라함과 동화한 것이다.
스킬 형태의 동화가 아닌, 브라함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겪어본 바 있는 이벤트성 동화였다.
완전한 동화라는 뜻.
[히든 피스의 영향으로 강제 동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신의 직업이 변경 됩니다.]
이름:브라함 에슈발트(그리드)
직업:대마법사
칭호:지공(智公)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입니다. 아직 진리를 깨우치지는 못하여 아집이 있습니다. 탐구욕이 무척 강하고 자부심이 높아 이는 때때로 독으로 작용합니다.
*지력 35퍼센트 상승.
*낮은 확률로 폭주.
칭호:전설이 된 자
*상태 이상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일 때 잘 죽지 않습니다.
*쉽게 인정받습니다.
칭호:???
*???
....
...
레벨:545
생명력:858,310/858,310(보정)
마나:13,964,000/13,965,000(보정)
근력:258 체력:3,400
민첩:1,009 지력:15,880+5,558
*인간의 육신으로는 브라함 애슈발트의 근원적인 힘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능력이 크게 봉인 된 상태입니다.
쿠와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마력의 기류가 폭발한다.
“마나 드레인.”
브라함이 읊자, 폭주한 용처럼 광란하던 53개의 폭포수가 거짓말처럼 제자리에 멈췄다. 그러더니 이내 형태를 잃고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
땅과 귀를 울리며 쏟아지던 폭포수에 쉴 새 없이 얻어맞고 온 몸에 피멍이 든 칠공작들.
갑자기 고통이 사라지고 적막이 내려앉자 의아함을 느낀 그들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리고 보았다.
그 오만하던 무신의 추종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뒷걸음치는 모습과,
“흥, 시시하군.”
팔짱을 끼고 콧방귀 뀌는 템빨왕의 모습을.
“무, 무슨...?”
칠공작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자신들조차 감당 못한 추종자를 그리드가 압도하고 있었으니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 됐다.
‘브라함!!’
강제로 육체를 빼앗긴 그리드는 브라함을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비명에 가까웠다.
‘무리하지 마! 당신, 약해졌잖아!!’
걱정이 앞서는 마음에 다급히 외치다 보니 존대도 잊는다.
도리어 마음에 든다는 듯, 입 꼬리를 크게 올린 브라함이 히죽 웃었다.
“멍청아. 약해져서 이 정도다.”
구오오오오오오-
이곳은 적해.
세계의 근원이 되는 무한의 마나가 집결한 장소다.
그리고 브라함의 <마나 드레인>은 무한한 크기의 솜과 같았다.
브라함은 계속해서 마나를 흡수하고 또 흡수하며 힘을 증폭시켜나갔고 그 강력한 기운은 추종자의 두려움을 자극했다.
접신에서 풀린 추종자가 계속해서 뒷걸음치자 브라함이 이죽거렸다.
“나도 한 번 품평해봐라.”
“.....”
추종자는 당연히 침묵했다.
상대는 진정한 전설.
아직은 미완성인 그리드, 유라와는 격이 다르다.
한낱 추종자 따위가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제라툴의 접신도 더 이상 없었다.
의식의 일부가 강림하는 것만으로는 브라함을 억압할 수 없었으니까.
브라함쯤 되면 제라툴이 직접 강림해야했다.
파그마를 현혹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리드, 나는 오래토록 고민했다.”
스캉-!
브라함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쥐었다.
[사용 조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착용할 수 없는 아이템입니다.]
[육체의 본래 주인이 지닌 특성으로 착용 조건을 완화시킵니다.]
신을 겨누는 검이었다.
최적을 넘어 이상적인 효율을 뽑아내는 그 실전용 장검이 백발 미남의 손에 쥐어지자 한낱 치장용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황금색 검신을 들어 올리는 브라함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그가 배경삼고 있는 모든 풍경이 몽환적으로 다가왔다.
금관 바사라가 그 미색에 반해 늘 감고 다니던 눈을 동그랗게 떴을 정도다.
“너 같은 무지렁이에게 내 마법을 전수해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
“설령 내가 네게 마법을 가르쳐준다고 해서 네가 그것들을 죽기 전에 제대로 써먹을 수는 있을까?”
‘.....’
“나는 고민 끝에 인정했다. 네게 마법을 전수해주는 일은 네게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무의미한 짓이다.”
‘갑자기 무슨....’
그리드가 마른 침을 삼켰다.
브라함이 기껏 줬던 마법을 다시 빼앗아갈 태도였기 때문이다.
설마 히든 피스가 손해를 불러올 줄이야?
아직 지력이 낮아서 써보지도 못한 마법들은 물론이고 그나마 잘 쓰고 있는 매직 미사일과 알림 마법까지 빼앗기는 건가?
그리드가 불안감에 휩싸일 때.
“봐둬라.”
브라함은 <파그마의 검무>의 기수식을 취했다.
훌륭함을 넘어서 완벽한 자세였다.
파그마와 그리드의 곁에서 지겹도록 검무를 지켜본 브라함이니만큼 검무의 자세를 따라하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파그마가 화공의 능력을 검무에 녹여냈던 점을 참고해서 마법의 식(式)을 검무에 각인시켰다. 앞으로 너는 마법과 검무를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아무리 멍청해도 마법을 쉽게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저벅. 저벅.
브라함이 한 걸음, 두 걸음 추종자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춤사위를 펼치자.
화르륵-!
태양을 축소시켜놓은 듯한 불꽃 덩어리들이 그의 주변에 떠올랐다.
“나를 우습게 보지마라!!”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눈치 챈 추종자가 힘껏 몸을 날렸다.
궁극의 무를 추구하는 무인답게 도망보다는 도전을 선택하는 모습이었다.
콰아앙-!
빛살처럼 쏘아진 추종자가 장력을 출수하자 브라함이 모으고 있는 마나 중 일부가 허공에 흩어졌다.
추종자의 장력에는 필시 가공할 위력이 담겨있었다.
설령 발할라를 무장하고 있는 그리드라 할지라도 쉬이 감당 못할.
한데.
쩌어어어엉-!!
브라함은 쉽게 감당했다.
마침 검무를 완성시키고 있는 그의 눈앞에 투명한 실드가 펼쳐져 있었다.
감탄하는 그리드에게.
“새로운 검무가 너의 적을 멸하고 너의 몸을 지킬 것이다.”
단언해보인 브라함이.
푸욱-!
추종자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드는 잿빛으로 산화할 추종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브라함이 적을 쓰러뜨리는 멋진 그림이 머릿속에 자연히 그려졌다.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무척 달랐다.
“.....”
브라함의 근력은 고작 258.
템빨로도 커버가 안 되는, 아~주 아주 미약한 힘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브라함은 파그마의 검무를 사용한 게 아니다. 단지 폼만 따라했을 뿐이다.
“.....”
“.....”
어색한 침묵!
검에 찔린 추종자는 하나도 아프지 않자 도리어 더 당황한 눈치였고 브라함은 쪽팔려서 괜히 헛기침을 한다.
“하아압!!”
먼저 충격을 수습한쪽은 추종자였다.
지금이 기회라고 여긴 녀석이 어색한 적막을 깨뜨렸다. 전광석화처럼 금나수를 전개하여 브라함의 팔을 낚아챘다. 놈은 그대로 브라함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급소를 공격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브라함이 허락하지 않았다.
서걱-!
“....!?”
브라함의 팔을 낚아챘던 추종자의 손이 <윈드 커터>에 잘려나갔다. 신음을 삼키며 물러나는 놈에게 브라함이 으름장을 놓았다.
“내 허락 없이는 이 몸에 손 댈 수 없다.”
‘내 몸인데?!’
그리드가 태클을 걸었지만, 브라함은 무시했다.
짜증스레 손을 휘저은 그가 주문조차 생략하고 <토네이도>를 전개하자 추종자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브라함의 백색 머리카락이 다시 서서히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명심해라. 무신은 대상의 자존감을 밑바닥까지 추락시킨 후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구원이 아닌 타락으로의 인도다. 놈의 교만은 차라리 기계나 다름이 없는. 그저 세계의 파괴를 반복할 뿐인 야탄의 허무한 본능보다 도리어 더 악한 것이다.”
힘의 소비가 제법 컸다.
브라함은 자신이 또 깊은 잠에 빠질 것을 직감했다.
“부디 무신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라. 네 곁에는 내가 있음을 잊지 마라.”
‘브라함, 당신....’
노파심에 재차 말하는 브라함을 보고 그리드 또한 눈치 채고 말았다.
당분간 또 작별이라는 사실을.
“또 다시 무신이 네게 접근하면 이렇게 말해줘라.”
머리카락, 피부, 눈동자의 색깔은 물론이고 골격의 형태까지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육체의 주도권이 그리드에게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간신히 의식을 부여잡은 브라함은 힘들게 마지막 말을 마쳤다.
“....좆까.”
‘.....’
[브라함의 영혼이 깊은 수면에 빠집니다.]
[하지만 브라함은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히든 피스의 보상으로 <검호 파그마의 검무>의 정보가 갱신 됩니다.]
[히든 피스의 반동으로 <전설의 대마법사>의 가능성이 삭제되고 <브라함의 후예>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브라함의 호의가 깃든)검호 파그마의 검무>Lv1.
검술에 통달하여 물리 공격력이 40퍼센트, 치명타 확률이 50퍼센트, 치명타 공격력이 80퍼센트 상승합니다.
*도검류 무기를 장착했을 경우에만 적용되는 효과입니다.
*검무의 보폭이 감소합니다.
*융합 검무를 5개 창조할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 때마다 창조할 수 있는 융합 검무의 개수가 늘어납니다.
*이 스킬 효과로는 4융합 검무까지만 창조할 수 있습니다.
★단일 검무 전개 시 브라함식 강화 마법 중 하나가 발현됩니다.
★발현되는 마법은 기초마법으로 한정되며, 각 검무마다 다른 마법이 발현됩니다.
★융합 검무의 경우 여러 개의 마법이 중첩 발현됩니다.
★마나가 소모되므로 활성화/비활성화가 가능합니다.
현재 활성화.
“브라함....”
육체의 주도권을 되찾은 그리드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브라함의 깊은 애정이 남긴 여운이 그를 웃고 울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