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924화 (50권) (914/1,794)

템빨 5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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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50권 - 1화

단일 대상에게 40개의 검기를 발사하고 이때 시야에 보이는 모든 적을 ‘표적’으로 삼아 표식을 남긴다. 표식 당 2개의 검기가 추가로 발생하며, 검기는 각자의 표적을 공격한다.

설명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초연화(超聯花)>는 적의 규모에 구애 받지 않고 대적할 수 있는 스킬이다.

그리드가 소유 중인 흡혈 아이템들의 위력을 극대화시켜주는 스킬이기도 했다.

홀로 다수를 상대할 때 느껴야할 불합리와 무력감이, 그리드에게는 없었다.

지이잉.

그리드의 시야에 담기는 베리드와 악마 군단의 머리 위로 花의 표식이 떠오름과 동시에.

쏴아아아아아─

푸른 검기의 꽃잎 수천 송이가 만개하며 협곡을 뒤덮었다.

전쟁의 여파로 황폐화 된 협곡이 도원향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장소로 변모했다.

[그는, 붉은 피로 염색한 협곡에 푸른 꽃잎을 뿌렸다.]

“와아....”

서사시의 시작을 알리는 문장과 함께 곳곳에서 탄성이 흘렀다.

모두가 그리드를 우러러 보았고 그들의 시선을 느낀 그리드의 가슴은 뜨겁게 벅차올랐다.

내가 저들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에 우월감을 느끼는가?

아니다.

그저, 남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에 순수한 충만감을 느낄 뿐이다.

일평생 모멸에 시달렸던 그리드의 입장에서, 지난 수 년 동안 받아온 동경과 성원은 여전히 새롭고 짜릿한 것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평생토록 익숙해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질타와 모멸에 익숙했던 약자.]

[착취당한 끝에 홀로 설 수 없던 패자(敗者).]

‘....아니, 왜 굳이 옛일을 끄집어내서 사람 쪽을 주냐.’

월드 메시지만 아니었어도 참 좋았을 텐데.

전 세계인을 상대로 수치 플레이를 당하게 생긴 그리드가 얼굴을 붉히는 그때.

촤르르르르르륵-!!

하늘하늘 팔랑이던 꽃잎들이 지상의 악마들을 덮쳤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위험한 법이라더니, 꽃잎에 베인 악마들 모두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압도적인 힘을 지닌 원군의 출현.

하켄 왕국 병사들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고 그리드의 충만감은 더욱 더 고조됐다.

하지만 정작 서사시는 그리드를 부정했다.

[그는 여전히 약했다.]

[협곡의 악마들을 도륙하는 그의 힘은 그 스스로 쌓아올린 업이 아니었기에.]

[타인의 힘을 빌려 일어났을 뿐인 그는 언제 다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부였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펑!!

줄기줄기 뻗어나간 40개의 검기가 베리드를 덮치고 있었다.

[대상에게 33,25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32,99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초연화의 검기는 개당 200퍼센트의 공격력 계수를 지닌 바.

어지간한 몬스터는 40줄기의 검기 중 하나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

하지만 베리드는 2개의 검기에 연달아 적중당하고도 멀쩡했다.

도대체 얼마나 높은 방어력을 지닌 건지, 크라우젤을 보자마자 파티를 맺고 버프를 얻은 그리드의 공격력을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어찌....””

베리드의 얼굴에는 충격이라는 감정이 덧칠돼 있었다.

그는 현실을 왜곡시키는 자신의 거짓 앞에서도 멀쩡한 그리드를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고작 인간 따위가 나의 권능을 부정하다니?

베리드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불안이 싹텄다.

베리드는 그리드로부터 파그마와 뮐러를 엿봤다.

초월적인 힘으로 대악마를 박살냈던 규격 외 인간의 모습 말이다.

[협곡의 악마는 그를 부정했고,]

““역시, 당신부터 없애야한다는 제 판단이 옳았군요.””

방심하지 않겠노라 결심한 베리드가.

스파앗-!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를 태우고 있는 병든 말은 유니콘, 페가수스 등의 환상마보다 훨씬 더 빨랐고 초연화의 검기를 쉽사리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브라함식 디텍트 포스가 발동합니다.]

[초(超)의 검기가 대상의 기척을 읽고 추적합니다!]

브라함의 마법이 발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그는 비로소 완전해졌다.]

[천만 번의 망치질로 단련한 그의 육신이 일만 번 춘 춤사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검 끝에 실리는 마법은 그 스스로 개척한 길의 증거였다.]

[어떤 이름의 그늘에 가려졌을 뿐, 그 또한 이미 충분한 업을 쌓고 있었다.]

쐐애애애애액--!!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비현실적인 광경이 연출 됐다.

지면을 향해서 곤두박질치던 수십 개의 검기가 일제히 방향을 꺾더니 어느새 하늘 위에 올라있는 베리드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괘씸한....!””

인간에게 움직임을 읽혔다고?

자존심이 상해 얼굴을 일그러뜨린 베리드가 연금술을 발동했다.

물리 공격을 상쇄시키는 철벽이 그의 몸을 에워쌌다.

하찮은 인간 따위의 공격, 지옥의 군주를 상대로는 아무런 효력도 발휘할 수 없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하지만 자격 없는 자의 천명은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서걱-!

““....!?””

검기의 4회 타격마다 발생하는 바람의 참격.

연(聯)에 귀속 된 브라함식 윈드 커터 마법이 철벽을 반으로 쪼개버리더니 베리드의 살갗을 찢었다.

마침.

파지지지지지직!!

악마들의 몸을 베었던 검기의 꽃잎들이 일제히 폭발하며 전류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화(花)에 담긴 브라함식 라이트닝 마법의 발현이었다.

크에에에에에엑!!

악마들의 속이 진탕됐다.

생명력이 비교적 낮은 곤충형 악마들 중 일부가 끔찍하게 폭사했고 짐승형 악마들은 포효하며 몸부림쳤다.

충격이 굉장히 컸는지, 눈을 까뒤집은 악마 수백 마리가 일제히 그리드를 노려봤다.

정말이지 지독한 살기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위축되지 않았다.

감전당해 제자리에 굳어 선 잡몹들 따위, 굳이 신경 쓰지 않고 베리드를 노려봤다.

[그는, 협곡의 악마에게 불가해를 맛보여준 최초의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전설의 업을 쌓아올린 자이다.]

....

...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서사시의 첫 페이지를 완성하였습니다!]

월드 메시지가 끝났다.

안 그래도 유명한 그리드의 지난 삶을 짧은 몇 개의 문장으로 재차 엿본 시청자들이 숙연한 표정으로 그리드를 지켜봤다.

재능 없는 지존.

누구보다 존중 받아 마땅한 인물.

그의 ‘시작’을, 하늘의 별처럼 많은 사람들이 응원한다.

[누군가가 <영웅왕 그리드의 석상>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영웅왕 그리드의 석상>에 경의를.....]

[누군가가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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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석상에 참배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는 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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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왕 그리드의 석상>레벨이 15를 달성하여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현재 석상 경배율이 최대치입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당신의 손재주 스탯이 30퍼센트 상승하고 아이템 제작 시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할 확률이 소폭 상승합니다! 또한, 검무계열 공격 스킬의 시전 속도가 20퍼센트 빨라집니다!]

좋은 소식에 이어서, 그리드의 알림창 내용이 새롭게 갱신 된다.

[서사시의 첫 페이지가 완성되었습니다.]

[서사시 완성 효과로 <(브라함의 호의가 깃든)검호 파그마의 검무>가 <그리드의 검무>로 변화합니다.]

[당신은 브라함의 마법을 이미 수차례 목격했습니다. 당신의 검무는 브라함의 마법 공식을 최적화시키게끔 설계되었습니다. 검무에 깃든 마법의 위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자신으로부터 파생한’ 스킬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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