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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959화 (949/1,794)

템빨 51권 - 10화

쏴아아아아-!

황궁으로부터 뿜어진 붉은 빛이 황도 타이탄 전체를 뒤덮었다.

마침 교외로 떨어진 그리드 일행조차도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초대형 정육점....!”

그리드의 감상이었다.

저도 모르게 소리치고 아차, 싶은 그리드였지만 다행히도 바사라 일행은 그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아니, 당연히 들었지만 거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들은 당장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황도의 변고를 걱정하기 바빴으니까.

“천지사방이 붉게 물들다니.... 어찌 이런....”

“흉조요. 4황자가 미쳐 날뛰더니 결국 제국에 망조가 들은 게요.”

바사라의 신하들이 낭패서린 얼굴로 한탄했다.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그들은 커다란 불길함을 느꼈다.

바로 그때 바사라의 맑은 목소리가 모두의 정신을 일깨웠다.

“저것은 적기입니다.”

“적기....!”

황도를 물들이고 있는 붉은 기운의 정체를 알게 된 사람들의 얼굴로부터 불안이 씻겨나갔다.

적기는 황족의 상징.

황족 바사라를 섬기는 이들의 입장에서 적기란 상서로운 힘이었다.

“적기가 저만큼 광범위하게 펼쳐질 수도 있던 겁니까? 황제 폐하의 저력은 생각보다 대단했군요.”

사람들은 저 적기의 주인이 당연히 황제일 거라고 믿었다.

황제야말로 당대 최강의 적기를 보유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사라는 알고 있다.

황제의 적기가 제아무리 대단하다 할지언정 저 정도는 아님을.

저것은 황족의 상식마저도 깨뜨리는 수준의 적기다.

‘도대체 누구의 것이지?’

적기의 대표적인 성질은 ‘물질에 대한 영향력’이다.

보통의 경우, 황족들은 자신의 적기를 특정 물질에 주입하여 강화시키고 그것을 부하들에게 보급하는 식으로 세력을 키웠다. 적기와 가장 상성이 좋은 블랙 미스릴을 독점 중인 황제의 세력이 독보적으로 강력한 원인이기도 하다.

어쨌든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적기는 물질에 주입하여 물질을 강화시킬 수도 있는 반면 물질의 힘을 흡수할 수도 있었다.

굳이 적기를 소모하면서까지 물질의 힘을 흡수한다는 건 무척 비효율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황족들은 적기를 그런 식으로 운용하지 않았지만.

‘저만큼 대량의 적기를 보유한 자라면 만물의 힘을 흡수하고 초월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겠지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바사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녀는 황제가 큰 위기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그녀의 신하들 역시 뒤늦게 동요하고 있었다.

“한데 폐하께서 친히 적기를 사용하실 이유가....? 설마....!”

“궁지에 몰린 4황자가 황제 폐하를 습격한 것인가....!”

가신들의 추측이 1만 기마대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모두가 초조한 기색으로 바사라를 바라보았다.

바사라는 용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전군 황도로 진입합니다. 곧바로 황궁까지 진격하여 황제 폐하를 도와야 합니다.”

바사라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녀의 측근 중 몇 명이 반론을 재기했다. 모두 충심에서 비롯된 의견이었다.

“황도의 병사들이 성문을 가로막을 겁니다. 우리의 의도야 어찌됐든 그들과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순간 반역자로 몰리는 수가 있습니다. 기껏 폐하를 구해놓고 모든 것을 잃으실 수도 있는 겁니다.”

“전하, 지금이야말로 바로 하늘이 내린 기회입니다. 폐하를 도와선 안 됩니다.”

“맞습니다! 우선 영지에 연락하여 원군을 요청하십시오! 우리는 이곳에 대기하다가 폐하께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는 즉시 진군하여 황도를 점령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바사라의 황위계승서열은 5위.

황자들 다음으로 높으며, 공작위와 영토를 보유한 이상 실질적인 세력은 황자들을 넘어선다.

그녀야말로 다음 황좌를 노리기에 적합한 인물인 것이다.

물론 바사라 본인도 황좌를 굳이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다.

‘그랜드마스터의 저의를 알기 전에는 너무 위험해.’

바사라는 역대 다른 황제들과 달리 패도를 펼칠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딱히 비폭력주의자거나 유약해서가 아니다.

그녀는 지극히 합리적인 인물.

제국 외 국가들, 그리고 소수민족들과 공생함으로서 도리어 그들을 풍족하게 만들고 더 많은 조공을 받는 편이 제국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할 뿐이었다.

무조건 힘으로 짓밟고 지배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는 선조들이 이미 증명한 바 있으니까.

하지만 역대 황제들의 곁에 있어온 그랜드마스터가 과연 바사라의 사상에 공감해줄 지가 의문이었다.

‘그랜드마스터 또한 패도를 추구하는 인물이기에 선황들의 곁을 지켰던 거겠지.’

그랜드마스터와 척을 지게 될 경우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 분명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황실과 함께해온 그랜드마스터의 저력은 새내기 황제를 가뿐히 초월할 테니까.

그랜드마스터의 꼭두각시로 살아갈 것이 아닌 이상, 그의 속내를 읽기 전까지는 굳이 황좌를 노리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게 바사라의 판단이었다.

하여.

“아니요. 우리는 폐하를 돕습니다. 아직은 폐하께서 건재하셔야 합니다.”

바사라는 충신들의 의견을 묵살했고 1만의 기마대는 진군을 개시했다.

두두두두두두-!

1만 마리의 말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하자 대지가 격동했다. 곳곳의 작은 산 속에 머물고 있던 새들이 놀라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템빨왕 전하.”

요란한 행군 중에 바사라가 그리드를 불렀다.

무신의 유적지에서 백발 그리드를 목격한 바 있는 그녀는 그리드야말로 그랜드마스터와 비견되는 지존이라 해석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부탁했다.

“우리 군이 황궁까지 도달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거예요. 혹시 전하께서 먼저 황궁으로 달려가 폐하를 도와주실 수는 없을까요?”

바사라의 부탁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그리드의 바람이 바로 템빨국과 제국의 화합이었기에.

그리드가 먼저 달려가 황제를 돕는 것은 그리드의 바람을 이루는 지름길이었다.

역시나.

“좋소.”

그리드는 바사라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즉답이었다.

바사라의 입가에 어딘지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적지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 혼자 가셔야하는 겁니다만.... 그럼에도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으시군요.”

바사라의 그리드를 향한 호감도는 이미 진즉에 최대치를 달성하고 있었다.

그리드의 청혼을 받는 즉시 신혼여행 계획을 짤 정도의 호감을 지닌 셈이다.

그녀는 이미 인피면구를 조작하기 시작한 그리드에게 진정어린 조언을 남겼다.

“전하의 힘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부디 주의하세요. 황궁에는 전하를 위협할 수도 있는 강자들이 꽤 많습니다. 도착하여 무조건 폐하를 돕기보단 우선 상황을 읽으시고, 전하의 안전을 장담할 수 있을 때만 나서주세요.”

“당연하오.”

대답한 그리드가 인피면구를 착용했다.

<베리드의 인피면구>

등급:레전드리(초월)

내구력:10/10(수리불가)

베리드가 인간의 가죽을 가공해서 만든 가면입니다.

거짓과 왜곡이 장기인 베리드의 마력이 깃들었으므로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변장 대상의 얼굴뿐만 아니라 체형, 음성마저 변조시키는 수준으로 단순한 가면의 영역을 넘어선 보구입니다.

*이해도가 있는 대상의 모습으로 변장할 수 있습니다.

*변장에 필요한 이해도를 쌓기 위해서는 대상과 최소 100마디 이상의 대화를 나눠야합니다.

*호감도가 높은 대상일수록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변장의 유지 시간은 대상에 대한 이해도의 영향을 받습니다.

★변장 대상의 모습과 음성만 복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 변장 후 언행에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재사용 대기 시간:12시간

아이템 사용 조건:레벨 380 이상.

무게:2

“다녀올게요.”

인피면구를 착용하고 말하는 그리드.

그의 말투는 바사라를 꼭 닮아있었다.

그렇다.

황궁까지 프리패스하기 위해서 그는 황족이자 공작인 바사라로 변장한 것이다.

바사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

“그, 가슴이 부풀어 오르셨는데. 속에 솜이라도 넣으신 거죠? 대악마의 마력이라는 것이 인간의 신체 모든 부위까지 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만능은 아닌 거죠?”

“다, 당연하오.”

당황한 그리드가 연기하는 것도 잊고 대답했다.

그는 차마 솔직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

황도 타이탄은 제국의 심장이다. 제국의 부와 권력을 엿볼 수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도시였다.

하지만 붉게 물든 타이탄은 그리드가 예전에 보았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어있었다.

말에 탄 기사들이 도로를 질주했고 도검을 뽑아 쥔 병사들이 골목마다 보였다. 전투의 흔적도 심심찮게 발견 됐으며 어떤 귀족들의 저택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소란 속에 갈 곳 잃은 백성들은 구석에 웅크린 채 울부짖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라는 것이다.

‘마치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 같군.’

바사라의 염려대로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다.

서둘러야 한다.

황제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호감을 얻을 절호의 기회이며, 황제를 만나겠다며 먼저 떠났던 공작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으니까.

“바사라 전하가 아니십니까!”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며 지나가던 기사들이 바사라로 변장한 그리드를 발견하고 말에서 내렸다. 부복하는 그들에게 그리드가 물었다.

“반역자 에단의 잔당들을 수색하는 중인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현재 황궁의 상황은 어떤지 알 수 없나요?”

“죄송합니다. 황궁의 상황은 저희로썬 알 수 없습니다. 갑자기 붉은 빛이 폭사하여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이미 두 분의 공작님과 다섯 기둥들이 계시니 감히 저희가 의문을 품거나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하던 일 하세요.”

“예!”

기사들이 황급히 길을 열었고 그리드는 그들을 지나쳐 황궁으로 달려갔다.

그리드는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에단이 지랄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병사들의 수색을 뿌리친 에단이 역으로 황궁에 잠입, 황제를 습격했다.

여기에 대항한 황제가 적기를 폭사시켰고 그 영향으로 황도가 붉게 물들었다.

여기까지가 그리드가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가지 의문점은, 에단이 과연 황제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조금 전 기사들의 말대로 황제는 다섯 기둥의 비호를 받고 있으며 이미 그렌할과 모르이즈가 황제를 알현 중일 것이었다.

무엇보다 황제 본인의 실력이 최강자급이다.

에단이 ‘악역’을 맡아 뻔한 클리셰대로 버프를 받았다고 해도 그만한 전력을 돌파해 황제에게 위해를 가하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그러니까 더 서둘러야 돼.’

기껏 도착했는데 이미 상황 정리가 끝나있으면 안 된다.

빨리 가서 숟가락을 얹어야 황제한테 호감 얻을 빌미라도 생길 게 아닌가.

생각하며, 그리드는 달리기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여성의 신체라는 게 낯설어 영 불편했다.

팔다리는 길게 쭉 뻗어있다지만 엉덩이가 너무 컸고 가슴이 흔들려서 뛰는데 밸런스가 안 맞았다. 그렇다고 붙잡고 뛰자니 보는 눈들이 걱정이었고 바사라에게 죄책감도 생겼다.

‘에라.’

이처럼 급박한 상황에 자잘한 문제들을 신경 써야하는가?

마음을 독하게 먹은 그리드가 붙잡고 뛰기 시작했다.

전해져오는 감촉은..... 이하 생략.

***

‘끔찍하군.’

황궁의 풍경은 황도보다 심각했다.

모든 복도와 기둥마다 붉은 피가 물감처럼 뿌려져 있었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병사들의 신음소리가 장송곡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바, 바사라 전하....”

“적기사들이.... 적기사들이 배반을....”

“폐하께서 위험.....”

그리드를 발견한 병사들이 피를 토하며 말했다.

덕분에 돌아가는 사태를 알게 된 그리드가 이상적인 검을 착용,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했다.

‘황제가 적기사단 척살에 실패하고 후폭풍을 맞았던 거군.’

적기사들의 실력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솔로 넘버 나이트들이 힘을 합칠 경우 공작들과 비벼볼 여지가 있었고 적기사단 자체의 숫자가 원체 많았다. 더군다나 에단에게는 마장기 군단까지 있었으므로 제아무리 다섯 기둥과 공작들이라고 해도 에단의 기세를 쉽게 멈추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리드에겐 기회인 셈이다.

스파앗-!

복도를 가로지르는 그리드의 신형이 점차 가속화된다.

그의 초월적인 기감이 그를 알현실로 인도하고 있었다.

채앵-!

쿠콰콰쾅....!

알현실과 가까워질수록 금속음의 마찰과 폭음, 그리고 비명소리가 아득히 들려온다.

마침 신속한 몸놀림의 지속 시간이 끝난 것을 확인한 그리드가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완벽해.’

쿨타임에 걸린 스킬은 신속한 몸놀림 하나뿐이다.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이며 체력과 마나는 최대치를 유지 중이었고 스태미나도 소량밖에 소모되지 않았다.

‘다섯 기둥들이 적기사들을 몰살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적기사들을 돌파하고 황제에게 생색을 낸다.’

나름의 계획을 짠 그리드가 인피면구를 벗었다.

황제나 다섯 기둥들에게 굳이 인피면구를 노출 시킬 필요도 없었고 애초에 정체를 드러내야 생색도 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위로 황궁으로 오게 된 거냐고 묻는다면, 공작들과 입을 맞춰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답변을 하면 될 일이고.

콰앙-!

드디어 전투 현장에 가까워졌다.

길게 뻗은 복도의 끝에 붉은 갑옷을 무장한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거기까지는 그리드의 예상대로였다.

한데.

콰자작-!

그랜드마스터 지크프렉터와 마갑 첸슬러.

그리드도 익히 알고 있는 다섯 기둥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닌가?

‘뭐야?’

설마 둘 중 하나가 에단의 편에 선 건가?

아니면 어떤 의견 충돌이 발생해서 잠시 다투는 건가?

혼란에 휩싸인 그리드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알현실 내부로 향했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에단의 검이 황제를 겨누고 있는 광경을.

그렌할과 모르이즈는 옴짝달싹 못한 채 널브러져 있었고, 베인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다섯 기둥 역시 상처투성이가 된 채 물러나 있었다.

‘에단이 저렇게 셌다고?’

지금 중요한 건 상황 파악이 아니다.

빨리 황제부터 구해야한다.

제국과의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나마 공작들에게 호의적인 황제가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기에.

하지만 무슨 수로?

콰쾅-! 쾅!!

그리드는 그랜드마스터와 첸슬러의 전투에 위축됐다.

흑화에 신격까지 사용해도 이길 거라는 생각이 안 드는 두 괴물들이 복도 한복판을 장악한 채 싸우고 있었으니, 그리드는 저들을 돌파하고 알현실까지 도달할 엄두가 도무지 안 생겼다.

‘브라함, 혹시 일어날 생각 없어요?’

초조한 마음으로 브라함을 불러보지만 응답이 없다.

다시 깊은 잠에 빠졌던 브라함은 아마도 한참 후에나 깨어날 예정 같았다.

-그리드! 방해하지 마라!

때마침 귓속말이 날아왔다.

발신인은 지발이었다.

힐끔, 시선을 돌려 보자 라이더들과 나란히 서있는 지발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드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다섯 기둥들과 적기사들을 운 좋게 돌파한다고 해봤자 뒤에는 또 마장기 군단이 버티고 있었으니 이보다 더 절망적일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도리어.

“기사 소환!”

그리드는 피아로를 떠올렸다.

여기선 반드시 최강의 패를 꺼내야만 한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또한, 제국과의 은원을 끊어야할 당사자가 다름 아닌 피아로라는 사실을 상기하기도 했다.

“피아로!!”

[당신의 기사 ‘피아로’가 당신의 부름에 응합니다.]

일고의 망설임 없이 떠오르는 알림창.

부름에 즉시 응해 등장하는 피아로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리드는 단언했다.

‘피아로는 죽지 않는다.’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다짐한 그리드가 모두의 시선 속에서 명령했다.

“피아로, 네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일단 황제를 구하자.”

내키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망설일 것이다.

그리드는 생각했지만.

“예, 전하.”

놀랍게도 피아로는 즉각 명령을 받들었다.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각종 농기구 중 호미를 꺼내 쥔 그가 앞으로 나서서 뭐라고 소리치는 여기사를 일격에 제압한 후 복도를 돌파했다.

“피아로 님....!”

적기사들이 사색이 되었다.

그들 중 누구도 감히 피아로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했다.

단 한 명.

“젠장! 방해하지 마라!!”

플레이어 지발만이 마장기를 소환하며 알현실의 입구 앞에 버티고 섰다.

황궁의 높은 천장과 맞닿을 정도로 거대한 마장기 레이더스가 피아로를 노리고 기둥 같은 창을 찔렀다.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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