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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997화 (987/1,794)

템빨 52권 - 23화

전기를 만드는 몸.

곁에 다가가기만 해도 정전기를 일으키거나 감전시키는 돌연변이 카일은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했었다.

심지어 부모에게조차 꺼려졌던 그를 거둔 사람이 다름 아닌 전 황제 쥬앙데르크다.

기꺼이 자식을 내어주던 부모의 환한 얼굴을, 카일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카일은 일생토록 발악해왔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슬픔과 고독을 떨쳐내고자 노력했고, 황제가 소개해준 스승에게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스승에게조차 버림받았을 때는 나락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끌어올리고자 노력해야했고, 그러면서 또 스스로의 힘을 통제할 수 있게끔 홀로 노력했으며, 드디어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된 후에는 황제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했다.

무패왕의 후예에게 한쪽 팔을 잃었을 때는 커다란 좌절과 공포에 휩싸였지만 그마저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적해의 유적지에서 무신을 만났을 때는 드디어 노력을 보답 받는구나 생각했다.

정말로 큰 역경 속에 얻은 힘.

카일은 그것에 심취했다.

더욱 더 강해지는 일만이 무패왕의 후예라는 공포를 극복하고 내게 실망했을 황제에게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제국에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황제가 붕어했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카일이 느낀 감정은 이미 오래 전에 떨쳐냈다고 믿어왔던 고독.

카일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이제 힘밖에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힘에 대한 긍지뿐이었다.

한데.

한데 그마저도 잃게 생긴 것이다.

고작 이런 곳에서 패배하고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놈들에게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이대로 죽어서는, 이대로 도망쳐서는 정말로 끝이다.

나의 탄생에는 가치가 없었노라.

나를 버렸던 부모의 선택은 옳았노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밖에 안 된다.

“모조리 죽어라!!”

이번만큼은 스스로 극복해야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진원진기마저 소모해 회복한 카일이 체내에 축적하고 있던 전류를 모조리 한꺼번에 방출시켰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앙!!

콰르릉, 쾅쾅!!

거대한 폭발에 이어서 곳곳에 낙뢰가 떨어졌다.

번개가 지상에 떨어져 피해를 입히는 현상을 벼락, 낙뢰라고 하며 번개는 전기 방전이 발생시키는 현상이다.

결국 다 전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고, 이 순간 수십 줄기의 낙뢰를 발생시킨 근원은 카일이었다.

마치 신의 위용이었다.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카일에게 압도당하며 공포를 느꼈다.

‘훌륭한 재능이다. 무신께서 아끼시는 이유가 있었군.’

이정조차도 카일의 잠재력에 감탄했다.

당장은 아직 미숙할지 몰라도, 아주 먼 훗날에는 우리 삼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지 않을까....

쉬지 않고 울리는 천둥과 비명 속에서, 이정이 이와 같은 생각을 품을 때였다.

콰르르르르릉!!

유난히 큰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나, 오래 전부터 초월의 격을 쌓아온 이정은 어떤 위험을 직감했다.

“....!?”

이정이 소리의 발원지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콰직! 콰지지지직!!

백열하는 인간이 지상으로 떨어져 카일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물리적인 개입을 불가하게 만드는 전류의 폭풍을 손으로 찢어발기고 그 속에 숨어있던 카일을 끄집어냈으니 일종의 기적이었다.

“컥, 커억!!”

언제 당했지?

우악한 손에 목을 쥐어진 카일이 발버둥 쳤다.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던 전류의 잔재들이 창으로 변해 카일을 지키고자 되돌아왔다.

파지지직!!

수십 자루의 전기 창이 정체불명의 괴한을 관통했다.

하지만 카일은 여전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괴한의 손에서 힘이 조금도 풀리질 않았다.

‘멀쩡하다고?’

왜?

아니, 지금은 상황을 파악하려는 시도조차도 사치다.

일단 살아남아야한다.

판단한 카일이 자신의 몸 자체를 전기로 변환시켰다.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손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한데.

“.....!!”

전기로 변함과 동시에, 카일은 자신이 소멸해감을 느꼈다.

자신을 이루는 전기가 모조리 불살라지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그는 급히 힘의 발동을 멈춰야만 했다.

같은 전기라도 전압이 다른 것이다.

카일의 전기 발생 원리는 선천적인 체질에 의거한 것.

과거, 우연히 기연을 만나 동대륙에 갔다가 청룡의 가호를 받았다곤 하지만, 그의 전기는 결국 인간의 몸을 매개로 발생하는 것이며 청룡의 가호는 타고난 힘을 강화시켜주는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청룡의 숨결을 직접 가공하고 강화시켜 <천지를 발밑에 둘 오만한 청룡의 부츠>를 만든 그리드는 청룡의 힘 그 자체와 동화할 수 있었다.

카일의 전기가 1만 볼트, 10만 볼트짜리라면 번개와 비를 관장하는 신수 청룡의 힘을 끌어다 쓰는 그리드의 전기는 100만 볼트, 1,000만 볼트짜리인 셈이다.

이 시국에 굳이 이런 비유를 해야 하나 싶지만, 피X츄와 라X츄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리드가 청룡의 부츠를 착용하고 있는 이상 카일은 그리드에게 전혀 해를 끼칠 수가 없었다.

영문을 모른 채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카일의 귓전에 무겁고 차가운 음성이 스며들었다.

“오랜만이야.”

“떫!!”

카일이 놀라 혀를 깨물었다.

바동거리며 애쓰던 그의 몸이 축 늘어진다 싶더니 정체불명의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지린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과 같은 위용을 보였던 천하의 카일이 지리고 말았다.

덜덜덜....

카일이 떨었다.

그는 몇 달 전에 새로이 자라난 왼 팔이 뜨겁게 불타는 듯한 통증에 휩싸였다.

“.....”

<뇌신>의 유지 시간 동안 아직 피통이 절반도 넘게 남은 이 녀석과 무신의 추종자들을 과연 모두 처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리드의 시야에 특이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대상이 전투의지를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역시.’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예상했던 일이 이 순간 확실해졌다.

카일.

과거 내 몸을 빌려 썼던 브라함에게 호되게 혼나고 벌레취급 당했던 이자는 브라함과 나를 동일시하며 여전히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어떤 저항을 시도하기는커녕 감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이번엔 봐주마.”

어차피 저항하지 않는 상대에게 할애할 시간은 없다. 단단하고 피통도 많은 네임드 NPC를 순살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카일을 놓아준 그리드가 하나 같이 두건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무신의 추종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현장의 풍경을 관찰하고 대충 상황을 파악한 그리드는 무엇보다도 추종자들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넝마가 된 메르세데스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은 대부분 타박상이었으니까.

“너희들이 감히 내 기사를.”

“....!”

두건에 가려진 이정의 눈이 부릅떠졌다.

압도적인 힘으로 카일을 순식간에 제압한 저자의 정체가 메르세데스의 주인이었다니?

‘그녀가 주인을 신처럼 숭배했던 이유가 있었군.’

찌릿, 찌리릿.

피부가 저려온다.

이것은 신수 청룡의 힘 그 자체.

쫓겨난 신들을 섬기던 시절에나 목격할 수 있던 힘이 왜 이곳에....?

“....그런가.”

이정이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그대는 쫓겨난 신들과 한 배를 탄 게로군?”

“....?”

“어리석다. 그들은 인류의 등불이 아니거늘.”

쫓겨난 신들.

그랜드마스터 지크프렉터가 언급했던 그들의 존재가 여기서 튀어나올 줄이야?

파직-!

그리드가 이동했다.

커다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었기에 발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뇌신> 스킬은 최대 속도가 유지되는 동안만 지속되는 바.

그리드는 이미 최대 속도에 도달한 상태라는 뜻이며 이는 완전한 초월자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인 빠르기였다.

콰르르르릉!!

패닉에 빠진 카일이 모든 전류를 거두자 고요해졌던 숲에 다시금 천둥이 메아리쳤다.

이정은 아홉 번의 공격을 허용하고 있었고 그리드는 검무를 완성하고 있었다.

“초연화.”

‘이 검술은 설마?’

쫓겨난 신들과 한 배를 탄 것은 이자의 숙명이었나?

──!

새로운 고요 속에, 이정의 양손을 구속하고 있는 철판 위로 수십 줄기의 검기가 떨어졌다.

그리드가 하필 철판을 노린 것이 아니라 이정이 철판을 들어서 막은 것이다.

하지만 방어는 무의미했다.

콰르르르르르르르릉!!

뒤늦게 다시 울리는 천둥소리에 이어서.

콰지지지지지지직!!

이정의 몸이 경기를 일으켰다.

100퍼센트 전격 속성의 검기들이 철판 째 그를 감전시킨 것이다.

한데 놀랍게도.

퍼엉-!

이정은 완벽하게 반격했다.

그의 발차기가 그리드의 관자놀이를 정확히 타격했다.

초월자의 의지가 상태이상이라는 개념을, 초월자의 감각이 속도라는 개념을 초월한 순간이었다.

다만 문제는.

기껏 큰 피해를 감수하고 반격해봤자 무의미하다는 점이었다.

이정의 발차기는 분명히 그리드를 때렸으나 그리드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정의 발이 그리드의 몸을 그대로 관통해서 지나갔다.

‘격이 다르다.’

불완전한 부분이 전혀 없다.

그야말로 뇌신이다.

생각하는 이정의 가슴을,

푸우우욱-!

극살이 베고, 찔렀다.

피를 왈칵 쏟은 이정이 급히 보법을 전개해 탈출하려했지만 탈출 경로는 이미 그리드에게 장악당한 상태였다.

“정말로 대단하구나!”

솔직하게 감탄한 이정이 또 한 번 감각으로 그리드의 공격을 회피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대로 반격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무의미했다.

“초연살극.”

그리드는 하나의 경지로 승화시킨 네 개의 검무로 온갖 마법과 검기를 전개했다.

회심의 일격이었다.

이정의 직감이 위험을 경고했다.

‘구속구를 풀었어야....!’

잘못 판단했다.

고작 경험의 일환으로 삼을 상대가 아니었다.

뒤늦게 깨달은 이정이 수련 명목으로 착용 중인 구속구를 뒤늦게 원망하는 순간.

[<흑화>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리드의 속도가 급격히 느려졌고,

[<뇌신>이 해제됩니다.]

그리드의 몸을 휘감고 있던 백광이 걷혔다.

하지만 그리드는 당황하지 않았다.

스킬의 지속 시간쯤이야 충분히 계산하고 있었으니까.

그리드는 이미 이정의 배후를 장악한 상태였고 초연살극의 완성을 끝내놓았다.

스킬은 적중할 것이다.

이 싸움의 승패는 이미 정해졌다.

판단하며, 침착하게 열망의 무아검을 휘둘러나가는 그리드였으나.

“흑살광격!”

이정은 구속구를 차고도 메르세데스와 동수를 이뤘던 인물이다.

뇌신 상태가 아닌 그리드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

그리드의 시야가 암전됐다.

당황하는 그의 몸을,

번쩍-!

날카로운 빛이 관통했다.

[145,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최초의 왕> 칭호 효과가 발동합니다.]

[너무 큰 피해를 입어 최근 1분 내에 잃은 생명력만큼의 보호막이 생성됩니다. 보호막이 지속되는 동안 모든 지형 적응력이 100퍼센트 상승하고 이동속도와 방어력이 10퍼센트 상승합니다.]

[암흑의 룬에 귀속 된 <티라멧의 힘> 효과가 발동합니다.]

[생명력이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져 30퍼센트의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큭....!”

최악이다.

시야의 상실로 인해서 초연살극의 발동이 도중에 취소돼 버렸다.

‘오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어.’

매스 텔레포트를 타고 세계수의 숲에 막 도착했을 때.

그리드는 아스모펠이 2인자의 저력을 발동했다는 알림창과 함께 저 멀리 발생하는 폭발을 동시에 목격했다.

그때부터 달려왔다.

하지만 숲이 너무 넓은 나머지 신속한 몸놀림만으론 제때 도착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급기야 메르세데스가 새로운 기사도를 세우더니 또 거대한 폭발이 발생하자 초조해져 흑화까지 사용해버렸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기사 소환을 쓸 순 없었으니 차라리 자신의 힘을 소모한 것이다.

그 결과가 이거다.

패착?

“흑살광격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아니.

아스모펠과 메르세데스는 내 예상대로 알아서 잘하고 있었고 내가 시간을 번 동안 충분히 회복했다.

“전하!!”

그리드가 두 발로 서있자 짐짓 놀라는 이정.

그의 뒤편으로 나란히 달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그리드는 보았다.

붉게 타오르는 아스모펠의 검과 달빛을 머금고 차갑게 식은 메르세데스의 검은 완전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도리어 조화를 이뤘다.

그리드가 협동했다.

“쫓겨난 신들이 뭔지 말해!!”

콰르르르르르르릉-!

“큭, 크아아아악!!”

세 사람의 각기 다른 검술이 마치 하나의 물결처럼 흐르며 이정을 난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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