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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062화 (1,052/1,794)

템빨 55권 - 12화

필드 마법은 특정 범위의 환경을 시전자에게 유리하게끔 만든다.

조건 자체를 불공평하게 세우는 마법이니만큼 절대적인 효력을 발휘하며 보스 몬스터의 전유물로 인식돼왔다.

<전격 마기의 폭풍>이 바로 필드 마법이다.

오직 시전자에게만 축복을 내리며 시전자를 제외한 모든 존재에게 각종 디버프를 유발하고, 공격하는, 절대적인 힘.

대악마로부터 파생한 권능답게 암흑의 룬에 귀속 된 스킬 중에서도 으뜸에 꼽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 잠재력.

잠재력만큼은 최고였다.

전격 마기의 폭풍에는 공교롭게도 단점이 있었다.

벼락 컨트롤 불가능, 피아 식별 불가능, 고작 1만에 불과한 고정 데미지, 즉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날씨가 흐려야만 한다는 점 등.

불완전한 상태여서 더욱 많은 단점이 부각된 것일 테지만, 결론적으로 전격 마기의 폭풍은 여러 가지 한계점을 안고 있었고 그리드가 실전에서 전격 마기의 폭풍의 덕을 본 횟수는 지극히 적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주작의 심장과 화공의 효과로 인해서 그리드의 룬은 격변을 맞이했고 그리드의 온전한 힘이 되었다.

화신의 폭풍으로 거듭난 전격 마기의 폭풍은 활용도가 실로 무궁무진해졌다.

<화신의 폭풍>

새롭게 태어난 화신의 위엄을 실현합니다.

-필드 효과 1-

<거룩한 불꽃>

주작의 9번째 심장에 잠재된 불꽃을 끄집어내 화신의 폭풍을 형성합니다.

폭풍은 시전자의 반경 200미터 일대를 장악하며 시전자를 포함한 모든 아군(단, 종족이 언데드, 혹은 마족인 대상은 제외)의 치유 효과를 20퍼센트 상승시키고 모든 적의 치유 효과를 50퍼센트 감소시킵니다. 저항 불가.

치유 감소 효과에 걸린 대상이 회복을 시도 시 ‘화신의 분노’가 발생해 1만 5천의 고정된 피해를 입히며 회복 효과를 확률적으로 반전시킵니다.

종족이 언데드, 혹은 마족인 대상이 폭풍의 범위에 있을 경우 매우 큰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습니다.

-필드 효과 2-

<의지의 불꽃>

화공의 무형지기로 화신의 폭풍을 강화합니다.

폭풍의 범위에 있는 모든 적에게 의지 스탯과 근력 스탯에 비례하는 심(心) 속성 데미지를 입히고 의지 스탯과 지력 스탯에 비례하는 화 속성 데미지를 추가로 입힙니다. 이중 심 속성 데미지는 대상의 방어력과 저항력을 관통하지만 의지 스탯을 보유한 대상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피해를 입은 대상은 높은 확률로 화상을 입고 보통 확률로 의지 하락을 겪습니다.

-필드 효과 3-

주작의 9번째 심장이 성장 시 개방.

-필드 효과 4-

주작의 9번째 심장이 성장 시 개방.

-필드 효과 5-

의지 스탯이 2천에 도달 시 개방.

-필드 효과 6-

종족이 반신, 혹은 신으로 변경 시 개방.

필드 활성화 시 자원 소모:초당 1,000의 마나

필드 소환에 걸리는 시간:즉시

재사용 대기 시간:20분

날씨가 흐리지 않은 상태에서 전격 마기의 폭풍을 사용하려면 무려 30초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었다.

‘폭풍우’가 쏟아져야만 발동한다는 제약 탓이었는데 이는 즉 실내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화신의 폭풍은 달랐다.

언제, 어디서나 즉시 발동이 가능했다.

불속성임에도 비가 온다거나 물속에서는 제약이 생긴다는 페널티조차 없었다.

주작과 화공의 불꽃은 일반적인 불꽃이 아니었으니 불은 물에 약하다는 법칙을 허용치 않는 것이다.

다만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전격 마기의 폭풍은 시전자의 이동 속도를 올려주는 한편 적들에게 더 많은 종류의 디버프를 안겼다는 점인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속도야 신속한 몸놀림만 있으면 극점을 찍기 쉽고, 화신의 폭풍이 유발하는 디버프가 비록 종류는 적더라도 위력 면에서는 월등히 뛰어나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력의 관리다.

자신의 생명력조차 관리 못하는 사람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오처럼 컨트롤 실력을 칭송 받는 플레이어들의 전투 영상을 보면 생명력을 관리하는 수법과 타이밍이 절묘하곤 했다.

하지만 화신의 폭풍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진다.

하오는커녕 크라우젤이 와도 화신의 폭풍 안에서는 생명력 관리가 불가능해진다.

물약 복용 타이밍이나 회복 스킬의 발동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잡으면 뭐하는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을뿐더러 재수 없으면 오히려 더 큰 생명력을 잃게 될 텐데.

저벅.

“윽....!”

저벅.

“크음....!”

장렬한 불꽃의 폭풍을 몸에 두른 그리드가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초왕의 무사들이 콧김을 내뿜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눈빛을 보아하니 겁에 질린 것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뒷걸음치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나지 않고 제자리에 버틴 채 표정을 굳건히 한다.

템빨국의 병사들과 기사들을 연상시키는 용맹과 충성이었다.

‘....전쟁 중에 무기까지 버린 우리 애들하고 비교하는 건 좀 아닌가?’

무식한 수준이었던 동료들의 기상을 떠올린 그리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멈췄다.

이미 대부분의 무사들과 초왕이 폭풍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아직은 무사했다.

그리드가 필드 효과를 1단계에서 멈춰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펑-!

은밀히 그리드를 향해 쏘아졌던 부적 몇 개가 허공에서 터진다.

무형지기의 응용이다.

동체시력으로 쫓을 수 있는 공격쯤이야, 무형지기의 발동만으로 쉽사리 베어버릴 수 있는 것이 지금의 그리드였다.

“....!?”

기습이 수포로 돌아가자 놀란 도사들이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을 외면한 그리드가 초왕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랫사람들에게 충성을 얻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권력과 무력뿐만이 아닌 바.

과거의 한속봉과 현재의 무사들이 초왕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초왕의 인품을 유추한 그리드는 초왕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리드는 초왕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빤히 예상했다.

역시나.

“모두 물러나라.”

초왕이 명했다.

그리드를 방심시키려는 연기 따위가 아니었다.

그림자 속 살수들과 장막 뒤 도사들이 동요하는 기색을 그리드의 감각이 정확히 포착했다.

초왕 곁 무사들이 반발을 일으켰다.

“제멋대로 궁궐의 담을 넘은 것으로 모자라 정체마저 밝히지 않는 침입자를 독대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저희가 어찌 물러날 수 있겠나이까! 통촉하여주시옵소서!”

한숨 쉰 초왕이 허공을 보고 말했다.

“무영아, 너도 물러나도록 하여라.”

“....!”

무영은 초왕의 그림자 무사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초왕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은 그가 있었기에 초왕의 안전은 보장돼 왔다.

스륵.

무영이 초왕의 곁으로 나타나 섰다.

지금 대전에는 고수 아닌 자가 없었지만 무영이 어디서부터 나타난 건지 엿본 사람은 그리드 한 명이 유일했다.

슬그머니 그리드를 쳐다본 무영이 초왕에게 고개를 숙인 뒤 대전을 떠났다.

그러자 다른 무사들도 더 이상 버티고 서있을 수가 없었다.

평생토록 초왕의 곁을 지켜온 무영조차도 초왕의 명을 받든 마당에 자신들이 무슨 권리와 자격으로 명을 어긴단 말인가?

찌릿, 정체 모를 침입자를 원망스럽게 노려본 무사들이 살수, 도사들과 함께 무영의 뒤를 따랐다.

이제 대전에 남은 사람은 그리드와 초왕 단 둘뿐이었다.

초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깊은 지하의 악의가 지상을 탐하노니. 천일을 근심하신 오존께서 양반들을 모아 이르셨다. 너희들의 뼈와 살로 지옥의 통로를 막으라. 지상을 평안케 하는 길이다.”

동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의 내용을 담은 시다.

고대 초국의 시인이었던 유보는 오존의 자애와 양반들의 헌신을 기리고자 이 시를 지었으며, 이 한 편의 시가 있었기에 인류는 오존과 양반들을 공경하게 되었다.

초왕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왕족이기에 앞서 동대륙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었으니 오존과 양반들에게 늘 감사하며 깊은 존경과 애정을 품어왔다.

하지만 제위에 오른 뒤부터 서서히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유보의 시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신화가 양반들의 희생을 서술하고 있소. 그리고 희생이란 자애가 있기에 실천되는 것일 테요. 하지만 과인은 잘 모르겠소. 양반들은 신민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많은 봉사를 실천하고 있으나.... 그들을 가까이서 본 과인이 느끼기에 그들은 인간을 사랑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외다.”

고오오오오....

정체모를 침입자를 감싼 불꽃이 아름답게 물결친다.

문득 현혹되어 불꽃을 손에 쥐어본 초왕은 따스함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 짓게 되는 따스함이었다.

“사방신은 오존께서 낳은 신수라고 배워왔소. 오존의 뜻을 받든 신수들이 양반들을 도와 지옥의 통로를 막았다고 배웠소. 딱 거기까지였소.”

사방신이 세운 공을 조명하는 신화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신화가 오존과 양반들을 찬양할 뿐이며 사방신은 항상 조역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제는 어떤가.

주작궁을 비롯한 모든 사신기에 사방신의 숨결이 담겨있다.

지옥의 통로를 틀어막고 있는 근원은 양반들의 희생이 아닌 사방신의 잔재였다.

“가식을 뒤집어 쓴 채 신앙에 집착하는 양반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과인은 무서운 생각을 품기 시작했소. 우리네 인간을 위해서 희생한 이들은 사실 양반이 아닌 사방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초왕은 부디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자신의 의심이 사실일 경우 대부분의 신화가 왜곡된 것임이 증명되었으니 두려웠다.

자신과 조상들이 태어나 살아온 세상이 거짓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느낄 상실감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쏴아아아아....

대전을 잠식하고 있던 불꽃이 사그라진다.

불꽃의 따스함에 의지한 채 용기내서 말하던 초왕이 아쉬움에 탄식하는 그때 정체 모를 침입자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

초왕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낯선 침입자의 얼굴이 초왕에게도 익숙한 모습으로 바뀌어갔기 때문이다.

맹금류의 것처럼 뻗어 올라가는 강렬한 눈매와 단단하게 각진 턱.

판게아의 백성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묘사와 정확히 일치하는 생김새다.

“....내 오랜 벗 속봉과 그의 백성들을 거두어간 서방의 왕은 결코 꺾이지 않을 거목과도 같은 인상을 지녔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었구려.”

“짐이 바로 템빨왕 그리드다.”

초왕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리드를 반기는 눈치였지만 그리드의 태도는 무뚝뚝했다.

당연한 것이다.

결코 꺾이지 않을 거목과도 인상이 뭔데?

그냥 잘 생겼다고 한 마디 해주면 어디가 덧났나?

‘....는 농담이고.’

그리드가 초왕을 곱게 볼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 초왕은 한속봉과 수애의 처형을 명하고 그들을 감옥에 가뒀었다.

가람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며, 사실 뒤로는 한속봉과 수애를 지키고자 애썼다는 사실을 그리드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괘씸했다.

지금 더 괘씸해졌다.

양반들을 의심하고 있었으면서도 저항할 생각은 못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었겠지.’

이들은 결국 약자다.

죽어도 다시 태어나는 나와 달리 단 하나뿐인 목숨으로, 단 하나뿐인 목숨을 가진 다른 이들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간신히 마음을 다스린 그리드가 한층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겠소. 사방신은 오존이 아직 이 땅에 오기 전부터 이 땅을 지켰던 수호신들이오. 당신들을 위하는 진짜 신은 오존과 양반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요.”

“.....”

초왕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품었던 의심이 진실로 다가오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드가 질문했다.

“초국에 나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고 들었소. 왕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계셨소?”

“....당연하오. 내 벗과 백성들을 지켜주고 거두어준 왕께 양반들의 마수가 뻗지 않기를 바란 사람이 바로 나요.”

“.....”

미워해선 안 될 사람이었다.

아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늘이 무너진 듯한 얼굴로 대답하는 초왕에게 그리드가 경고해주었다.

“가람이 머잖아 이곳을 방문할 것이오. 나를 비호했던 이들을 모조리 색출해 처형할 것이고 당신 역시 무사치 못할 것이오.”

“.....”

각오했던 일이다.

초왕은 그리 답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은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랐으니까.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리는 초왕에게 그리드가 제안했다.

“협력합시다.”

“....?”

“당신과 내가 손을 잡으면 위기를 넘길 수도 있소.”

“....!”

그리드가 품에서 꺼내는 활을 본 초왕이 경악했다.

오래 전 잃어버렸던 주작궁이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신력을 품고 돌아온 것이다.

“주작을 부활시켜서 이 땅의 수호신으로 세웁시다.”

그리드는 <주작의 수호자> 퀘스트를 완료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판단했었다.

최소 국대전 이후에나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정이 바뀌었다.

강화된 주작의 숨결이 기대 이상의 가치 판정을 받았을 뿐더러 동대륙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인 초왕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었으니까.

“두려워하지 마시오. 우리는 단지 원래대로 되돌릴 뿐이지 힘든 일을 하려는 게 아니외다.”

사실 가장 두려웠던 사람은 그리드다.

환국의 실체를 알고 그들과 적대하게 된 자신이 앞으로 홀로 어떤 고난을 겪게 될지 그는 감조차 잡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깨달았다.

굳이 혼자 발악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주작을 부활시키면 된다.

오존과 양반들이 왜곡시킨 신화 하나를 바로 쓰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가람이 우습게 여기는 것과 달리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주작이 우리를, 이 땅을 지켜줄 것이오. 그러니까 갖고 있는 주작의 숨결이 있다면 어서 내게 주시오.”

“....?”

감격하며 듣고 있던 초왕의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그리드가 잘 나가다가 다짜고짜 국보를 요구했으니 황당했다.

속사정을 모르는 그의 입장에선 날강도를 만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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