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091화 (1,081/1,794)

템빨 56권 - 19화

현실시간으로 6년.

하이랭커들이 Satisfy에 바친 세월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새기고, 반드시 잊고 싶은 악몽을 체험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게 무슨....”

콰쾅!

쿠콰콰콰쾅!!

창천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싶더니 쏟아지기 시작하는 운석들이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광경에 하이랭커들이 할 말을 잃었다.

여태껏 수없이 많은 재앙을 목도해온 그들조차도 도시 하나가 찰나지간에 박살나는 광경은 처음 보았다.

━━!

벨리알의 재림인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음과 비명이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가운데 하이랭커들은 인류 앞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던 대악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전설의 대마법 <메테오>로 수백 개의 운석을 떨어뜨렸던 그녀가 만든 재앙의 현장에는 하이랭커들도 함께였었다.

이와 같은 재앙은 두 번 다시 목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한데 이 순간 똑같은 재앙을 목격하는 것이다.

“....아니, 벨리알 이상이다.”

마법사 랭커들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엿보았다.

도시 곳곳에 떨어지고 있는 저 수십 개의 운석이 모두 ‘진짜’임을.

벨리알이 마법으로 ‘형성’했던 운석들과 달리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이는 마력으로 상쇄할 수 없는 물리력의 극한이다.

“우주로부터 끌어온 별.... 이게 진짜 메테오다.”

두근! 두근! 두근!

수십 명 마법사 랭커들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들의 시선과 탐지 마법이 급히 사방을 탐색했다.

역사상 최강의 대마법사.

세상의 모든 마법사가 흠모해온 전설 브라함이 바로 이곳 차오즈에 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

마력을 쥐어 짜 브라함을 추적하던 마법사들의 두 눈이 일제히 부릅떠졌다.

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외쳤다.

“누군가 온다!”

그것이 신호였다.

운석의 폭격 속에서도 무사한 사각의 건물을 방패삼아 병장기를 꺼내 쥐고 있던 랭커들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과연 베테랑들다웠다.

멸망의 재앙조차도 그들의 집중력을 분산시키진 못했고 그들의 판단과 행동은 신속했다.

“요격한다!”

<매의 눈>을 지닌 궁사들이 마법사 다음으로 침입자의 위치를 포착했다.

빠르게 좁혀지는 침입자와의 거리를 가늠한 그들이 신중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까드득-!

시위가 극도로 팽창했다.

성기사 랭커들의 버프 스킬이 궁사들의 근력을 상승시켜준 여파다.

피핑-!

피피피피피피피피피핑!!

수십 명의 궁사가 쏜 수백 발의 화살이 곳곳에서 발생하는 폭발의 후폭풍을 꿰뚫고 표적에게 날아갔다. 어떤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는 반면 어떤 화살은 직선으로 쏘아졌고 또 어떤 화살은 땅으로 꺼졌다.

번쩍-!

이미 멀찍이 날아간 수백 발의 화살에 가지각색의 마력이 깃들고 있었다.

무기에 속성 데미지를 추가하는 마법사들의 보조 마법이 화살의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광경이었다.

“저기다!”

탱커들과 근거리 격수들의 육안에도 침입자가 식별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침입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뜻.

마침 수백 발 화살이 침입자의 몸 위로 꽂혔다.

쩌정-!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정!!

백발백중.

단 한 발의 빗나감도 없다.

재차 화살을 뽑은 궁사들이 다시 한 번 시위를 당기고 법사들의 마법 주문이 완성되어가는 이때.

“우오오....! 오?”

돌진 스킬을 사용해 침입자에게 달려들던 탱커들과 격수들이 당황하며 멈춰 섰다.

화살 비에 꽂혀 고슴도치가 된 침입자가 처음의 기세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난감 활이냐!”

기대에 못 미치는 궁사들의 공격력에 실망한 탱커들이 혀를 내두르며 방패를 세웠고,

“체인 스트라이크!”

탱커들의 후위에 포진한 소드 싱어들이 포획 스킬을 전개했다.

파지직!

사슬처럼 뻗어나간 검기 수십 줄기가 침입자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휘감고 구속해 당긴다.

그 탓에 침입자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탱커 진영으로 강제로 끌려갔다.

“월척이군!”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딜러들이 스턴 스킬을 장전했다.

곧 근처까지 끌려올 침입자의 얼굴에 스턴을 꽂아준 뒤 그대로 묵사발로 만들 요량이었다.

“초월잔지 뭔지 몰라도 다굴 앞엔 장사 없지!”

“진정들 해! 브라함이 단테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 뭐가 어찌됐든 일단 단테는 잡고 봐야지!”

과연 딜러 중에는 호전적인 사람이 많았다.

타석의 타자가 공을 기다리듯 집중하고 선 그들이 어느새 가까워진 칩입자의 급소를 노리고 검과 창을 찌르는 그때였다.

‘뭐지?’

‘손맛이 나쁜...? 헉!’

체인 스트라이크로 침입자를 끌어오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소드 싱어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침입자가 이곳까지 끌려온 게 아니라 스스로 날아온 거란 사실을 눈치 챈 것이다.

휘릭!

침입자가 선회하자 그의 목과 사지를 휘감고 있던 체인 스트라이크가 모조리 뜯겨나갔고,

퍼펑-!

표적을 잃은 딜러들의 병장기가 애꿎은 허공을 강타했다.

“뭣....!”

아연실색하는 수백 명 랭커들의 시선이 여태껏 단테인 줄 알았던 침입자의 얼굴을 좇는다.

랭커들은 백발노인의 모습을 예상했으나....

“누구?”

침입자는 노인이 아니었다.

중년인지 청년인지 분간하기 힘든 연령대의 미남자였다.

레몬색으로 밝게 빛나는 금발이 아름답다는 감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큭....!”

이를 악 문 탱커들이 방패를 곧추세웠다.

바로 지척까지 무사히 파고든 금발의 침입자가 공격해올 것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무의미했다.

뻐어어어엉-!

“....!?”

가장 강력한 방어구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갑옷을 떠올릴 것이다.

갑옷만큼 많은 부위를 보호해주는 방어구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가장 강력한 방어구는 단연코 방패다.

방패는 인간의 신체에 공격이 닿기 전에 차단하는 방어구.

얼마나 강력한 공격이 날아오든 일단 방패를 세워서 막을 수만 있다면 피해 없이 충격을 흡수하는 게 가능했다.

탱커들이 ‘갑옷은 없어도 방패는 있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탱커들의 방패를 향한 믿음은 절대적이어서 거의 신앙에 가까웠다.

바로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크어억!!”

관통.

방패를 세워서 침입자의 공격을 막은 탱커들의 몸이 방패와 함께 나란히 꿰뚫린다.

활동성을 보장하는 소형 방패로는 침입자의 날카로운 검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게 방패는 크고 두꺼운 게 최고라니까!”

저놈들은 탱커도 아니다.

혀를 찬 수호기사 랭킹 4위 카탄이 정면으로 나섰다.

사각방패 위에 걸친 그의 시선은 침입자의 어깨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

투쾅-!

완벽한 타이밍.

침입자가 검을 내지르는 순간을 정확하게 노린 카탄이 방패를 세우자 침입자의 검이 방패에 가로막혔다.

딜러와 탱커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겠다는 욕심을 품은 일부 탱커들의 소형방패와 달리 카탄의 두꺼운 사각방패는 침입자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무게’는 감당하지 못했다.

쩡-!

“....?”

대포가 날아온 듯하다.

침입자의 검 끝으로부터 돌의 가시가 솟구치자 카탄의 두꺼운 사각방패가 흔들렸고 이어서 카탄과 함께 수십 미터나 날아갔다.

‘방어력과 저항력을 무시하는 차징이라고?’

사각의 건물에 처박혀 주저앉은 카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빛은 꺼지지 않았다.

“아직이냐!!”

지금 이곳에 모인 300명의 인원은 동료나 친구 따위가 아니다.

하지만 신뢰할 수 있다.

20억 명을 대표하는 그 최고의 실력들만큼은.

“잘 버텼다!”

카탄의 재촉에 호응하듯이 곳곳에서 마법이 폭사했다.

각기 다른 속성의 마법들이 다양한 형태를 이루어 침입자를 덮쳤다.

침입자는 이에 대비하지 못했다.

마법의 발동보다 앞서 달려들었던 딜러들의 날카로운 공격이 쇄도해오고 있는 까닭이었다.

“네가 누군지는 몰라도...!”

“이곳을 지나갈 순 없다!”

랭킹은 가치평가의 척도다.

독보적인 존재가 아닌 이상에야 단 1의 랭킹 상승과 하락만으로도 몸값이 변하는 게 랭커의 세계였다.

이번 퀘스트에 참가한 랭커들은 모두 필사적이었다.

어딘지 낯익은 이 금발의 침입자가 어디서 날아온 괴물인진 몰라도 순순히 당해줄 생각 따위....

“....아스모펠!! 아스모펠이다!!”

결의를 다지던 랭커들이 뒤늦게 금발 침입자의 정체를 떠올리고 소리쳤다.

마왕 그리드의 사천왕 중 하나이기도 했던 이자는 그리드의 다른 기사들과 비교해서 명성이 낮지만 실력만큼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제길! 그리드랑 관련이 있던 건가?”

랭커들의 기세가 처음으로 누그러졌다.

레벨 4 하락의 페널티보다 그리드와 적대하게 될 수도 있단 사실이 더욱 두려운 그들이었다.

그만큼 그리드의 영향력이 거대했다.

“후....”

금발의 침입자 아스모펠.

정확히는 아스모펠의 모습을 빌리고 있는 그리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에게는 용건이 없으니 비켜라.”

그리드가 여기까지 오는 길에 도살귀의 가면을 벗어던진 이유는 랭커들의 존재를 뒤늦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 중에 도살귀의 가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정체를 숨기고 싶은 그리드의 입장에선 가면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궁금한 건 단 하나. 저 건물 안에 무엇이 있느냐다. 그것만 확인하면 순순히 물러나겠다.”

진심이다.

그리드는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이곳에 찾아왔을 플레이어들을 굳이 적대하고 해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물론 저들이 태도를 고수한다면 망설임 없이 베어버리겠지만 피할 수 있는 싸움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굳이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취미 따위, 지금의 그리드에겐 없었으니까.

“어....?”

그리드가 가리키는 사각의 건물을 돌아본 랭커들의 얼굴이 돌처럼 굳고 있었다.

본래 백색이었던 건물의 색상이 짙은 회색으로 변해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어딘지 음침하고 불길한 색상이었다.

쿠오오오오━

짐승의 울음소리마저 들려온다.

살갗을 찢을 듯이 짙은 살기가 배인 울음소리였다.

성기사 랭킹 3위 마조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건물이.... 건물이 죽음의 기운을 흡수했소.”

“....!?”

그리드를 비롯한 랭커들의 시선이 사방으로 분산됐다.

메테오의 여파로 죽어가는 병사들의 신음이 천지에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신음이 잦아들수록 건물의 색은 더욱 짙은 어둠을 품었다.

그리드의 시야가 붉게 점멸했다.

[죽음이 다가옵니다!]

쿠화하하하하하하하학!!

완전히 검게 물든 사각의 건물이 독무를 풍기며 개방됐다.

이어서 등장하는 것은 거대한 뱀의 머리와 꼬리가 달린 거북이.

태산보다 거대한 녀석의 정체는 다름 아닌 현무였다.

“염병!”

“지랄!”

그리드와 랭커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소리쳤다.

***

차오즈 성의 가장 깊은 곳.

맑은 물이 찰랑이는 그 수수께끼의 방으로 안내받은 봉드레가 깜짝 놀랐다.

물 위에 둥실둥실 떠있는 현무보옥을 발견한 것이다.

“밖에 있는 건물은 함정이었던 겁니까?”

“아니다. 그곳에도 현무보옥이 있을 뿐이다.”

“....?”

“생명의 탄생을 돕는 물의 신이되 죽음을 관장하는 사신이기도 했던 현무의 이중성을 한 그릇에 담는 것은 불가능했거든.”

욕조에 요염하게 걸터앉은 아름이 봉드레에게 턱짓했다.

“이곳의 수기를 얼려보아라. 바로 네가 완전한 사신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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