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7권 - 03화
시야가 뿌옇다.
유난히 추운 겨울, 유리에 서리 낀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분이다.
‘뭐지?’
어떠한 경고창도 뜨지 않았건만, 나는 왜 이런 꼴을....
“큭!”
아름의 명령에 따라서 계속 마법을 사용하던 봉드레가 급기야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진이 완전히 빠졌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오며 그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목소리의 발원지는 대전의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현무보옥이었다.
『추워....』
『괴로워....』
『아파.... 무서워....』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될 것만 같아....』
『내가 사라지면....』
『사람들이.... 사람들이 위험해....』
‘....현무의 목소리라고?’
흐리멍덩한 표정을 짓고 있던 봉드레의 눈빛이 서서히 변했다.
지존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옛날 그 시절처럼, 마치 저 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현무와 양반들의 관계가 소문과 다르다.’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 봉드레의 시야가 선명해진다.
알림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히든 퀘스트★ <사신기 수호>에 실패하였습니다.]
[레벨이 4 하락합니다.]
[★히든 퀘스트★ <진짜 신화>가 발생합니다!]
봉드레는 눈치 챘다.
욕조에 걸터앉은 아름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민물생선의 고약한 비린내보다 더한 악취를 풍기고 있음을.
‘개 같은 놈들에게 걸렸군.’
상황을 인지하고 이를 가는 봉드레의 두뇌가 활성화된다.
20억 명의 유저를 제치고 한 자릿수 랭킹에까지 올랐을 정도로 영민했던 두뇌다.
‘떠올리자.’
하늘의 부름 퀘스트를 받았을 때부터 아름을 만나 작금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회상해본다.
조금이라도 더 또렷하게....
그리고 이때 겪었던 이질감들을 모조리 되짚는다.
후들후들 떨리던 팔과 다리가 진정된다.
아름이 붙여준 정체불명의 부적 덕분에 모든 마나가 회복되며 체력까지 회복된 것이다.
[하나의 진원진기를 소모하였습니다.]
[진원진기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큭큭.”
봉드레가 기가 막혀 웃었다.
그리고 등에 붙어있는 부적을 떼어냈다.
『싫어! 싫어엇!!』
자신과 마찬가지로 양반들의 협력자가 아닌 피해자였을 현무의 고통에 찬 음성이 봉드레의 뇌리에 여전히 또렷하게 울리고 있었다.
“호오?”
봉드레의 눈빛이 변한다 싶더니 급기야 스스로 부적까지 떼어내자 아름이 흥미를 보였다.
꾸욱!
봉드레의 얇은 목이 그녀의 섬섬옥수에 붙잡혀 검게 물들어갔다.
“죽어가는 와중에 제정신을 차릴 줄이야. 인간치곤 여러모로 제법이구나.”
“끄....윽....”
호흡이 힘들다.
기껏 되찾은 시야가 붉게 점멸한다.
이대론 죽는다.
상태이상 ‘질식’에 괴로워하는 봉드레가 발버둥치는 그때였다.
투쾅-!!
얼어붙은 대전의 중앙을 장식했던 현무보옥이 천장을 꿰뚫으며 솟구쳤다.
아름의 뒤편에 서있던 마루와 양반들이 그것을 뒤쫓는 광경을 목격한 봉드레가 아찔한 고통 속에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너희는.... 뭐지?”
“신.”
“.....”
“우리는 신이 될 존재다.”
“큭큭....”
빌어먹을, 한낱 인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부터 수상하다 싶더니 신이 아니었던 거냐.
봉드레의 눈에 깃든 적의와 살기를 엿본 아름이 콧방귀 뀌었다.
“괜한 용기를 품지 마라. 아직 신이 못된다한들 너희들 인간보다야 우리가 나아.”
낳다가 아닌 낫다다.
서로 견주어 보아 더 좋거나 앞서 있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봉드레의 이성이 아름을 NPC, 그래픽 덩어리로 인식한다.
더 이상 압도당하지 않는다.
“한낱 피조물 주제에....”
“....!”
끄억끄억, 간신히 호흡을 토하며 말하는 봉드레의 한 마디가 아름의 심기를 건드렸다.
봉드레의 목을 쥔 그녀의 손에 더 큰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후두둑!
열기가 느껴진다 싶더니 아름의 등 뒤로 불길이 솟구쳤다.
흠칫 놀란 아름이 뚫린 천장을 통해서 하늘을 올려보자 불의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최후의 발악을 시작한 현무가 내뿜게 될 수기에 저항하고자 끌어올렸던 백호의 숨결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화기의 세례였다.
“무슨?”
같잖은 인간을 떨쳐낸 아름이 백호의 숨결을 거두고 현무의 숨결을 운용했다.
과연 현무는 냉기 탓에 약해져 억제력을 잃었고 아름은 수기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었다.
촤하하하하하하학!!
쏟아지는 불의 비가 아름에게 닿기 직전에 수증기로 변해 소멸한다.
물의 장막을 두르고 선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뚫린 천장 위를 향해있었다.
봉드레는 더 이상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주작을 부활시킨 인간이 이곳에 온 건가....”
터엉!
아름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봉드레가 뒤를 쫓았다.
아름이 흘리는 수기를 얼려 거미줄 삼듯이 매달린 것이다.
“무슨 속셈이지?”
이변을 감지한 아름이 뒤를 돌아본다.
그녀와 연결 된 얼음의 줄기에 매달려 머리카락을 나부끼는 봉드레가 히죽 웃어보였다.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기엔 내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말이다.”
단 한 번도 굴복한적 없다.
천외천 크라우젤부터 시작해 그리드, 페이커, 아그너스로 이어진 강자지존의 세계 속에서 봉드레는 수없이 좌절하고 절망했으나 포기한 적은 없었다.
자신 또한 언젠가 반드시. 반드시 그들과 같은 재능을 개화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네깟 놈들에게.”
이토록 허무하게 당할 거였다면,
‘진즉에 포기하고 게임 접었다, XX.’
“....!”
까가가가가가가가강!!
아름의 몸이 얼어붙었다.
물리적인 상태이상이다.
그녀를 둘러쌌던 수기가 모조리 얼음으로 변하니 그녀는 도무지 저항할 도리가 없었다.
콰자자작!!
얼음 상태로 지면에 추락한 아름이 기겁했다.
그녀의 왼쪽 발이 산산이 조각나 사라진 상태였다.
“네놈....! 네놈 인간 따위가아!!”
아름다운 나의 육신을 훼손시키다니!
붉게 충혈 된 눈으로 포효한 아름이 냉기의 상극인 주작의 숨결을 운용했다.
주작의 부활 여파 탓에 그녀가 품고 있는 주작의 숨결은 곧 꺼지기 직전의 불꽃만큼이나 미약했지만 그래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했다.
봉드레가 두르고 있는 냉기를 빠르게 녹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얼음을 녹이는 속도보다 봉드레가 얼음을 만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초국의 간식거리 중에 엿이라는 게 있더군.”
저벅.
열기에 녹아 흐르는 얼음을 다시금 재생성해 방패로 삼은 봉드레가 한 걸음,
“엿 같다는 욕설도 있던데, 혹시 아나?”
두 걸음, 아름에게 다가간다.
“지금 내 기분이 엿 같다.”
피식!
“.....”
얼음에 베인 아름의 투명한 뺨에 붉은 피가 흐른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간과하고 있었는가를 깨달았다.
품고 있는 주작의 숨결이 너무나도 약해졌다.
냉기에 상극으로 작용하는 불의 힘을, 지금의 자신은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다.
쩌엉!
거대하고 날카로운 얼음의 송곳이 아름의 복부를 노리고 쏘아졌고,
촤르륵!!
다급히 백호의 숨결을 운용한 아름은 돌의 벽을 세워 막았다.
“통탄할 노릇이군. 하찮은 인간과 육탄전을 벌여야하다니.”
꽈앙!
봉드레의 시야가 핑그르르 돌았다.
이어서 턱이 사라져버린 듯한 착각을 느꼈다.
자신이 소환한 장벽을 꿰뚫고 나타난 아름이 휘두른 발차기에 턱을 얻어맞은 여파였다.
[29,59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길.’
고작 발차기 한 방이 이 정도 위력을 발휘한다고?
아직 신도 아니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가 도달하기엔 너무 높은 위치에 있는 거 아니냐....
쿠당탕!
단 일격에 맥없이 뒹구는 봉드레의 몸이 움찔움찔 경련했다.
곧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봉드레가 죄책감에 휩싸였다.
‘미안하다.’
<진짜 신화>
★히든 퀘스트★
양반들의 실체와 그들의 저의를 파악한 당신은 세계의 이면을 엿보았습니다.
신화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양반으로부터 현무보옥을 탈취
퀘스트 클리어 보상:레벨 6
퀘스트 실패 시:서대륙으로 강제 송환
봉드레는 진즉에 눈치 챘다.
이 퀘스트의 발단은 자신에게 있음을.
이것은 ‘천재’라 불렸던 ‘플레이어 봉드레’의 그간 업적과 성격을 분석한 시스템이 오직 봉드레를 위해서 내려준 퀘스트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찬미해온 시스템에게 사죄하며, 봉드레는 두 눈을 감았다.
죽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를 찾아온 것은 죽음이 아닌 구원이었다.
“일어나.”
한시도 잊지 못했던 목소리.
노기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든 봉드레는 아름의 출수를 막아내는 그리드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놈....!”
봉드레의 턱에 핏줄이 솟구친다.
“무슨 짓이냐!!”
왜 하필 네놈이....!
왜 하필 네놈이 이 순간 나타나서 나를....!
“네놈이 정의의 사도인척 나댈 때마다 얼마나 역겨운지 아느냐....!”
봉드레는 그리드의 정의감을 수차례 목격해왔다.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 모두가 경쟁자다.
플레이어는 플레이어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선 안 된다. 오직 견제하며 짓밟아야했다.
그렇다고 믿어왔다.
한데 왜.
한데 왜 네놈은....!
쩌어어엉!
그리드의 검격이 아름을 떨쳐냈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는 그녀에게 매직 미사일을 쏘아 날려 행동에 제약을 건 그리드가 봉드레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도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은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어. 도리어 나는 악당을 동경했었다.”
“....?”
“단지 힘이, 재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히어로의 가면을 쓴 주인공들을 혐오했었거든. 정확히는 그들의 가식을 혐오했지.”
고해하는 그리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재차 덤벼드는 아름을 갓 핸드로 저지하며 봉드레를 안고 도약한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이해해.”
이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사리사욕으로 휘두르기엔 너무 위험하니까.
그러니까 정의를 세울 수밖에 없다.
어쩌면 히어로란, 영웅이란.
힘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만 안도할 수 있는, 그런 가여운 존재였을 수도 있다.
“봉드레, 이번 한 번만 내게 협력해라.”
“헛소리.”
“함께 싸워줘. 너의 힘이 필요하다.”
“지랄...!”
“네게도 나의 힘이 필요할 텐데?”
“....엿 같군.”
발버둥치기를 관둔 봉드레가 그리드의 몸에 기댄 채 힘겹게 손을 들었다.
그의 떨리는 손끝이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2개의 마법진이었다.
그리드는 <벨리알의 지팡이>가 있어도 간신히 집중해야 수십 번 중 한 번을 성공할까 말까한 더블 캐스팅을 봉드레는 완벽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프로즌 아이스. 절대 영도.”
쩌정!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정!
주위가 얼어붙었다.
그리드에게 덤벼들고 있는 아름과, 이미 앞서 불의 비에 휩싸여 수기를 두르고 있던 다른 모든 양반들의 몸이 얼음 속에 갇혔다.
“나는.... 이게 한계다....”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는 봉드레의 신형이 무너졌고,
“고맙다.”
봉드레가 떨어지지 않게끔 더욱 힘차게 끌어안은 그리드는 얼음 속에 갇혀있는 양반들을 향해서 <락>에 이은 <십만대군 학살검>을 연계했다.
쩌어어어어어어어어엉!!
“....크아아아악!!”
부셔지는 얼음의 잔해 사이로 피를 튀기는 양반들의 비명이 폐허가 된 성터를 들썩이게 만든다.
현무가 쏘아올린 방울 속에 앉아 하늘을 노닐고 있던 차오즈의 주민들이 그리드의 활약과 양반들의 추락을 목격했다.
“신격. 잠재력 개방. 삼십만대군 잠행검.”
그리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추락하는 모든 양반들을 시야에 담은 채 검을 휘둘렀고 그의 검은 소리 없이 양반들의 급소를 꿰뚫었다.
서걱!!
한쪽 발을 잃는 바람에 바뀐 균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아름이 특히 큰 중상을 입었다.
우선 몸부터 가누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에게 순보로 접근한 그리드가 <초연살극(超聯殺極)>을 전개했다.
“꺄악...!”
약점을 노출하고 있던 아름이 버티지 못하고 잿빛으로 산화했다.
나머지 양반들의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약점을 노출한 상태로 300명에 이르는 하이랭커들의 집중 공격을 받자 위기를 느꼈다.
단 한 명.
“굉장하구나!”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지은 마루만큼은 여유를 잃지 않았지만.
“인간의 몸으로 지금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해왔겠구나!”
꽈르르르르르륵!!
덤벼오는 랭커들을 손쉽게 제압한 마루가 손에 쥔 현무보옥에 마력을 주입하자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소용돌이에 휩싸인 성터의 모든 것이 그대로 현무보옥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그리드와 봉드레를 비롯한 하이랭커들도 포함됐다.
이 순간의 마루는 현무의 권능 중 일부를 재현하고 있었다.
“냐앙....! 꼬르르륵!!”
하이랭커들과 함께 빙글빙글 회전하며 현무보옥에 빨려 들어가던 그리드가 괴로워하는 노에를 발견하고 역소환했다.
‘제길.’
작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이십만대군 분쇄검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소용돌이 자체를 베어 없애야 한다. 하지만 격류에 휩싸인 몸을 가눌 수 없으니 검술의 구현이 불가능하다.
무력하다.
물 내린 변기에 버려진 벌레가 된 심정이다.
“끄륵....!”
봉드레가 괴로워하고 있었다. 소용돌이에 휩쓸렸을 때 즉각 반응하지 못해 물을 잔뜩 먹은 눈치다.
‘이건 전멸이다.’
가람급 양반과 사신기의 조합이 너무 사기다.
그리드가 판단함과 동시였다.
“어이쿠. 다들 바쁘신 와중에 잠시 실례하겠소.”
“....?”
마루의 뒤편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목소리가 젊은 사내였다.
소용돌이에 휩쓸려 빙글빙글 회전 중인 그리드로써는 패랭이를 눌러 쓴 그자의 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마루는 달랐다.
자신의 바로 곁에 나타난 불청객의 정체를 그는 한 눈에 알아봤다.
“황길동!”
콰르르르르륵!!
그리드와 하이랭커들은 물론이고 성터의 모든 잔해를 빨아들이고 있던 소용돌이가 불시에 멈췄다.
마루의 손에 있어야할 현무보옥이 황길동의 손에 들려있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있는 양반의 물건을 훔치다니, 실로 놀라운 소매치기 실력이었다.
“이건 우리 활빈당에서 간수하도록 하겠소. 그럼 난 이만 돌아갈 테니 어서 볼 일들 보시오.”
“황길동!!”
마루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격노한 그가 내지른 주먹이 황길동의 안면을 가격하자 어이쿠, 단말마를 내지른 황길동은 비명횡사했다.
하지만 그의 시체는 잿빛으로 산화하지 않았다.
뿅! 이라는 다소 경박한 효과음과 함께 볏짚인형으로 변해버렸다. 현무보옥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
그리드와 하이랭커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사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그들은 공교롭게도 마루의 분노를 감당해야했다.
“인간들이여! 그토록 순진무구한 얼굴로 뒤에서는 황길동과 수작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냐!!”
꽈앙!
마루가 집어던진 단창이 하이랭커들이 밀집해 있는 방향으로 쏘아졌다.
기세가 마치 미사일 같았다.
당사자들은 반응하지 못했고 그리드만 다급히 몸을 날려보았지만 거리가 멀어 낭패였다.
[순보의 발동에 실패하였습니다.]
‘늦었....!’
그리드가 절망하는 순간.
쩌어어어어어엉!!
굉음이 폭발했다.
수십 명의 하이랭커들을 동시에 꼬챙이 꿸 기세로 날아갔던 단창이 얇은 장검 한 자루에 막히면서 발생한 소음이었다.
“노, 노검마....!”
그리드와 하이랭커들의 시선이 흔들렸다.
구시대 ‘최강’을 상징했던 노년의 검사.
지독한 방랑벽이 있어 툭하면 행방불명되더니 급기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그가....
“지존을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오.”
머나먼 동방의 땅에서 나타나 그리드에게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