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122화 (1,112/1,794)

템빨 58권 - 03화

[<소형 마장기 제작법>을 획득하였습니다.]

<소형 마장기 제작법>

등급:고대

인간이 조종하기에 적합하게끔 설계한 마장기의 제작법입니다.

습득 조건:장인급 제작 기술 5개 보유. 또는 전설급 제작 기술 1개 보유.

무게:1

의외다.

마장기 제작은 학자나 연금술사의 영역일 줄 알았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어떤 분야의 기술이든 극의에 오르면 제작할 수 있다라....’

전설의 과학자가 만든 설계도가 워낙 완벽해서 이를 소화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사람은 누구라도 따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쯤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 싶다.

‘등급은 레이더스와 똑같이 고대로 분류되는군.’

고대는 특수 등급에 속한다.

노말~신화 등급과는 별개로 취급되며, 제작해도 스탯 보너스는 얻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리드가 느껴야할 아쉬움은 스탯 획득 여부 따위가 아니었다.

‘문제는 2톤의 탐욕이 필요하다는 건데.’

탐욕은 열흘에 2배씩 증식한다.

2개월이면 2톤의 탐욕을 모으는 게 가능했다.

물론 2개월 동안 멀쩡히 방치해뒀을 때의 이야기다.

아쉽게도 탐욕은 일정량 이상 증식시킬 수 없다.

광룡의 마력이 드러나기 전에 분리해서 속성을 억누르는 작업을 거쳐야만 했고, 이로 인해서 약 반년의 시간이 흘러야 2톤의 분량을 모으는 게 가능했다.

마장기 한 기 제작에 걸리는 기간이 최소 반년이라는 뜻.

이 소형 마장기라는 것의 위력이 레이더스의 위력의 5분의 1 아니, 10분의 1만 발휘할지라도 충분히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긴 했다.

하지만 그리드에겐 별도의 계획이 있었다.

생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마냥 기꺼운 마음으로 반년을 기다리기엔 그의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공중 요새.

별도의 동력 없이 움직이는 초대형 비행정을 제작해야했기 때문이다.

‘공중 요새를 만들 정도의 탐욕을 모으려면 최소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대현자 스틱세이의 분석이었다.

요새의 지반을 다지는 것만으로 수백 톤의 탐욕이 필요하며, 그 양은 5년의 세월에 거쳐서 축적될 거라고 스틱세이는 말했었다.

어디까지나 지반이다.

분리한 탐욕을 이어 요새의 기틀을 잡는데만 5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런 와중에 마장기를 만들게 되면....’

시간이 훨씬 더 지체된다.

1기의 마장기를 만들 때마다 요새의 완성 속도가 반년씩 늦춰지는 셈이다.

그리드는 매우 큰 낭패를 느꼈다.

대규모 병력과 병기를 언제든지 자유롭게 운반, 운영하게끔 해주는 전술병기.

바로 그게 그리드가 그리는 공중 요새의 역할이었다.

공중 요새만 있으면 대륙의 모든 왕국을 손쉽게 정복하고 대악마 등의 침략자와 맞서 싸울 때 큰 도움을 얻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가족을 위해서, 동료들과 나라를 위해서 온갖 위험요소를 없애고 싶은 그리드의 입장에서 공중 요새의 건조 속도가 늦춰진다는 건 영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촤르륵.

그리드가 둘둘 말려있는 제작법을 활짝 펼쳤다.

“뭐하냐?”

라드볼프가 동요를 일으켰다.

사실상 무용지물인 제작법, 가보로 삼으라고 줬더니 그걸 펼쳐버리는 그리드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것이다.

“어이! 야! 그거 배워봤자 마장기 못 만든다고!!”

소형 마장기 제작법은 라드볼프의 작품 중 가장 가치가 낮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용화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소형 마장기 제작법 자체엔 결함이 없었고 완성도도 완벽했다.

다른 제작법과 마찬가지로 라드볼프가 소중하게 여기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라드볼프는 자신의 작품이 영원히 템빨 왕조의 가보로 남기를 바랐다. 사람들에게 각별히 여겨질 자신의 작품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다.

한데 이 순간.

“불가능할지, 가능할지는 해봐야 알겠죠.”

쏴아아아아아!

그리드가 설계도를 펼쳐 읽었고, 설계도에 깃든 모든 지식과 정보는 그리드에게 전이되었다.

“이익!!”

라드볼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작품을 똥보다 못한 것으로 전락시킨 그리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역사에 둘도 없는 전설의 과학자.

무려 천 년을 살아온 자신의 조언을 귓등으로 흘린 그리드에게 언짢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리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갓 핸드.”

촤르륵!

두 쌍의 흑금색 손이 그리드의 전면에 떠올랐다.

그리고 스스로 움직여 이동하더니 벌겋게 달아오른 라드볼프의 얼굴에 손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이건....?!”

라드볼프는 파브라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파그마와 브라함이 함께 연구하고 제작한 그 지상계 최고의 광물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이 바로 소형 마장기 제작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 눈에 알아봤다.

지금 그리드가 선보인 파브라늄은 그가 알고 있던 파브라늄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진화시켰다고?’

라드볼프는 눈앞에 붕붕 떠있는 갓 핸드의 미세한 동작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그의 광활한 지식이 갓 핸드를 구성하고 있는 광물의 특징을 분석했고 그의 섬세한 감각이 갓 핸드가 품고 있는 기운들을 감지했다.

“네놈....!”

라드볼프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부리부리한 눈매가 위로 확 솟구치자 그리드도 움찔 놀랄 정도로 인상이 무서워졌다.

“파브라늄에 광룡철을 혼합시키다니...!!”

“....!”

지혜의 탑에 있어서 광룡철은 재앙의 결정체다.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광룡철을 모조리 찾아 처분하는 것이 그들의 당면한 과제였다.

‘난처해졌군.’

라드볼프가 격정을 내자 그리드는 아차 싶었다.

1좌 하야테는 탐욕의 존재를 용납해줬지만 다른 결사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단순히 아직 1좌에게 듣지 못한 걸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일단 설득해야한다.

하야테에게도 증명했듯이 탐욕을 통제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한다.

판단한 그리드가 설명하려는 순간이었다.

“대단하군! 아주 도전적이야!!”

“....!”

여전히 화난 표정으로, 하지만 입 꼬리는 한껏 치켜세운 라드볼프가 갓 핸드를 덥썩 붙잡아 쥐고는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극히 소량밖에 존재하지 않는 파브라늄의 단점을 광룡철로 극복하다니! 앞으로 파브라늄을 무한히 증식시킬 수 있겠군! 정말 대담해! 겁 대가리를 완전히 상실했어!!”

“....”

“광룡철의 성질을 고스란히 유지시킨 건 대체 무슨 배짱이지? 설마 네놈, 광룡석까지 확보해놓은 거냐? 광룡철이 일정량 이상 증식할 때마다 억압의 이능으로 억누를 수단을 미리 마련해둔 거야? 하지만 말이다! 광룡석은 계속해서 증식하는 광룡철에 비해서 수량이 한정적인데 나중에 가면 대체 무슨 수로 광룡철을 억누를 계획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뒷감당이 안 될 텐데?”

“....”

그리드는 섣불리 반응하지 못했다.

라드볼프의 험악해진 표정과 거칠어진 말투를 보고 불안을 느낌과 동시에 의문을 품었다.

‘표정이랑 억양만 봐선 화가난 게 분명한데.... 왜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지?’

“허! 잠깐? 설마 광룡석으로 망치와 모루를 제작한 건가? 언제라도 광룡철의 증식을 통제할 수 있게끔?”

“마, 맞습니다.”

“대범함 선택의 이면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이냐! 크하하핫!! 과연! 훌륭해!!”

“....”

급기야 웃음을 터뜨린 라드볼프가 손에 쥐고 있던 갓 핸드를 마치 사랑하는 손주마냥 끌어안았다. 그리고 싫다는 듯이 몸(?)부림 치는 갓 핸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영웅왕이라기에 고지식하고 재미없는 녀석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구나. 광룡철의 주인인 주제에 아닌 척 시치미를 떼 탑을 속인 것으로 모자라,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광룡철을 손아귀에 넣고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시도하다니.... 의외로 음흉하고 욕심이 많은 놈이로군.”

“....!”

라드볼프의 속내를 읽기 위해 노력하던 그리드가 석상처럼 굳었다.

아주 오래 전.

파그마의 기서를 막 발견했을 당시의 순간을 떠올린 까닭이었다.

파그마의 기서를 빼돌리려다가 대치했던 아슈르 백작의 비난이 그리드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음흉한 놈이라고 했던가.

혐오어린 시선의 끝에는 죽음이라는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

그 옛날 아슈르 백작과 이 순간 라드볼프의 모습을 겹쳐 본 그리드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자칫하다가 결사와의 호감도가 떨어졌다간 반드시 큰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드는 신중해야했다.

말을 골라야했다.

저벅.

조용히 있는 그에게 라드볼프가 한 걸음 다가와 섰다.

그리고 여태껏 ‘힘’으로 구속하고 있던 갓 핸드들을 놓아주며 손을 뻗었다.

주먹이라도 날아오는 건가?.

그리드는 긴장했으나.

와락!

라드볼프는 도리어 그리드를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외쳤다.

“마음에 들어! 정말로 마음에 들어!! 너는 여태까지의 다른 선구자들과 달리 미련한 바보가 아니었구나!! 하핫! 하하하핫!!”

“....”

그리드는 상기했다.

이곳은 지혜의 탑.

퍼주고 또 퍼줘도 부족해서 또 퍼주는 결사들이 모인 곳이다.

***

“그럼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라드볼프와의 만남 이후.

그리드는 굳이 2좌 프론잘츠를 찾아가지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를 라드볼프와 상대하다보니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 까닭이었다.

그리드는 조금이라도 빨리 로그아웃하고 싶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즐거웠소.”

1좌 하야테가 결사들을 대표해서 그리드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러자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리드가 악수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저 또한 즐거웠습니다. 너무 많은 은혜를 입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갚으면 그만이지.”

귀를 후비며 말한 비반이 그리드를 재촉했다.

“잔말 말고 빨리 돌아가. 내 후인에게 무쌍심법을 전수해줘야지.”

라드볼프가 덧붙였다.

“네가 만드는 마장기를 멀리서 지켜보마. 끌끌, 인간이 운용하는 마장기 군단이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는군. 놓치지 않고 지켜보면서 응원하겠다.”

“....감사합니다.”

그리드는 그저 같은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감사하다는 한 마디 외에 그가 꺼낼 수 있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꾸벅.

끝으로 다시 한 번 인사한 그리드가 탑을 떠났다.

이제 그에게 남은 과제는 피아로에게 무쌍심법을 전수해줄 것이고 탐욕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에 앞서서.’

템빨국 대장장이들에게 보급했던 광룡철을 모조리 회수해야한다.

그것이 1좌 하야테가 내게 보여줬던 신뢰에 보답하는 길이다.

‘광룡철을 대체할만한 광물로 뭐가 있을까?’

라인하르트로 돌아오는 동안 그리드는 내내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굳이 재료가 중요한가?’

템빨국 대장장이들이 생산 중인 <양산형 그리드 세트>가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이유는 재질 때문이 아니다.

‘양산형’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본래 양산형 그리드 세트는 도리어 평범한 금속을 재료로 삼아 생산돼 왔었다.

단지 그리드가 광룡철의 활용법을 습득한 이후부터 주객이 전도됐을 뿐이지.

‘애초에 재료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광룡철을 회수한다고 해서 양산형 그리드 세트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깨달은 그리드는 우선 대장간 단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대장장이 장인들을 앞에 모아두고 현재 대장간에서 사용되는 광룡철 전부를 회수하라고 명했다.

“무슨 일이지?”

“글쎄....”

열흘마다 증식하는 금속의 덕을 크게 누리며 작업에 집중해왔던 대장장이들이 두 눈을 껌뻑였다.

이제 와서 광룡철을 회수하는 템빨왕 그리드의 생강을 쉽게 엿보지 못했다.

멀뚱멀뚱 서있는 수천 명의 대장장이들을 향해서 그리드는 외쳤다.

“오늘부로 광룡철의 사용을 금지한다. 앞으로 모든 대장장이들은 강철을 재료로 양산형 그리드 세트를 제작하도록.”

“....!”

대장장이들이 난색을 표했다.

그들은 그리드의 갑작스러운 명령을 납득하지 못했다.

의심어린 눈초리를 보내오는 일부 대장장이들의 면면을 확인한 그리드가 비교적 최근에 제작한 양산형 그리드 적막 속에서 스스로 실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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