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131화 (1,121/1,794)

템빨 58권 - 11화

[제작 아이템에 <혈왕의 피>가 스며듭니다....]

‘혈왕의 피?’

혈왕은 그리드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심지어 아직은 비중이 적은 일면이었다.

한데 시스템은 그리드의 피를 혈왕의 피라고 명시했다.

적어도 피에 한해선 혈왕이라는 지위가 우선시된다는 뜻이다.

망치를 쥐었을 때는 파그마의 후예 클래스가, 마법에 피격 당할 때는 지공 클래스가, 검을 휘두를 때는 서사시의 마검사 클래스가 부각되는 것처럼 말이다.

키이잉!

혈왕의 피를 머금은 현무봉가시(예명)가 붉게 물들어갔다.

어두운 곳에서는 여전히 검게 보였지만 밝은 곳에서는 적색으로 번들거렸다.

무겁고 차갑게 느껴져 흉기라는 인상이 강했던 철봉이 아름다운 공예품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나하곤 안 어울리겠군.’

예술성이 너무 높다.

안 그래도 규격 자체가 작아 브라함이나 크라우젤처럼 호리호리한 미남자, 혹은 여성들에게 어울릴법한 무기가 됐다.

그리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이 애용할 무기는 아니었으니까.

“....뭐?”

완성 된 아이템의 상세 정보를 불러온 그리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혈왕의 피를 머금은 흉포한 현무의 가시>

등급:레전드리(성장형)

세트 아이템(현무 세트)

내구력(철봉):890/890 공격력(철봉):560

*독 속성 공격력 70퍼센트 추가.

*물 속성 공격력 70퍼센트 추가.

*공격 시, 보통의 확률로 대상을 중독(大).

*방어 시, 보통의 확률로 <물보라> 전개. 물보라에 닿은 대상의 아이템은 보통 확률로 ‘부식’됩니다.

*공격 혹은 방어 시, 보통의 확률로 대상의 아이템 무장해제.

*공격 혹은 방어 시, 매우 희박한 확률로 대상의 아이템을 완전 파괴.

★‘부식’된 아이템 타격 시, 매우 높은 확률로 대상 아이템을 완전 파괴.

내구력(가시):120/120 공격력(가시):1,160

*공격 시, 낮은 확률로 대상의 방어력 50퍼센트 무시.

*공격 시, 매우 낮은 확률로 대상의 방어력 완전 무시.

★갑옷이 무장해제 된 적을 공격 시, 스킬 <흉포하게 꿰뚫어 죽이기> 발생. 흉포하게 꿰뚫어 죽이기에 적중 당한 대상은 현재 생명력의 60퍼센트에 해당하는 고정 피해를 입습니다. 이때 대상에게 상태이상 저항을 무시하는 상태이상 ‘과다 출혈’을 유발합니다.

일시적으로 신과 필적하게 된 대장장이 그리드의 손끝에서 탄생한 무기입니다.

모든 권능을 지운 탐욕과 강화 된 현무의 숨결, 그리고 혈왕의 피를 재료로 삼았습니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게끔 철봉의 형태를 단순하게 디자인했지만 조화로운 색감이 아름답다는 감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철봉 속에 숨겨진 가시는 송곳처럼 뻗어 나온 현무의 이를 재현한 듯합니다.

*스킬 <웅크려라!> 생성.

*패시브 스킬 <독무의 화신> 생성.

★현무 세트 효과

3개의 세트 아이템 장착 시 공격 속도가 10퍼센트, 상태 이상 적중률이 15퍼센트 상승합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놀랄 만큼 훌륭한 아이템이긴 했다.

그리드의 제작 의도가 고스란히 담긴 파괴 특성과 극딜 스킬, 그리고 세트 효과까지....

라덴이 사용할 수 있게끔 조율하다 보니 탐욕의 권능을 전부 다 삭제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각종 특수 효과는 물론이고 내구력이 무한이라는 기본 옵션까지 잃게 됐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무 가시는 충분히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최고의 무기가 맞았다.

하지만 그리드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 혈왕의 피의 영향으로 감정을 지녔습니다. 매우 콧대가 높고 난폭해 주인의 머리 위에 서려고 할 것입니다. !!

*낮은 확률로 무기를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이때 무기 사용 불가 판정을 받습니다.

혈왕의 피가 발생시킨 추가 옵션.

‘흉포하다.’는 수식언을 지닌 아이템답게 사람 참 난감하게 만드는 옵션 아니, 저주였지만....

★스킬 <혈왕의 혈통> 생성.

활성화 시 혈마법 사용 가능. 사용하는 혈마법의 위력 1.5배 상승.

★혈마법 장착 슬롯 1개 생성.

혈마법을 슬롯에 장착해 아이템에 귀속시킵니다.

....위험부담을 감수할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물론, 확률적 사용 불가의 저주가 굉장히 위험하긴 했다.

<백아도>에 깃든 번헬리어의 저주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최악의 경우 사용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저주였으니, 현무 가시는 자칫 똥템 취급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드는 큰 매력을 느꼈다.

마법을 장착할 수 있는 슬롯이 존재한다.

오직 그 하나의 사실이 현무 가시의 가치를 폭등시켰다.

‘혈마법으로 국한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제작 아이템에 마법을 귀속시키는 방법은 본래 두 가지다.

첫째, 수인족 왕의 눈물을 재료로 쓰는 것이고 둘째, 마법 무구 제작법으로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두 방법 모두 명확한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수인족 왕의 눈물은 수량 자체가 적은데다가 귀속시키려는 마법의 등급이 높을수록 실패할 확률이 존재했다.

마법 무구 제작법은 한술 더 떴다. 수량의 제한은 없지만 그리드가 직접 긴 시간 노가다를 해야만 했고 그리드의 마법 실력에 비례해서 담을 수 있는 마법의 등급이 정해졌다. 사실상 고위 마법을 귀속시키는 게 불가능했다.

반면 혈왕의 피로 인해 발생한 ‘슬롯’엔 그 어떠한 제약도 없어보였다.

대상이 혈마법인 이상 뭐가 됐던 슬롯에 귀속시킬 수 있는 듯했다.

게다가 혈왕의 혈통 스킬과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한다.

혈마법의 위력 1.5배 증가라니....

‘....아니, 너무 들뜨지 말자. 이것도 실패 확률이 있을 수 있어.’

Satisfy의 가장 뭣 같은 점은 불친절함에 있다.

겉으로 표기 된 내용만 보고 기뻐했다가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진정하자.’

심호흡한 그리드는 현무 가시의 단점에 주목했다.

만약 라덴이 반용족과 싸우는 도중에 저주를 받고 무기가 말을 듣지 않게 되면 어쩌지?

최악의 가정을 세우며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고 냉정을 되찾아본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라덴은 방패도 쓰니까 무기를 갑자기 쓸 수 없게 되도 큰 위기가 없을 것 같은데.’

아무리 부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해도, 그리드의 들뜬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만큼 결과물이 훌륭했다.

“전하?”

길이 1미터가 채 안 되는 얇은 철봉.

태양을 머금은 짙은 포도주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그것을 빤히 바라본 채 웃다가, 찌푸렸다가, 또 다시 웃기를 반복하는 그리드의 기이한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스테임 공작이 결국 참지 못하고 나섰다.

그의 부름을 듣고 정신을 차린 그리드가 드디어 마음을 다스렸다.

‘일단 슬롯의 효과부터 정확히 파악해보자.’

그리드는 아직 혈마법을 쓰지 못하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유?

“기사 소환, 놀.”

스파앗!

그리드에게는 혈마법에 정통한 동료가 있었으니까.

“우물우물우물.”

화려한 은발의 미소년.

어린 겉모습과 달리 200년을 넘게 살아온 뱀파이어.

그중에서도 시조 베리아체의 직계인 엘리트 중의 엘리트.

현재는 템빨국 소속 뱀파이어 도시의 영주를 맡고 있는 그가 피감자를 입 안 가득 우겨넣은 채 그리드의 부름에 응했다.

“공작 각하!”

혼자서 가상의 적과 사투를 벌이던 라덴이 이변을 감지하고 기겁하며 스테임 공작을 호위했다.

그리드가 뱀파이어를 수하로 받아들였다는 소식은 그도 들어 알고 있었지만, 피비린내를 물씬 풍기는 뱀파이어를 보고도 태연할 순 없었다.

“그새 인간을 잡아먹은 건가....!”

놀의 입가에 줄줄 흐르는 피를 보고 질색한 라덴.

노골적인 적의를 보이는 북방의 1인자를 물끄러미 쳐다본 놀의 감상은 짧았다.

“뭐야, 저 애송이는?”

그렇다.

제아무리 라덴의 재능이 뛰어나고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해봤자 직계 뱀파이어 앞에선 하룻강아지나 다름이 없었다.

감히 적의를 드러내는 인간이 괘씸해 눈살을 찌푸리는 놀의 입가를 그리드가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내 장인어른의 측근이다. 사이좋게 지내도록.”

“장인어른....? 응, 알았다. 네 얼굴을 봐서 잘 지내보마.”

“.....”

오싹, 오싹.

상황을 지켜보는 라덴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그림자의 왕 카심의 기척을 엿봤을 정도로 민감한 감각의 소유자인 라덴은 놀의 실체를 엿보고 있었다.

작고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끝을 엿볼 수 없는 마력을 품고 있는 괴물.

언제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수 있는 포식자가 그리드를 고분고분 따르는 모습을 통해서 새삼 그리드의 대단함을 상기했다.

‘반용족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

반용족을 우스운 것으로 전락시키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바로 눈앞에 서있다.

반용족과 싸워 이기기 위해 발악 중인 자신으로써는 전혀 범접할 수 없는 세계가 코앞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바로 저곳이, 내가 도달해야할 세계다.

다짐한 라덴이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심호흡하더니 가상의 반용족을 현현시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없이 두렵게 느껴졌던 반용족이 이젠 귀엽게 느껴졌다.

“흐아아아압!!”

용기백배하여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 라덴의 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본 놀이 그리드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머리 옆에 빙글빙글 돌려보였다.

저 애송이, 미친 거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고개를 저어 부정한 그리드가 현무 가시를 놀에게 건넸다.

역시나.

“혈왕이 직접 무구를 만드니까 이런 것도 가능하네.”

놀은 현무 가시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봤다.

검은 철봉에 아른거리는 적색을 가녀린 손가락으로 매만진 그가 그리드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어떤 혈마법을 귀속시키면 되는 것이냐?”

“고위 혈마법도 귀속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당연하다. 혈왕의 피가 흐르는 무구잖냐. 어떤 혈마법이라도 쉽게 받아들일 거다.”

“헌혈이나 직계의 위압 같은 것도?”

“헌혈은 내 마력에만 반응하게끔 설계 된 내 전용 마법이라서 예외다. 직계의 위압은 마법이라기보다 직계들이 타고난 존재감 같은 거기 때문에 안 되고.”

“혹시 한 번 귀속시킨 혈마법을 삭제하고 다시 새로운 혈마법을 귀속 시키는 것도 가능할까?”

“완전히 각인시키는 개념이기 때문에 그건 안 돼.”

‘그건 수인족 왕의 눈물과 비교하면 도리어 단점이군....’

그리드는 잠시 고민해봤다.

하지만 그리드는 혈마법에 문외한이었다.

혼자 고민해봤자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고 놀에게 반용족의 정보와 현재 상황을 전달했다.

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애송이가 내일 반용족과 싸워 이기려면 어떤 혈마법이 가장 좋냐 이거군. 본래라면 비늘 너머 피부에 직접 혈액을 침투시켜서 타격을 입히는 계열의 마법을 추천했겠지만 이 무기가 있는 이상 그런 마법은 딱히 필요가 없고....”

현무 가시로 자신의 손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생각해본 놀이 장난꾸러기처럼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애송이 수준을 보니까 내일 피 좀 흘릴 것 같은데, 그걸 쓰면 되겠다.”

쏴아아아....

놀의 마력이 현무 가시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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