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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150화 (1,140/1,794)

템빨 59권 - 07화

네임드 NPC와 네임드 몬스터의 결정적인 차이는 생명력에 있다.

동레벨, 동격이라고 가정했을 시 네임드 몬스터의 생명력이 네임드 NPC의 생명력보다 100배, 1,000배 이상도 높았다.

네임드 몬스터가 더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전대 전설들이 NPC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네임드 NPC는 대부분 ‘기술’을 갈고 닦은 존재이며 기술의 응용을 통한 방어, 회피, 반격에 능숙하다. 자신의 체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전투에 신중하게 임했다.

반면 네임드 몬스터는 소극적인 행동으로 턴을 낭비하는 일을 극도로 꺼렸다. 방어, 회피, 반격 등으로 행동력을 소모하느니 공격에 집중해서 대상을 압살하는 것이 바로 네임드 몬스터였다. 타고난 신체능력(생명력)을 믿고 보다 파괴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전투 스타일의 차이라는 뜻.

네임드 NPC와 네임드 몬스터의 우열은 쉽게 가릴 수 없다.

둘 모두 플레이어에겐 벅찬 상대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예외다.

막강한 공격력의 보유자인 그는 네임드 NPC보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이 도리어 편했다.

때려봤자 대부분 MISS가 뜨는 네임드 NPC와 달리 몬스터는 칼이 잘 박혔으니 당연히 쉬울 수밖에.

““크아아아아악!!””

수백 명 플레이어에게 덮쳐진 살레오스는 드물게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노리는 공격이 너무나도 많았다. 살레오스가 폭발시킨 마력은 고작 수십 명의 플레이어를 날려버렸을 뿐이고 살레오스의 두꺼운 양팔은 고작 몇 개의 공격을 막아냈을 뿐이다.

크라우젤에 이어서 그리드를 상대하느라 대부분의 생명력을 소비한 그는 육신과의 작별을 직감했다.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쿨럭, 쿨럭!””

대악마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끝이 아니다. 그들의 영혼은 영원히 윤회하니 육신이란 잠시간의 거처에 불과했다. 이 순간 육신을 잃을지언정 조만간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너희들 앞에 다시 나타나는 날.... 나는 더욱 더 완전해져 있을 것이다.””

대악마의 부활은 성장을 의미했다.

어째서 죽음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가....

새로운 육신을 찾는 동안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학습하다 보면 성장하는 게 당연했다.

“....꿀꺽.”

살레오스의 몸에 무기를 꽂아 넣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죽어가는 살레오스의 눈빛이 기세를 잃기는커녕 오히려 흉험해졌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협박이 허풍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더욱 더 두려웠다.

치이이이익!

플레이어 전원의 팔뚝 위에 어떤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따끔한 고통에 놀란 플레이어들이 팔뚝을 바라보자 시뻘겋게 충혈 된 2개의 눈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살레오스의 표식>이었다.

20위권 대악마를 죽음에 몰아넣은 대가로 얻게 된 저주였다.

살레오스가 부활하게 되는 날, 오늘 이 자리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가 살레오스에게 추적당해 하나씩,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었다.

표식의 정보를 읽고 질색한 플레이어들이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치는 그때였다.

“악마라는 놈들은 꼭 말이 많단 말이지.”

끼히힝.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러운 순백의 유니콘.

이름이 템빨콘만 아니었다면 만인에게 칭송받았을 영물의 등 위에 올라탄 그리드가 서서히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 그리고 도끼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살레오스를 검으로 겨누며 말했다.

“너는 여기서 끝이다. 두 번 다신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날 수 없어.”

““큭큭....! 크하하핫!! 영웅왕씩이나 되는 녀석이 우리들 대악마를 잘 모르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던 살레오스가 문득 표정을 굳혔다.

살의와 희망으로 가득 찼던 그의 두 눈에 절망이 깃들더니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쏴아아아....

하늘에서 빛이 내리고 있었다.

마력이 가득 배인, 인위적인 빛.

매스 텔레포트의 잔재였다.

““사실이냐....?””

피에 붉게 물든 살레오스의 피부 위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매스 텔레포트의 빛을 타고 등장한 누군가의 정체를, 그는 알아버린 것이다.

모를 수가 없다.

존재 자체가 저주이고 재앙인 저 더러운 오물을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성녀라고?””

레베카의 신성과는 다른 힘.

야탄과 레베카가 맺은 협약을 위협하는 이질적인 힘으로 대악마들의 윤회를 끊어버리는 저 ‘인류의 기적’은 대악마가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이었다.

““지옥 소환....!””

지옥은 총 33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인간의 나라들이 저마다 다르듯 지옥 또한 달라서, 어떤 대악마에겐 자신이 다스리는 지옥이 자랑거리였고 또 어떤 대악마에겐 자신이 다스리는 지옥이 수치였다.

살레오스는 후자에 속했다.

그가 다스리는 19번 지옥은 한없이 초라한 땅.

지옥불강 한 줄기조차 흐르지 않는, 오직 미물만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살레오스에게 군주의 자질이 없다는 이유로 바알이 내린 형벌이자 조롱의 결과였다.

인간들에게 나의 초라한 영토를 노출해야한다니....

살레오스는 소름끼칠 정도로 싫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부를 드러냈다.

그만큼 성녀가 위협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그에겐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콰르르르르릉!!

천둥번개가 휘몰아치며 세상에 어둠이 깔렸다.

그리드와 크라우젤을 제외한 현장의 모든 플레이어가 온갖 디버프에 침식당해 맥없이 주저앉았다.

검게 물든 하늘을 지옥달이 장식하는 순간이었다.

“지옥 규제.”

새로운 빛줄기가 나타나 살레오스의 초라한 지옥을 이 땅에서 물리쳤다.

레베카교와 함께 슈트리오의 손을 토벌하는데 성공한 유라의 등장이었다.

““이 놈들!!””

벼랑 끝에 몰린 살레오스가 발악을 시도했지만 부질없었다.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푸욱!

그리드의 검이 살레오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의 시선 속에서, 갈 곳 잃은 대악마 살레오스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악의와 분노로 물든 그의 새카만 영혼은 성녀 루비에 의해서 소멸하고 말았다.

[제19위 대악마 살레오스의 레이드에 성공하였습니다.]

[제19위 대악마 살레오스의 영혼이 윤회에 실패하고 소멸합니다.]

[19번째 지옥 군주의 자리가 일시적으로 공석이 됩니다.]

[살레오스 레이드에 참가한 플레이어 중 ‘그리드’를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칭호 <등불을 따르는...>이 주어집니다.]

[살레오스 레이드에 참가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활약도에 따른 차등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리드’가 레이드 1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크라우젤’이 레이드 1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키리누스’가 레이드 3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유라’가 레이드 4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나이트’가 레이드 5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

...

[★성녀 ‘루비’가 대악마의 영혼을 소멸시킨 대가로 특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그 외 인원에게 동등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플레이어들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들의 팔뚝에 새겨졌던 살레오스의 표식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갓리드!”

“갓라우젤!”

“하하핫! 최고야! 너희들 최고라고!!”

누가 뭐라고 신호를 보낸 것도 아닌데 그리드와 크라우젤에게 우르르 몰려간 그들이 헹가래를 쳤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물결치는 손 위에서 나란히 시선을 마주친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피식 웃더니 주먹을 맞부딪쳤다.

***

[서사시의 일곱 번째 페이지가 완성되었습니다.]

[서사시의 완성 보상으로 당신의 격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스킬 데미지에 대한 내성이 소폭 증가합니다.]

[무기 데미지에 대한 내성이 소폭 증가합니다.]

[모든 확률성 스킬의 발동 확률이 소폭 증가합니다. 단, 아이템에 귀속 된 스킬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칭호 <인류의 등불>이 생성되었습니다.]

[신위 스탯이 1 올랐습니다.]

<인류의 등불>

*체력 +500

*‘등불을 따르는 이들’과 같은 전장에 있을 시 특수 효과 발생. 등불을 따르는 이들의 숫자에 영향을 받음.

뛰어난 힘과 용기로 인류의 화합을 이끌어낸 장본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인 당신은 결코 쉽게 사라져선 안 됩니다.

‘어마어마하군....’

오크로드 테루찬과 계약한 그리드의 체력 계수는 일반보다 1.8배나 높다.

체력 1당 오르는 생명력이 무려 54, 방어는 2.1이었다.

심지어 <덕공>의 효과로 체력이 35퍼센트나 상승하는 그리드의 입장에서 <인류의 등불>칭호는 각별한 것이었다. 수십 레벨의 가치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더군다나 스킬 데미지와 무기 데미지 내성 상승, 확률성 스킬의 발동 확률 상승 등.

이번에 오른 초월의 격의 효과는 그리드에게도 여러모로 각별하게 느껴졌다.

특히 스킬 데미지와 무기 데미지 내성은 고정 데미지를 감소시켜주는 몇 안 되는 세부 스탯이었기 때문에 벨레드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극복됐다.

‘이젠 55,000 정도의 데미지만 들어오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너무 크다.

벨레드를 레이드하기엔 아직도 역부족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최대한 초월의 격을 쌓아놓는 수밖에.’

최초의 각오와 달리 벨레드에게 도망치기 바빴던 신세를 떠올린 그리드가 몸서리치며 상념을 털어냈다.

‘내겐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서사시는 정말로 큰 힘이다.

서사시를 통해 초월의 격을 쌓을 때마다 눈에 띄는 발전이 이뤄졌으니 그리드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완전한 초월의 격을 쌓는 것이었다.

초월자의 경지에도 필시 끝은 있을 테니까.

초월자 위에 있는 절대자의 존재가 바로 그 증거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새로운 스킬을 얻는 건 아닌 것처럼, 초월의 격 또한 때때로 정체 구간이 존재하는 듯했지만 앞으로 수 년 내에 끝을 볼 수 있다는 게 그리드의 판단이었다.

“오빠!”

각오를 다지고 있는 그리드에게 루비가 달려와 안겼다.

혼자서 13위 대악마를 상대해야 했던 그리드를 크게 걱정했던 그녀는 무사한 오빠의 모습을 보자 큰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을 정도였다.

“걱정을 끼쳤네.”

웃으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그리드가 힐끔, 크라우젤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초월자의 감각이 그를 <시대의 강자>로 분류하고 있었다.

레벨이 아직 350 전후에 불과할 텐데 과연 대단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시대를 초월할 강자가 되겠지.’

막 현장에 도착해 살레오스의 상태를 목격했을 땐 정말로 소름이 돋았었다.

내가 크라우젤과 동렙이었다면 19위 대악마를 상대로 저기까지 몰아붙이는 게 가능했을까?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생 많았어.”

“....너야 말로.”

웃으며 인사를 건네 오는 그리드에게 크라우젤 또한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그뿐이었다.

검을 찬미하는 시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선 그리드의 대장장이 기술이 필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라우젤은 섣불리 의뢰를 꺼내지 않았다.

자신은 템빨단원이 아니었으니까.

친구이자 라이벌에게 매번 신세를 입을 순 없는 노릇이고, 애초에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백호 검 한 자루만으로 일생토록 감사해야할 일이다.

“그럼 이만. 무운을 빌겠다.”

짧게 인사한 크라우젤이 그대로 등을 돌리자 그리드가 붙잡았다.

“그동안 뭐하고 지냈는지 이야기라도 나누다가 가지?”

“네 소식은 잘 듣고 있다.”

“....어머니는 건강하시고?”

“덕분에.”

아, 곧 식사시간이구나.

괜히 어머니께서 부엌을 찾으시기 전에 빨리 로그아웃해야할 것 같다....

생각하며 걸음을 서두르던 크라우젤이 문득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드에게 전해야할 말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아그너스를 경계하는 편이 좋을 거야. 그 반지의 제작자가 하필이면 아그너스의 손에 들어갔거든.”

“....?”

크라우젤은 그리드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중 하필이면 부조리의 반지를 지목했다.

반지의 제작자가 수백 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드의 입장에선 혼란스러운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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