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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272화 (1,262/1,794)

템빨 64권 - 15화

1만 번의 메테오를 쓰기 위해선 27년 145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메테오의 쿨타임이 24시간이라는 뜻이다.

존재하는 마법 중 가장 범위가 큰 대단위 마법.

쿨타임이 짧은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쿨타임을 감소시키는 아이템을 최대한 긁어모아서 브라함한테 지원하려고 해도....’

쿨타임 감소 아이템은 매우 드물다.

여태껏 그리드가 만든 아이템 중 쿨타임 감소 효과를 보유한 아이템은 주작궁 정도인데 그마저도 화염 속성 스킬에만 적용되는 효과였다.

대부분의 쿨타임 감소 효과는 아이템이 아닌 칭호나 스킬에서 비롯하는 힘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쿨타임 감소 효과를 지닌 아이템을 구해봤자 브라함이 착용 가능한 아이템을 선별하는 작업을 또 거쳐야했고 말이다.

‘어쨌든 운이 따라줘서 브라함용 쿨감 아이템을 구했다고 치자.’

메테오의 쿨타임을 20프로 감소시킨다고 가정할 경우 1만 번의 메테오를 사용하기까지 약 2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30프로 감소시키면 약 20년이다.

시간을 그 이상 단축하는 건.... 정말로 어렵다.

20년.

마냥 기다릴 수 있을까?

아주 힘든 인내가 될 것이다.

중간에 어떤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브라함이 매일 꼭 1회씩 메테오를 쓸 거라는 보장도 없다.

‘....미친척하고 기다려?’

그리드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동안 브라함은 찻잔을 전부 비웠다.

의자에 기댄 등을 깊숙이 눕힌 그가 짜증 섞인 눈빛으로 그리드를 노려봤다.

“메아리 할멈은 메테오를 이틀에 한 번밖에 못 쓴다.”

메아리 할멈.

전전대 전설의 대마법사 제시카를 지칭하는 말인 듯하다.

“마나의 방출 과정에 열화한 마법 회로를 나처럼 빠르게 수복하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세상의 모든 마법사가 나의 경지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며, 나의 경지가 즉 궁극이다. 지금 너는 아주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지.”

“....”

그리드가 침묵했다.

브라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였다.

결국.

-....이게 뭔 말이야?

라우엘에게 브라함의 대사를 고스란히 전달한 그리드가 해석을 요구했다.

답변은 즉각 왔다.

-브라함 님은 쿨타임 감소 효과를 이미 최대치로 누리고 있다는 뜻 같네요.

-아....

하긴, 그게 정상이다.

브라함은 역대 최강의 마법사 아닌가.

남들보다 더 빠르게, 자주 마법을 사용하는 건 그가 갖춰야할 기본 소양이었다.

브라함이 메테오를 매일 1번씩이나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이미 쿨타임 감소 효과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며, 그 이상으로 쿨타임을 감소시킨다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메테오는 무구에 부여하기에 적합한 마법이 아니야.”

그리드가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브라함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메테오는 우주의 별을 끌어와서 투척하는 단순무식한 원리의 마법이다.”

역사상 몇 명밖에 못 썼던 대마법을 단순무식하다고 표현하는 사람은 세상에 브라함밖에 없으리라.

“투척 지점을 초토화시키는 마법인데 그걸 난사하겠다고? 너는.... 악마인가?”

“....”

메테오를 난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싸울 때마다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끝내 ‘야탄도 울고 갈 놈’이라고 불리게 될 미래가 그려졌다.

“그럼 메테오 말고 어떤 마법을 부여하는 게 가장 세고, 효율적이고, 멋지고, 좋을까요?”

굳이 ‘멋’까지 필요할까?

당연히 필요하다.

그리드는 왕이며 신이다. 우아함을 갖춰야한다. 그리고 자고로 스킬과 마법이라는 건 멋져야 쓸 맛이 나는 법이다.

브라함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디스인티그레이트.”

우주의 별을 끌어내리는 물리적인 과정이 필요한 메테오와 달리 마력으로 빚는 빛의 창.

즉시 현현하며, 강력한 위력으로 대상을 꿰뚫는다.

타격 대상을 한 명밖에 지정하지 못하는 게 유일한 단점이지만 ‘관통’효과로 어느 정도의 광역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강력하고 우아한 마법이지.”

“꿀꺽....”

그리드가 마른 침을 삼켰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하늘에서 떨어질 빛의 창의 모습을 떠올리자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러다가 문득 불안해져서 물었다.

“그것도 27년 걸리는 건 아니죠?”

“늦으면 10년, 빠르면 7년 정도 걸릴 거다. 디스인티그레이트의 수식은 마법이 발동해도 종종 열화하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확률적으로 여러 번 연속으로 쓸 수 있다’쯤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그리고 10년, 7년이라는 세월은 그리드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설의 대마법을 광물에 부여하는 건데 당연히 감내해야 정상 아닌가?

만약 브라함이 메테오를 부여하는 게 가장 좋다고 평가했다면 27년도 기다렸을 것이다.

“10년.... 기다리겠습니다.”

“잘 선택했다. 기다리는 동안 쓸만한 다른 마법을 부여해줄 테니 새로운 광물을 만드는 즉시 나부터 찾아오도록.”

그리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나의 광물엔 하나의 마법만 부여할 수 있다는 상식 때문에 간과했던 사실인데, 탐욕은 증식한다.

광물을 만든 후 쪼개서 하나는 디스인트그레이트의 부여를 부탁하고 다른 하나는 당장 쓸만한 마법을 부여해달라고 부탁하는 식으로 여러 개의 마법 광물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메테오를 부여하려면 27년이 걸린다는 제약도 사실상 별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메테오는 아이템에 귀속시키기 부적합한 마법일 뿐이다.

“브라함, 당신이 쓸 수 있는 마법이 총 몇 개죠?”

“‘마법’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9개다. 나머지 116개의 마법은 형태와 속성을 버리고 나의 의지가 되었으니까.”

브라함에게 마법이란 숨 쉬는 일과 같다. 그가 ‘술식’을 만들어 체현하는, 즉 통상적인 방법으로 쓰는 마법은 9개의 대마법이 전부였다.

실로 위대한 일이었지만 그리드가 궁금한 건 브라함의 위대함이 아니었다. 브라함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진즉부터 알고 있었고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광물에 부여할 수 있는 마법이 125개라는 건가요, 아니면 9개라는 건가요?”

“....125개다.”

“그럼 광물을 125개 준비해오면 125개의 마법을 다 부여해줄 수 있는 겁니까?”

“적당히 하지?”

“네....”

역시, 마법을 125만 번이나 써달라고 부탁하는 건 호감도가 아무리 높아도 무리였나 보다.

‘몇 년, 심하면 수십 년을 골방에만 틀어박혀서 노가다만 하라고 떠미는 꼴이니....’

깨닫고 뒤늦게 양심을 챙기려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의외의 말을 했다.

“무장(武裝)에 깃든 마법이라고 해서 아무런 소모값 없이 남발하는 건 불가능하다. 마법에 따라 다르긴 하다만, 대부분의 마법이 착용자의 마나를 자원으로 삼아서 작동하게 마련이기 때문이지.”

아이템에 부여한 마법이나 스킬을 쓸 때 자원이 소모되지 않는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꿈은 ‘아티팩트를 전신에 도배하는 것’이 됐을 거다.

플레이어들은 마법 무구의 힘을 빌려 무한 마법과 스킬을 난사하며 광렙을 했을 테고.

“게다가 일부 마법들은 착용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특정 조건에서, 혹은 무분별하게 자연 발동하기도 한다. 여러 종류의 마법 무구를 탐내는 건 도리어 해악이라는 거다. 이해했나?”

“네, 이해했습니다.”

그리드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만약 그런 문제점들이 없었다면, 브라함은 125만 번의 마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부탁을 들어줬을 눈치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부작용이 최대한 적은 마법들을 부여해줄 테니 광물이나 만들어 와라.”

마나로 고리를 만든 브라함이 어느새 어깨까지 다시 자란 머리카락을 뒤로 묶었다. 나는 이제 마법을 연구해야 해서 바쁘니 썩 나가라는, 일종의 축객령이었다.

“반드시 멋진 광물을 만들어오겠습니다.”

브라함을 처음 만났을 당시.

브라함은 파브라늄의 통제권을 소유하지 못한 것에 한탄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당연한 한탄이었다.

파브라늄은 파그마와 브라함이 함께 만든 작품이니까.

하지만 파그마는 브라함이 뱀파이어라는 이유만으로 불신했고 파브라늄의 통제권을 독점했다.

‘저는 파그마와 다를 겁니다.’

마법이 귀속될 새로운 광물을 브라함과 함께 나눌 것이다.

브라함에게도 나와 똑같은 템빨을 선사할 것이다.

다짐하며 고개 숙여 인사한 그리드가 방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슥.

땅이 조금. 자로 잴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조금 기울었다.

보통 사람들은.

아니, 기감이 매우 발달한 실력자들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세한 흔들림이 그리드의 발끝을 타고 전신에 번져나갔다.

브라함도 눈치 챈 것 같았다.

“지각이 뒤틀렸군.”

모든 장소의 좌표가 어긋났다.

이때 워프 게이트가 발동할 경우 누군가는 사고를 겪을 수도 있다. 전혀 모르는 장소에 떨어질 것이다.

템빨국 마법장관이라는, 원치 않은 감투를 뒤집어 쓴 브라함은, 자신의 권한으로 워프 게이드의 가동을 정지시킬 수 있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곧 수복될 현상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검성의 강력한 검기가 세계를 가릅니다!!!]

[대지의 신 가리온이 권능을 발휘합니다. 반으로 갈라졌던 모든 만물이 거짓말처럼 수복됩니다.]

월드 메시지가 떠올랐다.

반으로 갈라진 여파로 어긋났던 지각이 원래의 위치를 찾았고 모든 좌표가 회복됐다.

이어서.

[검성 ‘크라우젤’이 반신을 살해하였습니다.]

세상을 들썩이게 만들 소식이 이어졌다.

그리드 이후 두 번째로 반신을 살해했던 크라우젤이 또 다시 반신을 살해한 것이다.

‘크라우젤은 양반들하고 완전히 적대하기로 마음 먹은 건가?’

크라우젤은 그리드의 친구이기에 앞서 라이벌이다.

그리드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했다.

크라우젤이 자신과 비견될 정도로, 혹은 그 이상 성장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온 그리드는 크라우젤과 적대하게 될 양반들이 꽤나 골치 아플 거라고 생각했다.

‘잘 됐어. 크라우젤 덕분에 당분간 환국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크라우젤만큼 든든한 우군이 또 있을까.

그리드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

그리드는 곧바로 지혜의 탑을 방문했다.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라드볼프에게 네바르탄의 목걸이를 전달하고 월야철과 호감을 얻어 새로운 광물을 만드는데 도움을 받을 계획이었다.

“무슨 일이냐?”

라드볼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드의 방문을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네바르탄의 목걸이를 회수해오라고 할 땐 언제고, 까맣게 잊은 듯하다.

애초에 기대를 안 했던 거겠지.

“목걸이를 가져왔습니다.”

“목걸이? 무슨 목걸이?”

“네바르탄의 목걸이지 뭔 목걸입니까?”

“으잉....? 진짜냐? 적야의 대도가 거래에 응했어? 진짜로?”

“.....”

이딴 반응 보일 거면 퀘스트는 왜 준 거지....

그리드는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라드볼프의 공방에 늘어선 거대한 마장기들의 존재가 그리드를 공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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