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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351화 (1,341/1,794)

템빨 68권 - 05화

헤밀턴 공국은 사하란의 시조가 셋째 아들에게 쥐어준 나라다.

위치는 대륙 최남단.

지리적으로 제국과 가장 멀다.

사실상 유배였지만 왕이 되지 못한 아들을 지키기엔 최선의 선택이었을 터다.

“너무 변방이라 와보신 적이 없다고...”

“스틱세이님하고 브라함님 두 분 다 말인가?”

“예.”

템빨그림자단이 아그너스의 위치를 파악했다. 일반 단원의 공적이었다. 페이커는 부하의 활약을 자랑스러워하는 한편 우려했다. 일반 단원이 아그너스의 감각을 완전히 속이는 게 가능했을까? 아그너스가 이미 감시의 시선을 눈치 채지 않았을까?

의심을 떨쳐내지 못한 페이커는 지원을 기다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드의 성인식을 기점으로 대륙과 교류를 재개한 헤밀턴 공국은 그간 너무 폐쇄적이었다. 워프 수단이 없을뿐더러 브라함과 스틱세이조차 좌표를 몰랐다.

마냥 지원을 기다리다가 아그너스가 지옥으로 도망쳐버리면? 두 번 다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설령 다시 기회가 올지언정 그때는 너무 늦다. 아그너스의 인벤토리에 아티팩트가 잔뜩 쌓인 뒤일 테니.

‘단원들의 희생을 각오해야한다.’

결국 페이커가 먼저 개전했다. 폰의 마창단이 마침 헤밀턴 국경 근처에 있다는 소식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페이커와 그림자단이 사투를 벌이는 사이...

“공국하고 가장 가까운 곳으로 보내줘요.”

그리드가 직접 나섰다. 물론 그는 페이커의 실력을 신뢰했다. 특히 살생부의 위력을 들었을 때는 감탄하다 못해 전율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대가 아그너스다.

비록 무무드를 잃어서 약화됐다지만 그림자단 단일로 어찌 해볼 상대가 아니었다.

유페미나에게 무무드를 양보한 후 잠잠했던 시기가 심히 거슬렸다. 아그너스가 그동안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섣불리 짐작이 안 됐다. 잠재력이 워낙 높았으니.

‘아무리 그래도 아직 크라우젤보단 한 수 아래겠지만...’

무쌍검을 배운 이후의 크라우젤을 말하는 것이다. 함께 싸우며 알게 된 사실인데, 크라우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결한 신념>까지 얻었다. 고결한 신념 자체가 크라우젤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발생한 스킬이니만큼 당연한 거겠지만.

‘기본적으로 아그너스는 정상이 아니야.’

그리드는 아그너스의 재능과 잠재력을 폄하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나 크라우젤보다 아래라고 확신하는 근거는 아그너스의 성격과 자세에 있다.

아그너스가 우리처럼 노력했을까? 절대로 아니다. 그의 지난 행보를 조금만 추적해 봐도 알 수 있다. 아그너스의 행적 중에 ‘성장’을 초점에 둔 행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효율을 추구한 경우도 드물다. 마음 따라 움직이는 기분파였다.

장장 몇 년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사실이 소름 돋지만 어쨌든 나와 크라우젤보단 한 수 아래일 수밖에 없다.

“굴탄 해역으로 옮겨주지.”

그리드의 초조함을 엿본 브라함이 군말 없이 매스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덕분에 바다 한가운데 떨어진 그리드가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걸로 모자라 귀신고래의 위장 속까지 들어갔다 나온 건... 일일이 설명하기에 너무 길다.

귀신고래의 배를 가르고 탈출한 그리드는 이후 쭉 순보에 의지했다. 스태미나가 고갈될 때마다 템빨콘의 도움을 받으며 순보를 반복하고 공간을 박찼다.

아슬아슬하게나마 시간을 맞춰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초월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고 귀중한지 체험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많은 그림자단원이 죽은 상태였다. 그리드는 분노와 슬픔을 느꼈지만 아그너스를 원망하진 않았다. 이번엔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침략자였으니까. 생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매번 어떤 일을 겪을 때마다 누군가에게, 혹은 상황에 이입해서 감정을 소모하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드는 차츰 깨달아가고 있었다. 육신과 정신에 이어 마음의 세계가 확장되는 과정인 것이다.

“네 입장에선 우리가 악당이겠지. 미안하다.”

그리드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 아그너스가 아이린과 로드를 지켜줬던 일을 그는 잊지 않았다. 하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즉시 검을 뽑아 아그너스의 데스나이트를 격파했다.

***

[데스나이트 ‘란스티어’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두개골이 박살난 란스티어.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즉시 균형을 되찾아 반격한다. 전대 전설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비록 언데드로 열화해 생전의 힘을 상당수 소실했다지만, 기본기는 확실하다.

하지만 아그너스는 란스티어의 되도 않는 분투를 지켜 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즉시 역소환시켰다.

좋은 판단이었다.

판단이 0.1초만 늦었어도 지금 허공을 스친 사내의 검이 란스티어를 반으로 갈랐을 테니까. 리치와 데스나이트에게도 레벨이라는 개념이 있는 만큼 사망 시 페널티는 피하는 편이 좋다.

“그리드...”

실소한 아그너스가 서슬 퍼런 눈으로 사내를 노려봤다.

템빨신 그리드.

이쯤 되면 둘도 없을 악연이다.

놈에게 빼앗긴 게 한두 개가 아니건만 이 순간 또 강도짓을 당하게 생겼다.

떳떳하진 못하다.

이쪽도 저놈의 소중한 걸 빼앗은 전력이 있으니.

‘칸이었던가.’

3차 국대전 당시. 제멋대로 임모탈을 움직인 베라딘이 라인하르트를 침략해 그리드의 스승을 죽였다.

아그너스가 개입한 사건은 아니다. 개입은커녕 임모탈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자체를 몰랐다. 기껏 자신을 보고 결집한 자들을 외면하고 관심도 주지 않은 업보였다. 베라딘 그 음흉한 놈이 임모탈을 입맛대로 이용했었다.

뭐... 다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그리드에게 일방적으로 빼앗겼던 일들 또한, 내가 놈보다 약해서 벌어진 사고에 불과했고.

“사과하는 꼴이 우습다.”

그리드의 어설픈 태도를 비웃어준 아그너스가 저항을 시작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순보를 쉬지 않고 사용한 여파로 지친 그리드는 이를 악 문 채였고, 아그너스는 위기를 넘길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머리를 쉬지 않고 굴렸다.

콰르릉!!

Satisfy의 스킬 연출이 화려하기로 정평났다지만 저건 과하다. 영화 속 최종보스의 필살기라도 되는 느낌이다.

그리드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브레스 같은 기파가 터지며 천지가 개벽하자 아그너스는 본능적으로 위축됐다. 이성이라는 건 이럴 땐 문제다.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두려움은 판단의 오류를 유발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친 것보단 제정신인 편이 낫다.

아그너스가 정신을 다잡는 동안 두 마리의 데스나이트를 어렵지 않게 베고 돌파한 그리드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놈의 공격을 <시체 방패>와 <청기사의 신념>을 중첩시켜 막은 아그너스가 충격의 반동을 그대로 이용해 뒤로 힘껏 물러났다.

빈틈을 엿봤지만 반격은 시도조차 안 했다. 그리드의 ‘맞아주고 때리는’ 전투 방식은 그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드와 딜 교환은 손해인 게 상식이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군.’

힘의 차이를 느낀 아그너스가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드는 고작 파그마의 후예로 시작해 신화가 됐다.(대부분의 사람은 그리드의 클래스 등급이 신화인 줄 안다) Satisfy가 오픈한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놈이 얼마나 철저히 노력해왔을지 뻔히 엿볼 수 있었다.

반면 나는?

그 대단하다는 바알의 계약자를 얻고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다.

‘병신 새끼.’

과거의 자신을 욕하는 아그너스의 낡은 로브가 광풍에 펄럭였다. 전장에서 폰의 발을 묶던 사자가 돌아오며 발생시킨 바람이었다.

온갖 진귀한 재료에 영구기관까지 합성시켜 창조한 작품. 운이 따라주질 않아 아쉽게도 유니크 등급에 불과했지만 전투력은 최상이다. 그리드를 상대로 잠시나마 선전할 정도였다.

꽈앙!! 쩌저정!!

그리드의 검과 사자의 주먹이 맞부딪칠 때마다 발생하는 충격파가 대지를 격동시켰다. 영구기관 덕분에 무한한 마력과 광속을 자랑하는 사자의 권격이 그리드를 조금씩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힐끔.

아그너스가 자신의 품속을 보았다.

중얼중얼.

체파르데아는 어떤 주문을 외우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지옥문을 열려는 것이다. 콧대 높은 바알의 권속도 그리드와 싸우는 건 미친 짓이라고 판단하는 눈치였다.

‘10분.’

본인 주장에 따르면 ‘대악마보다 더 위대한 주술의 악마’인 체파르데아.

바알의 권속인 녀석은 실제로 재주가 꽤 많았다. 악마 주제에 멋대로 인계를 오갈 수 있을 정도. 즉, 지옥문을 열 수 있단 뜻이다. 하지만 지옥에서는 문을 쉽게 여는 반면 인계에서는 문을 여는데 꽤 오래 걸렸다. 무려 10분. 능력치가 저하된 여파인 듯했다.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데.’

채앵!

생명력을 포함한 모든 자원이 바닥난 주제에 다가와 파울드를 공격하는 페이커의 단도를 막아낸 아그너스가 반격하려고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각자 칼과 망치를 휘두르며 차륜진을 짠 갓 핸드의 협공에 방해를 받은 것이다. 꽤 골치 아팠다.

‘파울드를 역소환 시킬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파울드는 특별한 존재다. 스스로의 의지로 리치가 됐을 뿐더러 곤륜삼의 영기를 섭취해 육신을 이뤘다. 어떤 조건들을 달성해서인지 독립체로 거듭났다. 아티팩트를 제작하여 세계관에 개입할 수도 있다. NPC로 봐도 무방한 셈이다. 아그너스에게 무력으로 지배당해 아그너스의 소유물이 된 건 분명하지만 시스템의 영향을 덜 받았다.

소환과 역소환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파울드는 사람마냥 항상 세상 바깥에 나와 있었다. 그건 오늘까지만 해도 커다란 장점이었다. 소환 유지에 필요한 지배력이 불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이젠 약점이 되고 말았다.

리치의 특성과 곤륜삼의 영향으로 불멸하는 NPC.

본래는 그럴 진데... 페이커의 낌새를 보면 죽일 방법이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지금 최선은 페이커를 죽이는 건데...’

-숙여!

체파르데의 새된 비명이 아그너스의 상념을 깨웠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인 아그너스의 낮아진 시야에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사자뿐만 아니라 폰과 기사들을 막고 있던 구울들도 모조리 반으로 갈라지는 중이었다.

시간 차 없이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아그너스는 자신 또한 무사하지 못하단 사실을 뒤늦게 자각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털썩!

아그너스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는 그의 시야에 뒤늦게 검광이 보였다. 거대한 반월로 뻗어져 전장의 절반을 스치는 검광. 그 검광이 지나간 자리마다 잿빛이 솟구쳤다. 절반으로 쪼개진 망자들이 산화하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검술이군. 저놈 저거 만전이 아닌 것 같은데도 저 정도다. 개골. 인계 한정으로 한 자릿수 대악마와 싸워도 비등할 테지.

체파르데아가 감상을 지껄였다. 지옥문을 여는 건 포기한 눈치다. 주문을 멈추고 떠드는 꼬라질 보니.

그리드가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불사 상태의 아그너스가 몸을 일으켜 반응했다. 죽음의 룬을 움직여 생명력을 역전시키는 권능을 발현했다.

“벤타오의 조롱.”

지정 대상은 당연히 그리드였고, 적중했다.

한데...

[대상 ‘랜디’와 생명력 교환에 성공하였습니다.]

“펫?”

눈살을 찌푸린 아그너스가 그대로 검을 앞으로 찔러 넣었다. 그러자 방금 막 벤타오의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그리드 모습을 한 것’이 검로를 원형으로 뒤틀었다.

쩌엉!

“크윽... 별.”

예상치 못하게 반격당한 아그너스의 몸을 멤피스와 갓 핸드들이 덮쳐온다. 전류와 칼날, 망치의 세례가 썩 날카로웠다. 체파르데아가 혀를 쏴 막아주지 않았으면 몸이 구멍투성이가 됐을 것이다.

-멤피스를 여기까지 키워놓았다니 놀랍군. 개골. 성체가 된 멤피스는 정말로 오래간만에 본다. 저놈이 정말 파그마의 후예가 맞나? 뮐러보다 나은데?

“좀 닥쳐.”

도움도 안 되는 놈이 감탄사만 늘어놓자 아그너스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는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싸울 때마다 필승해온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환수와 룬을 이용한 변칙성. 사람들은 그것에 대응하기 힘들었던 거다. 지금 내가 그리드의 변칙성에 대응하기 힘든 것처럼.

‘재주가 너무 많다.’

그리드는 만전의 상태에서도 이기지 못했을 상대다. 페이커에게 발목이 붙잡혀 많은 걸 잃은 상태로 싸웠으니 허무하게 패배해도 이상하지 않다.

피식 웃으며 주저앉는 아그너스와 겁에 질린 파울드를 템빨단이 다가와 둘러쌌다.

그리드는 묵묵히 아그너스의 목에 검을 겨눴다. 투명한 검신이 붉게 물들어가는 광경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묵묵히 단도에 그림자를 덧씌우는 페이커의 모습이 더 거슬렸다.

“저, 저놈은 위험하다.”

파울드도 페이커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준 상대는 그리드인데 그리드가 아닌 페이커를 사신처럼 보았다.

“안 죽이고 뭐해? 이제 와서 온정이라도 베풀 생각인가?”

아그너스가 그리드를 도발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그너스를 먼저 죽이면 파울드가 어떻게 되는지 불확실해서 변수를 방지하려는 속셈 같았다.

쯧, 속으로 혀를 찬 아그너스가 페이커에게 시선을 돌렸다. 놈이 파울드를 죽이기 전에 어떻게든 동귀어진 할 방법이 없을지 궁리했다.

하지만 빈틈이 없다.

폰과 기사들이 페이커를 철통 같이 호위하고 있었다.

“파울드. 그동안 나름 즐거웠다.”

아그너스가 어울리지 않는 인사를 건넸다.

파울드의 불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포기한 것이다.

파울드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는 아그너스의 표정이 씁쓸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 네가 죽어도 네 흔적들은 세상에 고스란히 남을 테니.”

저벅.

사신의 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아, 안 돼...! 기껏... 기껏 영구기관을 만들어냈는데!!”

꿈을 이루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부활하기 위해 수백 년을 고생했는데 이토록 허무하게?

좌절하던 파울드의 얼굴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자유.

그토록 갈망해온 자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신을 옭아맸던 아그너스의 지독한 지배력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흩어졌다.

설마... 죽을 때만큼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라는 배려인가?

아그너스의 평소 성정을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파울드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붙어 다닌 시간이 꽤 길어서 그런지, 아니면 삶의 마지막 인연이라서 그런지 이 순간만큼은 아그너스가 친구처럼 느껴졌다.

“아그너스...?”

푸우욱.

애써 미소를 유지한 채 고맙다고 말하려던 파울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심장을 아그너스의 손이 꿰뚫고 있었다. 죽음의 룬이 각인 된 손이었다.

“내가 써줄게. 네 힘.”

“쿨럭...!”

“...!”

“...!”

상황이 급변했다.

상처 입은 파울드와 그를 지키려는 아그너스의 모습을 보며 착잡해하던 그리드가 황급히 검을 휘둘러 아그너스를 벴다.

하지만 늦었다.

파울드는 즉사였다.

페이커의 판단은 빨랐다.

파울드를 노렸던 그림자 검의 궤도를 벼락처럼 바꿔 간신히 살아남은 아그너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살생부는 이미 진즉에 작성해놓은 상태다. 그리드가 도착한 시점부터 아그너스까지 죽일 수 있으리라 계산했던 것이다.

[척살 대상 ‘아그너스’를 살해하였습니다.]

[대상의 사망 페널티가 최소 2배에서 최대 3배 증가합니다.]

[목적 달성으로 살생부 명단에서 ‘아그너스’의 이름이 지워집니다.]

“원망하지 않으마. 어차피 언젠간 나도 너희들을...”

아그너스가 잿빛으로 산화했다. 굳이 언데드화를 쓰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눈빛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소름이 돋는다.

쓸쓸한 바람에 삼켜진 아그너스의 뒷말은 무엇이었을까.

템빨단원들이 은근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이 페이커는 새로운 살생부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플레이어 ‘아그너스’를 척살 대상으로 지정하겠습니까? 이미 한 번 지정한 대상입니다.]

[...지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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