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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367화 (1,357/1,794)

템빨 68권 - 20화

[검성 크라우젤이 지옥을 양단하였습니다!!]

[지옥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상처가 각인됩니다.]

“...?”

대장간에서 작업 중이던 그리드도, 지옥문의 쿨타임을 기다리고 있던 템빨단원들과 탐사대원들도, 발할라의 책사들과 의논 중이던 라우엘도 깜짝 놀라 말문을 닫았다.

고요 속에 그리드의 길드 채팅이 올라왔다.

-지옥에 가서 악마들이나 구경하라고 보냈더니 때려 부수고 다니네...

템빨단원들이 대꾸했다.

-마치 전하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군요. 한속봉님을 구출하겠다고 떠나시더니 백성 3만 명을 데려오셨던 전하의 파격적인 모습... 여전히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리드 쟤 파브라늄에 축복 받으러 교황청 갔다가 교황 죽이고 온 적도 있어.

-동대륙 간다더니 신 돼서 돌아온 게 레전드.

“...”

크라우젤의 활약에 다들 고무 된 모양인지 채팅창이 분주하게 올라간다.

대부분의 내용이 자신을 칭찬(?)하고 있었기에, 괜히 머쓱해진 그리드는 채팅창을 끄고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

“허억... 허억...”

갈라진 땅 틈새로 형성 된 벼랑.

그 아래로 깊숙이 떨어진 보레론의 비명을 끝으로 크라우젤과 루비의 레벨이 몇 개나 올랐다. 업적 보상과 전공에 따른 아이템 보상도 뒤따랐다.

완벽한 듀오였다.

크라우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루비는 그가 기회를 놓치지 않게끔 서포트했으니.

“정말 멋졌어요!”

“너야말로.”

크라우젤과 루비가 서로를 마주보고 환희 웃었다.

서로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거나 주먹을 마주치는 등의 행위는 일절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성격이 점잖았다. 아직 거리감도 있었다.

애초에 지금은 여유가 없다.

마치 보레론이 죽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악마들과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었기에.

불꽃 갈기를 두른 준마에 올라탄 악마가 특히 강해보였다.

놈이 지팡이를 세우자 광선이 쏘아졌다.

루비가 나섰다.

그 유명한 성녀의 성장형 지팡이를 위시해 금색의 마법진을 그렸다. 두 사람에게 쇄도해온 광선이 마법진에 고스란히 흡수되어 신성력으로 치환됐다.

“그레이트 힐.”

뻐걱!!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던 악마의 대가리가 빛에 휩싸여 박살났다.

끼히힝!!

주인이 떨어질 듯 휘청거림에도 말은 개의치 않고 그대로 돌진했다. 마물들도 말의 뒤를 따랐다. 기세를 보아 말에 탄 악마가 아니라 말 자체가 이 무리의 대장인 듯했다.

놈들이 다가오는 경로에 루비가 힐링 존을 설치하자 말과 마물들의 피부가 타들어갔다.

퍼센트 힐의 위력은 모든 사악한 존재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현재 루비는 성역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50퍼센트, 스킬의 위력이 2배 상승한 상태였다.

“이제 제가 맡을 테니 쉬고 계시라고 멋지게 말하고 싶었는데...”

신성 마법을 연계하며 마물들의 접근을 저지하던 루비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늘에서 비행형 악마들과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들의 주둥이 끝에 크고 작은 마기가 응축되어 있었다. 원거리 공격에 특화 된 놈들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성녀는 이렇다 할 원거리 공격 스킬이 없다. 그나마 턴 언데드의 거리가 가장 긴데, 그마저도 최대 거리가 60미터에 불과했다.

이렇게 된 이상 방어에 힘쓰는 수밖에 없었다. 본래 성역은 요새의 역할을 겸하기도 했다.

“저도 같이 쉬어야야겠네요. 저 정도 폭격은 성역의 내구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예요.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

성역에 떠도는 황금빛의 상태를 점검하며 말하던 루비가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상공에 고정 된 그녀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놀랄 수밖에.

크라우젤은 여전히 루비의 곁에 서있었다.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한데 파장은 수백 미터 떨어진 상공에서 발생했다.

점차 접근하며 광선을 쏠 준비를 하고 있던 마물들과 악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베이고 추락하거나 잿빛으로 산화했다.

바르바토스의 시야와 연계하는 ‘시야 범위’ 스킬의 위력이었다.

“와! 우리 오빠 같...! 앗, 죄송해요!”

감탄사를 토하던 루비가 황급히 사과했다.

자신도 모르게 크라우젤을 그리드와 비교했으니, 당사자가 혹 불쾌해 할까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크라우젤은 유쾌하게 반응했다.

“그리드와 닮았다고? 그런 칭찬은 언제라도 환영이다.”

“...헤헤.”

루비 또한 크라우젤과 함께 바르바토스의 시야를 얻었다.

하지만 그녀의 스킬들은 대부분 거리 제한이 있어서 바르바토스의 시야와 스킬을 연계하는 게 불가능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바르바토스의 시야는 전투용 스킬이 아니었다. 성능이 매우 좋은 망원경 느낌의 보조 스킬이었다.

오직 시야 범위 스킬을 보유한 특권계층에게만 사기적인 전투용 스킬로 거듭나는 것이다.

지금 크라우젤이 증명했듯이 말이다.

“저것도... 성역이 버틸 수 있나?”

크라우젤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보레론이 떨어져 죽은 대지의 틈새.

‘우주 검의 흔적’으로부터 수백 마리의 마물들이 기어 올라오는 광경이 보였기 때문이다. 수십 단위가 아니라 수백 단위였다. 게다가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루비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상위 지옥에서 올라온 애들 같아요. 저 정도 수준의 몬스터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덮치면 성역의 내구력이 버티기 힘들 수도...”

“그럼 차라리 싸우도록 하지.”

성역은 탐사대의 거점이다. 반드시 지켜내야 후발대가 전부 도착할 때까지 진영을 유지할 수 있다.

초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크라우젤의 몸 위로 루비의 버프 스킬들이 덧씌워지는 순간이었다.

쩌저적!!

마물들과 크라우젤 사이로 새카만 통로가 나타나더니 거대한 대검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마물 10마리를 ‘한 번에’ 베어 죽였다.

“잘 버텨주었다.”

폭군 크리스의 등장이었다.

그의 그림자가 넓게 번져나가는 광경을 확인한 크라우젤과 루비가 안도했다.

템빨단 최고 전력이 둘씩이나 도착한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앓는 소리 할 필요가 없었다.

***

템빨골들과 갓 핸드에겐 공통점이 있다.

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에겐 스태미나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하지만 케를은 달랐다.

“허억... 허억... 후우우우... 혹시 출출하지 않소? 나는 딱히 배가 고프진 않지만, 전하가 염려되오. 사람인 이상 밥은 먹어야 체력을 유지하지 않겠소!”

드워프는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종족이다. 특히 자신의 분야에서는 무조건 최고가 되고 싶어 했다.

케를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친 상태였지만, 해골바가지들과 금속덩어리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쉬지 못하고 계속 작업에 열중해보았으나 육체와 정신 모두 한계에 직면했다.

식사를 핑계 삼아서라도 쉬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리드도 함께 쉬길 바랐다. 혼자 쉬는 건 대놓고 패배를 인정하는 셈이었기 때문에 자존심이 무척 상할 것 같았다.

지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종족의 특성에 기인한 본능 같은 거라 저항하기가 힘들었다.

“흠...”

Satisfy는 미각의 보고다.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맛을 구현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없는 맛까지 창조해냈다. 별미의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으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미각에 집착하고 만끽한다.

하지만 그리드는 병적으로 부지런한 인물이다.

일을 할 때는 따로 식사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할 정도로.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그는 대부분의 끼니를 마른 빵이나 육포로 간단히 때웠다. 특히 작업 중일 때는 ‘굶어죽지 않을’ 상태만 유지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을 이야기다.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어쩌면 그런 작은 집념들이 모여 지금의 그리드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래요, 좀 쉴 겸 식사를 챙기도록 하죠.”

케를의 기분을 헤아린 그리드가 그를 배려해주었다.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다.

다만 문제는, 식사를 단 3분 만에 끝냈다는 점이다.

“헉! 아니...! 무슨!?”

케를은 이제 막 스프로 속을 다스리고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애처롭게 바라보면서였다. 한데 그 사이에 그리드는 음식을 전부 집어삼켰다.

어안이 벙벙해져선 엉거주춤하는 케를의 어깨를 갓 핸드들이 지그시 눌렀다. 의자에 강제로 앉혀진 그에게 그리드가 말했다.

“눈치 주려는 게 아니라 단순한 습관입니다. 케를 옹은 천천히 드시고 오세요.”

한국인 치고 밥 천천히 먹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군대까지 다녀온 사람은 의도적으로 위장에 블랙홀을 여는 게 가능했다.

‘역시 시간이 아깝다.’

평균 8분당 아이템 1개를 제작할 수 있게 된 뒤부터 더욱 더 시간의 가치가 귀해진 느낌이다.

창가로 시선을 돌린 그리드가 초와 순보를 연계, 곧바로 대장간이 있는 별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파그마가 제작한)엘프족 활골무>를 꺼냈다. 오전 중에 개변시킨 <마력 사출기>에 이은, 두 번째 개변 대상 아이템이었다.

‘이 골무는 논타깃 공격을 타깃팅 공격으로 전환시켜주지만...’

내구력이 고작 111로 굉장히 낮다. 안 그래도 가죽 재질이라 손상되기 쉬운데 내구력이 너무 낮아서 강적과 싸울 땐 항시 착용하기가 힘들다. 도중에 스왑 과정을 반복해야 하므로 집중력과 동작이 낭비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쿨타임이 3분이라는 점도 조금 아쉬워.’

내구력을 높이고 쿨타임을 감소시키는 게 목표다.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마력 사출기가 증명하고 있다.

개변한 마력 사출기는 마력 사출 속도가 2배, 마나 저장 총량이 3배 증가했으며 사출하는 마력에 <은사>를 섞어 물리력과 가변성이 가미되었다. 완전히 급이 다른 아이템으로 탈바꿈한 셈이었으니 골무도 충분히 나아질 수 있었다.

‘그 뒤엔 직계 뱀파이어 아이템들과 부조리의 반지 같은 아티팩트도 모조리 개변시킨다.’

처음에는 숨결로 만든 방어구들과 신검부터 개변시킬 생각이었지만 계획을 바꿨다.

숨결로 만든 방어구들과 신검들은 이미 다양하고 특별한 기능들을 내장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만으로 가치를 다할 정도로 훌륭하다. 공격력과 방어력 같은 기본 능력치 강화에 집중하는 편이 효율적이었고 그건 무척 쉬운 작업이었다. 1시간도 채 안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아티팩트를 개변시킬 땐 기본 능력치보다 옵션을 강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했다.

애초에 아티팩트는 기본 능력치가 전무하거나 미미하기 때문에 기본 능력치를 강화해봤자 별 의미가 없었다.

아티팩트만이 갖는 특수한 기능들을 강화시켜야 개변에 의의가 있었는데, 이 작업은 무척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별한 재료나 조건이 필요하므로 정확히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린다고 추산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여유가 있을 때 아티팩트부터 손 봐야한다. 어차피 개변의 쿨타임은 12시간이라서 장비류부터 개변시켜봤자 낭비되는 시간이 많아.’

물론 쿨타임을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아이템을 찍어내도 될 일이지만... 어려운 숙제일수록 빨리 끝내놓는 게 마음 편하다.

그리드가 골무를 샅샅이 해제한 후 머릿속에 구상했던 내용대로 개조하기 위해 준비한 재료들과 결합시켰다. 구조를 손 보고 형태와 재질에 변화를 주었다.

결과는 훌륭했다.

쿨타임이 2분으로 줄었고 내구력이 6배나 증가했다. <손가락 절단 면역>과 원래는 없던 방어력도 조금이나마 붙었다. 작은 수치도 누적되면 큰 도움이 되는 법이다.

‘일단 골무부터 최종 개변시켜도 좋겠는데...?’

아이템 하나당 개변 가능 횟수는 3회.

즉, 골무는 앞으로 2번 더 개변시킬 수 있다.

쿨타임을 초 단위로 단축시킬 여지가 컸다.

기대감을 품은 그리드가 다시 한 번 골무에 개변 스킬을 사용했다.

[이제 막 개변을 겪은 아이템입니다. 바뀐 형태와 기능이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연속 개변 시도 시 아이템이 파괴 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도 시도하시겠습니까?]

[100일 후엔 100퍼센트 확률로 개변 가능합니다.]

‘그러고 보니... 성형수술도 수술 후 최소 반년은 지나야 자리를 잡는다고 들었던 것 같다.’

반년에 비하면 100일은 짧은 거다...

그렇게 되도 않는 예시로 자위한 그리드가 다른 아이템을 꺼냈다.

티라멧의 벨트였다.

너무 오래 전에 얻은 아이템이라 성능이 약하다.

영혼이 깃든 아이템을 개변하면 혹시 영혼에도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티라멧의 벨트는 개변 우선순위로 두기에 매우 적합한 아이템이었다.

-지금 막 마지막 조가 입장했어요. 저도 20분 후에 합류하도록 할게요.

마침 유라의 길드 채팅이 떠올랐다.

‘벌써?’

시간을 확인하니 탐사 시작 후 36시간쯤 흘렀다. 근데 그새 3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전부 지옥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아... 20분? 지옥문 쿨타임이 10분이나 줄은 걸 보니 스킬 레벨이 올랐나보군. 이용 가능 인원도 증가했을 테고.’

좋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더욱 더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다.

틈날 때마다 동료들의 아이템도 모조리 개변시켜줄 계획이니까.

그중에서도 단연코 최우선 순위는...

“왜 불렀어?”

지발의 마장기 레이더스다.

마침 지발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대장간을 방문했다.

지발은 지옥 탐사에 참가하지 않았다. 나태의 저주를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인 지크프렉터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크프렉터와 함께 사냥하는 게 지발에게도 좋았다. 지크프렉터가 워낙 강했으니.

“레이더스 좀 빌려줘.”

“...?”

다짜고짜 요구하는 그리드 탓에 지발이 귀를 의심했다.

그리드는 티라멧의 벨트를 구성하는 금속을 모조리 탐욕으로 교체하느라 손이 바빴다.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시선을 모루로 돌리며 설명했다.

“마장기 분해 좀 해보게. 다시 조립해 놓을게. 많아봐야 3번만 반복하면 될 거야.”

템빨신의 기술을 갖추게 되면서 아이템 이해도가 오르는 속도도 대폭 증가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리드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지발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내 반쪽을 왜 분해하겠다는 건데...”

아무래도 집중하기 바빠 설명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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