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69권 - 4화
사람들은 한 가지 큰 오해를 하고 있다.
그리드가 이미 진즉에 신화 클래스를 얻은 줄 안다.
시스템이 그리드를 신이라고 칭했으니 착각하는 게 당연했다.
그리드는 단지 많은 사람들에게 숭배되었을 뿐이건만, 사람들은 그가 막말로 전직이라도 한 줄 알았다.
그건 상식에 기인한 해석이기도 했다.
전직이란 누구에게나 안배 된 시스템에 불과한 반면 NPC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는 일은 이스터에그라고 말하기도 힘든... 황당무계한 사건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그러므로 사람들은 경악했다.
[최초의 신화 클래스 전직자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리드의 서사시가 끝난 직후 떠오른 한 줄의 월드 메시지가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언론이 주목하는 부분이 살짝 미묘했다.
『여태까지 신화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강했던 걸까요?』
『원래부터 강했으니까...?』
***
[서사시의 열세 번째 페이지를 완성하였습니다.]
[서사시 완성 보상으로 당신의 격이 크게 상승합니다.]
[신위가 1 오릅니다.]
[당신의 칭호 <신화를 엿보는 자>가 높은 격과 신위에 반응합니다.]
[칭호 <신화를 엿보는 자>가 <최초의 신화>로 변경됩니다.]
[당신의 지난 업적을 열람하고 분석합니다.]
[...!]
[...!!]
[...!!!]
[업적이 너무 많습니다...!]
[당신이 역사에 개입한 흔적을 헤아리는 게 불가능합니다.]
[당신이 구원한 인명을 헤아리는 게 불가능합니다.]
[세계가 지금의 형태인 원인 중 하나가 당신임을 파악합니다.]
[당신이 보유 중인 <파그마의 후예>, <서사시의 마검사>, <지공> 클래스가 당신이라는 존재를 품지 못합니다.]
[당신의 클래스가 <템빨신>으로 재구성 됩니다. 기존 클래스 특성을 전부 계승합니다.]
<템빨신>
만물의 창조자
만물의 지배자
[신화 전직 효과로 당신의 생명력과 마나, 그리고 검기 수치가 2배 증가합니다.]
[레벨이 오를 때 획득하는 스탯 포인트가 총 30개로 증가합니다. 특정 스탯에 포인트가 강제로 투자되는 현상이 사라집니다.]
[신이란 완전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황금비 적용을 위해 모든 스탯이 재분배 됩니다. 스탯이 부족하여 황금비를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황금비의 단서를 제공하진 않습니다.]
[...!]
[...!!]
[...!!!]
[당신의 스탯은 차고도 넘칩니다!]
[모든 능력치가 아름다운 황금비율을 이뤘습니다. 스탯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스킬 <마법 관조>의 효과가 강화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1초로 단축됩니다. 마법 술식 해독 후 파훼 확률이 70퍼센트로 증가하고 복제, 반격 확률이 28퍼센트로 증가합니다. 만약 대상 마법이 ‘아이템 효과’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면 파훼 확률이 100퍼센트로 증가하고 복제, 반격 확률이 58퍼센트로 대폭 증가합니다.]
[스킬 <대장장이의 분노>가 <템빨신의 분노>로 변경됩니다.]
[스킬 <대장장이의 자애>가 <템빨신의 자애>로 변경됩니다.]
[스킬 <템빨신의 지배>가 생성됩니다.]
[스킬 <파그마의 눈(바알의 계약자 버전)>이 <템빨신의 관조>로 변경됩니다.]
[칭호 <전설이 된 자>가 <신화가 된 자>로 변경됩니다.]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받으면 생명력이 10초간 1로 고정되고 불사 상태에 돌입합니다. 유지 시간 동안 모든 피해에 면역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16시간.]
[불사 상태에서 ‘긴급 복귀’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시공간의 개념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을 모시는 신전 중 한 곳으로 복귀합니다. 단, 불사 돌입 후 7초 내에 사용해야합니다. 7초가 지나면 스킬이 비활성화 됩니다.]
[물리적인 상태 이상에 면역할 확률이 생깁니다.]
“...”
징조는 많았다.
제작 기술이 신화 등급으로 격상하고 탐욕의 격 또한 그에 걸맞게 상승했으니 슬슬 머지않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될 줄은...
얼떨떨해 잠시 멍하니 있는 그리드의 몸 주변으로 주홍색 오로라가 넘쳐흘렀다.
마력과도 달랐고, 투기와도 달랐다. 딱히 어떤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단지 템빨신을 상징하는 기운이었으며 순전히 시각적인 효과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단히 신비롭고 멋졌다.
그리드의 활동에 뒤따르는 잔상으로 남아 세상을 물들이는 고유의 색채였다.
만약 신화 클래스에 아무런 혜택이 없을지라도, 순전히 그 색을 얻기 위해 신화가 되길 꿈꾸는 사람들이 줄을 설 것만 같았다.
손을 몇 번 휘저으며 자신의 색을 감상하던 그리드가 문득 실소했다.
‘신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혹시 이건가?’
긴급 복귀 시스템.
앞으로 사실상 죽을 일이 사라졌다.
‘신살자는 복귀 시스템을 막는 스킬이라도 갖게 되나...’
실없는 생각을 해본 그리드가 브라함에게 손을 내밀었다.
“돌아가죠, 브라함.”
이 시대 최고의 전설인 당신의 인정이 나를 완성시켰다.
만약 당신과 만나지 못했어도 지금의 내가 존재했을까.
브라함을 바라보는 그리드의 눈빛이 한없이 따스했다.
두 사람의 유대 레벨은 최대치까지 오른 상태였다.
함께 있을 때 증가하는 스탯량이 무려 7퍼센트다.
***
“템빨신의 자애.”
라인하르트로 돌아온 그리드가 스킬을 전개하는 순간 템빨국 전역을 주홍색 오로라가 감쌌다.
[당신의 영토에 자애를 내립니다.]
[템빨국 소속 NPC와 플레이어가 템빨국 영토에서 아이템을 제작할 경우 작업 속도가 2배 빨라집니다. 기술 경험치 획득량이 2배 증가합니다. 다른 버프 효과와 중첩됩니다.]
[당신에게 높은 호감도를 품은 NPC 기술자에 한해서, 매우 희박한 확률로 기술 레벨 상승의 축복을 내립니다.]
[자애의 대상이 되는 기술자가 작품을 완성하고 얻는 명성 일부를 당신에게 공양합니다.]
[템빨신교 교인들의 검무 위력이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검무 경험치 획득량이 2배 증가합니다. 다른 버프 효과와 중첩됩니다.]
[당신에게 높은 호감도를 품은 NPC 교인에 한해서, 매우 희박한 확률로 검무 레벨 상승의 축복을 내립니다.]
[자애의 대상이 되는 교인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얻는 경험치 일부를 당신에게 공양합니다.]
[템빨신의 자애가 유지되는 동안 당신은 초당 900의 마나를 잃습니다.]
[템빨신의 자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영토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900이라고 해봤자 실제로 소모되는 마나 수치는 300이다. 그리고 그쯤이야 이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개변시킨 부조리의 반지 덕분이다.
<부조리의 반지>
등급:레전드리(개변)
내구력:400/400
*마법이나 스킬 사용에 소모되는 자원을 3분의 2 감소.
*마나 회복 속도 5배 상승.
대마법사 파울드가 제작한 아티팩트를 템빨신 그리드가 개변시켰습니다.
사용 조건:없음
자원 소모량이 추가로 감소한 것뿐만 아니라 마나 회복 속도가 2배에서 5배로 뻥튀기 됐다.
‘마나뿐만 아니라 모든 자원 회복 속도가 상승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100일 후를 기대해보는 수밖에.’
지금 당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이템 제작 속도 2배 상승’ 효과가 시전자 본인에게도 적용되느냐다.
발할라의 1군단 병사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는 300레벨 제한의 장검 제작법을 선택한 그리드가 자동 제작을 진행해보았다.
결과는 그야말로 뚝딱이었다.
고작 4분도 안 돼서 장검 한 자루가 완성 됐다.
‘어. 나한테도 적용 되네?’
이쯤 되면 슬슬 불안해진다.
S.A가 요즘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걸핏하면 밸런스 운운하며 너프에 혈안이던 놈들이 왜 갑자기 이렇게 퍼주는 거지...?
‘설마 이 자식들...’
게임 난이도 말도 안 되게 올려놓으려고 밑 작업 까는 건가?
“...불안하다.”
그리드는 몰랐다.
자신이 증명하고 쟁취해온 자격들을 빼앗기 위한 수작이 바로 인마대전 그 자체라는 사실을.
체파르데아가 인마대전을 계획한 이유는 다름 아닌 그리드를 경계해서였다.
그리드는 기필코 승리해야만 한다.
***
임철호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무런 근심 없이 공부했다. 비상한 머리 덕분에 다양한 지식을 쌓고 수많은 성과를 남겼다.
아쉬움이 없어 때묻지 않았고 때묻지 않아 인간관계가 좋았다.
성공 가도를 달렸다.
불행을 몰랐다.
불행을 몰랐으므로 고통과 슬픔에 내성이 없었다.
그래서 슬픔을 겪었을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황했다.
사람들이 신을 찾는 이유를 알게 됐다.
불행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문득 생각하기를.
어쩌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드물다 싶었다.
누군가는 그들을 위한 낙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던가.
플레이어들의 선택에 의해서 인마대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Satisfy가, 이상향이 무너질 징조를 보였다.
슬픈 일이었다.
임철호 회장이 그토록 밸런스에 집착했던 이유도 결국 낙원의 유지를 위해서였다. 낙원이 붕괴되는 건 결코 그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불행이란 인간이 있는 곳엔 무조건 뒤따라오는가.
새삼 깨닫는 그때.
위기의 도래를 앞두고 그리드가 13번째 서사시를 써내려갔다.
그간 쌓아올린 업적을 토대로 <기술>과 <클래스 전용 아이템>을 성장시키고 증명을 마쳤다. 비로소 Satisfy 최초의 신화 클래스 전직자가 되었다.
붕괴되어가던 균형이 바로잡힌 순간이었다.
임철호 회장은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곧 회의가 소집됐다.
그리드의 신화 클래스 전직을 놓고 또 예의 뻔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임철호 회장은 두 눈을 감았다.
사업가라는 작자들의 냉담한 의견들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서였다.
임철호 회장은 사업가이기에 앞서 과학자였고, 과학자이기에 앞서 낙원을 지키고 싶은 선인이었다.
Satisfy를 단순히 사업으로 생각하는 일부 임원들의 말을 듣기 괴로웠다. 그들이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방금 뭐라고 했나?”
한동안 잠자코 있던 임철호 회장이 눈을 떴다. 그리고 윤상민 이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드물게 눈을 치켜 뜬 채였다. 어지간히 놀란 듯했다.
“다시 말해 보게.”
“...”
윤상민 이사가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임원들은 윤상민 이사가 된통 깨질 거라고 예상했다.
플레이어용 테마곡을 만들자고?
‘그리드가 세운 업적들을 기리는 의미.’라며, ‘우리가 플레이어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의욕을 심어주자.’는 제법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누가 봐도 사심이 가득한 의견이었다.
특정 플레이어에게 특혜를 주는 건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기 딱 좋아 반드시 지양해야 했다.
그런 기본조차 망각하는 윤상민 이사에게 임철호 회장이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그리드를 위한 테마곡을 만들자고 했나? 다섯 곡을?”
임철호 회장이 재차 물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윤상민 이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플레이어들에게 Satisfy에 몰입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의미에서...”
“어이가 없군.”
“...”
임철호 회장에게 말이 끊긴 윤상민 이사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귀에 탕탕! 탁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꽂혔다.
임철호 회장이 어지간히 화가 난 듯했다.
‘역시 너무 심했나?’
윤상민 이사가 뒤늦게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최소 열 곡은 만들어야지.”
“...?”
“...?”
윤상민 이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임원들이 전부 임철호 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철호 회장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기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최초의 신화 클래스 전직자에게 다섯 곡은 너무 적네.”
“...”
“플레이어용 테마곡을 만들어서 플레이어들의 사기를 증진시킨다라... 매우 흥미로운 접근법이야. 우리 윤 이사가 나날이 발전하는군. 그룹의 미래가, 더 나아가 Satisfy의 미래가 아주 밝아.”
이날.
세계 최고의 거장들이 S.A그룹의 연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