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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468화 (1,457/1,794)

73권 13화

“뭐? 신혼 첫날밤에 다른 여자한테 달려가서 청혼을 했다고? 실학냐...? 불륜 영학에 나오는 쓰레기 같은데?”

반트너는 직설적이다.

친구의 허물을 꾸짖는 태도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호의에서 비롯되는 태도다.

친구가 도의에서 어긋나 잘못되지 않게끔 주의와 경고를 주려는 성향이 강했다.

그리드가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메르가 슬퍼하는 걸 좌시할 수 없었어. 게다가 바사라가 먼저 메르를 찾아가보라고 말해줬고.”

바사라는 그리드보다 월씬 연상이다.

심지어 황족이며 공작이었고,선황의 유지로 제위에 올라 만백성을 보살펴왔다.

그래선지 생각이 몹시 깊고 상황을 읽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녀는 결혼식장에서 슬퍼하던 메르세데스의 감정을 읽고 그리드와의 관계를 유추했다.

두 사람이 맺어졌을 때와 맺어지지 못했을 때의 상황을 저울질하고 최선을 고찰했다.

결속의 씨앗을 잉태하고자 그리드와 거사를 치른 직후.

그녀는 그리드에게 메르세데스를 찾아가라고 종용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을 맺길 바라며 권장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감정은 걸림돌이 아닌 발판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날 밤 바사라가 했던 말이다.

지혜로운 그녀는 관계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그리드는 공감했다.

메르세데스의 마음이 걷잡을 수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달려가 그녀를 붙잡아주었다.

“음... 메르세데스가 슬퍼했었구나. 바사라도 이해해줬고... 그럼문제가 없는 게 맞...지?”

설명을 들은 반트너가 미묘한 표정으로 납득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네게 책임감이 있어서 다행이다. 폰은 새애인을 만날 때마다 전 애인을 버리던데.”

“나를 폰하고 비교하는 건 실례지. 내가 바람등이도 아니고.”

황당해하는 그리드를 동료들이 어이없게 쳐다보는 그때였다.

그리드의 시선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또렷한 눈동자로 동료들이 등지고 있는 창문 너머를 응시했다.

몇 초 후.

그림자 속 페이커의 기척이 미세하게 일렁였다.

또 다시 몇 초 후.

“이건 또 어떤 괴물들이지...?”

카츠가 동요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선 분위기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적습인가?”

긴장하며 무장을 갖추는 템빨단원들을 그리드가 제지했다.

“아니,손님이다. 너희들은 신경쓰지 마.”

그리드의 순보 연계는 이제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여러 변 연속으로 사용해도 지치지 않는 스태미나까지 겸비했다.

동료들을 진정시킨 뒤 창밖으로 위치를 바꾼 그가 첨탑 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머리 위 탐욕 덩어리를 곁으로 끌어내리며 권능을 전개했다.

촤-촤-촤-촤-착!

장막처럼 펼쳐진 탐욕이 주변을 감싸 공간을 밀폐시켰고,

“잘 지냈는가.”

직후 두 사람이 도착했다.

지혜의 탑의 결사 비반과,

“ 안녕. ”

베티 였다.

비반과 달리 베티의 외출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리드는 모종의 불안감을 느꼈다.

“두 분께서 어쩐 일로...?”

“당대 바알의 계약자가 자격을 잃게 될 거야.”

베티는 비반과 달랐다. 주위가 산만하지 않아 곧장 용건을 밝혔다.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계약자의 영혼에 섞였던 바알의 힘이 박리되어 유출 될 텐데 이는 무척 심각한 일이야.”

“바알의 힘은 만악의 근원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네. 강력한 힘과 악의를 품은 채 목격자를 미혹하지. 특히 드래곤을.”

“바알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

“드래곤을 끌어들이는 힘...”

“그래,베티 할멈이 힘을 잃었을 당시엔 네바르탄과 번헬리어가 날아왔었다고 하네. 운이 나빴던 게지.

하필 두 놈의 레어와 가까운 곳에서 사건이 발생했으니. 가깝다고 해봤자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위치였지만.”

“이번 사건에도 드래곤이 개입할 공산이 커. 막아야 돼. 만약 드래곤이 바알의 힘을 섭취하게 되면 제2의 악룡이 탄생할 거야.”

“...”

그리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궁극의 초월성을 간직한 존재들.

특히 태초부터 존재했다는 고룡들의 힘은 추측 자체가 힘들었다.

그간 쌓아온 상식을 버리고 상상에 상상을 더해야만 어럼풋이 윤곽을 잡을 정도다.

그들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릴 가능성이 시사됐으니 긴장을 숨길 수 없었다.

“즉,이번 사건은 탑에서 담당해야 옳다는 말인데 공교롭게도 문제가 있다네.

베티 할멈이 감지하기로 현재 계약자는 동쪽 대륙에 있다는 거야. 우리의 관할이 아닌게지. ”

“결사가 대륙을 넘는 수준의 장거리 이동을 시도하면 문제가 심각해져. 부득이하게 기척을 드러내서 드래곤들에게 추격당할 거야.”

“기껏해야 동쪽에 자리 잡은 드래곤이 감지하고 노리게 될 바알의 힘을 세상 모든 드래곤이 눈치채고 노리게 되겠지. 그 여파로 동대륙이 멸망할 걸세.

“그러니까 그리드가 우리를 대신 해서 동쪽으로 가줘. 누군가가 손에 넣고 악용하기 전에 반드시 그 힘을 파괴해 줘.”

[선구자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힘의 파편 파괴〉

난이도:측정불가

당대 바알의 계약자를 지켜봐온 베티는 그가 곧 자격을 상실할 거라고 예언합니다.

이때 유출 될 바알의 힘의 파편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파괴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바알의 힘의 파편 파괴.

퀘스트 클리어 보상:베티의 선물. 베티와의 호감도 상승.

퀘스트 실패 조건:바알의 힘의 파편을 타인이 탈취.

퀘스트 실패 시:바알의 힘을 흡수한 새로운 강적이 출현. 높은 확률로 동대륙에 대규모 피해 발생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난이도부터가 불길하다.

애초에 드래곤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은 퀘스트다.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퀘스트에 실패해도 그리드 개인이 얻는 피해가 없다는 것인데 전혀 위안이 안됐다.

초와 씽의 백성들.

인마대전에 참전해 도움을 준 병사들과 그들의 가족이 재앙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긴 합니까...?”

힘들 거다.

만약 그런 대답이 돌아와도 그리드는 퀘스트를 수락할 거였다.

동대륙이 쑥대밭이 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한데 돌아오는 대답이 의외로 희망적 이었다.

“힘들지만 가능할 거라고 보네. 자네가 감당 못할 일이었다면 자네에게 부탁하지도 않았겠지.”

“그리드도 알다시피 동대륙은 신들의 땅이야. 과거에는 사방신이 수호신으로 존재하며 만물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현재는 쫓겨난 신들과 양반들이 정세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이곳과 비교해서 신력이 넘쳐나는 까닭에 마력의 흐름은 상대적으로 제한 돼.”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이 터전으로 삼기엔 부적절한 땅이란 뜻일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쪽에 자리 잡은 드래곤은 사실상 ‘숨어든 패배자’에 가깝지.

아마 큰 상처를 입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동속성 드래곤끼리 레어 입지를 두고 다투는 건 비교적 흔한 일로 수백 년에 한 번 꼴로 발생하거든 확실히,숨어든 패배자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느껴졌다.

동쪽 사람들은 드래곤의 존재를 언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용이란 청룡이 전부였고 청룡은 사방신에 속했다.

그리드의 표정이 눈에 티게 밝아졌다.

‘상처 입고 숨어있던 드래곤이라... 승산을 논해도 좋은 건가.’

드래곤의 뼈와 비늘을 얻을 기회다.

그리드가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는 사이 비반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에게 사냥 당했을 때의 구젤과 비슷한 상태겠지. 죽이진 못해도 따돌릴 순 있을 걸세.”

“...”

기뻐하던 그리드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다시 굳는다.

구젤을 사냥할 때 모인 전력은 하야테를 포함한 모든 결사였다.

그리드 혼자서 사냥하는 건 불가능하단 의미다.

드래곤의 뼈와 비늘을 얻는 건 요원해졌다...

베티의 경고는 한술 더 떴다.

“어디까지나 드래곤이 힘의 파편을 손에 넣기 전의 이야기야. 만약 힘의 파편을 얻게 되면 무지막지하게 강해져서 걷잡을 수 없게 돼.

그때는 미련 없이 포기하고 돌아와. 우리가 감당할게.”

“…네.”

더 이상의 대학는 없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그리드는 즉시 동대륙으로 떠났고 결사들은 멀리서나마 그를 배응했다.

한숨 언 비반이 베티를 다소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할멈께 실망이오. 아그너스인가 뭔가 하는 놈이 동대륙으로 떠나는 걸 왜 방관한 게요?

차라리 직접 죽이고 이 땅에서 자격을 잃게 했으면 그리드에게 도움을 구할 필요도 없었잖...”

비반이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바알의 계약자가 왜 바알과 계약할 수밖에 없는지,또한 어째서 그 자격을 잃게 되는지...

언젠가 프론잘츠에게 들었던 베티의 과거를 떠올리며 이해한 것이다.

항상 무표정했던 베티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미안. 그 아이가 가여워서 망설였어. 다 내 잘못이야. 책임지고 엄벌을 받도록 할게.”

“...나도 미안하오.”

이를 악 무는 비반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베티의 각오를 눈치 채고 분노와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드,부디...’

그리드가 타고 사라진 매스 텔레포트의 잔재를 바라보는 비반의 마음에 간절한 바람이 담긴다.

‘부디 이번에도 기적을 일으켜주시게... 동쪽의 백성들과 이 가여운 할멈을 보살펴주시게...’

***

[누군가가 당신에게 기도합니다.]

기도 스랫을 개방한 후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알림창이다.

거슬리지 않게 시야의 구석에 점멸했다가 사라지는 그것이 오늘따라 그리드에게 큰 용기를 심어주었다.

‘이 땅에도 내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서대륙.

조금 전까지완 공기가 완전히 다르다. 불어오는 바람에 솔잎 향이 실린다. 정신이 맑아졌다.

‘서두르자.’

서대륙에 올 때면 우선 초왕부터 찾아가 인사를 나누곤 했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리드는 즉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순보를 연속해서 썼다.

가야.

영문도 모른 채 사망한 노검마가 즉시 부활했다.

죽은 장소와 부활 포인트가 같아서 다행이었다.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는 게 가능했다.“저게 무슨...”

노검마는 사당 아래 시가지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의심했다.

거대한 용이 날뛰고 있었다. 동대륙의 상징 중 하나인 청룡과 완전히 다른 생김새다. 배가 크고 날개가 달려있었다.

주둥이를 벌릴 때마다 불을 롱어대는데 표정이 아주 악랄했다.

“드래곤...”

서대륙 최흉의 피물이 어째서 이먼 동쪽 땅에 출현했단 말인가?

노검마는 자연히 아그너스를 의심했다. 정황상 놈이 피물을 데리고 온 거라고 해석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등 뒤 사당에서 빛이 번쩍였다.

어떤 플레이어가 부활했다는 신호다.

시선을 돌린 노검마가 도끼눈을 떴다.

“아그너스,네놈!”

“지상에서 부활하는 건 오래간만이군.”

아그너스는 죽을 때마다 지옥에서 부활해왔다.

바알의 계약자가 감수해야하는 불편함 중 하나로 일종의 페널티였다.

한데 이 순간 해방됐다.

지정해놓은 부활 포인트가 없어서 가장 가까운 포인트 거점에서 부활했다. 새삼 편리한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드래곤은 뭐지? 네놈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해쳐야 직성이 풀리는 거냐!”

“저건 나도 모르는 놈이다.”

실로 수년 만에 평범한 네크로맨서로 돌아온 아그너스.

급감한 전투력과 비례하는 평온을 얻은 그의 눈빛이 예전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산발이었던 녹발을 깔끔하게 쓸어 넘기는 모습이 초창기 악명 높던 시절의 그를 연상시 켰다.

“양반들이 쉽게 죽어나가는군.

드래곤이라... 소문대로 굉장한 걸.

“빌어먹을! 지금 감탄할 때냐! 도시가 멸망하게 생겼다!”

아그너스는 정말로 드래곤과 관련이 없어보였다.

노검마는 그에게 품은 증오를 우선 접어두었다.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백성들을 초조하게 살피며 나설 타이밍을 계산했다.

그에게 아그너스가 물었다.

“사람들을 구하고 싶나?”

“조롱하려는 거냐? 맞다! 구할 생각이다! 사람들을 쉽게 해치는 네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나는...! 우리는...!”

황길동과 함께 해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던가...

이번에도 역시 구하지 못할 것이다…

좌절하며 얼굴을 감싸 쥐는 노검마의 곁을 아그너스가 성큼 지나쳤다.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면 양반들을 돕는 게 낫다.”

“뭐...?”

“드래곤이 바알의 힘을 탐내는 눈치야. 저걸 놈에게 빼앗기면 사람들을 구할 틈도 없이 도시가 먼지가 될 거다.

우선 양반들을 도와서 협공하다가 기회를 봐서 바알의 힘부터 파피하도록 하지.”

“허허...? 이놈 보게? 지금 나랑 편먹고 싸우자는 거냐? 네가 사람들을 돕겠다고? 누가 네놈의 말을 믿을까?

바알의 힘을 네놈이 다시 먹으려고 같잖은 수작을 부리는구나.”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앞으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다.”

족쇄가 끊긴 기분이다.

내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해온 <바알의 계약자>는,이제와 돌이 켜보면 나를 더 큰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어둠이었다.

“그림자에 스며들어라, 란스티어.”

[데스나이트 ‘란스티어’가 응답하지 않습니다. 사용 권한이 없습니다.]

“검을 들어라,카오.”

[데스나이트 ‘카오’가 응답하지 않습니다. 사용 권한이 없습니다.]

부름에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바알의 계약자 시절에 얻었던 존재들과의 연결이 끊겼다. 문득 밀려오는 고독이 차가운 공기에 노출 된 심장을 욱신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아그너스는 꿋꿋하게 나아갔다.

“가여운 망자들아,원한을 되새겨라.”

그어어…

전진하는 아그너스의 곁으로 수십의 언데드가 일어난다.

녹슨 철검과 활을 쥔,볼품없는 해골 병사들이었다.

네크로맨서의 기본 소환수였다.

아그너스는 개의치 않았다.

로브를 붙잡고 있던 손을 뻗어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냈다. 아주 먼 옛날로 느껴지는 과거에 사용했던 낡은 지팡이를 무장했다.

“새로 시작해볼까.”

“네놈...?”

앞서가는 아그너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노검마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펄럭이는 로브 사이로 언뜻 드러난 아그너스의 상체에 피부와 살이 없었다.

앙상한 뼈와 헐떡이는 장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채였는데 곁에 선 해골 병사들 이상으로 흉측하고 초라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쉽게 감당할 수 없을 모습이다.

한데 아그너스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노검마에게 죽기 전과 비교해서 훨씬 더 평온하고 힘이 넘쳤다.

금속처럼 차갑게 보였던 금색의 눈동자에서 열기가 느껴질 정도여서, 노검마의 기분이 덩달아 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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