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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560화 (1,557/1,794)

템빨 77권 - 20화

사도들은 무적이고 그리드는 신이다.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이었다.

그리드의 신분이 ‘신’인 점을 이용한 언어유희이기도 했지만, 실제 무력을 뜻하는 바가 더 컸다.

인마대전 이후.

사람들은 사도들의 무위를 다각도에서 목격했다.

또한 그리드가 승승장구하며 서사시를 쓸 때마다 실시간으로 전달 받았다.

물론 실제 그리드의 승률은 매우 낮은 편에 속했지만... 결과적으론 늘 이득을 취해왔으니 제3자 입장에선 항상 이기는 것처럼 보였다.

대중에게 그리드와 사도들은 무적에 가까운 존재란 의미다.

드래곤, 바알, 하야테 등의 절대자와 그들을 따로 구분 짓지 못하고 같은 위계로 인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건가?”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사람들은 사도들의 안위를 걱정했다.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사람들은 절대자의 무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늠조차 못했다. 사도들을 절대자로 인식하면서도 패배를 쉽게 떠올리는 오류를 범했다.

그럴 만했다.

피아로를 둘러싼 환경은 불과 재였다.

다만 뜨겁고, 검고, 허무할 뿐.

천지사방에 생명의 기운이 없었다.

달그닥 달그닥.

밤하늘을 걷는 유령마가 머리 위로 위성처럼 맴돈다.

죽은 듯 고요한 하늘에 푸른 불꽃이 똬리를 틀고, 검은 재만 나부끼는 대지엔 붉은 불꽃이 타오르며 생명의 흔적을 말소시켜갔다.

하필 그곳으로 피아로가 떨어진 것이다.

전설의 농부.

비와 바람, 그리고 태양과 땅의 활력을 빌려야 비로소 능력을 발휘하는 그에겐 최악의 상황이었다.

피아로는 무적일 거라는 사람들의 믿음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근처에 도와줄 사람 없나?”

“피아로 죽으면 나 게임 접는다. XX.”

모든 분야엔 스타가 있다.

특히 Satisfy는 수십억 인구가 직간접적으로 즐기는 게임이다.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별들이 Satisfy엔 무수히 존재했다.

당연히 그에 비례하는 팬덤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팬덤 중 하나가 바로 피아로의 팬덤이었다.

그리드가 막 레이단의 영주가 됐을 무렵부터 그를 수행해온 존재.

피아로는 템빨단과 템빨제국을 상징하는 근본이었다.

아직 약소했던 템빨단이 7대 길드와 대악마의 침공을 견딜 수 있던 배경엔 피아로의 활약이 있었고 온갖 전쟁에서 군대를 이끌고 병법을 구사했던 인물도 다름 아닌 피아로였다.

그에게 매료되지 않았던 사람이 드문 것이다.

피아로의 인기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최고였다.

그가 하필 상성이 나쁜 곳으로 떨어져 악마들에게 포위당한 광경은 사람들을 탄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템빨신의 사도 피아로. 그 이름을 어렴풋하게나마 들어보았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바알의 심복들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고작 벨리알을 상대로 동귀어진을 각오했었다지.”

악마들은 서로 경쟁하며 협력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인간을 사냥할수록 강해진다.’는 달콤한 보상에 취해 서로에게 등을 맡기고 있었지만, 바로 어제까지 동족 포식을 일삼아왔다.

당장 주변에 경쟁자가 넘치므로 바깥일엔 상대적으로 무심했다.

하물며 천 년도 더 넘게 바알을 보좌해온 노괴들은 열정을 잃은 지 오래다.

베리아체라는 역대급 대물을 사냥한 마당에 한낱 미물들의 일에 관심이 생기겠는가.

이미 한 번 태초의 3악과 싸워 이겨봤던 그들에게 세상의 다른 모든 일은 하찮은 것에 불과했고 지상엔 더더욱 관심이 적었다.

전 32위 대악마 벨리알이 지상을 침공했던 시점과 인마대전 발발 시점의 전후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피아로의 활약을 극히 일부만 알았다.

사실 그들의 입장에선 활약도 아니었다.

피아로와 관련 된 모든 정보를 송충이가 솔잎을 먹었다는 정보와 동격으로 치부했다.

그만큼 하찮게 여긴다는 의미다.

공교롭게도 피아로가 인마대전에서 뚜렷한 성과를 못 남기기도 했다.

20위대 대악마들의 발을 묶은 것도 필시 대단한 활약이었지만 다른 사도들의 활약과 비교해서 미미했다.

불과 2년이 채 안 된 일이었다.

사람들은 피아로를 좋아하는 마음과 별개로 걱정했다.

안 그래도 다른 사도들과 비교해서 약한 그가 불리한 전장에 선 것이다.

주변에 그를 도울 만한 사람이 없나 수색하기 시작했다.

끔찍해서 기피해온 지옥의 상황을 두 눈 부릅뜨고 관찰했다.

잔인한 광경들이 눈과 정신을 괴롭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피아로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통쯤은 감수할 사람이 많았다.

“아...”

일단 찾자.

피아로 근처에 있는 사도를 발견하는 즉시 로그아웃해서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 템빨단의 누군가가 호응해줄 것이다...

그런 희망을 품은 채 하늘을 올려보던 사람들이 이내 절망했다.

하늘에 비추어지는 지옥 어디를 찾아봐도 피아로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도들과 탑의 결사들 죄다 먼 곳에 있었고 그들 역시 대부분 고립된 상태였다.

그나마 단 한 명.

라우엘이 근처에 있었지만...

‘허접이잖아?’

...라우엘은 전사로서의 명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가 1세대 루키 중 정점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당연하다.

그는 전장에서 너무 오랜 세월 떨어져 지냈다.

재상으로 활약해온 일들을 돌이켜 봤을 때 스탯을 내정관에 가깝게 개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확실했다.

그를 피아로에게 보내봤자 도움이 되기는커녕 훼방만 놓을 터였다.

괜히 현장에 끼어들었다가 인질이라도 됐다간 상황이 도리어 악화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찾아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써 라우엘을 무시했지만...

<지금 피아로 혼자서 위험한데 라우엘이 근처에 있음>

여러 대형 커뮤니티엔 이미 관련 글이 올라갔다.

게임을 읽는 눈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 눈치 없이 올린 글이었다.

그리고 굳이 비율을 계산해 보자면, Satisfy엔 고수보다 초보가 훨씬 더 많았다.

소위 겜잘알 소리를 듣는 고수는 어떤 게임이든 소수에 불과하지 않나.

그것과 같은 이치였다.

-UP.

-추천 보태고 갑니다.

-올라가라 올라가라!!

-어이어이 템빨단! 이 글을 읽어달라고!

각 커뮤니티에 서식 중인 사람들이 눈치 없는 게시글에 추천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인기글 1위가 되기까지 순식간이었다.

라우엘.

유일한 희망.

라우엘 피아로 근처.

템빨단 여기 봐.

등등.

온갖 관련 키워드가 검색엔진과 SNS 실시간 인기글로 도배됐다.

마침 로그아웃한 상태로 외부 정보를 살피던 템빨단원들이 그 사실을 빠르게 캐치했다.

그리고 지옥 원정대 소속 템빨단원 중 일부는 교대로 비상연락망을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라우엘이 피아로 근처에 있다는데?”

외부에서 소식을 듣고 로그인한 폰이 상황을 전달했다.

커뮤니티 인기글이 등록되고 지금까지 고작 2분이 채 안 지났다.

모두의 시선이 유라에게 향했다.

유라는 이미 행동하고 있었다.

지옥의 마기를 정화하는 데빌 슬레이어의 마력.

그 마력을 이용해서 빚는 고유의 탄환 중 ‘새’의 모양을 한 <침투의 탄>을 쏘았다.

지옥이라는 불리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했던 알렉스가 드물게 도움을 줬던 존재들과 협력하기 위해 고안한 기술이다.

원거리 통신을 가능케 한다.

경로상에 존재하는 마기를 정화하며 쏘아지므로 악마들의 감각도를 쉽게 기만했고 설령 발각될지언정 순순히 붙잡혀주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붙잡힌다 해도 강력한 디버프를 광범위하게 뿌려댔다.

쿠와아앙!!

열린 창문을 틈새로 총구를 겨눈 유라가 격발함과 동시에.

“...?”

불길한 옥빛 궤적이 전장 위로 스치자 동요한 악마들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었고,

서걱!!

한 눈 판 대가를 죽음으로 치렀다.

잠시 생긴 틈을 노리고 수십 마리 악마의 수급을 취한 지크가 <사하란의 검>에 묻은 피를 조용히 털어냈다.

표정 하나 변치 않는 태도가 악마들에게도 소름끼치게 다가왔다.

체파르데아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왜 협력하지 않지?’

이전 시대의 최강자.

지크는 칠악성 중에서도 으뜸이어서 신들의 경계를 샀던 반신이다.

바알의 최측근인 체파르데아의 콧대가 하늘을 찌를지언정 지크를 좌시하진 못했다.

괜히 직접 충돌해서 큰 피해를 감수하는 것보단 적의 전력을 이용할 계책을 짰다.

크리스탈 성을 둘러싸듯 설치한 마법진.

‘인간’이 밟는 즉시 마력을 흡수하는 함정을 발동하는 그 마법진의 작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성에 틀어박힌 인간들이 도통 나올 생각을 않는 것이다.

자신들을 도우러 온 지크가 홀로 전장에 고립되어 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인간이 악마와 달리 쉽게 협력하는 종족인 점을 감안하면 쉽게 납득이 안 되는 반응이었다.

‘설마 마법진을 눈치 챘나?’

아니... 그럴 리 없다.

저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설령 성녀가 기적을 행사해서 눈치 챌지언정 해독까진 불가능했다.

엘리베이터 입구에 설치해뒀던 마법진을 순식간에 해독해버린 브라함급 괴물이 아닌 이상에야 누구도 저 마법진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의아해하며 조금씩 전선에서 밀려나는 체파르데아의 커다란 뒤통수를 성 안의 로제가 주시하고 있었다.

‘저 두꺼비는 내가 이 안에 있는 걸 진짜로 모르나 보네.’

크리스탈 성의 가장 주요한 기능은 ‘수호’다.

방어에 유리한 모든 법칙을 지니고 있으며, 그 법칙 중엔 당연히 은폐의 법칙도 존재했다.

성을 침략하는 입장에선 성 내부의 전력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기척을 완전히 차단하는 까닭에 저 투명한 성 안에 대체 누가, 몇 명이나 존재하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처음엔 불안해하던 로제가 평온해진 이유다.

이제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마음껏 템빨단과 협력했다.

템빨단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성을 둘러치고 있는 마법진의 정보를 공유하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살아남기 위해 막말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애초에 그리드와 동맹을 맺으려던 입장인지라 거부감도 없었다.

‘먼저 뒤통수 친 저놈들 잘못이지.’

엄밀히 말해서, 먼저 바알의 뒤통수를 치려한 쪽은 아모락트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긴 건 바알이 먼저였다.

아모락트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지옥의 법칙을 바꾸고 본격적인 전쟁을 일으킨 놈 때문에 고립 된 나는 템빨단의 편에 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당하게 합리화하는 로제에게 지슈카가 재차 확인했다.

“저 마법진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33분이랬지?”

“네, 3시간 활성화 후 33분 충전을 반복해요.”

“흐음... 아슬아슬하네.”

33분 이내에 성문을 열고 나가서 지크와 합류하고 다시 성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아군과 적군의 전력, 진형, 성에서부터 지크까지의 거리, 아군의 스킬 현황 등을 재차 계산해보는 그녀의 고운 미간이 좁혀졌다.

잠시뿐이다.

의외로 금방 활짝 펴졌다.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은 지슈카가 로제의 등짝을 팡팡 두들겼다.

“같이 나가자?”

“...어디를요?”

“응? 그야 지크 구하러.”

Satisfy에 무적은 없다.

당연히 무적이라고 믿어왔던 천상의 무신조차도 몇 차례나 격추 당한 실정이다.

적의 증원 병력이 속속들이 도착하는 중이기도 했다.

지크라고 언제까지나 활약할 순 없는 것이다.

무조건 구출해서 쉴 틈을 만들어 줘야했다.

만에 하나라도 지크가 죽기라도 했다간.

그의 힘을 악마들이 흡수하기라도 했다간 그야말로 재앙이다.

“제가 왜...?”

“그걸 질문이라고 해? 너 제법 세잖아? 그럼 같이 싸워야지.”

“하지만 전 악마라고요. 나중에 악마계에서 왕따를 당할 수도...”

“지금 뒷일을 생각할 때야? 거부권은 없으니까 시키는 대로 해. 아니면 네가 마법진에 대해서 유출했다고 저 개구리한테 외치면서 성 밖으로 던져버릴 거야.”

“...”

로제는 아주 오래 전 활약했던 체다카 길드를 떠올렸다.

체다카 길드의 구성원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지만 리더의 거침없는 실행력을 바탕으로 명성을 키워나갔었다. 명성만 놓고 봤을 땐 7대 길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지슈카가 바로 그 리더다.

‘폭주기관차 같은 년.’

속으로 욕설을 짓씹은 로제가 힘겹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악명이 아무리 높아봤자 민간에서나 통했다. 템빨단의 주력들 앞에선 순한 양에 가까웠다.

“그래요... 우리는 같은 편...이니까.”

바알이 새롭게 세운 법칙들은 인간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드의 서큐버스들이나 유라와 계약한 붉은 피부의 악마 글런트처럼 이미 인간들에게 종속 된 마물이나 악마는 온갖 제약을 받았다.

서큐버스를 통해서 그리드와 교신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로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력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 다들 준비해. 10분 뒤에 나가자.”

유라와 지슈카가 이끄는 원정대가 성문 앞에 서는 그때였다.

[지옥에 강림하신 신께서 윤회의 강에 도착하셨다. 울부짖는 원혼들을 따스한 신성으로 위로하심에 악마들이 당혹하였다.]

그리드의 지옥 입장과 함께 활성화 됐던 20번째 서사시.

그 첫 번째 줄이 성전에 기록됐다.

지상에서 그리드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에 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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