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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574화 (1,572/1,794)

템빨 78권 - 13화

““우주 검.””

이 공간이 파괴되어 ‘저것’의 심기를 건드리더라도 감수해야한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저것의 실체를 파악해대는 괴물 놈을 여기서 쫓아내는 게 급선무다...

검성의 영혼을 이식 받은 악마가 판단했다.

놈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었다.

메르세데스는 완전한 우주 검을 수차례 목격해왔다는 점이다.

검성 크라우젤의 우주 검 말이다.

놈이 쓰는 우주 검이 크라우젤의 우주 검보다 강력할 순 있어도 완전할 순 없었다.

태초에 근접한 세월을 살아온 악마답게 축적한 마기는 강해도 놈에게 이식 된 영혼은 가짜에 불과했으니까.

‘뮐러가 아니야.’

근데 왜 본인은 뮐러의 영혼을 이식 받은 것으로 믿는 눈치지?

콰작!!

방패를 던져 벽면에 꽂은 메르세데스가 손잡이를 봉으로 삼았다.

한 손으로 쥐고 몸을 한 바퀴 돌려 우주 검을 피해냈다.

찰나지간에 일어난 묘기.

그녀가 등지고 있는 배경 전체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더욱 화려하게 연출됐다.

사람들이 환호했고 악마의 얼굴은 구겨졌다.

““피했다고?””

검성은 대상을 반드시 벤다.

그 법칙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우주 검이었다.

대상을 궁극적인 표적이 아닌 소실점으로 삼아 세계의 중심을 베어버리는 초광범위 기술.

휘두르는 즉시 세계가 갈라지므로 대상이 함께 베이는 건 당연한 귀결이 됐다.

한데 피했다.

악마가 한 발 늦게 눈치 챘다.

세계가 정확히 반으로 갈린 게 아니라 비스듬히 갈렸음을.

‘점을 잘못 잡았다.’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자책하는 악마에게 메르세데스가 말했다.

“제대로 못하는 게 당연하죠.”

““...?””

“당신은 검성이 아닌 걸요.”

““그건... 나 자신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도발로 성립되지 않아.””

나는 위대한 검성 뮐러의 영혼을, 그것도 극히 일부의 영혼을 이식 받았을 뿐이다.

검성의 기술을 이해하고 사용할 뿐이지 검성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완전할 수 없고 실수를 범하는 건 당연하다.’

실수에 어떻게 대처하는 지가 중요하다...

씨익.

적의 도발을 깨달음으로 승화시킨 악마가 흡족해서 웃었다.

정신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갔다.

곧바로 깨지고 말 평정이었다.

“당신이 이식 받은 영혼도 검성의 것이 아니고요.”

““...뭐?””

악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청색과 적색이 반반 섞였던 동공의 색이 차츰 온통 붉게 물들어갔다.

청색은 이지를, 적색은 분노를 상징하는 듯했다.

““재차 말하지만 무의미하다. 네가 아무리 나를 도발해봤자 소용이 없...””

“검성이 세계를 벤다는 건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에요. 실제죠.”

툭.

메르세데스가 가볍게 발을 굴렀다.

악마의 검로를 따라 갈라진 대지를 가리키는 몸짓이었다.

“이렇게 낙서를 해놓는 정도가 아니라요.”

““낙서? 건방진.””

악마는 알고 있다.

방금 전 자신이 남긴 검의 궤적은 지옥 전체를 한 바퀴 돌았다.

정말로 세계를 벤 것이다.

낙서 따위로 폄하 될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악마의 눈동자에서 청색이 완전히 사라졌다.

포효하며 달려드는 꼴이 보통의 악마들처럼 짐승 같았다.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소문이 놈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뮐러가 살아있다는 소문.

사실이어선 안 될 소문이었다.

만약 뮐러가 살아있다면, 자신이 이식 받은 영혼의 파편은 정말로 뮐러의 것이 아니게 됐으니까.

채챙! 채채채채챙!!

신경질적인 쇳소리가 연쇄됐다.

악마의 검이 메르세데스의 백호검과 맞부딪칠 때마다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무기의 질 자체가 달랐다.

게다가 현재 백호검엔 극적제승의 패도적인 검기까지 실렸으니 악마가 온전히 감당할 리 만무했다.

검술에서 압도하지 못하고, 역으로 몸에 상처가 늘어날수록 악마의 머릿속엔 강한 의문이 피어올랐다.

““검성이 아니면... 뭐지?””

내 영혼에 깃든 이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질문을 토한 악마가 흠칫 놀랐다.

메르세데스의 투명한 눈동자가 자신이 등지고 있는 거대한 살덩이로 향했으니까.

그 시선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런...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선 안 된다!!””

악마는 메르세데스의 눈이 영혼마저 간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살덩이의 영혼 폭격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메르세데스의 대답을 부정하지 못했다.

다만 거부할 뿐.

““나의 삶이 하찮아선 안 된다...!””

악마는 신화시대를 살았었다.

야탄이 지옥에 머물던 시대다.

그 당시 지옥은 천국에 오르지 못한 망자들을 위한 쉼터였다.

악마는 신의 뜻에 따라 망자들을 동정하며 보살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신께서 자취를 감추기 전까진 그랬다.

끝내 베리아체가 추방당하고 지옥이 변질 됐을 무렵부터 악마는 칩거에 들어갔다.

새로운 지옥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지켜달라는 바알의 부탁을 수락한 이유는, 후일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실 신의 편에서 싸우기 위해서, 그는 바알이 부탁의 대가로 내민 힘을 탐했다.

묵언하면서까지 바알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힘의 단련에 힘써왔다.

한데 그 힘이 가짜였다고?

그래서야 내가 견딘 세월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큭...””

주름 진 악마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완연한 패색이었다.

검사를 검술로 제압하지 못한단 사실이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찬 의심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평정심이 무너진 지 오래였다.

안 그래도 완전하지 못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그에게 메르세데스가 잔혹한 진실을 더했다.

“저 살덩이는 영혼을 융합할 수 있어요.”

살덩이가 앞서 공격할 때 쏜 영혼은 하나하나가 독립 된 개체였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는 그 영혼들에게서 어떤 흔적을 엿봤다.

찢겨진 종이에나 남을 흔적.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에 붙었다가 떨어져 나온 흔적이었다.

“당신에게 이식 된 영혼도 저것이 만든 작품이겠죠.”

아마 검성에게 살해당했던 검사들의 영혼과 이름 모를 검호의 영혼을 융합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검성의 기술을 기억하고, 어렴풋이나마 흉내 낼 수 있는 영혼을 창조한 게 아닐까.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저것은, 반드시 없애야 해요.”

메르세데스가 악마를 설득했다.

지금은 작은 도움도 아쉬운 상황이었고, 악마의 낌새를 보아 어떤 배신감에 휩싸인 눈치였으니까.

““...””

악마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메르세데스와 같은 공포를 느끼면서도, 거기에 더해서 지독한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놈은 저것을 적대 할 용기를 품지 못했다.

메르세데스가 모르는 진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건...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다. 저건 아마도 신(神)이니까.””

“신?”

““나는 저것이 마신 슈트리오와 닮았음을 첫 눈에 알아 봤었다.””

마신 슈트리오.

갈 곳 잃은 영혼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절규하며 배회하는 신.

““만약 저것을 만든 게 바알이라면... 저것의 용도는 단언컨대 위험하다. 어쩌면 마신 슈트리오와 연동되어 있을 수도 있어. 저것에 해를 입히는 순간 슈트리오에게 고통과 분노 따위가 전이되어 슈트리오를 잔혹한 존재로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럼 지옥은 정말로 끝이야.””

악마는 저것이 바알 자신을 신으로 만드는 용도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바알의 성격을 그만큼 잘 이해하고 있단 뜻이다.

“아예 새로운 신을 만드는 그릇일 수도 있어요. 그럼 없애야 옳아요.”

““새로운 신... 그건 제아무리 바알이라도 불가능하지 않나?””

바알은 야탄 신의 직계이며, 지옥을 지배하는 왕이다.

필시 대단한 권능을 다수 구사했으나 전능하진 않았다.

천상의 신들조차 전능하지 못한 마당에 신의 자식이 어찌 전능하겠나.

완전히 새로운 신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악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를 설득할 순 없었다.

“일단 없애고 생각하죠.”

지금 시간이나 끌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것의 실체가 무엇이든, 현재 지옥 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진실이었다.

지상을 수라도로 만든 원흉이란 말이다.

이번 원정의 최우선 목표는 저것이었고, 메르세데스에겐 저것을 없앨 의무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옥이 어찌되든 상관없기도 했다.

““...대화를 필요로 하는 성격이 아니군.””

혀를 내두른 악마가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메르세데스와 싸울 마음은 진즉에 잃은 상태였다.

본래 그의 분노와 원한은 오랜 세월 바알에게 향해있었다.

단지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외면해왔을 뿐인데, 이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서두르는 게 좋아. 위에 있는 여섯 중 다섯은 바알의 심복이 된지 오래니까.””

자신처럼 인간 전설들의 영혼을.

아니, 거짓 된 융합 영혼을 이식 받은 늙은 악마들.

그들 또한 처음엔 과거의 지옥을 그리워하며 바알에게 깊은 원한을 품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는 동안 변질됐다.

쉽게 얻은 힘에 도취되어 과거를 잊어갔다.

나처럼 간단하게 설득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악마는 조언했고, 메르세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훼방을 받지 않고 살덩이에게 달려들었다.

살덩이가 영혼의 세례를 쏘아 저항했지만 그녀를 막지 못했다.

날카롭고 거대한 검기에 뭉텅뭉텅 썰려나가며 기괴하게 몸부림 칠 따름이었다.

영혼을 구분하는 혜안이 워낙 상극으로 작용했다.

메르세데스가 기세를 올려가는 그때였다.

[적당히, 해라.]

꽈가가가가가가가강!!

잘려나간 살덩이 중 하나가 인간의 형태를 빚더니 메르세데스를 기습했다.

즉시 살기를 감지한 메르세데스가 검의 궤도를 비틀어 반격했지만 후발선지의 묘리는 쉽게 발휘되는 게 아니다.

선공을 허락한 대가로 먼저 베였고, 방패와 함께 멀찍이 날아가고 말았다.

“...”

입에 흐르는 핏물을 닦아내며 일어나는 메르세데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살덩이가 빚은 인간의 모습이 그리드와 얼핏 닮았으니까.

다만 송곳니가 삐죽하게 내려왔고 피부가 희었으며 눈동자는 붉었다.

고혹적이고 악마적인 자태.

언젠가 지옥을 배회했다는, 흑화 상태의 그리드였다.

[살의. 너를, 죽인다.]

“...!”

메르세데스가 급히 검을 뻗었다.

흑화 그리드의 몸에 깃든 영혼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음을 경계하면서다.

과연 무지막지하게 강력했다.

검술뿐만 아니라 마법까지 구사해댔는데, 최소 검호급과 대마법사급 이상의 영혼이 수십 개로 누적되어 귀속 된 눈치였다.

전설을 초월하는 무위를 발휘했다.

‘윽.’

단 일합의 교환으로 신음을 삼킨 메르세데스가 재차 핏물을 토하는 순간.

“...이만 끝내자.”

윤회의 강 상공에 있는 그리드의 눈빛이 사늘하게 가라앉았다.

금의 성역이 펼쳐졌다.

어지럽게 휘몰아치던 100개의 갓 핸드가 일제히 멈추며 검과 도를 거머쥐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을 장관이었다.

안 그래도 지쳐있던 엘리고스가 질색했다.

솔직히 매료되기도 했다.

그리드의 높은 매력과 위엄 스탯이 상황과 맞물려 강력한 효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엘리고스는 내색하지 않았다. 애써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갑자기 왜 승부를 서두르는 거지?”

“가야할 곳이 생겼다.”

“...그럼 그냥 가라. 보내주도록 하마.”

“뒤통수라도 후려 칠 생각인가 본데, 안 통해.”

“못 믿겠으면 나와 계약해도 좋다. 너도 알겠지만 계약으로 묶인 악마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

지옥과 지상을 잇는 개의 아가리.

그리고 영혼들이 묶인 윤회의 강을 통치하는 흑기사 엘리고스.

서열의 개념을 무색하게 만드는 지옥 최강자 중 하나가 그리드에게 계약을 요청했다.

바알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막말로 정신 나간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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