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647화 (82권) (1,645/1,794)

템빨 82권 - 1화

포격은 수학이다.

대포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정확한 좌표값을 계산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었다.

정의상실이 포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정 의상실을 운영하며 수만 벌의 옷을 만들어온 그녀는 각도 맞추기의 달인이었다. 하루에도 수천 번씩 했던 자질 경험을 토대로 포격각을 기가 막히게 쟀다.

특기를 살릴 생각이었으면 차라리 재단사로 전직하지 그랬냐는 핀잔을 종종 듣긴 했지만, 그건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무신경한 참견이었다.

현실에서 하는 일을 Satisfy에서까지 한다?

그래도 과연 Satisfy를 재밌게 즐길 수 있었을까?

전혀.

도리어 제2의 일터로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관뒀을 거다.

‘오랜만에 그리드 님 앞에서 활약 할 기회야.’

템빨포병대.

무려 템빨이라는 이름을 쓰는 길드의 책임자가 된 이후.

정의상실은 자신을 믿고 중책을 맡겨준 그리드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진짜 죽기 직전까지 노력해왔다. 종종 본업보다 Satisfy에 충실하며 레벨과 경험을 쌓았다.

템빨포를 누구보다 잘 다루기 위한 노력이었고 본래부터 재능이 있던 만큼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백발백중을 자부하게 됐을 정도다.

이제 그녀는 대포라는 무기의 잠재력을 완전하게 이끌어낼 수 있었다. 특히 제 몸처럼 다뤄온 템빨포라면 더욱 더.

정의상실이 자부하기론 물아일체의 경지였다.

비록 그녀는 전설도, 초월자도 아니었으나.

본래 장인이란 세월과 경험이 벼린 보검을 뜻한다.

템빨포라는 신물(神物)과 함께 성장해온 세월 전체가 곧 정의상실의 실력이고 자부심이었다.

-우리 실수하지 말고 잘해요!

-옙!

신들의 무덤.

초대형 비행선에 탑승한 템빨포병대원들은 처음에 몹시 긴장했다.

비행선의 거대한 규모에 압도 된 것도 있었고, 신문물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까하는 근심도 있었다.

한데 정작 포병석에 앉고 본 대포는 친숙했다.

여태껏 사용해온 템빨포였다.

다만 탐욕으로 만들어졌다는 차이점이 존재할 뿐.

-엥? 이거 우리가 조종 못하는 거 아님요?

-그러게. 재질이 탐욕인데...

-그냥 자동 사격하는 건가? 우리는 옆에서 좌표만 계산해 주면 되고?

-탐욕이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소통이 안 되는데 무슨 수로 좌표를 계산해줘?

-쉿.

당황하는 대원들을 진정시킨 정의상실이 템빨포에 손을 얹었다.

[<신의 무덤>이 플레이어 ‘정의상실’을 인식합니다.]

[병기의 사용을 허가합니다.]

[템빨포의 모든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그것은, 그리드의 허락이었다.

나의 일부로 스며들어도 좋다는 허락.

정의상실과 포병대원들에겐 최고의 보상이었다.

오래토록 동경해온 그리드에게 신뢰를 얻었다는 증거였기에.

-이제부터 우리는 그리드 님의 대포입니다!

-우오옷!!

온갖 전장에서 활약해온 포병대가 여느 때보다 강력해진 상태로 열정을 품었다.

그리고 지금.

[탐욕의 옵션 효과로 <디스인트그레이트>가 발생합니다.

[탐욕의 옵션 효과로 <메테오>가 발생합니다.]

[탐욕의 옵션 효과로 <메테오>가 발생...]

...

..

“앗...”

탐욕으로 만든 템빨포의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

발포와 동시에 빛의 창이 번쩍인다 싶더니 운석이 줄줄이 떨어진다.

인마대전에서도 볼 수 없던 장관이었다.

제라툴을 섬기는 신들이 그리드의 사도들에게 대적할 때 언뜻언뜻 보여줬던 권능만큼이나 강렬한 초월성을 간직했다.

당연히 위력과 비례했다.

끝 모르고 이어지는 운석의 행렬은 지상에 있는 아군마저 위협하는 위력을 품었기에 정의상실과 포병대원들은 침음할 수밖에 없었다.

신들의 무덤이 처음으로 출항한 역사적인 순간을 팀킬로 장식하게 되다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저게 무슨... 브라함이라는 자가 수십, 수백으로 분절하는 마법이라도 창안한 건가?””

““가당치도 않은 소리.””

지상.

하늘에서 쏟아지는 메테오의 폭격을 목도한 망령의 검의 섣부른 추측이 지팡이의 심기를 건드렸다.

스스로를 수십, 수백으로 늘려 수백 개의 대마법을 한꺼번에 시전했다고?

개소리다.

브라함이 마법의 신일지언정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법의 영역 자체가 아니기에.

““저게 마법이 아니면 뭐지?””

““이해 불가다. 위대하신 그리드 님의 권능일 거라고 해석하는 수밖에.””

꽈르르르르르릉!!

폭격에 의해 대지가 요동쳤다.

숲이 더 이상 숲이 아니게 됐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산으로 위장했던 무후총이 그 거대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 무식하게 큰 비행선의 폭격이 만든 참상이다.

[<무후총>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신들의 무덤>이 이룬 위대한 업적입니다.]

월드 메시지와 함께 세계의 지도가 갱신 됐다.

동남의 중간 자락에 여태껏 없던 글씨체로 무후총이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염룡 트라우카의 레어만큼이나 중요하게 표기 되는 것이다.

고오오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폭격이 멎었다.

희뿌연 연기가 걷히고 무후총의 입구를 드러낸 대지는 달의 표면과 닮아있었다.

사방팔방에 생긴 크레이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선 망령의 검과 지팡이는 별다른 상처 없이 무사했다.

탐욕이 쏘는 마법은 사용자의 능력치에 영향을 받기에.

템빨포병대가 쏟아낸 메테오의 위력은 사실상 질량에서 비롯된 파괴력이 전부였다.

실제로 메테오에 앞서 쏘아졌던 디스인티그레이트의 위력은 형편없었다.

어디까지나 망령의 검과 지팡이를 대상으로 삼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들을 따르는 수십 기의 데스나이트와 리치들은 상당량 파손되어 있었다. 메테오의 질량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

““저것은 가히 비행하는 무후총이다. 정면에서 맞서봤자 불리해.””

망령의 검과 지팡이의 판단은 빨랐다.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무후총 내부로 피신을 시도했다.

신들의 무덤이 진입하지 못할 장소를 전장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겁쟁이 놈들! 도망치는 거냐!”

간신히 살아남은 크리스 일행이 도발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상위의 초월자를 말 몇 마디로 도발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후로이가 유일했다.

“주인의 골다공증을 염려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이곳에 후로이가 있었다.

막 신들의 무덤에서 떨어져 내렸다.

비룡에 올라탄 채다.

“긴 세월 골방에서 숨어 지낸 뒷방 늙은이의 관절에 연골이라곤 남아있지 않을 테니. 곁에서 부축해주는 자가 없으면 운신조차 힘든지라 염려할 수밖에.”

““...놈, 지금 설마 우리의 주인을 논하는 거냐?””

어느새 걸음을 멈춘 망령의 검이 이를 갈았다. 지팡이가 저급한 수작에 넘어가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영원을 논하는 위대한 신께 감히 늙은이 운운하며 관절을 걱정한다고?””

“영원? 무덤을 산으로 위장하면서까지 치졸하게 연명해왔을 뿐 아닌가? 무슨 염치로 영원을 논하는 건지 모르겠군.”

““네놈은... 반드시 죽인다...””

““쯧.””

망령의 지팡이가 결국 설득을 포기했다.

흥분해서 검을 뽑아 쥐는 망령의 검을 놔두고 홀로 부하들을 수습해 무후총에 진입했다.

저벅.

무후총의 입구를 막아선 망령의 검이 보라색의 오러를 사방팔방으로 뿌려댔다.

거울의 파편처럼 부서지며 가일층 영역을 확대하는 오러였다.

오러 마스터의 권한으로 오러의 속성을 간파한 휴렌트가 침음했다.

“전 속성 상승 버프에 적의 스킬을 반사하는 성질...”

물론 후로이는 전설이자 초월자이다.

나보다 훨씬 더 고강할 것이다.

하지만 강함이란 늘 상대적인 바.

저 괴물 데스나이트를 상대로는 후로이도 좀 힘들지 않을까?

휴렌트가 염려하는 사이.

펄럭!

후로이를 태운 비룡은 서서히 날갯짓하고 있었다. 점차 높은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동작이었다.

“...?”

왜 안 내려오고 도리어 높이 도약하는 거지?

크리스 일행이 의아해하는 사이에도 후로이를 태운 비룡의 고도는 높아져만 갔다. 재차 신들의 무덤까지 날아오를 기세였다.

그제야 크리스 일행과 망령의 검이 의도를 눈치 챘다.

‘도망친다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물러나는 겁니다.”

되도록 몸이 아닌 입으로 싸우는 게 나의 역할이므로.

구차하게 설명을 덧붙이는 후로이의 머리카락이 훅하고 나부꼈다.

어떤 기파가 그를 스친 흔적이었다.

크리스 일행이 그 사실을 눈치 챘을 땐 이미,

파스슥...

망령의 검이 펼쳐놓았던 보랏빛 오러가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아아...””

망령의 검이 탄식한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장검은 필시 두개골 위로 올라가 있었다.

천재지변마냥 떨어진 검격을 막아내기 위한 시도였다.

공교롭게도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쩌저적, 그의 두개골이 갈라지고 있었다.

““내 감히 절대자의 간합을 헤아리려 했...””

와르르!

죽어서도 초월의 격을 쌓아온 무후총의 간부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폐허가 된 숲의 굶주린 짐승들이 탐낼 만한 뼈다귀로 영락했다.

그를 짓밟아 으스러뜨린 그리드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크리스 일행에게 고개를 돌렸다.

“적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네. 그간 넷이서 얼마나 분투했을지 알겠다.”

“...?”

크리스 일행이 뒤늦게 의문을 품었다.

언제부터 그리드가 우리 눈앞에 서있던 거지?

잠시 할 말을 잃은 그들의 머리카락과 옷가지가 정신없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신들의 무덤이 서서히 착륙한 까닭이다.

포병대원들을 제외한 템빨단 전원이 하나둘씩 뛰어내렸다. 스킬이나 마법을 사용하면서다. 신들의 무덤이 워낙 거대한 탓에 낙사를 면하기 위해서였다.

‘계단을 필히 만들어야겠어.’

신들의 무덤은 머잖아 상인들과 백성들이 자유롭게 오갈 도시이니까.

흐뭇한 표정을 짓고 생각하면서, 그리드는 템빨골과 노에, 랜디, 그리고 뱀파이어들을 소환했다.

십공신을 대장으로 삼는 각 공대에 하나씩 지원했다.

“마음껏 날뛰면서 열렙들 해. 나는 스컹크와 별도로 움직인다.”

신들의 무덤이 움직이는 도시라면 무후총은 지하에 묻힌 고대의 도시다.

많은 비밀이 숨어있는.

조사할 가치가 충분했고 당장 무덤의 주인부터 밝혀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혹시 그 변태 영감의 시신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일은 없겠지?’

무후총은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많아 발걸음이 무거워졌지만... 그리드는 내색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당신의 방문을 눈치 챈 ‘무후총의 망령’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망령의 존재감이 생명 없는 자들의 레벨을 대폭 증가시킵니다. 증가폭은 대상의 격의 영향을 받습니다.]

[템빨단원 ‘불렛’이 만든 철강시의 레벨이 각 5씩 상승합니다.]

[템빨단원 ‘불렛’이 만든 독강시의 레벨이 각 10씩 상승합니다.]

[템빨단원 ‘불렛’이 만든 혈강시의 레벨이 각 20씩 상승합니다.]

[템빨단원 ‘불렛’이 만든 흑마강시의 레벨이 50 상승합니다.]

[직계 뱀파이어 ‘티라멧’의 레벨이 80 상승합니다.]

[직계 뱀파이어 ‘라티나’의 레벨이 80 상승합니다.]

[직계 뱀파이어 ‘크레이’의 레벨이 80 상승합니다.]

[직계 뱀피이어 ‘에티마’의 레벨이 80 상승합니다.]

[직계 뱀파이어 ‘엘핀스톤’의 레벨이 120 상승합니다.]

[템빨골1과 템빨골2의 레벨이 각 200씩 상승합니다.]

[이 효과는 ‘무후총의 망령’이 깨어있는 동안 유지됩니다.]

“...보통이 아닌 건 확실하군.”

메테오가 피아식별이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강해서.

최소한의 밸런스를 위해 페널티가 생기는 거다.

무후총의 망령도 같은 맥락이었다.

놈의 버프가 워낙 막강한 탓에 적아 구분을 못하고 있었다.

그리드 입장에선 제법 구미가 당기는 소식이었다.

‘혹시 같은 편으로 회유할 순 없나? 놈의 목적이 단순히 신격을 쌓는 것에 있다면 나와 함께하는 걸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을 텐데.’

물론 희망사항일 뿐이다.

망령이 신격을 쌓는 이유는 ‘무후총에 묻힌 누군가를 지킬 힘’에 집착해서일 확률이 높았으니까.

‘일단 그 전에...’

그리드가 펜릴의 망토의 옵션을 활성화시켰다.

“나와라, 펜릴.”

여러 가지 이유로 미뤄두었던 숙제를 이참에 해결할 생각이었다.

쿠와아아아악!!

망토로부터 스며나온 대량의 혈액이 폭풍을 이룬다.

그 속에서 전 뱀파이어 후작이 형태를 갖춰갔다. 생전의 모습과 꼭 닮은 형태였다.

“오랜 시간 휴식해서인가... 힘이 넘치는구나.”

[직계 뱀파이어 ‘펜릴’의 레벨이 200 상승합니다.]

펜릴.

아직 그리드에게 굴복하지 않은 유일한 뱀파이어.

“오래간만이다, 빌어먹을 핏덩어리 놈.”

놈이 몹시 오만한 표정으로 그리드를 내려다보았다.

“브라함은 어디에 있느냐? 당장 내 눈 앞에 대령해라. 내 너희 두 놈을 함께 요절을 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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