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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702화 (1,701/1,794)

템빨 84권 - 12화

[모든 제약을 수포로 돌리는 불가해의 마법이 당신을 강제로 전이시킵니다.]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에서 무사히 탈출하였습니다.]

[당신의 귀환을 눈치 챈 미식룡 레이더스가 <황금의 가호>를 회수합니다.]

“허억... 허억... 허억...”

지상에 도착한 그리드가 곧바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정하기 위해 애쓰며 거친 숨결을 힘겹게 토해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뛴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육신이 그의 무사 복귀를 증명하고 있었지만, 그리드가 체감하는 피로는 트라우카와 격전을 벌였을 때와 비견 될 정도로 높았다.

적진 한복판에서 열쇠를 찾아 헤매고, 우연히 제라툴을 만나고, 천사 군단에게 고립당하고, 적야의 대도가 포로로 잡히는 등.

아스가르드에서 겪은 위기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던 까닭이다.

물론 그리드는 모든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심지어 원했던 성과를 충분히 거뒀다.

하지만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만약 영원의 감옥에 제라툴이 없었다면?

또한 레이더스가 황금의 가호를 내려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리드는 아스가르드에서 낭패를 겪고 있을 터였다.

칸과 헥세타이아를 구출하기는커녕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을 게 분명했다.

‘아스가르드...’

천상의 신들이 함부로 템빨계를 침범할 수 없듯이 그리드에게도 아스가르드가 난공불락의 요새로 인식됐다. 앞으로 두 번 다신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아스가르드가 있는 방향으론 오줌도 싸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될 정도였다.

어차피 아스가르드는 하늘 위에 있었지만... 아무튼 진심이었다.

“어떤가? 걱정한 것에 비해선 쉽게 해결되었지?”

“...염치가 없으십니까?”

너스레를 떠는 대도에게 핀잔을 주자니 차츰 마음이 진정된다.

그리드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두 번 다신 아스가르드를 찾아갈 필요가 없다.

그래, 칸과 헥세타이아를 구출했으니 다 끝났다.

정말로 큰 고비를 넘긴 것이다.

앞으로는 바알 토벌에만 힘쓰면 된다. 지옥의 왜곡을 풀고 죽은 자들이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다소 곡해하는 듯한데, 이번에 자네가 아스가르드에서 겪은 일은 대부분 내 예측과 일치한다네.”

“천사들에게 죽을 뻔한 일요?”

“자네가 황금의 가호를 얻고 천사들의 포위망을 무사히 돌파한 일 말일세.”

“...”

“드래곤과 교감한다는 건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가치를 지녔어.”

드래곤 나이트.

“생각해 보게. 자네는 드래곤에게 동격으로 존중 받는 동시에 이해자로 여겨지는 존재일세. ‘세상에서 유일하게’ 드래곤의 호의를 얻을 자격을 지녔단 말이야. 용들에게도 각별하겠지.”

유일한 칭호의 저력이다.

“내가 자네와 레이더스를 두고 천상에 오를 때 꼭 필요한 준비물이라고 표현했던 이유를 이젠 좀 알겠나?”

“...솔직히 실감이 안 됩니다. 제가 드래곤에게 각별한 존재라니...”

“자네는 양심이 없나?”

눈살을 찌푸린 적야의 대도가 혀를 내둘렀다.

라우엘이 종종 그리드에게 보여주는 반응이다.

“돌이켜보게. 여태껏 자네가 만났던 드래곤들이 자네를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

“아...”

화룡 이프리트 이후.

그리드는 정말로 많은 드래곤을 만났고 그들과 처음엔 다퉜을지언정 끝을 좋게 맺었다.

제논과 바스크를 포함해 레이단을 침략했던 다섯 마리의 드래곤과 순차적으로 협력하며 교감한 바 있으며, 그들과 협력하게 만든 원흉이었던 상위룡 크란벨은 몹시 고매한 태도로 그리드와 인간들에게 후환을 남기지 않으리라 선언했다.

광룡 네바르탄은 그리드를 사위로 맞이하겠다는 헛소리를 지껄였고 염룡 트라우카는 그리드에게 친히 화해를 요청했다. 하물며 미식룡 레이더스는 그리드에게 황금의 가호를 내렸다.

악룡 번헬리어는 그리드를 등에 태운 전력도 있다.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곤 하나, 그리드를 신뢰하지 못했다면 애초에 등에 태울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자네도 알다시피 드래곤도 꽤나 가여운 생물일세. 위계를 가리지 않고 동족에게 포식 당할 사태를 우려해 대부분 평생을 홀로 숨어 살지. 누군가를 신뢰할 만한 입장이 아닌 걸세. 한데 모든 드래곤이 자네에겐 한 번쯤 의지했거나 기대를 걸었단 말이지.”

화룡 이프리트가 만든 결과다.

뿔을 만들어 달라.

최후를 앞둔 그녀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청했던 부탁을 그리드는 최선을 다해서 들어줬다.

전달 된 진심이 이프리트와 그리드의 교감을 이끌어냈으며 이후 모든 드래곤이 그리드를 알게 됐다. 최초엔 반감을 품었을지언정 차츰 인정하고 의지하게 됐다. 자신들 역시 끝에는 이프리트가 되고 싶다는 심정으로.

“가여운 생물... 인간... 혹시 드래곤은 인간의 신세를 동정하는 걸까요?”

아스가르드에 도착했을 무렵.

레이더스는 속삭였었다.

[명심해라.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아스가르드의 신들보단 차라리 우리가 낫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말이다.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재해... 드래곤을 논할 때면 반드시 쓰이는 표현 중 하나죠. 하지만 정작 드래곤이 도시를 파괴했다는 기록은 적습니다. 적어도 ‘이번 세계’에선 손에 꼽을 정도로요.”

손에 꼽힐 정도로 가능성 낮게 발생하는 일을 하필 레이단이 두 번이나 겪은 것이다. 불쑥 화가 솟구치는 그리드였지만 진정했다.

“물론 하야테 님과 결사들께서 힘써주신 결과라는 사실을 압니다. 하지만 탑의 존재를 감안하더라도 너무 적습니다. 전 여태껏 그 이유가 드래곤의 무관심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사실 드래곤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동질감을 느끼고 배려해준 것이 아닙니까?”

“가당찮은 억측일세.”

적야의 대도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덧없이 떠도는 먼지에게 동질감을 느끼나? 드래곤이 지닌 힘에 비해서 인간에게 무해한 이유는 순전히 무관심 때문이 맞아. 이미 앞서 말하지 않았나. 자네는 드래곤에게 ‘동격’으로 존중 받는다고. 오직 자네만 특별한 걸세. 자네와 보통의 인간들을 같은 범주에 넣고 생각해선 안 돼.”

“...그렇습니까.”

드래곤이라는 종 자체에게 호감을 품을 뻔했던 그리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섣부른 억측을 털어내고 가장 중요한 사실을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 아스가르드에서 훔치신 보물은 뭡니까?”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오늘 적야의 대도는 염원에 성큼 가까워졌을 확률이 높다.

무려 아스가르드에서 보관 중이던 보물.

그리드가 없던 세계에선 끝내 넘보지 못했을 마지막 히든 피스를 손에 넣은 격이니까.

“굴절룡의 신력이 가장 많이 담긴 물건일세. 정확한 용도는 차차 알아가야겠지.”

당연하게도.

적야의 대도는 그리드에게 보물의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백색 사각형인 그 보물의 정보가 그리드에겐 죄다 물음표로 표기된단 점에 있었다.

‘플레이어가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인 듯하군.’

단순히 시스템으로 막힌 느낌.

세계의 비밀과 관련되어 있어 플레이어가 어떻게든 풀어내야 할 수수께끼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태도에 가깝다.

‘애초에 적야의 대도도 말했었다. 용신은 내가 신경 쓸 계제가 아니라고.’

용신, 굴절룡.

종말을 눈앞에 둔 인간들이 최후의 보루로 의지하는 대상이다.

자력으로 종말을 막아야하는 플레이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 보물이 부디 당신께 큰 힘이 되길 바랍니다.”

“내가 아닌 인류의 힘이 되어야지. 아무튼 고맙네... 다 자네 덕분일세.”

[적야의 대도와의 호감도가 최대치를 달성했습니다.]

[하늘이 푸른 날에도, 흐린 날에도, 검은 밤에도. 당신이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대도는 당신의 곁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그럼 적야의 대도가 아니게 되는 거 아닌가?

피식 웃는 그리드의 시선이 칸에게 꽂혔다.

지상에 도착한 뒤로 내내 침묵하고 선 그는.

몹시 소중한 풍경을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진가처럼 주변을 천천히 집중해서 살펴보고 있었다.

온갖 감정이 스치는 눈동자에 물기가 가득했다.

그리드는 굳이 방해하지 않았다.

칸이 회포를 풀 때까지 잠자코 서서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고향부터... 다녀오시겠습니까?”

추억의 회상을 마쳤다는 듯이 눈가의 물기를 닦아내는 칸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고향.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주는 단어다.

하지만 칸에겐 특히 더 각별할 것이었다.

그곳엔 칸이 조상 대대로 운영했던 대장간과 칸의 가족들, 특히 아들이 묻힌 묘비가 있었으니까.

그리드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다.

그리드에게도 가장 많은 추억이 담긴 장소 중 하나였다.

한데 의외로 칸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 라인하르트부터 가고 싶네.”

“앞으로 라인하르트에 머물게 되실 텐데 굳이 서두르실 필요는...”

“내가 떠난 뒤에도 쭉 자네가 살아온 곳 아닌가. 늘 궁금했네. 어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참으로 많고.”

***

“칸!!!”

“칸 님!!”

“할아버지!!”

각자 도생.

작금의 템빨단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어딜 가나 무적으로 행세하는 현재의 템빨단원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진 채 활동하고 있었다.

신, 악마, 드래곤 따위를 상대하느라 바쁜 그리드의 공백을 사람들이 느낄 겨를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한데 그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칸.

템빨단원들에게도 그와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이 있다.

특히 루비의 반응이 격했다.

그녀가 막 이 세계에 발을 들였을 당시.

그리드의 동생인 그녀를 칸이 손녀처럼 챙겨주었으니까.

“보고 싶었어요! 정말로 많이 보고 싶었어요, 할아버지!”

“나도 마찬가지다. 어엿한 숙녀가 된 모습을 보니 기쁘구먼. 허허.”

급기야 엉엉 울며 안기는 루비를 칸이 토닥여주었다.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칸의 사후에나 템빨단에 가입했던 사람들도 칸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덩달아 감격했다.

단 한 명.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오직 페이커만이 죄인의 심정으로 칸을 맞이했다.

베라딘으로부터 그를 지켜내지 못했던 그날의 기억을 그는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 누구도 네 잘못이라고 비난한 적 없음에도, 그는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려왔다.

단 한시도 그날의 무능했던 자신을 잊지 못했다.

무릎 꿇고 앉은 그의 떨리는 몸을 칸이 꽉 끌어안았다.

“고마웠네. 정말로 고마웠어. 나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싸워주었던 자네 덕분에 나는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았네. 순전히 자네 덕분에 그리드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넬 때까지 버텨낼 수 있었어.”

“...!”

칸의 품속에서.

페이커의 몸이 허물어졌다.

긴 세월 동안 그를 괴롭혀왔던 마음의 짐이, 다시 돌아온 대장장이의 뜨거운 체온에 녹아 사라져갔다.

날카롭게 벼려져온 끝에 마모되어가던 독기 품은 단도가 새롭게 단련되는 순간이다.

현장의 모두가 직감했다.

앞으로 템빨단은 더욱 더 단결 될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막강해지리라.

“험험...”

참다못한 헥세타이아가 기척을 드러낼 때까지.

그리드와 템빨단원들은 칸과 얼싸안고 울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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