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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745화 (1,744/1,794)

템빨 86권 - 15화

유적 사냥꾼?

안 그래도 개벽 이후 고대의 유적들이 깨어난 상황이다.

스컹크 탐사대의 역량으론 밝혀내지 못하는 정보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플레이어는 꾸준히 성장하니까.

하지만 템빨단은 항상 선두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시간이 황금보다 귀했다.

‘유적 사냥꾼이라. 카벨론이 우리보다 한 발 앞서 무후총에 찾아갈 수 있었던 이유로군. 저 의안계 아티팩트도 카벨론 본인이 직접 인양한 유물인가?’

카벨론의 정체를 알게 된 라우엘이 긍정적인 의미로 흥분했다.

실제로 뮐러 또한 카벨론을 보물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나.

적대 세력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사실은 귀중한 인재였다니.

라우엘의 눈이 차츰 반달 모양으로 휘어갔다.

카벨론이 콧방귀 뀌었다.

“보물이 아니라 퇴물이다. 기대에 찬 눈빛 따위 보내지 마라.”

“퇴물? 콧대 높은 그대가 농으로라도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군.”

“흥, 눈앞조차 보지 못하는 놈에게 지킬 콧대가 남아있을까.”

카벨론의 평소 행실을 보면.

그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

청력으로 모든 흐름을 읽는 그의 활동력은 눈 뜬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나 싶을 정도로 일반인보다 우월한 면이 있었다.

게다가 아티팩트를 통해 잠시나마 시야를 확보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정작 카벨론 본인은 맹인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콤플렉스를 지닌 눈치였다.

하기야.

지금처럼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나.

당연하게 앞을 보는 자가 앞을 보지 못하는 자의 마음을 함부로 헤아려선 안 됐다.

“그 눈... 적야의 대도에게 잃은 겐가?”

“헛소리 집어치워라. 내가 그 늙은이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간덩이가 큰 줄 아나?”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사람이 어찌 변할지 모를 일이니 추측해봤네. 대도와 척을 진 게 아니라니 다행이군.”

“...눈을 잃은 건 단순한 사고였다. 유적지에 도사리고 있던 위협에 대응하지 못했지. 매번 만반의 준비를 한다지만 완전할 순 없는 법이야.”

“그 후로 보중하기 위해 내 검술을 연마한 것이고?”

“그래, 네놈이 세상 곳곳에 뿌려두고 갔던 비급이 제법 큰 도움이 됐다. 하필 초반부 비급을 찾지 못해서 검술의 체계에 하자가 심한 것 같지만.”

“초반부 비급은 없네. 내 검술비급은 애초에 재능 있는 검사를 위해 안배한지라 기본기부터 익히게 만들 필요성을 못 느꼈거든.”

“...염병. 재수 없는 건 여전하군.”

“음? 뭐가 문제인가?”

“됐다. 나를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네놈들 마음대로 해라.”

최초에 카벨론이 뮐러의 비급에 집착하게 됐던 이유는 순전히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현역 시절 뮐러와 썩 좋은 관계는 아니어서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다.

살아남기 위해 익히기 시작했던 뮐러의 검술을 장장 수백 년간 연마한 끝에 초월의 경지마저 쌓았다.

그때부턴 주객이 전도 됐다.

카벨론은 검술을 완성시켜야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다.

아직 찾지 못한 뮐러의 비급을 찾아 서대륙과 동대륙을 오갔다.

그 과정에서 당대의 검성을 만났고, 그때부터 모든 것이 꼬였다.

크라우젤.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비급을 찾아 검성이 됐을 놈으로부터 뮐러의 비급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요원했다.

검성답게 강력해서 무력으로 제압하지 못하는 것부터 문제였다.

어쩌다보니 라인하르트까지 흘러들어오게 됐고, 템빨제국이라는 괴물 같은 신생 국가와 악연으로 엮이게 됐다.

급기야 죽은 줄로만 알았던 뮐러가 살아 돌아왔다.

놈의 검술에 의지해 연명해왔다는 사실이 들통 나고 말았다.

심지어 제자를 자처했다는 것까지 들켰다...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카벨론은 이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의심 많은 당대의 검성과 맹인 행세나 하는 저 변태 놈... 빌어먹을 놈들이 괴물 같은 재능을 타고나 활개 치는 세상을 저주하고 싶구나.”

“맹인 행세?”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뮐러가 하스터를 바라보았다.

하스터가 즉시 부정했다.

“그런 적 없습니다.”

“하하, 저 친구가 예전부터 의심이 많긴 했다네. 그보다 카벨론이라. 자네의 이름을 이제야 처음으로 알았군. 우리의 교류가 제법 활발한 편이었는데 통성명도 안 했었다니 다소 씁쓸한 구석이 있는 걸.”

“내게 도굴꾼이라며 상놈 취급했던 건 네놈이다. 이름을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놈이 이제 와서 그딴 망발을...”

“그런 일이 있었나...? 아, 기억나는군.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 하필 자네가 고인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있었지. 한동안 오해할 만했어. 그때의 난 자네가 사리사욕을 위해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줄 알았거든.”

“항변할 기회조차 안 줬었지. 이후엔 관심도 없었고.”

“오해일세. 자네가 대도 탓에 은둔하지 않았나? 뒤늦게라도 사과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뭐... 내 상태도 점점 안 좋아지기도 했고.”

“그... 카벨론 님은 정확히 어떤 일을 하셨던 겁니까?”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잠자코 지켜보던 라우엘이 끼어들었다.

뮐러가 말년의 삶을 떠올린 시점부터 대화가 뚝 끊기고 어색한 침묵이 찾아온 까닭이다.

“남의 무덤이나 파헤치는 도굴꾼이었다만.”

콧방귀 뀐 카벨론이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능청스럽게 웃고 있을 뮐러의 낯짝이 자연히 떠올라서 무척 불쾌했다.

뮐러가 대신 설명해주었다.

“숨겨진 유적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던 친구일세. 고대의 유물들을 모아 시대의 영웅들에게 선물로 건네주었지. 세계의 평화에 일조하기 위해 노력했던 게야. 굳이 신분을 밝히지 않은 까닭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또한 영웅이었던 걸세.”

“...다 지난 일이다.”

카벨론이 고개를 숙였다.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눈을 잃은 뒤로 봉사를 못하게 되신 거군요.”

“아니, 정확히는 그 훨씬 전부터 못하게 됐다.”

꽈드득.

이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적야의 대도 그 미치광이 늙은이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강요받았거든.”

“운이 나빴지. 하필 이 친구가 대도가 표적으로 삼았던 유물을 먼저 손에 넣는 바람에...”

“그 전까진 적야의 대도가 누군지도 몰랐다. 미친 늙은이가 다짜고짜 날아와서 팔다리를 부러뜨리는데... 얼마 전에 봤던 바알은 귀여운 수준이더군.”

“...”

퍼즐이 자연히 맞춰졌다.

적야의 대도.

그리드에게 듣기로, 세계의 멸망과 창조를 무수히 목격하고 체험해온 이레귤러다.

대도의 목적은 단 하나.

세계가 멸망할 때마다 굴절룡이 남긴다는 보물을 수집하는 것.

멸망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마 그의 입장에선 고작 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 따위가 굴절룡의 보물을 건드린 걸 용납할 수 없었겠지.

어느 날 우연히 굴절룡의 보물로 추측되는 것을 손에 넣은 사건을 계기로, 카벨론은 대도에게 억압 받기 시작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밀히 활동하다가 눈을 잃는 불상사가 겹쳐 지금에 이른 것이고.

‘아무튼 결론은.’

카벨론은 엄청나게 유능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아득히 긴 세월 동안 활동해온 적야의 대도.

그리드조차 괴물이라고 칭하는 그보다 먼저 보물을 선점했다가 보복을 당했다는 이력 자체가 그의 능력을 증명했다.

‘물론 순전히 운으로 가능한 결과였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단 한 번이라도 적야의 대도보다 앞서갔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하물며 템빨단은 스컹크 탐사대를 운용하고 있다.

유적에 관해 전문가인 카벨론과 스컹크 탐사대의 시너지가 어마어마할 것으로 추측됐다.

“카벨론 님, 템빨제국의 일원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뭐? 누구 마음대로?”

“포로에게 인권은 없죠. 법이 그렇습니다.”

“아, 노예로 부리겠다는 거군. 그럼 내 사지를 미리 잘라 놔라. 그쯤 해야 나를 조금이나마 다룰 수 있을 거다.”

“아니요. 오늘부터 우리는 가족입니다. 믿겠습니다.”

“...미친놈인가?”

포로에게 인권 따위 없다면서 이젠 또 가족이라니?

어이없어하는 카벨론에게 뮐러가 한쪽 눈을 찡긋였다. 비록 두 눈은 보이지 않아도 이 유쾌한 감정이 전해지길 바라면서다.

“자네도 이들을 한 번 믿어보게. 내가 잠시 체험하기로 당대의 제국은 살기가 참 좋은 나라야.”

“네놈부터 신뢰할 수 없는 마당에 그딴 말을 지껄여봤자...”

카벨론은 여전히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강압적인 상황이 여러모로 불쾌해서 불만만 쌓여갔다.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동료들부터 만나보시겠습니까? 마침 탐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궁전에 머무는 중인데.”

라우엘은 계속 강압적으로 굴었다. 카벨론을 스컹크 탐사대에게 억지로 끌고 갔다.

하스터가 보기엔 바람직하지 못했다.

‘충분한 시간을 주는 편이 좋지 않나? 서서히 신뢰를 쌓으며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정석일 텐데.’

왜 라우엘답지 않게 저토록 서두르는 걸까.

의문은 금방 해소됐다.

“참으로 아름다운 드릴이군... 마력으로 가동하는 건가? 출력이 엄청나. 나 때는 이런 거 꿈에도 못 꾸고 일일이 삽으로 땅을 파야만 했는데.”

“이것도 봐보세요. 거인족의 기술자 분께서 만들어주신 탐사경인데요...”

“호오...”

“...”

스컹크 탐사대의 공방.

온갖 탐사물품을 보관 중인 그곳에서, 카벨론은 보물창고를 만난 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진짜다.

의안 아티팩트를 가동시켜가면서 탐사물품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등 엄청난 적극성을 보였다.

스컹크와 대화를 나눌 때면 얼굴에 미소마저 지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죠.”

라우엘이 몹시 뿌듯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진즉부터 예상한 눈치였다.

‘의심해선 안 될 청년이로군.’

하스터 또한 라우엘에게 큰 신뢰를 품게 됐다.

약 한 달 후.

템빨단의 비호를 받는 전설과 초월자들이 전원 템빨계의 영역에 도착한 날.

아스카를 마지막 천사로 임명한 그리드가 선포했다.

“지금부터 원정에 나선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린 만큼 준비는 철저하게 마쳤다.

이번 원정에 참가하는 인원 전원에게 드래곤 웨폰과 아머를 만들어서 지급했다. 심지어 고대의 강화 주문서로 전부 1회씩 강화한 무기와 갑옷이었다.

거기에 개개인에게 적합한 표식까지 만들었다.

바알의 표적이 될 만한 사람들을 대부분 보호하는데 성공했으며 라인하르트의 안전도 재차 점검했다.

지옥의 상황 또한 유라가 실시간으로 파악 중이다. 레라지에, 엘리고스와 교류하면서.

‘완벽해.’

더할 나위 없다.

크롸라라라라라라!!

자신하는 그리드의 곁으로 드래곤이 날아와 앉았다.

템빨성의 높은 성벽이 통째로 흔들리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새카만 숨결을 내뿜으며 지상의 인간들을 굽어보는 그의 이름, 악룡 번헬리어다.

과거 사람들 앞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을 땐 공포와 절망을 안겼던 존재.

최종 보스 후보로 지목됐던 아득한 존재가 이제는 그리드의 곁에 있었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번헬리어의 몸에 손을 얹은 그리드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템빨단과 제국의 백성들.

각 분야의 유명 인사들과 평범한 플레이어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숫자 족히 수십 만.

세계 각국에서 모인 언론사 카메라는 수만 대였다.

스크린을 통해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을 사람들의 숫자는 최소 억 단위일 터였다.

이제부터 그리드는.

지키지 못할 말을 뱉어선 안 됐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전율했다.

“오늘, 우리는 공포와 절망의 근원을 끊겠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유일신 그리드가 27번째 서사시를 써내려갑니다.]

[서사의 시작은, 만악의 근원을 없애겠다는 선언에서 비롯합니다.]

서사시 온.

Satisfy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이드로 기록 될 원정이 시작됐다.

최후의 싸움, 혹은 최후의 싸움으로 향할 마지막 관문.

세계 각국의 언론사가 내건 표제는 대동소이했다.

서울, 도쿄, 워싱턴 D.C., 런던, 베이징, 파리, 베를린, 뉴델리, 모스크바 등등.

이날.

세계 각국의 수도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이 고요해졌다.

도로에서 차가 사라졌고 건물들의 불빛만 환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TV나 PC 앞에 자리를 잡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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