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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750화 (1,749/1,794)

템빨 86권 - 20화

“네가 죽음을 극복해서 불사라면, 나는 죽지 않아서 불사다.”

무적 선언.

오만한 수준을 넘어섰다.

그리드를 믿고 따르는 인간들조차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일 법한 발언이었다.

한데 정작 바알은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말았다.

사실 진즉부터 미묘하게 불편하던 차다.

염룡의 비늘을 실처럼 뽑아 엮어 만든 갑옷.

그리드와 헥세타이아의 지식과 기술이 집약 된 저것은 기본적으로 절대방어를 활성화시킨다.

꿰뚫는 과정에서 공격력이 필연적으로 약화됐다.

하물며 놀라울 정도의 탄성을 지녔다.

어떤 형태의 공격이든 충격을 상당량 흡수했다.

기껏 분신들이 얻어온 정보와 경험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드래곤 아머를 찢어발기고, 꿰뚫고, 부숴 버려야 할 마검과 손톱이 제대로 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물론 처음엔 큰 지장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드가 재차 도전해올 거란 사실을 예측하고 온갖 기술을 체득한 현재의 바알은 엄청난 발전을 이룬 상태였으니까.

특히 바알은 그리드에게 학살당한 존재들의 힘과 기술을 집중적으로 체득해왔다.

놈들이 그리드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석하고, 놈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리드에게 낭패를 안겼는지 학습했다.

바알의 공격은 그리드의 강점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키는 식으로 연계됐다.

덕분에 전투 내내 우위를 점했다.

급기야 심장을 꿰뚫는 쾌거를 이뤘다.

심지어 신살의 기운으로.

그리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했단 말이다.

제압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리드가 갑옷 덕에 ‘고룡과 닮은 내구력’을 갖췄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괜찮은 성과였다.

이제부턴 사냥 대상에 드래곤을 넣어도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을 정도다.

그리드가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을 확인하기 전까진 그랬다.

‘어떤 원리지?’

물론 절대자는 쉽게 죽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리드는 인류의 숭배를 사실상 독점하는 신이었다.

소멸시키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어도 부활할 거라고 봤다.

단, 신살의 기운에 영혼이 훼손당해 상당량의 힘과 권능을 영구적으로 소실해야 옳았다.

거기에 더해서 서사시를 죽음으로 장식하게 될 테니, 그리드의 권위가 곤두박질 칠 거라고 봤다.

한데 죽음 자체를 면역해버렸다.

하야테의 용살검이 드래곤을 상대로 절대적인 공능을 발휘하듯, 반드시 성과를 거둬야 할 신살의 기운이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했다.

순전히 저 갑옷에 의해서.

‘...어째서 저것만 특별한 거지?’

분신들이 싸웠던 전설과 초월자들 또한 드래곤 아머를 무장했었다.

그리드가 무장한 갑옷과 비슷한 형태였고 기능도 닮았다.

하지만 이토록 큰 성능의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

그 원인을, 바알은 금세 파악했다.

‘염원... 염원이 담겼군.’

그리드의 갑옷이 유독 특별한 이유.

강력한 염원이 담겨서다.

그리드의 안녕을 바라는 염원이었다.

과거에 체험했던 <금의 협곡>의 근원과 닮았다.

그리드에 대해서 공부해온 바알은 즉시 하나의 존재를 떠올렸다.

‘대장장이 칸.’

죽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에 오른 놈.

천사들에게 놈을 빼앗긴 게 천추의 한이다.

만약 놈의 죽음이 다소 늦었다면.

정확히는 내가 그리드를 의식했을 무렵에 죽었다면.

칸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졌을 거고 그리드는 영원토록 나의 손아귀에서 놀아났을 터인데.

‘...내가 아쉬움을 느낀다고?’

마구잡이로 뻗어나가는 의식의 흐름을 멈춘 바알이 다소 동요했다.

아쉬움.

잡것들이나 느낄 감정 아닌가.

내가 느낄 감정으로 적합하지 않다.

마침 대기가 요동쳤다.

그리드의 갑옷에서 솟구친 기운이 지옥의 하늘을 빠르게 잠식해갔다.

꾸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하늘이 굉음을 울리며 갈라진다.

그 어떤 대마법의 전조보다 요란했다.

갈라진 하늘의 틈새에서 막대한 기파가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어째선지 익숙한 기파였다.

‘나의 마력?’

신살의 기운이 담긴 마력이다.

마치 또 하나의 바알이 하늘 너머에 도사리는 느낌.

당황하는 바알의 시야가 노을빛에 잠식당해갔다.

그리드의 신성이 쏟아지는 것이다.

지난 20초 동안 입은 피해를 대상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힘을 품은 신성이었다.

염룡의 갑옷에 귀속 된 스킬, <또 하나의 무덤>.

절대 방어, 충격 완화, 즉사 면역에 이어지는 무조건 반사.

당하는 입장에선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사기적인 기적들을 단 하나의 갑옷이 창출하고 있었다.

꽈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일직선으로 떨어진 주황색 신성의 기둥이 바알을 표적으로 삼아 폭발했다.

지옥의 어둠을 물리치는 폭발이었다.

바알의 성을 중심으로 지옥 전체가 노을로 물들어갔다.

마치 핵폭발을 연상시키는 광경.

여태껏 Satisfy에 존재해온 그 어떤 스킬 연출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시청자들과 지옥 곳곳의 악마들은 물론이고 템빨단원과 사도들까지 압도당해버렸다.

심지어 그리드 본인조차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또 하나의 무덤이 이만큼 강력한 위력과 임팩트를 발휘하는 건.

그리드를 수세에 몰아넣었던 바알의 공격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려주는 증거가 됐기에.

여파가 컸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제1위 대악마 바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해온 그가 참지 못하고 비명을 터뜨렸다.

신성에 가리어져 식별할 순 없었지만.

전신이 불타 소멸하는 과정을 거치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하다.

그리드의 6융합 검무를 몇 차례나 허용했던 바알은 이미 큰 피해를 입은 상태였으니까.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리드의 시야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제1위 대악마 바알이 사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

...

..

심지어 한 번이 아니었다.

[제1위 대악마 바알이 사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

..

하야테의 용살검이 드래곤이 아닌 대상에게도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듯이.

[제1위 대악마 바알이 사망하였습니다.]

[레벨이...]

...

..

또 하나의 무덤이 품은 신살의 기운 역시 바알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제1위 대악마 바알이 사망하였습니다.]

[레벨이...]

...

..

무려 4번.

그리드에게 입힌 피해를 고스란히 되돌려 받은 바알이 총 4차례의 죽음을 연달아 겪었다.

서사시가 온 세상에 그 사실을 알렸다.

인류를 위해 싸우는 신.

그가 지옥을 왜곡시킨 악마에게 형벌을 내려 목숨을 수차례나 빼앗았다고.

정확히 몇 번인지는 서술하지 않았다.

그 찰나에 바알은 몇 번을 죽었는가.

순전히 청자의 상상에 맡겼다.

[인류의 공포가 옅어집니다.]

[인류의 공포가 옅어집니다.]

[인류의 공포가 옅어집니다.]

[인류의 공포가...]

...

..

죽음 끝에 도사리는 것은 안식이 아닌 영원한 고통이다...

이와 같은 진실을 알고 절망감에 빠진 인류는 본래 모든 의욕을 상실했었다.

쓰러진 채 섣불리 못 일어났다.

의미 없는 삶에 집착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들을 다시 일으키고 지탱한 존재가 바로 그리드다.

늘 앞장서 싸워온 신.

왜곡 된 지옥을 수복하겠노라는 그의 선언이 인류의 희망이 되어주었다. 인류가 다시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그래, 유일한 희망이었다.

인류가 그리드에게 품은 신뢰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드가 바알을 ‘수차례’ 죽였다는 서사시의 서술을 수십 번, 수백 번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수천 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묘사의 영향이 컸다.

[신벌을 받은 지옥의 왕이 고통에 떨며 절규했다.]

[지옥의 왕을 불태운 노을빛 신성이 온 지옥을 물들여갔다.]

없던 믿음도 생기게 만드는 묘사.

아이러니하게도 바알이 만든 결과였다.

너무 강한 까닭에 <또 하나의 무덤>의 위력을 기대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놈...”

폭발의 여파가 끝나고 신성이 걷힌 뒤.

죽음을 극복하고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을 드러낸 바알이 꽈드득, 이를 갈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가치하다고 판단하는 눈치였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즉시 몸을 날렸다.

푸욱!!

신살의 기운을 담은 마검이 그리드를 꿰뚫는다.

죽음을 선사해야 옳은 일격.

하지만 이번에도 그리드는 멀쩡했다. 가슴에 칼이 꽂힌 채로 반격해서 바알의 목을 베었다.

융합 검무가 아닌 보통의 스킬 공격이었다.

바알이 검무에 면역할 방비를 갖춘 상태임을 학습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푸슉!!

바알의 목에서 선혈이 솟구쳤다.

역천이 일반적인 검술의 위력을 엄청난 수준으로 증폭시켰다.

단, 바알에게 죽음을 선사하기엔 한참 부족한 일격이었다.

바알 또한 그리드처럼 상처를 무시하고 반격했다.

그런 식의 공방이 수백 번 이어졌다.

두 명의 절대자가 초 단위로 수십 번씩 서로를 난도하며 얽혔다.

안 그래도 폐허가 된 대전 곳곳이 먼지로 변해 흩날렸다.

초반과 닮은 전투 양상이었다.

하지만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바알의 힘과 기술, 속도는 처음과 같은 반면 그리드의 힘과 속도는 상승했다는 점이다.

레벨 업의 결과다.

바알이 4번이나 죽은 탓에 그리드의 레벨은 무려 30개가 넘게 올랐다.

2페이즈.

바알이 보여줘야 할 모습을 그리드가 보여주고 있었다.

‘뭐 이딴 놈이.’

시간을 압축시켜 성장하는 놈.

그리드의 진가를 상기한 바알이 흐름을 바꾸기 위해 자세를 고쳤다.

어째선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신살의 기운을 거두고 순수한 마기를 마검에 가득 채웠다.

파직! 파지지지지지직!!

바알 고유의 힘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힘의 파동만으로 대지가 갈라지고 일대의 모든 물체가 먼지로 전락했다.

그리드를 곁에서 보좌하던 갓 핸드들이 경직되길 반복하며 사실상 작동을 멈췄다.

‘위력에 올인하는 건가.’

바알의 의도를 읽은 그리드가 다소 긴장했다.

신살의 기운과 각종 마법, 기술을 활용하며 그리드를 열세에 몰아넣은 바알.

놈의 전투 방식은 정석이라 할만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리드를 상대로는 효율이 나빴다.

온갖 수단으로 공격 명중률을 높여봤자 염룡의 갑옷과 사방신의 힘을 운용하는 그리드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건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한 방 싸움을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충격 완화가 경감시키는 데미지에도 한계는 존재했고 그리드의 생명력도 무한은 아니었으니까.

‘5융합 이하의 검무가 봉인된 게 커.’

일반 스킬로 버티다가 몇 개 안 되는 6융합 검무로 역전을 노려야하는 상황.

장기전을 노릴 수밖에 없는데 단기결전을 노리는 바알의 의도가 흐름을 망치게 생겼다.

그리드의 긴장감이 커지는 그때였다.

“...”

바알이 그리드를 잠자코 노려봤다.

비대해진 마검에 응축시킨 무지막지한 기운이 무색하게도 섣불리 공격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린 까닭이다.

또 다시 입힌 피해를 고스란히 돌려받게 될 경우.

이번에도 수차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를 압박했다.

죽음 따위 극복하면 그만이지만.

그리드가 강해지는 것까지 좌시하긴 힘들었다.

일격에 죽이지 못하면 저놈을 돕는 꼴밖에 안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바알이 망설이는 사이.

‘설마.’

그리드가 바알의 심경을 어렴풋이 읽고 말았다.

하기야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무덤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1시간이라는 사실을, 바알은 아직 몰랐기에.

그리드는 대범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백호 자세를 거두고 제 심장을 손가락으로 겨눴다.

“와라.”

“...”

Satisfy에는 수십 억 명의 플레이어가 존재한다.

그들이 보스 레이드에 성공한 횟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기상천외한 보스 공략법이 메인 서버에 엄청난 데이터로 축적되어 있었다.

하지만 보스에게 가불기를 걸어버리는 공략법은 이번이 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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