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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779화 (1,778/1,794)

템빨 88권 - 6화

올라가면 강해지는 탑의 내부는 몹시 넓다.

외부에서 볼 때완 다른 것이다.

‘이런 거 볼 때마다 포식이불족발이 같은 편인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니까.’

인스턴스 던전을 만드는 플레이어.

포식이불족발이 유일하다.

그가 만든 던전들은 늘 유용하게 쓰였다.

특히 이번에 만든 탑이 특별했다.

고작 며칠 사이에 227층으로 높아진 탑.

이대로 계속 높아졌다간 정말 진짜로 아스가르드에 닿지 않을까?

허황되게 보였던 라우엘의 추측에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

최소 1,000층은 넘어야 견적이 제대로 보이긴 하겠지만.

‘1,000층이라...’

아득히 멀게 느껴지지만 의외로 가깝다.

크라우젤이 227층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일주일이었으니까.

심지어 등반 속도가 나날이 빨라졌다.

새로운 층을 정복할 때마다 얻는 보상 덕분이겠지.

10층 단위로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가 강해지는 속도보다 등반자의 성장 속도가 빠를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한 50층 정도까지만 고생하자.’

바알.

그 빌어먹을 바퀴벌레 같은 놈이랑 다시 싸워야한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끼던 그리드가 심호흡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아이린이 새벽부터 일어나 만든 도시락이다.

빵까지 직접 구웠다.

어젯밤.

슬슬 휴식을 끝내고 다시 활동해야겠다는 그리드의 말을 잊지 않고 고생해준 것이다.

‘고기, 마늘, 고기, 고기...’

채소는 마늘이 전부인가...?

왜?

반찬투정을 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의아했다.

종종 가족끼리 식사할 때면 로드에게 채소를 먹이려고 애쓰던 아이린이 편성한 식단이라기엔 이질감이 컸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리드가 쪽지를 발견하고 펼쳐보았다.

-요즘 매일 밤마다 대단하셨지요. 낭군님께서 대의를 펼치시고 돌아오셨을 때도 활력을 유지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준비해보았어요. 부디 맛있게 드시고 힘내세요.

“...”

오늘 밤에도 열심히 노력해야할 듯하다...

아이린의 속내를 읽은 그리드가 의욕을 활활 불태웠다.

밤마다 짐승이 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밤마다 짐승으로 바뀌다 보면 ‘정말 이래도 되나?’하는 불안감이 들긴 했지만.

그리드에겐 사랑해줘야 하는 사람이 무려 넷이나 있다.

아이린은 꿈에도 모를 테지만 그녀가 도중에 실신할 때마다 그리드는 메르세데스와 바사라, 마리로즈를 번갈아 찾아갔다.

바알을 잡고 얻은 소망석을 써서 기껏 한계를 돌파한 마당에 부인들을 독수공방 시키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노력했다.

보람이 있었다...

도시락에 정성껏 담긴 고기와 마늘을 하나하나 천천히 꼭꼭 씹어 삼키면서.

그리드는 9층 층계참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10층의 입구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이번엔 한나절까진 안 걸리겠지...

정도에 불과했던 마음가짐을 완전히 바꾸고 투지를 불살랐다.

‘6시간. 6시간 내로 잡는다.’

지옥 원정 성공 이후.

그리드는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다.

스탯 재분배, 바알의 힘, 아모락트의 힘 같은 부가적인 요소들 때문만이 아니다.

단순히 스팩 자체가 대폭 올랐다.

1,000레벨을 돌파하며 대량의 스탯을 확보하고 각성 효과까지 누렸으니까.

반면 바알은 그리드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하물며 무한한 부활도 불가능했다.

바알은 이제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니까.

물론 바알인 이상 죽음을 극복한다는 패시브를 지니긴 했겠지만 횟수엔 반드시 제한이 있을 터였다.

“가자.”

[<황후가 사랑을 가득 담아 만든 도시락>의 효과로 30분 동안 모든 능력치가 30퍼센트 증가합니다.]

음식 버프 효과도 기대 이상이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

새삼 깨달은 그리드가 10층에 입장했고, 전처럼 바알이 그를 반겼다.

당연히 어떤 말을 지껄이진 않았다.

저것은 다만 형상일 뿐.

바알과 같은 표정을 짓고 같은 능력을 사용할지언정 사고하진 못한다.

[<마검의 잔흔>이 반응합니다.]

그리드가 적을 조우하게 될 경우 가장 먼저 움직이는 건 이제 그리드가 아니다.

새카만 마검.

곳곳에 새겨진 균열에서 핏물처럼 붉은 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길이 3미터의 초대형 장검이 그리드보다 먼저 반응하고 행동했다.

쩌어어엉!!

마검과 마검의 충돌 여파로 탑이 흔들렸다.

그리드만 느끼는 흔들림이다.

어차피 인스턴스 던전이니까.

그리드가 거침없이 움직였다.

탑이 붕괴하는 걸 전혀 개의치 않고 지력에 모든 스탯을 투자해서 마법을 날린 뒤, 앞서 쏜 마법 폭격보다 한 발 앞서 바알에게 도달해 역천을 휘둘렀다.

당연히 스탯 투자를 근력으로 변경한 채다.

““...끅...!””

바알은 제대로 된 비명조차 토하지 못했다.

불쑥 날아온 마검을 막아내느라 무방비하게 노출 된 우측으로 파고든 그리드에게 베인 여파로 고통에 몸을 떨다가, 직후 쏟아진 마법 폭격에 휩쓸려 주저앉았다.

반격할 틈조차 잡지 못한 것이다.

“음...?”

휘청휘청.

마검에 더불어 갓 핸드의 총공세까지 받기 시작한 바알이 위태로운 동작으로 저항한다. 온몸이 상처투성인 탓에 움직임에 많은 제약을 얻었다.

놈의 상처가 실시간으로 회복되는 광경을 물끄러미 관찰한 그리드가 의문을 느꼈다.

‘고속 회복 능력은 진짜와 똑같은데 왜 저렇게 허약하지?’

10층 보스라서 원본보다 약하게 구현된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첫날에도 도망치지 말고 그냥 때려잡을 걸 그랬다...

혀를 찬 그리드가 상체를 옆으로 틀었다.

시선은 갓 핸드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다가온 바알에게 고정시킨 채다.

그리드의 코끝을 스쳐가는 바알의 마검에 역천의 잔광이 비쳤다.

전직 퀘스트를 완료하고 얻은 파그마의 검무.

그중 하나인 휘(輝)가 피어오른 것이다.

휘는 파그마의 검무 중에서 유일하게 스타일이 달랐다.

춤을 구사하는 동작이 아니라 마력을 검에 부여해서 찬란한 광채를 퍼뜨린다.

제사적인 의미론 신의 관심을 갈구한다는 뜻이 담겼고, 실제적으론 검의 위력을 증가시켜줬다.

버프 스킬인 것이다.

파그마의 후예.

자체적인 버프 스킬이 빈약했던 똥캐.

직업 퀘스트를 완료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15초 동안 무기 공격력이 3배 증가합니다. 버프 지속 시간 내에 사용하는 첫 번째 검무의 위력이 800퍼센트, 두 번째 검무의 위력이 1,200퍼센트, 세 번째 검무의 위력이 2,000퍼센트, 네 번째 검무의 위력이 3,500퍼센트 상승합니다.]

콰작.

그리드가 비틀어놨던 상체를 되돌리면서 검을 내리 꽂았다.

전직 퀘스트를 완료하고 얻은 또 다른 검무, 참(斬)이다.

극과 닮은 듯 달랐다.

극은 무조건 내리 꽂는 검무인 반면 참은 평타처럼 온갖 형태로 운용 가능했다.

내리 꽂을 수도 있고, 올려 칠 수도 있고, 사선으로 베는 것도 되는 식이다.

공격력 계수는 낮았지만 활용도가 무궁무진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연계 검무의 선행 동작으로 삼기 좋았다.

꽈르르르르르릉!!

등을 베이고 자세를 무너뜨린 바알을 그리드의 6융합 검무가 난도질했다.

융합. 즉, 하나를 이룬 덕분에 휘의 버프 효과를 온전히 받은 상태다.

몇 번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바알이 죽음을 극복합니다.]

[바알이 죽음을 극복합니다.]

[바알이 죽음을...]

...

..

‘역시 쉽게 죽을 놈이 아니란 말이지.’

초고속 재생 능력만큼은 진짜와 똑같단 사실을 엿봤을 때부터 눈치 챘다.

10층의 바알은 진짜 바알과 비교해서 약할지언정 쉽게 죽지 않을 것이다.

정말 최악의 경우엔 한나절 동안 싸워야할 수도 있다...

눈살을 찌푸린 그리드가 새로운 6융합 검무를 곧바로 연계했다.

참의 검무 덕분에 가능했다.

6융합 검무의 발동이 끝난 직후 모션 때문에 생기는 딜레이를 참으로 씹어버렸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전개 가능한 참의 장점을 극단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덕분에 시간차 없이 연계된 6융합 검무를 바알이 저항하지 못하고 재차 허용해버렸다.

이번 검무 역시 휘의 버프 효과를 등에 업고 있었다.

세 번째 6융합 검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연계하자 바알은 또 저항하지 못했다.

그 결과 죽었다.

“...응?”

벌써 죽었다고?

‘아무리 10층이라도 그렇지 진짜와 비교해서 너무 허약한데?’

첫날에 포기한 게 너무 뼈아프다...

또 다시 후회에 휩싸이는 그리드의 눈앞에 수십 장의 카드가 떠올랐다.

모두 뒷면이다.

10층 단위 기준으로 최대 20장의 카드를 펼칠 수 있으며, 펼칠 때마다 보상의 종류가 나타나고 그중 7개를 선택해서 가질 수 있다.

등급은 최소 1에서 최대 5.

높을수록 좋다.

‘제발 5등급. 5등급 보상.’

기도한 그리드가 카드를 펼쳤다.

<영혼강화석> 2등급

복용 시 100개의 스탯 포인트를 얻습니다.

탑에서만 적용됩니다.

“...아주 좋아.”

1등급이 아니라는 사실이 긍정적이다.

운이 아예 없진 않단 뜻이니까.

역시 높은 행운 스탯 덕분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그리드가 남은 19장의 카드를 한꺼번에 오픈 했다.

결과는 4등급 카드 1장과 2~3등급 카드 18장.

더군다나 외부로 반출 가능한 보상은 단 하나도 안 떴다. 죄다 탑 내부에서만 적용되는 버프 보상이었다.

“지랄하지 마.”

그나마 심한 욕은 참을 수 있었다.

1등급 카드가 단 한 장도 뜨지 않은 걸 보면 행운 스탯의 효과는 제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다만 내가 타고난 악운이 너무 강해서 5등급 카드가 뜨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열 받네?”

불과 몇 주 전에 이런 일을 겪었다면 쉽게 진정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그리드는 쉽게 진정했다.

바알의 수준이 생각보다 낮다는 사실을 토대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니까.

‘어차피 층을 하나 오를 때마다 보상은 계속 얻을 수 있는 거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자 치솟던 화가 쉽게 가라앉는다.

‘빨리 퇴근하려면 서두르자.’

아름다운 부인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의욕을 불태우는 그리드.

미모의 힘. 아니, 사랑의 힘이란 이처럼 대단한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그리고 반트너에겐 경험이 없었다.

“미쳤나?”

탑에서 얻은 보상 덕분에 더 높은 사냥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된 반트너.

한동안 쭉쭉 나간다 싶던 진도가 또 가로막혀 탑을 방문한 그가 경악했다.

랭킹 현황 때문이었다.

오늘 오전에 막 탑에 입장했다던 그리드가 10번째 랭킹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버그야? 무슨 수로 한나절 만에 180층을 등반한 거야?”

탑에서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의 수준은 ‘진짜와 똑같다’.

심지어 층이 높아질수록 강해지는 까닭에 종국에는 진짜를 초월하게 된다.

물론 등반자 역시 버프를 꾸준히 수급하며 강해졌지만, 운 좋게 5등급 버프를 도배하지 않는 이상 간신히 밸런스를 맞추는 수준이었다.

등반 속도가 크게 빨라지지 않는단 뜻이다.

그리드의 등반 속도는 분명히 기형적이었다.

얼마 전 그가 바알을 잡는데 한나절이 넘게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더.

커다란 혼란을 느끼는 반트너에게 포식이불족발이 설명했다.

“아무래도 등반할 때마다 얻는 보상을 탑에서 적용되는 버프로만 선택한 눈치야.”

“뭐? 그럼 남는 게 없잖아?”

“알다시피 너무 많은 이목이 쏠렸어. 체면을 지키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

“거 참... 그리드도 여러모로 힘들겠구만.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데...?”

“...터무니없이 강하니까.”

포식이불족발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10층 단위에서 바알을 만날 때마다 10분 내로 격살하는 그리드의 강함은 막말로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얼마 전 지옥 원정을 떠났던 시점과 비교해도 천지차이로 강해졌다.

단독으로 바알을 레이드한 보상이 상상 이상으로 컸던 눈치다.

“이런 염병.”

분위기가 엄숙해진 가운데 극검이 달려왔다.

턱밑까지 추격해온 그리드의 랭킹을 믿기지 않는단 얼굴로 확인하더니 급히 탑에 입장했다.

‘언젠가 따라잡힐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따라잡히는 건 말도 안 돼. 용납해선 안 된다.’

내게도 작게나마 체면이라는 게 있다...

나 역시 보상으로 탑에서만 적용되는 버프들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드의 초고속 등반의 비결을 눈치 챈 극검이 각오했지만 무의미했다.

버프만 원한다고 해서 버프만 나올 리 없었으니까.

운이 나빠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드는 운이 나쁜 덕분에 체면치레를 제대로 하게 된 셈이다.

결과적으론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등반 시작 하루 만에 최상위 랭킹에 오른 그의 업적이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을 환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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