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9화 (9/182)

9화

목욕을 마치고 온 모두가 지하로 내려오자 루카는 자물쇠로 문을 잠갔다.

주환은 그 자물쇠가 루카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어 준 비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지하실로 돌아온 주환과 데스티나의 복장은 전과는 달랐다.

주환이 입고 있는 옷은 루카의 아버지가 입던 옷이었으며 데스티나가 입고 있는 옷은 루카의 어머니가 입던 옷이었다.

주환에게는 옷이 좀 컸지만 데스티나가 입은 것은 보기 좋게 딱 맞았다.

주환은 한쪽에 앉아 있는 데스티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꽤 좋아진 것 같네?”

“씻으니까 기분이 한결 낫군.”

냇가에서 몸을 씻은 것이 기분전환에 꽤 도움이 된 듯 데스티나의 얼굴은 꽤 밝았다.

“그러고 보니까.”

루카는 주환의 몸을 가리켰다.

“아까 보니까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있던데.”

“아.”

주환은 자신의 팔을 걷어 생채기들을 살폈다.

그가 다락에서 추락하여 바닥에 굴렀을 때 생긴 상처들이었다.

“괜찮아. 이 정도 상처들은 금방 나을 테니까.”

“상처가 크지 않아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면 감염될 수 있어. 잠깐 기다려 봐.”

루카는 벽에 걸려 있는 마른 약초들을 살폈다.

그중에서 몇 개의 약초를 고른 루카는 식탁에서 작은 절구와 병을 챙겼다.

양손 가득 약초와 병을 들고 온 그녀는 그것들을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이것만 있으면 충분해.”

“그거 약초들이지?”

“맞아.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약초들을 계속 말리고 있었던 건데 이렇게 써먹는 날이 오네. 기다려 봐. 이제 이걸 어떻게 쓸지 보여 줄 테니까.”

루카는 식탁 위에 절구를 놓더니 그 안에 약초들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작은 막대로 그 약초들을 뭉개기 시작했다.

약초가 으깨지면서 풍기는 향기가 두 사람의 코를 자극했다.

분명히 그 향기는 두 사람이 일전에 맡아 본 것이었다.

“이거 어디선가 맡아 본 냄새인데?”

역시나 냄새를 맡아 보고 있던 데스티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 알겠다. 주환. 기억하는가? 아까 우리가 좀비들과 싸웠던 그 밭 말이야.”

“확실히 밭에서 나던 냄새랑 똑같은데.”

“당연하지. 그 밭은 다 우리 거니까. 이 약초들은 전부 거기에서 따온 거고.”

“생각해 보니까 네가 키우던 거라고 했었지?”

“우리 집은 대대로 약초밭을 키웠었거든.”

루카는 힘을 주어서 완전히 곤죽이 될 때까지 약초를 으깨었다.

으깨면 으깰수록 그 냄새가 점점 강렬해져 갔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다 으깨지자 루카는 나무 그릇에 그 죽이 되어 버린 약초를 담았다.

루카는 그릇을 들고 주환에게 다가오더니 주환의 상처들의 위에 그 곤죽이 된 약초들을 조금씩 발라 주었다.

“다 끝났어.”

작업이 끝나자 루카는 한쪽에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엄청나게 큰 상처는 이것보다 더 강력한 약초가 필요하지만 얕은 상처는 이 정도로도 충분해. 물론, 좀비한테 물린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약초는 없지만 말이야.”

“상당한 실력이로군. 누구한테 배운 건가?”

데스티나가 묻자 루카의 얼굴에 순간 그늘 같은 것이 드리워졌다가 사라졌다.

그것을 눈치챈 데스티나는 말을 이었다.

“굳이 말을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것까지는 없어. 우리 엄마에게 배운 거야.”

‘그러고 보니.’

루카의 대답에 주환은 그제야 이 집 안에서의 부모의 부재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지금 이 지하실.”

루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하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우리 엄마를 가두던 곳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주환은 루카의 말을 통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좀비가 된 사람은 우리 엄마였어. 보통 좀비가 되면 곧장 바로 죽임을 당하지만, 우리 집에는 다른 집들과는 다른 두 가지가 있었지.”

“그게 뭐지?”

“하나는 우리 집은 마을의 다른 집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나 넓고 좋은 지하실이 있다는 거야.”

루카는 쓰게 웃으면서 손으로 벽을 짚었다.

“벽들을 잘 보면 우리 엄마의 손톱자국을 볼 수가 있을 거야.”

루카의 말에 주환은 곧바로 지하실의 벽들에 시선을 두었다.

이윽고 주환은 촛불에 비친 선명한 손톱자국들을 찾을 수 있었다.

루카의 엄마가 손으로 긁어 댄 손톱자국.

“아빠는 엄마를 보내고 싶지 않았나 봐. 그래서 엄마가 좀비가 되었을 때 이 지하실에 가두었어. 가끔 지하실 문을 쿵쿵 두드리는 것 빼고는 생각보다 얌전히 계셨지.”

“그런 일이 있었다니.”

주환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기왕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왔으니 좀 더 민감할 수 있는 질문까지 하겠네. 용서하게. 지금 그럼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 어디로 가신 건가?”

“아빠는 엄마를 고치기 위해서 떠났어.”

“좀비에서 인간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단 말인가?”

데스티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루카는 데스티나의 반응에 웃음을 지었다.

“이런 촌 동네 농부가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을 리는 없잖아? 그저 이 모든 일을 마법사들이 저질렀으니까 그 해결책도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하셨던 거지.”

“그럼 네 아버지는 마법사들을 찾으러 가신 거야?”

주환의 물음에 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계획이 잘되었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아마 실패했을 거야. 마법 전쟁으로 마법사들도 대부분 다 죽었다고 들었고. 마법사를 만났다면 벌써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말한 루카는 물끄러미 지하실의 문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떠난 바로 그날, 어떻게 알았는지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어.”

“마을 사람들?”

“더는 숨길 수가 없었던 거지. 그들은 우리 엄마를 억지로 지하실에서 끌어냈어. 나는 막을 수가 없었어. 아빠는 엄마를 여전히 예전의 엄마로 봤지만 나는 엄마가 좀비로 변해 버렸다는 것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주환은 당시에 있었을 아수라장을 상상하며 질문을 던졌다.

“너희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당한 거야?”

“아냐. 마을 사람들이 우리 엄마한테 당했지.”

루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화형이라도 시킬 생각이었는지 묶어서 마을까지 끌고 갔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끌고 갔던 사람들이 풀려난 엄마한테 물려 버린 모양이야.”

“그것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가 당해 버린 건가?”

“사실 나도 마을 사람들이 우리 엄마를 끌고 나간 뒤의 이야기는 잘 몰라. 기억이 잘 남아 있질 않거든. 아무튼, 그 사건 때문에 이 마을에는 나랑 대장장이 아저씨밖에 남지 않았었어. 좀비라는 게 그렇잖아? 좀비 한 마리 자체의 전투력은 크지 않지만, 전염이라는 게 무서운 거니까. 이제는 대장장이 아저씨도 안 계시지만 말이야.”

지하실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주환은 루카를 위로할 말을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루카는 두 사람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너무 그런 표정들 짓지 마. 그렇게 심각해지면 내가 민망하잖아.”

“뭐라고 위로를 건네야 할지 잘 모르겠어.”

주환의 말에 루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평범한 소녀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런 건 잘 몰라. 어차피 이젠 평범한 게 뭔지도 모르니까. 일이 잘 돌아갔다면 로덴 마을 제일가는 약초상이 되었겠지.”

루카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데스티나는 루카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옆에 앉아 있는 루카의 손을 잡아 주었다.

“잘 버텼다.”

“그렇게 말하지 마. 쑥스러우니까.”

“아니. 정말이다.”

“그저 지하실에 계속해서 숨어 있었을 뿐이야.”

거기까진 말한 루카는 헛기침하더니 빙긋 웃으면서 두 사람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분위기를 좀 바꿔 보자고. 두 사람 다 아직 식사 못 했지? 나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나누어 먹을 정도는 있어.”

루카는 지하실 한쪽에 있는 음식 저장고로 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챙겼다.

두 사람에게 돌아온 루카는 음식들을 식탁 위에 쏟았다.

말린 고기와 밭에서 따온 야채, 그리고 루카가 직접 만든 투박한 빵들이 식탁 위에 뒹굴었다.

양은 많진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도 먹을 게 좀 있어. 많이 챙기진 못했지만, 그것도 같이 먹자고.”

주환은 자신의 짐에서 음식들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음식들이 모이자 생각보다 풍성한 저녁을 즐길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데스티나가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그것이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주환은 고기와 빵을 뜯어서 입에 가져갔다.

그 음식들은 주환인 살던 세계에서 먹던 음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고 질겼지만 온종일 굶은 터라 그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긴, 서바이벌 훈련 때는 벌레들을 주워 먹으면서 버텼으니.’

“이번에는 너희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며 루카는 말을 이었다.

“특히나 주환, 네가 입고 있는 옷이나 장비들은 내가 본 적도 없는 것들이야.”

“그게 말이야.”

주환은 루카에게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루카는 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환 너는 어째서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다는 거네?”

그녀의 물음에 주환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우연히 오게 된 건지 아니면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직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직은 모르겠어. 이곳에 도착해서는 살아남는 데만 집중했고 대부분 데스티나에게 의존하는 면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결국에는 내가 살던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거겠지.”

주환의 대답을 들은 루카는 이번에는 데스티나에게 물었다.

“데스티나 너는?”

“나는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찾고 있는 사람들?”

“소문일 뿐이지만 황제 폐하와 황가의 황족분들이 아직 살아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분들은 지금 병사들을 모아서 좀비들을 퇴치하는 것에 앞장서고 계신다고 하더군.”

“그게 정말로 사실이야?”

루카는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꽤 흥미가 동하는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방금 말했지만, 그저 소문일 뿐이다. 그 소문을 들은 지도 꽤 지난 일이라서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지. 어디로 가야 그분들을 찾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없어서 정처 없이 떠돌면서 정보를 수집하던 중이었다.”

데스티나는 주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주환을 만난 거고 동행을 하게 되었던 거다.”

“흠.”

데스티나의 이야기까지 들은 루카는 갑자기 팔짱을 끼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두 사람을 둘러보면서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 두 사람한테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