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32화 (32/182)

32화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주환은 눈을 번쩍 떴다.

‘뭐지?’

주환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가 자고 있던 곳은 이브의 별장의 1층.

주환 일행은 이브의 의뢰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이후, 계속해서 그녀의 별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주환이 귀를 기울여 보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그렇게 생각한 주환은 다시 단잠에 빠지기 위해서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는 잠을 청했다.

잠기운이 다시 올락 말락 하는 그 순간.

탕탕탕.

다시금 들려오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주환은 깜짝 놀라서 번개처럼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문을 두드리는 장본인은 꽤 기분이 상한 듯 이번 노크 소리는 처음보다 더 크고 급해 보였다.

“우리를 찾아올 사람이 있나?”

주환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방을 나섰다.

상대가 두드리고 있는 문은 현관문이었다.

주환은 머리를 굴렸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두 사람인데.’

주환은 지금 검은 탑에 있을 이브와 타마두크를 떠올렸다.

‘이브야 영체로 찾아오면 그만이고 타마두크도 텔레포트로 오면 그만인 일이야. 굳이 저렇게 문을 두드리면서 찾아올 필요는 없지.’

심상치 않은 손님이 왔음을 감지한 그는 방으로 돌아가 베개 밑에 손을 넣었다.

그의 손에 잡힌 건 군용 나이프.

나이프를 가지고 다시 방을 나선 주환은 데스티나와 루카의 방 쪽을 바라보았다.

데스티나와 루카는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직 두 사람을 깨울 필요는…….’

주환은 우선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그가 현관문의 앞에 섰을 때, 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누구시죠?”

“문을 열어.”

문밖에 서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주환에게 그렇게 요구했다.

주환은 그 목소리가 젊은 여성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로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였다.

“용건이 뭡니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주환은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셈이었다.

그때.

주환은 순간 살기를 감지했다.

문 앞에 화기를 겨누고 있는 테러리스트를 마주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감각.

주환은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쾅!

그와 동시에 갑작스러운 폭발과 함께 문짝이 부서져 나갔다.

폭발의 에너지와 문의 파편이 집의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폭발과 함께 한 여성이 문 안으로 진입했다.

하얀색의 원피스에 머리에는 밀짚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는 그 여성의 손에는 불꽃이 어려 있다.

여성이 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옆쪽으로 비켜서 있던 주환은 바로 그녀와 거리를 좁혔다.

주환이 빠르게 접근하자 그녀 역시 그에게 반응했다.

솨약!

두 사람은 서로 향해 동시에 손을 뻗었다.

우뚝.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이 멎는다.

주환이 뻗은 손에 들린 나이프의 끝이 그녀의 이마 위쪽에.

불꽃이 어린 그녀의 손은 주환의 복부 앞에.

두 사람의 공격이 서로에게 닿기 전, 그들은 반사적으로 손을 멈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겨눈 채 어둠 속에서 대치했다.

쿵쿵!

그때, 발걸음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데스티나와 루카, 두 사람은 잠옷 차림인 채 무기를 들고 두 사람을 향해 달려왔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데스티나는 정체불명의 여성에게 검을 겨누었다.

정체불명의 여성은 데스티나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미소를 지으며 주환에게 말했다.

“방금 공격으로 날아가 버렸을 거로 생각했는데, 제법이네.”

밀짚모자의 여인은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하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신비한 빛을 내는 황금색의 눈동자가 주환을 바라보았다.

스륵.

그와 동시에 그녀는 주환을 겨누고 있던 자신의 팔을 거두었다.

그러자 주환도 자신의 나이프를 거두었다.

주환이 나이프를 거두자 밀짚모자의 여인은 그를 지나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나도 당당한 행동에 세 사람은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식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머지 세 사람이 그 뒤를 따라서 식당으로 들어갔을 때, 밀짚모자의 여인은 마치 자신의 집인 양 식탁의 의자에 앉았다.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식탁 위에 있는 양초에 저절로 불이 붙었다.

양초의 불빛이 밀짚모자 여인의 얼굴을 확연하게 드러내 주었다.

아주 긴 검은 색의 머리칼과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미모.

그리고 머리칼 사이에 삐죽이 나와 있는 뾰족한 귀.

“엘프?”

데스티나는 그렇게 말했다.

“아까 내가 누군지 궁금해했지?”

밀짚모자의 여인은 쓰고 있는 모자를 벗고는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엘레나. 내 제자를 만나러 왔지.”

“제자?”

자신을 엘레나라고 밝힌 여인의 말에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엘레나는 한숨을 내쉬더니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손님이 왔는데 차 한 잔을 내오지 않는 건가?”

* * *

차를 기다리고 있는 엘레나를 감시하며 데스티나와 주환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루카는 엘레나에게 내줄 차를 끓이면서 곁눈질로 그녀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었다.

“차가 너무 늦는데.”

차를 내달라고 요구한 이후로 엘레나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지금 끓이고 있으니까 불평하지 마시지. 어차피 댁이 오지 않았으면 이 새벽에 차를 끓일 일도 없었으니까.”

루카는 그렇게 불평했다.

“당신.”

주환이 입을 열었을 때 엘레나는 손을 들어서 그를 제지했다.

“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엘레나의 말에 주환과 데스티나는 우선 진득하게 기다려 보기로 했다.

“자, 여기.”

루카는 막 끓인 차를 찻잔에 담고는 엘레나에게 내밀었다.

엘레나는 찻잔을 받아들곤 그 향기를 음미했다.

“마법사들은 대부분 차를 좋아하지. 언제나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 주거든.”

그렇게 말하며 엘레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얼굴을 팍 찡그리더니 찻잔을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쨍그랑!

그러자 찻잔은 산산조각이 났다.

“무슨 짓이야!”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루카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차 맛이 별로야.”

엘레나는 그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찻잔을 던져 버려?”

“다시 끓여 오라고 하지는 않겠어. 어차피 그래 봐야 또 맛없는 차를 끓여 올 게 뻔하니까.”

“내가 네 하인인 줄 알아!”

루카는 참지 않고 엘레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때, 데스티나가 빠르게 움직여서 루카의 팔을 잡았다.

“참아라. 루카.”

“그렇지만!”

루카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씩씩거렸다.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데스티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툴레오의 검을 엘레나에게 내밀었다.

“이 물건에 대해서 알고 있나?”

“물론 알고 있지.”

엘레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원래 내 물건이었으니까. 그게 이제는 당신에게까지 흘러 들어갔네.”

“역시나 그랬군.”

데스티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에 관한 이야기는 이브에게서 들은 적이 있지.”

“그래? 딱히 좋은 이야기는 없었을 텐데.”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관심 없어. 중요한 건 당신이 우리를 영원의 교차점으로 데려다줄 수 있느냐 없느냐지.”

“물론, 데려가 줄 수 있어.”

엘레나의 말에 주환과 데스티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지만 이렇게 맛없는 차를 먹은 순간 나오려던 말도 다시 쑥 들어가 버렸지.”

“그렇게 맛있는 차를 먹고 싶다면 자기가 알아서 끓이든지 하면 될 거 아냐?”

엘레나의 말에 루카가 그렇게 쏘아붙였다.

“그건 귀찮아.”

엘레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자고로 차라는 건 남이 끓여 주는 게 제일 맛있는 법.”

“진짜 성격 이상하네.”

루카는 혀를 내둘렀다.

“그나저나 내가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 준다면 너희는 대체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는 거지?”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제대로 된 차도 못 내온다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거야 뻔할 뻔 자이겠지만. 좀비들이 이 세상에 창궐한 이후로 대부분의 엘프들은 인간 세계와 연을 끊었어. 나도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인간을 돕는 것은 자제하고 있지.”

“어째서?”

“인간은 모든 일을 다 망쳐 버리거든.”

“물론 좀비 사태는 인간의 실수이지만 모든 인간이 그런 것은 아니다.”

데스티나가 그렇게 항변했지만, 엘레나로서는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부탁이 있다면 그에 대한 보상은 당연한 일 아닐까?”

그 말만을 남기고 엘레나는 식탁에서 일어섰다.

보상에 대해서 제대로 된 언급이 없다면 미련 없이 돌아가겠다는 의사 표시인 듯했다.

그렇기에 주환은 그녀를 막았다.

“물론 당신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도 할 말이 있어. 원래 당신 제자인 이브는 자기 일을 도와주는 대가로 우리에게 영원의 교차점으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했었지.”

“그래서?”

“그러니까 당신에게 보상하거나 혹은 설득해야 의무는 우리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제자인 이브에게도 있다는 거지.”

“흐음. 그렇다는 말이지?”

엘레나는 갑자기 식당을 나섰다.

놀란 세 사람은 그녀를 따라 나갔다.

“지금 어디 가려는 거야?”

주환의 물음에 엘레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당연하잖아. 그 바보 같은 제자 녀석에게 쳐들어가려는 거지.”

“쳐들어간다고?”

주환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엘레나에게 그렇게 되물었다.

“뭘 뻔한 걸 다시 묻지? 말 그대로야. 생각 없는 제자는 당장 찾아가서 엉덩이를 때려 주는 게 최고니까.”

엘레나는 거실 쪽으로 나가면서 주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엘레나를 따라서 거실로 나간 주환은 거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탑 근처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 가까이 갈 수가 없어. 그래서 나 혼자만 간신히 텔레포트를 통해서 그 탑을 출입하는데.”

“텔레포트라고?”

“그 통로가 바로 저거야.”

주환은 손으로 거울을 가리켰다.

지금까지 주환이 검은 탑으로 가고 싶을 때는 작은 손거울을 사용해 연락을 취하고 연락을 받은 이브가 큰 전신 거울을 사용해 텔레포트로 이동시켜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흥. 저딴 건 별 쓸모도 없어.”

엘레나가 손을 뻗자 충격파가 발사되면서 거울이 박살 나 버렸다.

“저게 없으면 그 탑으로 갈 방법이 없는데.”

루카가 그렇게 말하자 주환은 품속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서 엘레나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이제 거기 가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그것도 일회용이고 단 한 사람 밖에는 보내 주질 않는다고.”

“오. 연락용 거울이네.”

엘레나는 주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서 그 거울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거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연락용의 거울에다가 일회용이긴 하지만 텔레포트 능력을 부여한 아이템이로군. 안 본 지 꽤 되었어도 실력이 조금 늘었다는 건가? 하지만 아직 멀었어.”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거울을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자 손거울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며 이브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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