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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48화 (48/182)

48화

데스티나가 겨우겨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루카는 데스티나의 머리칼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냄새를 맡아 보았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머리카락 끝이 좀 타버린 것 같은데? 그 괴물의 더러운 침이 다 떨어지지 않았나 봐.”

“아아.”

데스티나는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괴물에게 먹히는 순간 바로 마나로 몸을 방어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미처 다 막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던 모양이었다.

데스티나가 갑자기 머리 쪽으로 검을 들자 당황한 루카가 데스티나의 손을 붙잡았다.

“뭐 하려고?”

“더러워진 부분이 있으면 잘라 내면 그만이다.”

“잠깐만. 그러면 기른 머리가 아깝잖아.”

루카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귀를 기울였다.

“뭐 하는 거지?”

“듣고 있어.”

데스티나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루카는 데스티나에게 여전히 업힌 채로 어느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쪽에 강이 있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았어?”

“소리가 들렸거든.”

루카의 말에 데스티나 역시 물소리를 들으려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는데 너는 그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나 보군.”

“강이 있으면 거기에서 몸을 씻어 낼 수 있을 거야. 다 씻어 내고도 보기 안 좋으면 그때 머리칼을 잘라도 늦지 않으니까 물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그래. 알았다.”

루카가 데스티나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리곤 그녀를 안내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이윽고.

루카가 데스티나를 이끌고 간 곳에는 과연 제법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에 도착한 두 사람은 우선 얕은 부분으로 들어가서 몸에 붙은 이물질을 씻어 내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물에는 씻겨 내려가네.”

“그런가? 다행이로군.”

데스티나가 머리 끈을 풀고 고개를 숙이자 루카가 데스티나의 머리칼을 물에 담가서 씻겨 주었다.

“그 촌장이 이곳이 마물들의 소굴이 되어 버렸다고 이야기한 것이 이해가 가는군.”

“그래서 걱정이 돼.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지.”

루카가 말하는 아이는 루시아를 의미하고 있었다.

데스티나 역시 걱정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엘레나에게 듣기로 루시아는 전투 따위는 일절 모르는 평범한 소녀일 뿐이었다.

로즈버드 빌리지를 지키고 가족들의 복수를 하기 위한 그 무모한 용기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무모함은 무모함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이 강은 물살이 꽤 빠르군.”

“아마 이 강을 타고 내려가면 폭포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아래쪽으로 물이 떨어지고 있는 소리가 들리거든.”

“아까도 느꼈지만 대단한 청각이다. 나도 다른 사람보다는 감각이 민감한 편이지만 방금 네 설명을 들어야 ‘과연’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은 차이일 뿐이었다.”

“이 강에는 이상한 괴물이 없기를 바라야겠네. 물고기 괴물이라거나.”

다 씻은 듯 데스티나는 고개를 들고는 끈으로 다시 머리를 정리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루카는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지금 이 세상은 어떻게 되어 버린 걸까?”

“무슨 말인가?”

“처음에 나타났던 것은 좀비들이었잖아? 이제는 무엇 때문에 그런 좀비들이 생겨났는지 알고 있지만, 우리가 아까같이 숲에서 만난 괴물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났고 왜 생겨난 거지? 인간 좀비는 인간밖에 감염시키지 못하잖아?”

“나 역시 아직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대답하는 데스티나의 눈빛에는 결연함이 담겼다.

“이번 일을 해결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때, 데스티나는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강의 건너편에서 무엇인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강의 건너편에는 거대한 괴물 사슴벌레가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슴벌레의 눈은 머리의 양쪽에 커다란 흑진주처럼 박혀 있었기에 정확히 두 사람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칼과 다름없는 톱날을 접었다가 폈다 하는 움직임에는 분명 두 사람을 위협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산 넘어 산이네.”

루카와 데스티나는 바로 싸울 준비를 마쳤다.

두 사람은 괴물 사슴벌레가 움직이는 대로 반응하려 했지만, 괴물 사슴벌레는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저 녀석, 혹시 수영을 못하는 건가?”

데스티나는 루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두 사람은 강의 얕은 쪽에 몸을 담그고 있었지만,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저쪽이 싸울 생각이 없다면 굳이 맞설 필요는 없겠지.”

두 사람은 계속 괴물 사슴벌레를 주시하면서 강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괴물 사슴벌레는 분명 두 사람을 노리고 있는 듯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사슴벌레는 나무에 있는 즙을 빨아 먹는 벌레인데.”

루카는 사슴벌레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굳이 우리 같은 인간을 노릴 필요가 있나?”

“모르겠다. 변이하면서 식성도 변한 것일지도.”

“어. 잠깐.”

루카는 무언가 떠올린 것인지 긴장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나?”

“생각해 보니까. 저런 종류의 벌레들은 날 수 있지 않나?”

푸드득.

루카의 말이 끝나자마자 괴물 사슴벌레의 등껍질이 열리더니 투명한 날개가 돋아났다.

그 날개를 세운 괴물 사슴벌레는 두 사람을 향해 쏘아지듯 날아올랐다.

“날았다!”

데스티나와 루카는 동시에 소리쳤다.

풍덩!

그러나 너무나 허무하게도 강의 절반쯤까지 날아오던 괴물 사슴벌레는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더니 강의 한가운데로 빠지고 말았다.

끼이익!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면서 강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괴물 사슴벌레의 모습을 보고 있던 두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느덧 괴물 사슴벌레는 강물의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치웠나.”

슉!

그때, 물속에서 두 개의 칼날이 튀어나와 두 사람에게로 쇄도했다.

그것은 분명 물에 가라앉았던 괴물 사슴벌레의 집게 부분이었다.

그 집게는 본체와 탈부착을 할 수 있었는데 분리된 부분의 끝에는 하얀색의 끈이 달려있었으며 그 끈이 사슴벌레의 본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날아오는 집게를 향해서 두 사람은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데스티나의 검과 루카의 참마도는 집게의 끝부분에 달린 하얀 끈을 잘라 버렸다.

그러자 연결이 끊어진 집게는 마치 부메랑처럼 회전하면서 근처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집게를 잃어버린 두 줄의 하얀색의 끈들은 뱀처럼 움직이더니 한순간 올가미처럼 각각 루카와 데스티나를 휘감아서 묶어 버렸다.

“큭!”

“루카! 이 끈을 잘라야 해!”

데스티나의 외침에 루카 역시 참마도를 들어서 아까처럼 끈을 자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하얀색의 끈이 양팔을 들 수가 없을 정도로 둘의 몸을 단단히 묶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능숙한 낚시꾼이 낚싯줄을 당기듯이 강물 속에 잠겨 있던 괴물 사슴벌레가 빠르게 두 사람을 강물 속으로 끌어당겼다.

“이런!”

데스티나와 루카는 손을 쓰기도 전에 바로 강 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당기는 힘이 어찌나 빠르고 센지 강 쪽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물속으로 잠기지 않고 물수제비처럼 수면에 튕겨 강의 한가운데까지 끌려갔다.

두 사람이 강의 한가운데까지 가자 강물 안에서 가라앉아 있던 괴물 사슴벌레가 다시금 솟아올랐다.

자신의 집게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분노한 것인지 괴물 사슴벌레는 온 다리를 이용해서 헤엄을 치며 다시금 괴성을 질러댔다.

끼이익!

“시끄럽다!”

놈의 괴성에 지지 않고 받아친 데스티나는 묶인 상태에서 어떻게든 검을 휘둘러보려고 했지만 양팔이 구속되어 있었기에 그것이 여의치 않음을 느꼈다.

“이거 놔!”

루카는 고개를 숙여서 묶고 있는 하얀색의 끈을 입으로 물어뜯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데스티나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목의 힘만을 이용해서 들고 있던 검을 위쪽으로 던졌다.

실패해서는 안 되는 단 한 번의 기회였다.

데스티나는 위쪽으로 뜬 검의 손잡이를 입으로 물었다.

묶여 있는 지금은 손보다는 목과 얼굴을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데스티나는 검에 마나를 불어넣은 다음 고개를 움직여서 검으로 사슴벌레의 얼굴과 연결된 하얀 끈을 잘라 버렸다.

슥!

하얀 끈이 잘리자 몸이 자유로워진 데스티나는 검으로 손을 옮겨 잡고는 그 끝을 괴물 사슴벌레의 몸통에 박았다.

검이 몸에 박히자 괴물 사슴벌레는 고통스러운지 다시 등껍질을 열고는 날개를 펼쳤다.

그사이 데스티나는 놈의 몸에 박혀 있는 검의 손잡이를 발판 삼아 그 위로 올라섰다.

“데스티나! 나도 풀어 줘!”

루카의 외침에 데스티나는 다시 검을 뽑기 위해서 몸을 숙였다.

그 순간, 괴물 사슴벌레의 날개가 움직이면서 모터보트처럼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으윽!”

데스티나는 그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괴물 사슴벌레의 몸에 박혀 있는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지금 데스티나는 루카를 구하기는커녕 자신의 몸을 가누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괴물 사슴벌레가 날개를 펼쳤지만, 여전히 몸이 무거운 것인지 물에서 빠져나와 날아오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날개를 움직이자 엄청난 속도로 물 위를 가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 덕에 아직도 괴물 사슴벌레와 하얀색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루카는 가라앉지 않고 물에 뜰 수가 있었다.

루카는 양발을 수면에 댔다.

그러자 당겨지는 힘과 표면장력 덕분에 루카는 물 위에 설 수 있었다.

루카의 모습은 모터보트에 끌려가는 웨이크 보더와 다를 게 없었다.

“이 녀석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거지?”

루카가 소리치자 데스티나 역시 걱정이 되는 듯 끌려오고 있는 루카를 바라보았다.

“루카! 지금 물살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어! 지금 이 녀석. 폭포 쪽으로 돌진하고 있으니까!”

“뭐라고!”

데스티나는 고개를 돌려 앞쪽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떠내려온 모든 것을 하염없이 아래로 추락시키는 커다란 폭포였다.

“방향을 돌려라!”

데스티나는 마치 조종간을 움직이는 것처럼 괴물 사슴벌레에게 박혀 있는 검의 손잡이를 움직였지만, 괴물 사슴벌레는 계속 앞으로 돌진할 뿐이었다.

“이미 늦었어! 데스티나, 꽉 잡어!”

루카의 외침에 데스티나는 하는 수 없이 검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꽉 잡았다.

잠시 후, 괴물 사슴벌레의 몸이 폭포의 절벽 바깥쪽으로 튕겨 나갔다.

놈이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바로 추락하지 않았다.

마치 글라이더가 날아가듯이 그들의 몸은 괴물 사슴벌레와 함께 둥실 떠올라 바람을 타고 아래쪽으로 비스듬하게 날아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역시나 또다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그 허무한 날갯짓은 끝나고 한 마리의 괴물과 두 인간은 강물 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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