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나오질 않는군?”
가스파르는 2호기를 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2호기 역시 가스파르를 마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안에서 쥐 떼에게 죽은 게 아닐까?”
옆에서 보기에는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이지만 사실 2호기는 가스파르의 분신이면서 정신이 연결된 존재였기에 실제적으로는 혼잣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가스파르는 이번에는 3호기에게 질문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저 쥐들에게서 살아남기는 어렵겠지.”
“같은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잖아. 너나 나나 2호기나 사실은 다 한 사람이니까.”
가스파르와 분신들은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렸다.
그러는 사이 2호기가 다급하게 가스파르의 어깨를 툭툭 쳤다.
“뭐야?”
“저길 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
가스파르는 공용 식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2호기의 말처럼 정말로 공용 식당 안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쾅!
그때, 공용 식당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식당 건물을 전부 다 박살 낼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자 그 앞에 서 있던 가스파르와 분신들은 그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뒤쪽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후드득.
하늘로 높게 솟은 건물의 잔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정착지의 안은 검은색의 연기로 가득 찼다.
폭발에 밀려서 쓰러져 버렸던 가스파르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투둑.
자리에서 일어난 가스파르는 무엇인가 자신의 어깨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손을 들어 어깨를 만져 보았다.
손가락에 묻어 나오는 물기.
맑았던 하늘에는 어느샌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폭발했던 공용 식당의 터에서 물에 흠뻑 젖은 엘레나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네가 부리던 그 쥐들은 전부 다 통구이가 되어 버렸네.”
“하. 쥐들을 죽이려고 건물 자체를 날려 버릴 줄이야.”
내리던 비는 어느샌가 멈추었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내리는 비가 아니라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운디네가 마법적으로 만들어 낸 비였기 때문이었다.
“쥐 떼가 없어졌다고 해도 네가 유리해지는 것은 아니지. 아직 나에게는 수가 많이 남아 있거든.”
가스파르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2호기와 3호기 역시 가스파르의 옆에 서서 엘레나와 싸울 준비를 했다.
“확실히 너는 성가신 놈이야.”
“성가신 수준이 아닐 텐데?”
“그런데 네 능력은 말이지, 살아 있는 생명체는 꽤 지독하게 괴롭힐 수 있지만, 그 정도가 끝이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네가 분신들에 싸움을 맡겼으니까. 나도 내 동료를 부르려는 거지.”
“동료?”
“그래.”
엘레나는 품에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청동으로 된 피리였다.
루카가 정착지를 떠나기 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엘레나에게 맡긴 피리.
엘레나는 그 피리를 불었다.
가스파르는 그것이 음파 공격 종류라고 생각하여 귀를 막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깨닫고는 손을 내렸다.
엘레나가 열심히 피리를 불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거 고장 난 것 같은데.”
가스파르가 엘레나에게 지적했지만, 엘레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만 들리는 소리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실망스러운걸. 대체 어떤 피리인지 궁금해서 기다려 줬지만, 이 정도로 실망스러워서야 기다려 준 보람이 없잖아.”
“참을성이 없네. 깜짝 놀랄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럴 리가 있나.”
쌔앵!
그때, 하늘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아주 멀리서 거대한 공 하나가 정착지를 향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저게 뭐야?”
가스파르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아주 멀리서 쏘아진 대포알처럼 무지막지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던 거대한 공은 이윽고 정착지의 한쪽 구석에 처박혔다.
쿠앙!
굉장한 충돌음과 함께 퍼지는 충격파가 가스파르와 엘레나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착지의 한구석에 크레이터를 만들어 낸 그것은 바로 거대한 청동구였다.
청동구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청동구는 바로 청동 인형 ‘갈로스’로 탈바꿈했다.
“루카!”
청동 인간 ‘갈로스’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루카를 찾으면서 엘레나와 가스파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거대한 청동 인형이 쿵쾅거리면서 뛰어오는 그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압감이 있었다.
그들 앞으로 뛰어온 갈로스는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의아하다는 듯 엘레나에게 물었다.
“루카는요?”
“아. 그 하얀 머리 꼬맹이는 여기 없어.”
“그럼 누가 저를 부른 거죠?”
그의 물음에 엘레나는 청동 피리를 들어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바로 내가 불렀지.”
그러자 갈로스의 어깨가 추욱 처졌다.
갈로스는 표정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굉장히 실망했음을 그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너 그런데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단숨에 날아온 거야?”
“검은 탑에 있는 특제 대포가 있거든요. 그 대포에 들어가서 쏘아진 거고요. 그 대포는 저만 이용할 수 있죠. 다른 이들은 충격에 죽어 버릴 테니까요. 아무튼, 루카가 없다면 저는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갈로스가 미련 없이 몸을 돌려서 돌아가려고 하자 엘레나가 황급히 그를 제지했다.
“잠깐만. 그냥 가려고?”
“네. 약속은 루카랑 한 거니까요. 그리고.”
“그리고.”
갈로스는 볼을 긁적였다.
“엘레나 님은 좀 불편하달까.”
“무슨 십 대 소년인 것처럼 굴고 있는 거야?”
“정신적으론 소년이 맞거든요.”
“이봐.”
두 사람의 대화가 답답했는지 가스파르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 저 녀석 싸울 생각은 있는 거야?”
“걱정 마. 없어도 내가 있게 만들 거니까.”
“아니. 내가 왜 그걸 걱정할 거로 생각하는 거야?”
어이없어하는 가스파르를 뒤로하고 엘레나는 갈로스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피리는 루카가 직접 나에게 맡긴 거야. 무슨 일이 있으면 네가 반드시 도와줄 거라고 하면서.”
“그게 정말이신가요?”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만약에 나를 안 도와주면 이브한테 말해서 너를 당장 용광로에 넣어서 요강으로 만들어 버리라고 말할 테니까. 그건 싫지?”
“으윽. 그건 절대절대 싫어요. 그럼 도와드리겠습니다. 근데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설득을 빙자한 협박에 굴한 갈로스가 그렇게 묻자 엘레나는 손을 들어서 가스파르와 분신들을 가리켰다.
“저 녀석들을 박살 내면 돼.”
“정말 그거면 되는 건가요?”
“응.”
둘을 대화를 듣고 있던 가스파르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쳤다.
“그런 느려터진 녀석이 우리를 이길 수 있다는 거냐?”
휭!
가스파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엄청난 풍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느끼기도 전에 갈로스가 단숨에 달려와 3호기를 발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크악!”
가스파르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3호기가 변신을 풀고 뱀 형태로 돌아가기 전에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 공격은 정신이 연결되어 있는 가스파르의 몸에 그대로 전이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온전히 전이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빠르잖아!’
갈로스의 공격을 받은 3호기는 데굴데굴 굴러가 축 늘어져 버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기절해 버린 수십 마리의 뱀으로 돌아가 버렸다.
“크윽! 2호기, 가라!”
가스파르는 2호기를 갈로스에게 보냈다.
2호기는 빙판을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갈로스에게 간 다음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멀리서 보면 그냥 주먹 공격이겠지만 만약 그 주먹을 가까이서 본 사람이 있다면 주먹의 끝부분에 수없이 많은 벌침이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단 한 대만 맞더라도 쇼크사할 수밖에 없는 공격.
문제는 갈로스가 청동 인형이라는 것.
쿵!
주먹이 갈로스에게 닿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볼을 긁적이던 갈로스는 손바닥을 펴고 2호기에게 강렬한 귀싸대기를 날렸다.
위잉!
이번에는 2호기도 바로 반응을 하여 몸을 벌로 바꾸어 도망치려고 했다.
짝!
그렇지만 갈로스가 날린 것은 평범한 싸대기가 아니었다.
반대쪽에서도 똑같은 싸대기가 날아오는 일명 ‘손뼉치기’ 동작이었다.
어떤 벌들은 피할 수 있었지만 많은 벌이 갈로스의 손바닥 사이에서 납작해져 죽고 말았다.
“윽!”
가스파르는 한쪽 팔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죽은 벌들의 고통이 그의 몸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가스파르는 재빨리 2호기와의 연결을 끊어 버렸다.
그러자 조종이 풀린 벌들은 더는 그곳에 있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져서 사라져 버렸다.
“치사하다. 청동으로 된 괴물을 부르다니!”
가스파르가 그렇게 외치자 갈로스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는 괴물이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가스파르는 자신의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팔에 박혀 있는 녹색의 구슬 중 하나를 뽑아냈다.
그 구슬 안에는 그가 배양하고 있는 특수한 벌레가 가득 들어 있었다.
포유류 수준의 숙주는 몸속으로 들어가 정신을 조종하고 벌레 수준의 숙주는 한꺼번에 조종하여 군체를 만들어 내는 신기한 힘을 가진 벌레.
다급해진 가스파르는 그것을 엘레나에게 던졌다.
‘맞추기만 한다면!’
그 구슬이 엘레나에게 맞는다면 그 안에서 수많은 벌레가 튀어나올 것이고 그중 한 마리만 엘레나의 몸에 들어가기만 해도 정신 조종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날아가는 녹색의 구슬.
엘레나는 마치 야구공을 잡듯 그 구슬을 잡았다.
‘해냈다. 이제 구슬이 터지기만 하면!’
그렇지만 구슬은 터지지 않았다.
엘레나가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여 그 구슬이 터지지 않도록 적당한 공기 압력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걸로 나를 조종하려고?”
엘레나는 가스파르에게 달려갔다.
당황한 가스파르가 그녀를 막으려고 했지만 엘레나는 가스파르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는 그 구슬을 가스파르의 입속으로 쑤셔 넣었다.
“우윽!”
“이게 그렇게 좋다면 너나 처먹어!”
엘레나는 가스파르의 머리를 잡고는 뛰어올라 그의 턱에 무릎 차기를 먹였다.
그러자 그의 입에 있던 녹색의 구슬이 터지면서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이 가스파르의 목 안쪽으로 흘러 들어가 사라져 갔다.
“크엑!”
구슬 안의 액체를 삼킨 가스파르는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한참을 고통스러워하더니 그 자리에 쓰려져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한 건가요?”
갈로스가 쓰러진 가스파르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이제 이 녀석을 꽁꽁 묶어놔야겠어.”
“어째서요?”
“당연히 이 녀석들의 아지트를 알아내기 위해서지. 이제부터는 즐거운 고문 시간이라고.”